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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195화 (196/261)

195화

“라몬! 라몬!!!”

황제의 노성이 울려 퍼졌다.

보좌관, 라몬은 급히 들어와 잔뜩 노한 니콜라스의 앞에 엎드렸다.

“놓친 놈이, 있었나?”

“……!”

왜 이것을 묻는 걸까.

라몬은 조금 전, 에녹이 찾아왔던 사실을 떠올렸다.

‘설마 루빈슈타인 공작이….’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애초에 평민들을 테러에 이용하려 했던 것부터 위험이 너무 컸다.

비능력자.

한없이 나약하지만, 동시에 성력이 존재하지 않기에 프리메라가 조종하거나 세뇌할 수는 없는 이들.

일일이 인력으로 통제해야 하니 변수가 생길 수밖에.

“폐, 폐하. 소, 송구합니다. 모, 목숨만은… 커헉!”

순간, 심장이 고통스럽게 오그라들었다. 라몬이 가슴을 움켜쥐고 꺽꺽거리며 바닥을 굴렀다.

이대로 죽는 걸까?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쯤, 고통이 멎었다.

땀범벅이 된 라몬이 숨을 가누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무릎 꿇었다.

“폐, 헉, 폐하….”

슬쩍 눈을 들자, 꼭 영혼이라도 빠져나간 사람처럼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는 니콜라스가 보였다.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어….”

“…….”

“뭔가가 잘못됐어. 모든 일이, 너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니콜라스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에녹이 제도로 돌아오고 나서부터야. 목줄 한번 쥐어 보려 했더니 딸은 옥타바였고….”

“…….”

“에녹이 오자마자 사라졌던 신이 나타나 병자들을 살렸지. 결국, 내 수족 같던 대신관이 죽고 대신전의 입지마저 땅에 처박혔어.”

“…….”

“그걸 다시 세워 놓느라 4년이나 걸렸어. 내 피 같은, 목숨을 써서….”

가짜 프리메라, 황태자 프란츠를 세워 겨우 황실의 권위를 복구했다.

손짓 한 번에 가뭄이 든 영지에 비를 내리고, 마수들을 제압하는 새 시대의 성군.

물론 다 니콜라스의 능력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니콜라스는 쫓기는 기분이었다.

황태자가 가짜임을 숨기기 위해 쉴 새 없이 자신의 수명을 갈아내고 있었으니까.

“에녹을 사냥개로 써먹기는커녕, 내가 사냥당하고 있는 기분이야. 그 알량한 신념으로 내 탑을 차근차근 짓밟고 있어.”

“…….”

“죽으라고 사지에 보냈던 전우는 정복 영웅이 됐고, 라몬, 네놈이 놓친 버러지는 에녹 손에 들어갔지.”

“죄, 죄송….”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니콜라스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더듬었다.

“신은 에녹의 편이야.”

* * *

루빈슈타인 공작저.

할 말이 있다며 마탑에 찾아왔던 에녹은, 오스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다짜고짜 끌려 온 오스카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아, 뭐냐고, 진짜!”

오늘은 어째선지 부녀가 쌍으로 이상하게 굴었다.

리리스는 종일 서럽게 울질 않나.

에녹은 어디 장례식이라도 가는지 위아래로 시커멓게 차려입곤 내내 우중충한 표정이었다.

“저기요. 날 왜 여기에 데려왔는지 말을 하라고요. 진짜 답답해 돌아가시겠네.”

“들어와.”

“에이 씨.”

오스카는 쓰지도 않는 공작저 별관 지하까지 끌려왔다.

텅 빈 밀실.

유리로 된 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뭐예요?”

“알베르토 마뉘엘.”

“…….”

“당신 조부야.”

순간, 오스카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그는 잠시 귀를 의심하며 에녹의 표정을 살폈다.

진지해 보였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확인해 봐.”

오스카는 주저 없이 관으로 다가갔다. 투명한 관 뚜껑 아래로 시신이 보였다.

“……?”

손등으로 거칠게 눈을 비비고 재차 보았다.

깡마른 몸.

주름이 핀 얼굴.

마지막 기억보다는 조금 더 늙어 있었으나, 확실히, 자신의 조부였다.

“어떻게….”

사라진 자, 알베르토 마뉘엘.

그는 64세의 나이에 실종되었다.

오스카가 회귀하기 전에도, 회귀한 후에도.

* * *

회귀를 성공시켰을 때.

오스카의 나이는 10살이었다.

그러니까, 리리스가 막 태어나고 에녹이 자취를 감춘 그 해.

그 시점을 고른 이유는, 아이가 그리 찾던 아빠와 처음부터 원 없이 다시 기억을 쌓길 바라서였다.

‘그런데 이건 생각 못 했네.’

리리스의 생각밖에 하지 못했던 오스카는, 10살의 몸으로 눈을 뜨고 나서야 깨달았다.

자신의 시간도 되돌려졌음을.

