소설리스트

아빠가 힘을 숨김-194화 (195/261)

194화

“이봐요!”

아빠는 다급히 노인을 붙잡았다.

‘살려야 해.’

나는 재빨리 팔찌를 확인했다.

-

“아.”

불가능했다.

프리메라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영역.

노인이 우리에게 남긴 한마디가 최악의 금제를 건드린 것이었다.

“나의, 이름은, 알베르토 마뉘엘입니다.”

그 이름은 나도 알고 있다.

아빠가 온 대륙을 뒤져 찾고 있던 실종자.

회귀 마법을 썼다고 추측되는 사람.

오스카의 할아버지.

“젠장!”

노인의 목을 짚어 본 아빠가 털썩, 힘없이 주저앉았다.

찰나에 숨이 끊어져 있었다.

눈도 감지 못한 채로….

겨우 찾아낸 회귀의 실마리를 눈앞에서 놓친 아빠가 입술을 물었다.

“공주야, 일단….”

아빠가 팔을 뻗어, 시신과 나를 떨어뜨려 놓으려 했다.

“아빠, 나 괜찮아. 근데, 근데 우리는 스승님 할아버지 얼굴을 아는데, 이 사람 아니잖아. 그런데 왜….”

“잠깐.”

아빠는 노인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그리고 채 피가 식지 않은 시신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이럴 수가.”

“아.”

동시에 나도 놀랐다.

분명 흐릿했던 인상.

머릿속에 넣으려고 해도 도무지 넣어지지 않던 얼굴.

그러나 노인이 죽고 나서야, 그 생김새가 확실히 눈에 들었다.

“맞아….”

아빠가 떨리는 손으로 노인의 눈을 살짝 스쳤다.

선명한 금색 눈동자.

초상화로만 봤던 모습보다는 나이 들어 있지만, 분명.

“알베르토 마뉘엘이야.”

얼굴이 바뀐 게 아니다.

노인은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다만 그가 죽고 나서야.

그러니까 목숨으로, 자신이 짊어진 금제를 깨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었다.

“사라진다는 게….”

아빠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런 거였군.”

나도 깨달았다.

회귀 마법의 대가.

그 시전자는 죽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질 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알아볼 수 없고,

인지되지도 않는다.

말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도 없다.

평생 금제에 묶여 있는 몸이니까.

“최악이네.”

아빠가 허망하게 읊조렸다.

오스카의 최후가 죽음이 아닌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아니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그의 존재가 찾을 수도 없게 사라지는 것을 불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 * *

회귀의 대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냈음에도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게 해 줘.

금제에서 자유롭게 해 줘.

-

수많은 바람에도 팔찌는 매정히 작대기를 띄웠다.

이는 프리메라의 권능보다 더 위에 존재하는 세계의 법칙이기에.

“스승님한테 말할 거야?”

이튿날.

아빠는 마탑에 가려는 내 채비를 도와주며 말했다.

“고민 좀 해 보고. 하지만 할아버지 시신은 마탑주가 수습할 수 있게 해 줘야지.”

“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던 거 알면 스승님은 똑똑하니까 다 눈치챌 텐데.”

“그렇겠지. 오늘 아빠가 보러 가겠다고 말 좀 전해 줘, 공주야.”

“으응.”

그때, 밖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나는 의아해하다가 문득 놀라서 창가로 재빨리 다가갔다.

“우리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치안과 방범을 보장하라!”

귀족 거주 지역까지 찾아와 목청 높여 외치는 한 무리의 평민들.

시위대였다.

원작에서 저 시위를 주동했던 열 명은 참수당한다.

그래서 난 시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누군지 미리 알아보려 했었고, 며칠 전 리코는 그들의 신상을 보내왔다.

“아, 아빠?”

난 놀라서 아빠를 돌아봤다.

저들의 신상을 받자마자 난 그걸 아빠에게 그대로 전했었다.

저 사람들을 미리 찾아내 시위를 막느냐, 아니면 그대로 두느냐―

“시위가 일어나면 아빠 사업에 엄청 도움이 돼. 그런데 시위 일으킨 사람들은 죽어.”

