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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19화 (220/261)

219화

난 멀어지는 레온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레온이랑 떨어지게 됐다.

하지만.

‘괜찮아. 오히려 좋은데?’

예상 못 한 상황으로 내 뒤통수를 친 게 미안했던 걸까?

다행히도 운명은 내게 조금이나마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다른 사람들 살리려고 멀어지는 통에, 레온의 옆에 보는 눈이 하나도 없겠는걸? 끽해 봐야 카일뿐이야.’

만약, 레온을 살리려다가 여러 명의 주목을 사게 된다면?

그게 아주 약간이라도 의아함을 느낄 만한 상황이라면?

‘사람들의 기억을 전부 조작해야 했을 텐데!’

그에 드는 생명력까지 염두에 뒀던 난, 정말이지 안도했다.

능력자들의 기억을 건드리는 지경까지 간다면, 내가 예상한 ‘최악’의 상황일 테니까.

“이러지 말고 얼른 튀자!”

나는 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떠나는 레온의 검 손잡이에 달려 대롱대롱 흔들리던, 파란색 솔 모양 장신구를 떠올렸다.

‘다행히 잘 달고 있었지.’

“오빠, 이거 내가 만든 거야!”

“오오, 진짜? 직접 만들었다고?”

“이번에 다치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라고 기도하면서 만들었어!”

출정 전에 레온에게 선물했었던 장신구.

“풉! 오빠 안 다쳐! 멀쩡히 살아 돌아올 테니까 걱정 붙들어 매시지, 꼬맹이!”

“절대 죽으면 안 돼! 꼭 살아서 돌아오기야!”

7년이라는 시간이나 프리메라의 힘을 사용해 오면서 꽤 많은 사실을 깨우친 나다.

레온은 꿈에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장신구는….

내 생명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해 주는 장치랄까?

“얼른 도망치자구! 지휘관님도요! 멍하게 있지 말고, 얼른!”

난 레온을 떠나보내고 망연해 있는 알프레도 경까지 이끌며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협곡 사이를 가르는 군마.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마수들.

새끼의 죽음에 분노한 글렙터들은 표적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따라붙고 있었다.

쉬이이익―!

말 위에서, 레온은 검을 휘둘러 협곡 바닥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

끼긱―!

기어 다니던 글렙터 새끼가 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맥없이 숨을 거두었다.

‘이 정도면, 이제 날 쫓겠지.’

그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보이는 족족 새끼를 죽이고 있었다. 자신이 표적이 되기 위함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레온은 제 품 안에서 떨며 중얼거리는 카일을 힐긋 보았다.

카일 루덴도르프…….

이 아이가 누군지는 안다.

리리스의 이부동생.

‘에휴, 네가 뭔 죄겠냐.’

레온은 한숨을 삼켰다.

그때, 뒤로 바짝 따라붙은 글렙터들이 느껴졌다.

힐긋 돌아본 레온은 의아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수가 적지?’

처음에 따라붙은 것은 서른 마리 정도.

검기가 모일 때마다 간간이 처리하며 도망친 지금, 남은 것은 세 마리뿐이었다.

‘네 군데 격전지에서 다 모여들 텐데, 고작 서른 마리가 다였다고? 뒤에 더 오고 있겠지?’

생각하는데, 품 안의 카일이 꼼지락거렸다.

그는 뭔가 해 보려는지,

콰앙―!

말고삐를 잡은 레온의 옆구리로 악착같이 고개를 내밀며 푸른 불꽃을 쏘아 보냈다.

‘와, 이 자식….’

필사적으로 도움이 되려 하는 게 대견했다.

레온은 뒤를 보았다.

달려오는 글렙터들의 사이사이로 터지는 불꽃.

‘어, 엄청 세다. 진짜 세. 세긴 정말 센데….’

재빠른 속도로 피하는 글렙터들.

‘…캐스팅이 하나도 안 되네.’

쩝.

안타깝게도,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들어가지 않았다.

능력치는 좋은데 실전 경험이 없는, 전형적인 신입 소년병의 실력이었다.

“야, 야!”

“네에!”

심지어 효율적으로 마나를 안배해 쓰는 방법도 몰라서, 계속 A급 공격 마법만 퍼붓고 있다.

이쯤이면 도스라도 금방 마나가 동날 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마나 아껴!”

당부한 레온이, 힘겹게 상체를 돌려 검을 한 번 휘둘렀다.

쉬이이익―!

날이 선 검기가 뒤에 바짝 붙은 글렙터의 다리를 끊자, 육중한 몸이 우당탕 굴러 넘어졌다.

이제 남은 놈은 두 마리.

―크아아아!

뒤에 바짝 붙은 글렙터 한 마리가 레온의 어깨를 물어뜯으려 주둥이를 악다물었다.

“으아악!”

“와, 씨!”

간발의 차로 피했다.

“시, 실드! 나 이러다 죽겠으니까 실드나 씌워 줘라! 너 정도면 A급 유동형 실드 쓸 줄 알지?!”

“…….”

다급한 레온의 부탁에, 카일이 그를 올려다보며 입술만 달싹였다.

“너….”

난처해하는 카일의 표정을 보고 레온은 깨달았다.

“…공격에 몰빵했구나.”

그래, 그럴 수 있다.

A급 실드.

그게 어디, 아무나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인가. 마법식 외우는 데만 몇 달이 걸리는데.

지금까지 전쟁터에 나갈 일도 없던 어린아이.

‘그래도 한 달 정도는 실전 훈련 했을 텐데. 이 자식, 그간 공격 마법식만 달달 외워 준비했나 보네.’