아직 부모님이 살아 있고, 조부 또한 사라지기 전이었다.

‘짐작이 맞는다면 할아버지도 지금 회귀한 상태일 텐데.’

두 명의 회귀자가 공존하는 상태였으나 그 사실은 오스카만 알았다.

“아들, 잘 들어. 이런 마법은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어서도 안 돼. 이런 게 나쁜 사람 손에 들어가면 전쟁 나.”

하필 마법식을 처음 만들어 봤던 그 이튿날로 돌아왔었던가?

열 살의 오스카가 만든 공격 마법식을 발견한 아버지는, 그것을 태워 버리며 한 시간이나 넘게 나무랐다.

‘누구 생각나네.’

생전 오스카의 아버지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힘이 있다면 약한 자를 위해 쓰고, 언제나 대의를 위해 행동하라고 가르치곤 했다.

그래, 에녹 루빈슈타인.

그와 비슷한, 재미없는 부류였다.

“아들, 넌 할아버지가 이해되니? 도대체 왜 황제에게 무르게 구시는 거지?”

그러나 당시 마탑의 주인이었던 조부, 알베르토 마뉘엘은 달랐다.

배짱부릴 위치가 되는데도 항상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고 그 때문에 부친과는 매일 다투었다.

조부는, 왜인지 황제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아버지. 이번에 왕국 원정인가 뭔가, 가지 마세요. 아니면 좀 미루시든가요.”

오스카는 갑작스러운 마차 사고로 유명을 달리할 부모를 살려 볼까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고를 피하니 부모는 암살당했다.

회귀 전과 회귀 후.

부모의 장례를 두 번이나 치르고 나서야 오스카는 깨달았다. 회귀 전의 마차 사고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아마….

‘황제 놈 짓이었겠지.’

부친은 앞뒤가 꽉 막힌 데다 제 뜻을 숨기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마탑을 물려받으면 황제는 골치 아파졌을 터.

그러니까, 황제의 수작질이었다.

‘아, 설마 할아버지가 그래서 황제에게 절절맸던 건가?’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장례식장.

공허한 표정의 조부, 알베르토를 보며 오스카는 확신했다.

조부는 회귀자.

회귀를 시도했던 이유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회귀하기 전에도, 내 부모님이 황제 손에 죽었었나 보지?’

그래서 조부는 평생 황제와 대적하지 않았고, 제 아들과 손자에게도 허리를 굽히라 가르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또다시 자식을 살리는 데 실패했다.

‘바보 같네.’

기껏 목숨을 걸어 회귀까지 해 놓고 자식의 죽음을 두 번이나 지켜보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당신처럼 실패 안 해요, 절대.’

부모의 관 위에 하얀 국화꽃 한 송이를 올리며 오스카는 리리스를 떠올렸다.

절대, 조부처럼 허망하게 실패하지 않으리라.

잘려서 나뒹굴던 아이의 목을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곧 사라지겠지.’

어렴풋이 기억하는 회귀 전에는, 부모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부도 사라졌었다.

아마도… 회귀의 대가.

소멸이었을 것이다.

막을 방법은 없으니, 어떻게 사라지는지나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최후도 같을 테니까.

그러나 손자에게 허망한 끝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는지, 조부는 모든 채비를 마치고 말없이 먼저 떠났다.

“…안녕히 가세요.”

홀로 외로이 사라졌을 조부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

그렇게 얼마 후.

오스카는 15세의 나이로 마탑을 물려받았다.

부모의 죽음, 조부의 실종.

어린 나이의 승계.

회귀 전에도, 후에도 오스카의 삶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 * *

“사라진 게 아니었어? 지금까지 숨어 살았던 거예요?”

조부의 시신을 앞에 둔 오스카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에녹이 진중하게 말을 골랐다.

“어제 날 찾아와서 처음 만났고, 어제 돌아가셨어.”

“뭐라고요?”

“당신 조부의 얼굴,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나도, 리리스도 못 알아봤어. 두 눈으로 보면서도 알아챌 수가 없었지.”

“…….”

“죽고 나서야 얼굴이 제대로 보이더군. 죽은 이유는.”

잠시 침묵한 에녹이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 자기의 존재를 밝혀서였어. 죽음을 각오하고 말이야.”

“…….”

조부가 죽은 이유는, 금제를 어겨서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금제가.

“……자기의 존재를 밝혀서였어.”

오스카는 다시 멍하니, 관을 향해 눈을 돌렸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알아챌 수가 없었지.”

“죽고 나서야 얼굴이 제대로 보이더군…….”

“아아.”

오스카는 비로소 회귀의 대가, 소멸의 의미를 깨달았다.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지 않은 것.

“그렇구나.”

“스승님!”

지금은 마냥 해맑게 웃으며 안겨 오는 아이가, 언젠가는.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스쳐 지나가게 되리라.

“하, 하하.”

힘없이, 웃음이 터졌다.

“잔인하네….”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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