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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07화 (208/261)

207화

* * *

1786년, 3월.

제국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황제, 그리고 그가 아끼는 권력자들의 행보가 수상했으니까.

‘곧 피바람이 불지도 모르겠구나.’

제국 능력자 양성소.

어린 능력자들을 양성하는 거대 기관의 장(長), 중년의 여성인 노바 공작은 손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

거만하게 꼬고 앉은 다리.

사람을 앞에 두고 제 손끝이나 한창 살피고 있는 사내.

“뭘 봐요?”

마탑주, 오스카 마뉘엘.

스물네 살의 젊은 권력자.

현존하는 모든 마법을 관리하는 그는,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매번 도움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공작은 오스카가 가져온 마법식을 챙겼다.

오스카는 근 1년 사이, 다양한 ‘공격’ 마법식을 양성소에 제공해 오고 있었다.

이는 분명 황제의 뜻일 터.

어린 능력자들을 전쟁 병기로 키우기 위함이었다.

‘마탑주가 황실에 줄을 댈 줄은 몰랐는데.’

중립을 유지하던 마탑의 행보가 황실 쪽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공작은 확신했다.

그뿐인가.

현재 황제의 최측근.

마검사단장, 체시어 리브르.

황제는 그를 데리고 양성소에 종종 방문하고는 했다.

강한 군대를 꾸리기 위해, 싹이 보이는 소년병들을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거기에 마탑까지 힘을 보탠다면, 머지않았구나. 전쟁이 일어나겠지.’

유유히 떠나는 오스카의 뒷모습을 보며, 노바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어떻던가요?”

보좌관, 로벨이 오스카의 어깨에 겉옷을 둘러주며 물었다.

“아줌마 표정 볼만하던데. 내가 황실에 줄 댄다고 생각하는지 아주 얼굴이 흙빛이더라고.”

“휴, 계획대로 됐네요.”

오스카는 마탑이 전쟁에 반대하지 않는 입장임을 보여야 했다.

이는, 반란을 코앞에 둔 중요한 시기, 황제가 가질 불안 요소를 전부 제거하고 안심하게 할 계략.

“뭐야, 씨.”

복도를 가로지르던 오스카가 우뚝 멈춰 섰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까르르 웃으며 다가오는 양성소 연구원들.

하얀색 가운을 차려입은 그들 사이, 금발을 질끈 올려 묶은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리리스의 친모였다.

셀레나 루덴도르프.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행복감이 가득했다.

‘행복하시겠지.’

딸을 팔아 얻은 아들의 자유.

고위 귀족으로서 누리는 권리.

그녀는 잃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앞으로 잃을 것도 없었다.

억울한 일이었다.

지난 7년 동안 에녹은 쉴 새 없이 굴렀고, 그의 딸은 제 수명을 깎아 아버지를 도왔다.

끝내 평화로워질 제국을 위해.

‘그럼 저 여자는?’

셀레나는 그들이 피와 목숨으로 만든 새로운 나라에서 다시 살아갈 것이다.

행복하게.

평화롭게.

잃은 것, 잃을 것 하나 없이.

‘왜 이렇게 억울하지?’

정작 에녹과 리리스는 아무 생각 없는데, 오스카는 셀레나를 떠올릴 때마다 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어, 임신하셨나 보구나.”

로벨이 작게 속삭이는 말에, 오스카의 시선이 내려갔다.

‘얼씨구?’

제법 태가 날 정도로, 셀레나의 배가 부풀어 있었다.

“미친.”

이윽고 가까워지자 먼저 오스카를 발견한 연구원들이 인사했다.

셀레나도 웃으며 고개 숙였다.

“여어, 안 본 사이에 경사가 있으셨네. 둘째죠?”

“아, 네.”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셀레나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아들이 도스던가?”

“네.”

“이야, 역시 대단해. 엄마 닮았으면 둘째도 능력치 엄청 좋겠네.”

생긋 웃은 오스카가, 다가가 고개 숙였다. 그리고 셀레나의 귓가에 입을 붙이고 물었다.

“얘는 군대 어떻게 빼게?”

“…….”

순간, 셀레나가 굳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연구원들의 입도 일제히 벌어졌다.

“응? 어떻게 빼게?”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재차 묻는 오스카.

당황으로 굳은 셀레나의 표정이 이제야 만족스러운지, 그는 더 사악하게 웃을 뿐이었다.

“자식 사랑 대애~단하신 분이 생각 없이 둘째 계획 세우지는 않았을 거고.”

연구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 눈치 보았다.

“이번엔 또 무슨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병역 비리를 저지르실까?”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지금 이 자리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셀레나가 아들의 병역을 어떻게 면제받았는지.

“고민이 많겠어요.”

안타까운 척 입술을 쭉 내민 오스카가, 셀레나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고 떠나갔다.

“이제 팔아먹을 딸도 없는데.”

* * *

데구르르.

굴러간 공이 누군가의 발치에 탁, 걸려 멈추었다.

따라가던 아이의 시선이 올라갔다.

‘아.’