―선택은 아빠에게 떠넘긴 채.

나는 아빠가, 정의로운 주인공이, 분명 그들의 희생을 두고 보지만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공주야.”

놀란 내 어깨를 붙잡으며 아빠가 눈을 맞춰왔다.

“저건 아주 좋은 변화야.”

“어어, 그, 맞지. 응, 맞아.”

맞지. 맞는데….

“저렇게 용감하게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바뀌어.”

혁명은 피로 쓰인다.

잔인한 사실이다.

그것을 알기에 혼자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아빠에게 선택을 넘기지 않았나.

“공주는 신경 쓰지 마.”

하지만, 내심으로는 바랐었다.

아빠는 정의로운 주인공이니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저 사람들의 희생 없이도 성공하리라고.

“아, 알겠어. 나… 나 갔다 올게! 스승님한테 아빠가 보자고 했다고 말 전할게!”

난 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는 아빠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방을 나섰다.

어쩐지 아빠가 낯설게 느껴졌다.

* * *

“간땡이가 부었네, 아주.”

오스카가 웃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시위대는 제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목청 높이고 있었다. 마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 저래야지.”

오스카는 만족했다.

“백날 네 아버지가 떠먹여 주는 거 받아먹기만 하면 안 되지.”

그의 말이 맞다.

‘그래, 잘된 거야. 아빠가 나쁜 사람이라 모른 척한 게 아니잖아.’

시위는 평민들이 차츰 목소리를 내고, 황제에게 갖고 있던 본능적인 두려움을 없애는 계기가 된다.

‘사업에 너무너무 필요하니까. 이런 변화는 희생이 있더라도 꼭 필요하니까.’

그러니까 이제 그만 생각하자.

난 고개를 젓고, 조금 전까지 하던 대로 오스카의 얼굴이나 눈에 꼭꼭 눌러 담았다.

“야.”

“…….”

“야!”

“깜짝아, 네!”

오스카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뭔 일 있지? 딱 말해.”

“아뇨?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런데 왜 그렇게 날 뚫어져라 쳐다봐? 너 지금 한 시간째 멍하니 내 얼굴만 보고 있거든?”

“헉. 그랬어요? 그랬구나…. 스승님이 너무 잘생겨서 눈을 뗄 수 없나 봐요….”

“하.”

오스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걸 나더러 믿으라고?”

“진짠데….”

“뭔 일 있잖아! 빨리 말해!”

“아니에요. 진짜 없어요.”

“아오!”

지금은 이토록 선명하게 내 눈에 담기는 그의 얼굴.

하지만, 최후의 날이 오면….

정말 오스카를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점심시간 끝나면 칼같이 나가던 애가 30분째 농땡이 피우는 건 또 뭔데? 가서 공부 안 해?”

“앗! 공부, 네. 해야죠. 하는데….”

눈꺼풀 안에 새겨 넣듯 오스카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으면 혹시라도 그를 잊지 않고 알아볼 수 있을까 봐.

“그, 그냥… 공부 안 하고… 안 하고….”

“……?”

“스승님 보고 있으면 안 돼요…? 으허엉….”

“…? 야!!! 너 뭔데, 진짜!”

쉼 없이 오스카를 눈에 담고 있던 나는 결국, 또 울어 버렸다.

* * *

황제, 니콜라스의 집무실.

뒷짐 진 채 창 너머를 바라보던 니콜라스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정신이 나가 버렸군.”

평민 시위대는 황궁까지 찾아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 모양이지.”

니콜라스가 뒤돌았다.

우두커니 선 에녹이 보였다.

“그래, 무슨 일인가?”

“저들을 어쩌실 생각입니까?”

“몰라 묻나?”

“이번 화재 사건으로 피해가 막심합니다. 저들은 지당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벌하지 마시고, 뜻대로 평민 거주 지역에 치안을 강화해 주십시오.”

“허.”

에녹이 드디어 정신이 나간 걸까?

니콜라스는 어이없었다.

