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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20화 (221/261)

220화

유언 같은 레온의 말에, 카일은 멍해졌다.

제 군번줄을 건네며 마지막처럼 구는 이 행동이 뭘 뜻하는지, 카일은 모르지 않았다.

“제가….”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날 살리기 위해서 싸웠다.

그리고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 높은 확률로 죽을 것이다.

이 사람은, 경험이 많으니까….

아마 자신의 죽음을 짐작하고 이런 부탁을 하는 거겠지.

“제, 제가….”

“시간 없어. 만약에 너도, 잘못되면… 내가, 지금까지 한 일… 큭, 다… 헛짓 되는 거, 알지…?”

카일은 벌떡 일어났다. 눈물이 계속 나왔지만, 멍청하게 울고 있을 틈이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그는 마음을 다잡으며 옷소매로 거칠게 눈가를 닦아냈다.

“제가, 제가 사람들 데리고… 얼른, 끅, 얼른 다시 올게요.”

“하하…. 그으래….”

카일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잘못되면 난, 죄책감에 평생을, 멀쩡히 살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다리가 부서져도 쉬지 말고 달려야 해. 어떻게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 * *

그 시각.

먼저 후퇴한 군대와 합류한 젬은, 지휘관, 알프레도를 도와 병력 정리 중이었다.

마냥 도망치기만 할 수 없었다.

병력 대부분은 계속 후퇴.

그리고, 그나마 능력치가 좋은 이들 몇은 선봉 격전지 쪽으로 돌아가 합류하기로 했다.

선봉으로 가야 하는 자신과 달리 리리스는 계속 후퇴시켜야 했다.

그러니까, 서로 갈라져야 할 때.

“리, 아니, 로잘린….”

옆을 돌아본 젬의 눈이 커졌다.

“…로잘린?”

없다.

젬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뭐, 뭐야….”

병력을 정리하는 그 잠깐 사이에, 리리스가 사라져 있었다.

“얘 어디 갔어!!!”

* * *

젬이 한눈을 판 사이 잽싸게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난, 몸을 숨기고 팔찌를 확인했다.

‘레온 오빠……가 아니라 오빠 검에 달린 장신구로 순간 이동! 얼마나 걸리나요?’

8min

레온의 곁으로 이동하는 데 드는 생명력, 8분.

이렇게 가성비가 좋은 이유?

‘내가 직접 전쟁터에 왔으니 거리가 가까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레온의 검에 달아 준 장신구 덕이 컸다.

레온은 도스.

무려 도스씩이나 되는 그를 대상으로 능력을 시전하면 수명 낭비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무생물인 장신구를 대상으로 생각하며 순간 이동하면 생명력을 훨씬 절약할 수 있지!’

‘상상’, 그리고 ‘생각’을 기반으로 하는 프리메라의 능력.

그 특성상, 이런 장치를 해 두면 훨씬 가성비 좋게 생명력을 쓸 수 있었다.

사실 이런 편법이 먹힐 줄은 몰랐는데.

그간 이 유용한 마도구 팔찌와 함께, 수많은 연구 끝에 알아낸 피 같은 결과물이랄까?

‘팔찌 없었으면 어쩔 뻔했니.’

나처럼 능력 사용에 드는 생명을 수치화해서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없는 황제는, 아마 평생 모를 꿀팁일 것이다…….

8min 2sec

8min 3sec

…….

팔찌에 뜨는 값은 계속 변했다.

이는, 레온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튀며 멀어지고 있단 뜻.

‘슬슬 준비해 볼까.’

난 내가 공들여 커스터마이징한 ‘로잘린 베르사체 양’의 외모를 떠올렸다.

늘씬한 몸매.

고혹적인 붉은 머리카락.

눈부신 금색 눈동자.

10min/sec

진짜 신분은 숨겨야 하니, 환각으로 내 모습을 위장할 것이다.

‘자, 그다음은….’

갔는데 티라노사우루스 마주치면 무섭다.

‘마수 눈에 공격 대상으로 인지가 안 되는 상태로!’

10min/sec

“아니다! 잠깐, 잠깐!”

뿅, 하고 레온과 카일의 앞에 순간 이동을 해야 하는 몸.

‘당연히 놀라겠지?’

이동 마법.

천재 마탑주님이 이미 오래전에 만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는 사람만 아는 극비니까.

‘그렇다면, 아예 투명 인간 한번 가 보자! 공룡한테도 안 걸리고, 레온 눈에도 안 보이게!’

30min/sec

“뚜와이씨! 가성비 무슨 일이야? 초당 30분씩 생명력이 탄다고?”

하긴.

투명 인간이라니. 말도 안 되게 유용한 마법이니 이 정도 들 만했다.

“우쒸, 하는 수 없다. 도착해서 얼른 풀고 근처에 숨든가 해야지….”

다음으로는.

‘내 몸은 소중하니까. 실드.’

A급 유동형 실드.

두르고 간다.

1sec/1sec

모든 준비를 마친 난, 다시 레온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8min 12sec

“어라?”

거리가 멀어질수록 계속 늘어나던 수명 값이, 고정되어 있었다.

도망치던 레온이 멈춰 섰단 뜻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마수와 대치 상태?

나름대로 짐작해 보던 난, 고개를 힘껏 저었다.