봄 햇살을 등진 남자는 위압적인 모습이었다.

목을 한참 꺾어 올려다봐야 하는 큰 키.

표정 없는 얼굴.

그 와중에도 매섭게 빛나는 붉은 눈동자.

‘이 사람은….’

능력자 양성소에서 하얀색 명찰을 단 채로 보낸 2년.

포식자와 피식자의 경계가 확실한 세상의 법칙을 조금 빨리 깨우친 이 평민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을.

“죄, 죄, 죄송합니다….”

이 남자는 포식자다.

그것도 권력의 정점에 선.

힘없는 초식동물의 숨통쯤 단숨에 끊어놓을 수 있는, 아주 강한 이빨을 가진 짐승.

“…….”

벌벌 떨고 있는 아이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손에는 놓쳤던 공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무심하게 공을 건넸다.

아이는 당황해서 굳었지만, 이내 허둥거리며 인사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때.

“체시어 경, 이만 가지.”

뒤에서 누군가 남자를 불렀다.

아이의 눈이 빠질 듯 커졌다.

황제.

2년 전, 입소식 때 처음으로 봤던 이 제국의 주인.

황제의 곁에 선 사람이라면, 예상대로 남자는 대단한 포식자이리라.

아이는 떠나가는 둘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며, 경외감에 굳은 채로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 * *

“오늘은 성법사들을 좀 둘러볼까 하는데.”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황제는 체시어를 데리고 양성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하얀 입소복 차림의 어린 능력자들이 제각각 마법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

무심히 둘러보던 체시어의 눈이 누군가를 발견하고 가늘어졌다.

남색 머리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남자아이는, 어째서인지 또래보다 훨씬 컸다.

열한 살? 열두 살쯤 되었을까?

진작 양성소를 졸업하고 나가야 했을 나이로 보이는데….

“카일 형! 또 보여줘!”

“하하, 그래!”

순간, 체시어의 눈이 커졌다.

두런거리는 대화 속에서, 기억에 묻혀 있던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다.

카일….

카일 루덴도르프.

리리스의 이부동생이었다.

“와, 형 대단해!”

카일은 아이들 앞에서 근사하게 마법을 선보였다. 나란히 놓인 스무 개의 양초 위로 푸른색 불꽃이 타올랐다.

‘저 애가 벌써 저렇게 자랐구나.’

체시어가 카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7년 전, 양성소 시절.

인지하고 다시 보니,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은 얼굴이 있었다.

“…그래, 내가 저 애를 잊고 있었군.”

그때, 뒤에서 중얼거리는 황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가?”

황제가 웃으며 체시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쓸 만해 보이나?”

“예?”

“저 아이 말이야. 계속 쳐다보고 있잖아.”

체시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냥… 양성소를 졸업했을 나이 같은데 아직 교육을 받고 있기에.”

“아아, 그건 사정이 있어. 뭐, 보면 알겠지만, 실력이 나빠 유급한 건 아닐세.”

황제는 만족스럽게 눈을 빛내며 카일을 빤히 응시했다.

“루덴도르프 후작 가문 후계자지. 올해 열두 살이던가.”

“그렇습니까.”

“도스고.”

열두 살의 도스.

당연히 지금 소년병으로 활동하고 있어야 했으나, 카일은 예외였다.

그의 모친, 셀레나 루덴도르프와 황제 사이에 오간 거래 덕이었다.

딸을 데리고 탈영했던 전 남편, 에녹 루빈슈타인의 거취를 황제에게 알리는 대신―

셀레나는 자신의 은퇴와 아들의 병역 면제를 약속받았다.

“실력이 괜찮지?”

왜 묻는 걸까. 저 애의 능력치가 어떻든, 의미 없을 텐데.

“예, 뭐.”

병역을 지지 않는 카일의 사연을 알고 있기에, 체시어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경험은 없단 말이야. 쓸 만한 인재니 지금부터 훈련을 시켜야겠어. 지체할 것 없이, 이번 대토벌 때 데리고 나가서 가르쳐 보게.”

“예?”

체시어가 멈칫했다.

의아하다는 반응에, 황제는 도리어 고개를 기울였다.

“왜?”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체시어는 당황을 감추며 덧붙였다.

“한데 이번 대규모 토벌은 정예군들도 부담이 큽니다. 출정 경험이 없는 능력자가 나가기에는….”

“아냐, 아냐.”

황제가 손을 휘휘 저었다.

“원래 경험은 부딪치면서 쌓는 거지. 지금도 너무 늦었어.”

그가 쯧쯧 혀를 차고 덧붙였다.

“안 그래도 도스가 부족한 판에, 저 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리 아쉬울 데가 있나.”

“…….”

“하루빨리 키워 보게. 아주 좋은 전력이 될 거야.”

체시어는 단호한 황제의 태도에 멍해 있다가, 이내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그래, 이상할 것은 없었다.

지극히 황제다운 모습일 뿐.

오랜 숙원을 눈앞에 둔 지금.

황제에게, 해묵은 7년 전의 약속 따위가 거리낄 리 없었다.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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