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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00화 (201/261)

200화

“어우, 미안하다. 갑자기 웃음이 막 나오네.”

“…….”

말과 달리 오스카는, 웃음을 참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참는답시고 이를 보이지 않으려고 요상하게 오그린 입술이 더 얄미워 보였다.

“…….”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 꿰고 있는 듯한 오스카.

체시어는 민망해져서, 급히 고개를 숙였다.

“가 보겠습니다.”

“잠깐, 잠깐.”

오스카가 가려는 체시어를 붙잡고 히죽 웃었다.

‘이렇게 표정 관리 못 하면 더 골려주고 싶잖아.’

평소에는 표정 변화 하나 없는 놈이 예민하게 구는 걸 보니 우습고 조금은 귀엽기도 했다.

그래서 오스카는 짓궂어졌다.

“항상 ‘우리 애’ 챙겨 줘서 정말 고맙다?”

“…….”

“고맙다고.”

체시어가 오스카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예.”

그리고는 뒤돌아 마차에 올랐다.

“스승님, 안녕!”

“오냐.”

창을 열고 또 인사하는 리리스.

오스카는 체시어 보란 듯 다정히 손을 흔들어 줬다.

“푸하하하학!”

마차가 떠나자 오스카는 배를 잡고 폭소했다.

“아오, 씨.”

찔끔 흘린 눈물까지 닦아낸 그가 사악하게 말했다.

“이게 행복이지!”

* * *

평민 거주 지역.

세라프 거리에 마차가 당도했다.

<리리스의 들개들>

“어우, 진짜. 길드 이름 좀 바꿔 달라고 했더니!”

젬의 용병 길드에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민망한 간판.

“잡아.”

에스코트까지 하려는지 체시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

잡고 내렸는데 체시어는 손을 놔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대로 길드 건물을 향해 걸었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오셨습니까!”

“모시겠습니다!”

미리 연락해 뒀는지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용병들이 일제히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어이쿠, 무서워라.’

그 모습에 나는 움츠러들었다.

하나같이 떡 벌어진 어깨를 자랑해서인지, 꼭 ‘형님!’ 하는 조폭들의 본거지에 와서 인사를 받는 느낌….

“그래.”

이런 환대가 익숙한 듯, 체시어는 손을 까딱해 보였다.

‘익숙하겠지. 체시어랑 젬이 같이 일한 지도 벌써 오래니까.’

둘이 함께한 출정만 수십 번.

신분과 계급을 초월한 체시어와 젬의 우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형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진짜 형님이야?

난 어이없어서 웃고 말았다. 체시어의 손을 잡고 따라가는데 꼭 조폭 두목의 애인이 된 기분이었다.

“오, 왔어?”

“응.”

안내받은 방으로 들어가자 젬이 씩 웃으며 뒤집은 주먹을 내밀었다.

체시어는 익숙하게 젬의 주먹을 주먹으로 툭, 건드렸다. 그리고는 서로 쾅, 어깨를 치며 친밀해 보이는 자기들만의 인사를 나눴다.

‘이 무슨 상남자들의 인사법이람?’

웬만한 남자들도 다 이겨 먹는 덩치. 게다가 붉은 머리를 항상 짧게 치고 다니는 젬.

그래서인지 꼭 남자 둘이 호쾌한 인사를 나누는 것 같았다.

“자, 우리 공주님은 여기로 모시겠습니다.”

“아, 무슨 공주님이야아….”

젬은 내 양쪽 뺨에 입을 맞추며 자리를 권했다.

“어어어! 롬?!”

난 앉으려다가 미리 와 있는 손님 얼굴을 보고 놀랐다.

“리리스, 오랜만이야.”

나, 체시어, 젬, 그리고 롬까지!

“리리스 너도 온다고 해서, 롬도 불렀지. 이렇게 다 같이 모인 게 대체 얼마 만이야?”

양성소 시절, 월말평가 한 번에 졸업하는 쾌거를 이뤄냈던 어벤X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근처에 들를 때 따로 만난 적이야 몇 번 있지만, 다 함께 모인 자리는 오랜만이라 나는 들떴다.

“너무 좋다. 롬, 너 안 본 사이에 많이 변했다?”

“앗, 그래?”

롬이 수줍게 웃었다.

희멀건 얼굴은 그대로지만 말랐던 몸에 살이 좀 붙었고, 무엇보다….

“아주 부티가 잘잘 흐르지? 요즘 나보다 돈 더 잘 번다니까?”

젬이 롬의 옆에 털썩 앉으며 킬킬 웃었다.

“정말? 롬, 너 치료방 잘되나 보다?”

치유 계열을 전공한 데다가 약초학까지 공부한 롬이 세라프 거리에 차린 치료방은, 꽤나 유명했다.

“하핫, 뭐 그럭저럭.”

멋쩍게 웃은 롬이 “아, 맞다.” 하고 탄성을 내뱉더니 품에서 웬 편지 봉투들을 꺼냈다.

“우리 치료방 손님들이 전해 달래, 젬.”

“어우, 씨!”

질색한 젬이 편지들을 받아서 소파 뒤로 휙 던져 버렸다.

난 놀랐다. 예쁘게 꾸민 편지는 겉만 쓱 훑어봐도 분명….

“왜 버려? 연애편지 같은데?”

“연애편지 맞아, 리리스.”

어째선지 롬이 입을 가리고 큭큭 웃었다.

“우와, 젬. 너 인기 엄청 많구나?”