미처 고위급의 방어 마법식까지 숙지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와, 잠깐!”

그때.

쿵, 쿵, 쿵, 쿵, 쿵.

“자자자잠깐만! 자비 좀! 나 아직 검기 안 찼어!”

글렙터 한 마리가 속도를 붙이는 듯하더니, 레온이 탄 말과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X됐다.’

이다음에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본능적으로 감지한 레온은, 고삐를 놓고 카일을 꽉 감싸 안았다.

예상대로 글렙터는 둔기와도 같은 꼬리를 휘둘렀다.

“큭!”

레온은 카일을 안은 채 등허리를 가격당해 날아갔다.

둘은 험준한 협곡의 돌바닥에 내쳐져 몇 바퀴 굴렀다. 레온은 그 와중에도 품 안의 카일을 있는 힘껏 끌어안아 보호했다.

“크윽…. X바아….”

뒤지게 아파. 너무 아파서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레온은 재빨리 카일의 상태를 살폈다.

“야! 괜찮아?”

“네, 네…. 하아, 하.”

다행히 얼굴에 난 자잘한 생채기 말고는 멀쩡해 보였다.

안도한 레온이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리고 카일을 버려둔 채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 있어! 따라오지 마!”

남은 글렙터는 두 마리.

오는 길에 새끼를 쉴 새 없이 잡아 죽인 탓에, 글렙터는 카일이 아닌 레온을 표적으로 삼고 달려왔다.

쉬이이익―!

검기에, 한 마리가 갈렸다.

하지만 다른 한 놈이 문제였다.

검기를 날리는 공격에 사이사이 공백이 있음을 눈치챈 글렙터는, 틈을 놓치지 않고 꼬리를 휘둘렀다.

“커헉!”

레온이 맥없이 날아가 협곡 벽에 처박혀 내렸다.

‘젠, 장….’

단단한 바위벽과 부딪친 순간.

레온은 느꼈다.

치명타였다.

온몸의 뼈가 부러진 느낌.

글렙터의 꼬리에 제대로 가격당한 복부의 상태도 이상했다.

모르긴 몰라도, 장기가 몇 개쯤 터졌을 거다.

“커흐, 으윽….”

입에서 울컥, 피가 쏟아졌다.

―크아아아!

마수는 틈을 주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온 글렙터가 아가리를 쩌억, 하고 벌렸다.

“제발! 뒤져, 좀!”

레온은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검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푹―!

위로 세운 검이 글렙터의 머리를 뚫었다. 하지만, 수십 개의 이빨이 레온의 팔을 문 후였다.

“으아아아악!!!”

끔찍한 고통.

즉사한 글렙터가 쓰러지자, 레온은 검을 놓고 팔을 빼냈다.

반쯤 잘려 피범벅이 된 오른팔에 감각이 없었다.

“하아, 하아. 으윽….”

눈앞이 흐릿해졌다.

금방이라도 꺼질 듯한 시야에, 벌벌 떨고 있던 카일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 아….”

만신창이가 된 레온의 상태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카일이, 급히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서둘러, 심각해 보이는 레온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카일은 병적으로 떨었다.

이 순간, 자신이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강박이 심해 보였다.

“…….”

오른팔의 상처로 스미기 시작하는 미약한 마나.

나아질 기미도 안 보이는 게, 아마 E급 치유 마법 정도 될 터였다.

“너….”

“으으, 아흑….”

“진, 큭, 진짜… 공격에만 몰빵했구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레온은 힘없이 웃었다.

“제가, 제가 아, 아무것도 못 해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 흑, 죄송해요….”

“아니…. 진짜 괜찮아. 시간도 별로 없었는데… 공격 마법식 외운 것도 대단해…. 혼자서도 이것저것, 다 할 줄 알면… 뭐, 하러 부대 나눠서, 큭, 일하겠냐….”

“흑. 흐윽….”

“나도, 마법식 외우는 거… 너무 히, 힘들고 짜증, 나서… 검 잡은 거야….”

힘겹게 말하며, 레온은 눈만 겨우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도망치다 보니 어느새 협곡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었다.

아주 멀리, 작게 민가가 보였다.

‘글렙터가 이게 전부라는 건 말도 안 돼. 분명히 더 올 거야.’

레온이 이를 악물고 그나마 움직이는 왼팔을 들어 제 목깃을 벌렸다.

툭, 두 개의 군번줄이 끊어졌다.

“야, 있잖아…. 너, 저기 마을, 마을 보이지?”

“네, 네!”

카일이 코를 훔치며,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다른 애들도, 저기로 튀었을 거야. 너도, 최대한 빨리… 달려. 도망가….”

“네?”

“빨리….”

레온은 그리 말하며, 손에 쥐고 있던 군번줄 두 개를 카일에게 건네주었다.

[마검사단

83-17003528

레온 앙트라세]

군번줄은 전장에서 시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였다.

하지만.

‘어차피 글렙터가 오면 난, 시체도 안 남고 먹힐 테니까.’

그럴 바에 레온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 흔적이라도 남겨 두고 가야겠다, 싶었다.

“있잖아, 이거…. 하나는, 테오… 내 쌍둥이 주고….”

아픈데, 와중에도 레온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번에 다치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라고 기도하면서 만들었어!”

“절대 죽으면 안 돼! 꼭 살아서 돌아오기야!”

“다른, 하나는….”

어떡하지, 리리스.

오빠, 약속 못 지킬 것 같은데.

“내, 여동생…. 리리스한테 전해 주라….”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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