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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03화 (204/261)

203화

* * *

체시어가 황제를 만나고 돌아온 날.

반란군은 또 긴급 회동을 가졌다.

이번에는 에녹과 체시어, 그리고 조제프 셋이 모여 있었다.

“수고했다, 체시어.”

에녹은 얼떨떨했다.

체시어는 황실과의 혼담을 피한 것은 물론, 바라고 있던 황제의 요구까지 끌어냈다.

기대를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확인데.’

조제프도 흐뭇해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황제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의 뜻을 내비쳤다.

“그런데, 조제프 씨.”

조제프는 황제가 그리고 있는 대륙 통일의 청사진을 체시어에게 전해 들으며, 지도를 보고 있었다.

“황제가 너무 쉽게 자기 패를 내보였습니다. 적어도 어디를 침략하려는지, 구체적인 전쟁 계획은 천천히 공유할 줄 알았는데. 혹시 이게 함정이면….”

“아아, 아닙니다.”

조제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왜 아니라고 확신하지?

체시어가 의아해하는데.

“숨길 필요 없지.”

“딱히 숨길 이유가 없으니까요.”

에녹과 조제프가 동시에 말했다.

“황제가 침략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조제프가 지도 위, 어느 이름을 가리켰다.

이솔렘 왕국

“여길 최우선으로 칠 것도 알고 있었고요. 나머지 왕국들은 이솔렘의 동맹국이며 이솔렘의 보호를 받고 있고, 전부 비능력자들뿐이라서.”

조제프가 여러 왕국들의 이름을 짚으며 덧붙였다.

“이솔렘만 정복하면 나머지들은 자연히 따라옵니다.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뻔한 계획이에요.”

“아, 그렇군요.”

“이제부터 체시어 경이 해 주실 일은, 황제의 최측근으로서 이 계획을 감시하시는 겁니다.”

“너, 힘을 좀 숨겨야 해.”

듣고 있던 에녹이 체시어의 팔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조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마지막 준비를 하는 3년 동안, 전쟁이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체시어 경은 그걸 막는 데에 심력을 기울여 주십시오.”

“예.”

“전쟁을 강행할 만큼 전력이 완성되었다고 느끼지 못하도록, 체시어 경이 성장한 모습을 최대한 숨겨주시면 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체시어는 의아했다.

“이솔렘 왕국군이 그렇게 강력합니까? 지금의 저로도 황제가 당장 침공하기를 망설일 만큼?”

“아무래도 그렇죠. 수많은 제국의 능력자들이 이솔렘으로 망명했으니. 물론 거기서 새로 태어나는 능력자들은, 코어를 개방할 수 없어 비능력자와 다름없지만.”

“그래도 왕국에는 능력자가 많아. 새로운 능력자들이 지금도 제국을 이탈해서 계속 왕국으로 망명하고 있으니까.”

에녹이 말을 받았다.

왜?

축복받은 능력자로 태어났으면서 왜 제국을 버리고 떠날까?

더 물으려던 체시어는, 곧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이 훨씬 살기 좋습니다. 제국의 정신 나간 계급제와 숨 막히는 분위기에 질린 능력자들이 한둘이 아니거든요.”

조제프는 턱을 쓰다듬으며 회상하다가 킬킬 웃었다.

“특히, 에녹 루빈슈타인이 자취를 감췄던 7년 동안에 제국을 버리고 떠난 능력자들의 수가 아주, 어마어마했달까요?”

“왜죠?”

“제국에 공작님만 없으면, 왕국은 침략당할 걱정을 안 해도 되니까요.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셈이죠.”

조제프가 에녹을 보며 덧붙였다.

“뭐, 지금이야 에녹 루빈슈타인이 돌아왔다는 소문이 다 퍼졌을 테니, 언제나 쳐들어올까 벌벌 떨고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의 얘기를 들을수록, 체시어는 이해가 안 됐다.

에녹만 없다면 침략당할 걱정을 안 해도 된다니?

“왕국군이라고 해 봐야, 어차피 다 제국 출신의 능력자들이라는 말씀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면 두 나라의 전력 차이가 클 것 같은데요. 혹시 왕국에 공작님처럼 강한 능력자라도 있습니까? 왜 황제는 공작님 없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지 않았죠? 지금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자들로만 침략을 강행하면, 집니까?”

쉴 새 없이 나오는 의문.

에녹과 조제프가 눈을 껌뻑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

고개를 숙이는 체시어를 보며 잠시 생각하던 둘은, 이내 깨달았다.

“아아! 체시어 경은 잘 모르시는 모양이군요?”

“죄송할 거 없다, 체시어. 우리가 설명이 부족했어.”

에녹이 말했다.

“제국이 마지막으로 이솔렘을 쳤을 때는, 체시어가 태어나기도 전이니까.”

조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군은 이솔렘 왕국의 방어선조차 뚫지 못합니다.”

“예?”

이게 무슨 소리지?

“왜냐면, 이솔렘 왕국은…….”

* * *

“……거긴, 철벽이야. 수준 높은 방어 마법이 수십, 아니, 수백 개는 더 걸려 있어.”

“오오.”

오스카와 함께하는 역사 공부 시간.

그에게 듣는 이솔렘 왕국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마법 계열 능력자들이 그 정도의 방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면? 그에 준하는 공격 마법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겠지.”

오스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실제로도 이솔렘에는 아주 파괴적인 공격 마법이 있어. 아무도 모르겠지만. 섣불리 쳐들어갔다가는 어찌어찌 방어선을 뚫어 봤자 뼈도 못 추릴걸.”