“많으면 뭐 해!”

젬이 머리를 붙잡았다.

“다 여잔데….”

“뭐어?”

젬이 롬을 휙, 노려봤다.

“나 여자라고 말해 주고, 편지 같은 거 받아오지 말랬지!”

“에이, 당연히 말하지. 열 명 중 일곱 명은 네가 여자였냐며 놀라서 돌아가지만.”

롬은 버려진 편지를 턱짓하며 덧붙였다.

“저 아가씨들은 네가 여자라도 딱히 상관없다면서 전해달라고 했는걸?”

“아악!”

젬은 울분을 터뜨렸다.

“아니, 우리 길드 엄청나게 유명해졌는데 이쯤이면 소문 쫙 나야 하지 않냐? 나 여자라는 거?”

난 헛웃음을 터뜨리며 젬의 생김새를 뜯어보았다.

여자라 굵직하기보다는 날카로운 얼굴선이었지만….

‘미소년처럼 보이는걸.’

웬만한 남자보다 큰 키와 덩치는 물론이고 목소리까지 낮아서 딱 봤을 때 여자라고 생각하긴 어려웠다.

“얘 인기 엄청 많아. 연애편지만 백 통 넘게 받았는데.”

롬이 놀리듯 히죽 웃었다.

“남자한테 받은 고백은 한 번도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지.”

“너 죽을래?”

젬이 이를 갈았다.

“…인기 많구나.”

그때, 묵묵히 듣고 있던 체시어가 어째선지 어두워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많으면 뭐 하냐고! 아, 됐고. 무슨 일로 온 거야? 뭐 출정 있어?”

젬이 묻자, 체시어가 후우, 하고 긴 숨을 쉬었다. 긴장한 듯 보였다.

“부탁이 있어, 젬.”

“무슨 부탁?”

“미안한 부탁이야. 네가 기분 나쁠 수도 있고.”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지? 내가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인가?”

“그런 건 아니지만, 불쾌할 거야.”

“뭔데, 대체!”

“그런데 당장 나한테 너무 중요한 문제라서….”

체시어는 자신이 없는지, 모은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만 괜찮다면, 꼭 승낙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놀랐다.

이런 체시어의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안쓰러워!’

어떤 부탁이든 들어주고 싶은 그런 모습.

젬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멍하니 체시어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체시어.”

“어.”

“우리가 무슨 사이냐? 양성소 시절부터 지금까지, 둘도 없는 친구 아니야?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도 아니라면서 왜 이리 힘들게 말을 꺼내?”

젬은 멋지게 덧붙였다.

“내 입에서 거절이 나오는 일은 없을 거야. 내 친구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조건 하겠어. 내가 만든 이 용병 길드, <리리스의 들개들>에 걸고 맹세하지.”

으으. 다 좋은데 그놈의 길드 이름은….

아무튼, 감동적인 광경이었다.

나는 코끝이 시큰해졌다.

원작에서도 둘의 우정이 얼마나 빛이 났던가.

‘내가 설득할 필요도 없겠네!’

체시어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작게 웃었다.

“말해 봐!”

“그래, 젬.”

체시어는 젬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랑 만나 줄 수 있을까.”

“…….”

“……?”

“……?!”

일동, 정적.

이윽고 체시어의 말을 이해한 젬이 느릿느릿 눈을 껌뻑였고, 옆에 앉은 롬의 입은 떡 벌어졌다.

“체, 체, 체, 체시어?”

물론 이 중에서 내가 제일 놀랐을 것이다.

나는 확실히 하려고 물었다.

“마, 만나 달라는 게 무슨 뜻이야? 우리가 생각하는 그 뜻 맞아?”

“응.”

체시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작에 로맨스가 있었다고?’

나는 혼란스러웠다.

‘두, 둘이 친하긴 했지.’

어쩐지 전쟁터에서 같이 멧돼지 뒷다리 구워서 나눠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했어.

‘하지만… 아, 아무리 그래도….’

“널 위해 살고 있어.”

“네가 무사할 수만 있다면, 사업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바로 어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놓고…?’

정말 담백하게, 단순히 내 생존을 바란다는 뜻이었나?

나는 그걸 또 혼자 오해했고?

난 충격에 빠졌다.

“와, 와아.”

혼자만 정신을 차린 롬이, 젬의 어깨를 툭 쳤다.

“추, 축하해. 너 드디어 남자한테 고백받았어.”

“잠깐!”

젬이 벌떡 일어났다.

“야, 체시어. 미안한데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셉티마 성권사단 소속 알프레도 버빈 경?”

“……?!”

툭 치자 체시어의 입에서 곧바로 나오는 이름에, 젬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너 그걸 어떻게 아냐?!”

“티 났거든. 그런데, 젬. 설명할 테니까, 내 얘기 좀 더 들어 줘. 실은….”

“미안, 체시어.”

설득하려는 체시어의 말을, 젬이 단칼에 잘랐다.

“거절 안 하겠다고 해 놓고 1분 만에 말 번복해서 정말 미안해.”

“…….”

“그런데 거절할게. 싫어.”

…차였다!

아주 냉정하게!

나와 롬은 입을 떡 벌린 채, 대치하는 체시어와 젬을 멍하니 번갈아 봤다.

‘이게 무슨 일이야….’

당황해서 눈이 쟁반만 해진 젬.

그리고.

냉정하게 차였건만, 일말의 타격도 받지 않은 듯한 체시어.

“너 내 취향 아니야.”

“아, 그래.”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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