‘직접 가서 보자!’

콧김을 쉭, 내뿜은 난 허공을 향해 팔을 치켜들었다.

“자, 가 보자구!”

* * *

“하아….”

레온은, 카일이 작아져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안도했다.

‘나, 살 수 있나?’

글렙터들이 더 따라오는 낌새가 계속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생존 욕구가 슬그머니 생겼다.

‘아, 그런데….’

정신이 혼미했다.

외상은 덜렁거리는 오른쪽 팔을 빼면 심하지 않았으나 안쪽 장기가 망가진 것 같았다.

치유 법사들이 있긴 하지만, 아마 이런 상태를 고쳐 주기는 힘들겠지.

‘그럼, 마탑주…?’

생존 본능이라는 건 참 무서워서, 이름과 얼굴만 겨우 아는 사람까지 떠올리기에 이르렀다.

마탑주, 오스카 마뉘엘.

그런데, 안 친했다…….

‘그 사람이 옛날에 테오도 살려 줬는데. 리리스 찬스로 나도 좀 살려 주면 좋겠다.’

정신이 가물거리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근데 그것도, 내가 버텨서 제도로 돌아가야 가능한 말이지. 아, 정신 놓으면 안 되는데….’

쿠구구궁―

그때,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뭐지.’

등을 기대고 있던 절벽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레온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아.”

산이 많은 협곡 지형.

지금까지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마수들과 그 사이를 가로질렀다.

자신은 검기를 몇 번이나 날렸고, 카일은 A급 공격 마법을 쉴 새 없이 퍼부었었지.

‘나, 바본가…?’

지형이 무너지는 피해를 유념하며 싸워야 함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물론 그런 걸 따질 겨를도 없던 상황이었지만.

“하하, 하….”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콰르르르― 쾅! 쾅!

산 중턱에서부터 매섭게 굴러떨어지기 시작하는 큼직한 바위들.

주변이 초토화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X발….’

이윽고, 정확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큰 바윗돌.

‘…시체도 못 찾겠네.’

생각하며, 레온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

고통이 없다.

처참하게 제 머리를 뭉개버릴 줄 알았던 바윗돌은.

‘뭐야?’

파스스스.

닿기도 전에 가루처럼 부서졌다.

“프흡!”

난데없이 돌가루를 뒤집어쓴 레온이 입 안에 들어간 먼지를 뱉어냈다.

콰르르르― 쾅! 쾅!

여전히 주변은 아수라장이었다.

쉴 새 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들이 바닥을 찍고 부서졌다.

“아오! 뭐, 큭! 푸흡! 뭐냐고오!”

하지만, 레온이 맞는 것은, 닿기도 전에 부서져 흐르는 돌가루 비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어리둥절한 와중에, 무너질 만큼 무너진 주변이 겨우 진정되었다.

고요한 사위.

어디선가 작은 기척이 났다.

‘글렙터?’

아니, 사람이다.

복면에 로브까지 뒤집어써 얼굴을 꼭꼭 감춘 누군가가, 무너져 쌓인 바위를 폴짝, 폴짝 넘어 다가왔다.

“뭐, 야…?”

늘씬한 체구만 봐서는 여자 같은데.

그리고 행색을 보니, 용병이었다.

여자는 레온의 상태를 보고 당황했는지 주춤거리다가 이내 호다닥 오른쪽으로 돌아왔다.

반쯤 뜯겨 덜렁거리는 오른팔.

“……?!”

순간 따뜻한 성력이 느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상처가 아물었다.

‘뭐지? 이거, 적어도 B급 이상 치유 마법인데?’

이 여자, 용병 아닌가?

그렇다면 비전투계급일 텐데, 대체 어떻게 이런 수준의 치유 마법을?

“억!”

여자는 레온의 어깻죽지를 잡고 살폈다. 뼈가 부러진 고통이 컸다.

“뭐 하…… 컥!”

다음으로는 복부를 가차 없이 쿡, 찔러 본다.

아무래도 상태를 확인하는 듯했다.

‘아파!’

…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레온은 놀랐다.

정순한 성력이 몸으로 스며들며 변화가 느껴졌다.

어깨며 가슴, 다리…….

분명 부서졌을 뼈가 순식간에 다시 붙는, 생소한 감각.

그리고 가장 심각했던 복부.

분명 어딘가 터져도 심각하게 터진 듯 내내 고통스러웠던 느낌이, 말끔히 사라졌다.

“뭐야?!”

레온은 거의 눕다시피 기울어졌던 허리를 벌떡, 세우며 정신없이 제 몸을 만져 확인했다.

진짜 뭐지?

꿈인가?

멍청하게 눈을 껌뻑이는데, 여자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야!”

어쩐지 도망치려는 것 같았다.

“어림도 없지!”

레온이 여자의 로브 끝자락을 쭉 잡아당겼다.

“으앙악!”

발랑, 엉덩방아를 찧은 여자.

레온은 곧바로 여자의 얼굴을 가린 로브를 휙 벗겨냈다.

붉은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아하하.”

여자는 쓰고 있던 복면을 슬쩍 잡아 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레온은 멍하니….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

궁금한 게 많았는데.

머릿속이 전부 새하얘졌다.

‘와….’

그 순간.

딱,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어, 엄청난 미인……!’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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