“지, 진짜요? 아니, 스승님은 대체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왕국 출신이세요? 아니면 설마, 스승님이 마법식 빼돌려서 준 거 아냐?”

“오, 비슷해. 우리 아버지가 넘긴 거거든.”

심드렁하게 대꾸하는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놀랐다.

“네에에에?”

“안 그랬으면 이솔렘은 진작 먹혔겠지. 전쟁 막으려고 그랬을 거야.”

“와, 세상에. 스승님 아빠, 정말 멋진 분이셨잖아요?”

제국의 횡포를 막고, 침략의 공포로부터 떨지 않을 수 있도록.

타국에 마법을 전달했을 것이다.

“뭐, 그런 나라 팔아먹는 짓 하다 황제한테 칼 맞고 신속하게 저세상 구경 갔지만.”

“……?”

뭐지, 대체? 들을수록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화, 황제 폐하 때문에 돌아가신 거예요?”

“증거는 없지만, 뻔하지.”

“…….”

“멍청한 사람이었어.”

냉정하게 말하고 있지만, 오스카의 깊어진 눈 저변에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아, 그. 음.”

난 허둥거리며 말을 돌렸다.

“근데 그럼 걱정할 거 없지 않나? 철벽 방어를 어떻게 뚫어요? 나 괜히 전쟁 날까 봐 걱정했네!”

“에이, 뚫리지. 그것도 사람이 막는 건데.”

“엥. 어떻게요? 엄청 대단한 방어 마법이라면서, 뚫을 수가 있어요?”

오스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무식하게 깨면 되지. 그쪽 능력자들 마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다시 회복할 틈 주지 말고. 그냥, 쉴 새 없이, 계속 공격하면 돼.”

“풉.”

난 비웃었다.

“전 또 무슨 엄청난 방법이라도 있는 줄 알았잖아요~! 마나는 왕국군만 떨어지겠어요? 제국군도 같이 떨어지지? 그리구 왕국에는 훨씬 강한 공격 마법도 있다면서요?”

“아니야, 리리스.”

갑자기 오스카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제국에는 병기가 있어.”

“…네?”

“정확히는, 괴물.”

“괴물?”

“마나가 무한에 가까운 아주 무시무시한 마수지. 내가 그 마수를 잘 알아서 전에 물어봤는데, 자기도 자기 한계를 몰라. 아주 미쳐 돌아버린 마수야.”

“네에? 마수랑 대화가 된다구요? 뭐지?”

“응. 지능 있는 마수거든. 왕국의 공격 마법 같은 건 무시하고 그냥 밀고 들어가서 쓸어 버릴 수도 있어. 그 마수가 밤낮없이 칼질하면 방어선은 언젠가 뚫려.”

진짜 뭐지?

장난이라기에는 오스카의 표정이 진지해서, 난 겁을 먹었다.

“대, 대체 무슨 마수인데요?”

“궁금해?”

“네….”

“진짜?”

오스카가 겁주듯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난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니 애비야.”

* * *

모아르테 제도 정복을 기념하기 위한, 한 달 동안의 축제 기간.

공식적인 행사 때마다 황궁에서 진행하는 능력자들의 모의 대련은 최고의 볼거리였다.

특히나 이번에 대련을 선보일 둘은, 명실상부 따라올 이 없는 능력자 에녹 루빈슈타인과 새로운 시대의 강자로 떠오른 체시어 리브르.

입궁하여 직접 관람할 자격이 있는 귀족들은 빠짐없이 모였다.

“기대되는군.”

“아, 예.”

축제의 주인공, 정복 영웅 악시온 리브르는 황제의 바로 옆자리에 앉는 영광을 누렸다.

거대한 연무장.

마주 보고 서서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는 두 능력자.

뿌우우―

이윽고, 대련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렸다.

시작하기가 무섭게.

쉭―

쉭―

쉭―

체시어 리브르는 검기를 날렸다. 새카만 힘의 파동이 1초마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놀란 귀족들이 체면도 잊고 다들 함성을 내뱉었다.

보통의 검사들이 마나를 갈무리하고 다음 검기를 날리는 데 필요한 공격의 공백이 없었다.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저력.

“흠.”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이내.

“…….”

떨떠름하게 굳었다.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캉!

캉!

캉!

가볍게 팔만 휘두르며, 날아오는 검기를 검집으로 전부 받아 쳐내는 에녹.

접근하기도 힘든 공격을 퍼붓는 체시어를 향해 에녹은 망설임 없이 직진할 뿐이었다.

곧.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힌 순간.

콰아앙―!

에녹이 검을 뽑음과 동시에 상대에게 날아간 묵직한 풍압.

체시어는 그대로 밀려 연무장의 안전선 방벽에 처박혔다.

“…….”

악시온은 그때, 의자 팔걸이를 힘껏 쥔 황제의 손등에 핏줄이 돋아난 것을 발견하고 긴장했다.

하늘과 땅이라고 해도 좋을 격차.

에녹은 치명상을 입히지 않으려고 검기도 쓰지 않았다.

상대와 자신의 전력 차를 명백히 알고 있는,

강자만이 취할 수 있는 여유.

‘…아직은 부족한가.’

황제의 새로운 검, 젊은 세대의 강자는.

아직 전설과도 같은 능력자에게 닿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쯧.”

이윽고 황제는 못마땅한 듯 이를 갈며 먼저 자리를 떠나 버렸다.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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