“저들 터전에 저들이 불을 내고 감히 내게 요구라는 것을 하는데 그를 들어 달라? 나는 이번 일이, 저 못 배워먹은 버러지들의 자작극이라 보는데.”

에녹의 앞에 다가간 니콜라스가 조용히 덧붙였다.

“방화범들이 약속한 듯 전부 자살해서 조사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

“내가 자비롭게 땅 한쪽을 내어 줬더니. 감사할 줄도, 만족할 줄도 모르고 더 큰 것을 바라고 있어. 왜일까.”

니콜라스가 에녹의 어깨를 꽉 쥐며 웃었다.

“그간 자네가 저들에게 기어오를 여지를 줬기 때문이야. 한데 봐, 어찌 됐나?”

“…….”

“이제는 무서운 것도 없는지 자기네들 땅을 망쳐가면서까지 감히 나와 거래하려 들잖나.”

“…….”

“바로, 너 때문에 저것들이.”

이를 악문 니콜라스가 에녹의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바짝 붙였다.

“내가 쌓아 올린 탑에 기어오르고 있는데.”

“…….”

“머리 숙이고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뭐? 버러지들을 살려 주고 요구하는 바를 들어줘?”

매서운 황제의 일갈에도 에녹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조사할 수 있습니다. 방화를 준비하고 있던 이들 중 한 명을 확보했으니까요.”

“……?”

그 순간.

니콜라스가 굳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뭐라고?”

“알아본바 배후가 있는 계획범죄였습니다. 계속 조사하면, 폐하의 말씀대로 화재 테러가 평민들의 자작극이었는지, 아니면.”

에녹이 날카롭게 눈을 맞춰오며 덧붙였다.

“누군가가 사익(私益)을 위해 벌인 끔찍한 장난질이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에녹의 어깨를 쥐고 있던 니콜라스의 손이 천천히 떨어졌다.

침착함을 가장한 그의 머릿속은 지금 어느 때보다도 시끄러웠다.

‘버러지들은 분명히, 전부 제거했다고 했다. 나를 떠보고 있는 건가?’

마치 니콜라스의 속을 읽기라도 한 듯 에녹이 말했다.

“돈을 받고 범죄에 동참한 다음 자살을 강요당했더군요.”

…알고 있다. 전부.

“내게 데리고 오게.”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마저 조사하겠습니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폐하.”

“…….”

“바라신다면, 덮을까요.”

고요를 깬 에녹의 제안.

“…….”

대답 없이, 니콜라스가 천천히 몸을 틀어 돌아섰다.

조사는 이미 끝마쳤을 것이다.

어디까지 알아냈는지는 몰라도, 화재 테러에 황실이 엮여 있다는 증거 정도는 확보했을 터.

에녹은 이미 다 알고 협박하러 온 것이었다.

“덮을까요.”

재차 묻는 그의 요구는 하나.

저 밖에서 목청 높이고 있는 시위대를 벌하지 않고, 그들의 바람을 들어 달라는 것.

제도를, 그 주인인 황제의 손으로 직접 망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저들도 폐하의 백성이고, 제국민입니다. 자비로우신 선택을 기다리겠습니다.”

에녹은 무심히 읊조리며 떠나갔다.

“…….”

홀로 남은 니콜라스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책상을 짚고서야 비틀거리며 겨우 설 수 있었다.

‘뭐지? 왜지?’

신의 장난질인가?

에녹 루빈슈타인.

그가 돌아온 후부터 니콜라스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기분이 들곤 했다.

모든 상황이 거짓말처럼 에녹을 도왔고 니콜라스는 번번이 패배했다.

도대체, 왜….

결정적인 순간마다,

신은 저 사내의 손을 들어주는가?

“뭔가, 이상해….”

니콜라스는 후회했다.

에녹을 제도로 돌아오게 했던 4년 전, 자신의 선택을.

이윽고, 털썩.

기어코 힘이 풀린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으, 으으….”

마치 에녹의 앞에 무릎 꿇은 듯한 비참한 착각.

“으아아아악!!!”

참을 수 없는 화가 터져 나왔다.

아빠가 힘을 숨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