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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32화 (233/261)

232화

* * *

오전 8시.

이곳은, 여전히 아르고니아 신전의 사제 숙소.

나와 체시어는 씻고 나갈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너 진짜 무슨 꿈 꿨는지 말 안 해 줄 거야?”

나는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꿈 얘기를 해 달라고 체시어를 졸랐다.

“아무 꿈도 안 꿨어.”

거짓말하네!

무슨 꿈이든 꾸긴 꿨을 거다. 내가 잠들기 전, 능력을 썼으니까.

“애가 너한테 아빠라고 했다며! 누가 봐도 꿈꿨으면서 왜 거짓말해!”

“워프 게이트 열렸나 확인하러 가자. 그리고 너, 아침도 먹어야지. 뭐 먹을까.”

“말 돌리지 말고!”

“…….”

체시어는 한숨을 쉬다가, 침대에 앉은 내 뒤로 와서 앉았다.

“그래, 맞아.”

그는 내 손에 들린 수건을 가져가 대신 머리를 말려 주며 말했다.

“아빠 되는 꿈 꿨어.”

“아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아들? 딸?”

“아들.”

“너 아들 낳고 싶었구나! 아들이 아직 쪼꼬미였어? 그래서 처음으로 아빠라고 말한 거야?”

“응. 태어난 지 1년 정도 된 아기였어. 아침에 일어나서 기저귀 갈아 주러 갔거든. 원래 엄마는 할 줄 알았는데 아빠는 못 하고 있다가, 처음으로 했어.”

“……?”

아니, 그렇게 세세한 설정까지?

난 너무 웃겨서 입을 틀어막았다.

술술 말하던 체시어가 민망했는지 흠흠, 헛기침했다.

“그런데 네가 꾸게 한 거 맞지?”

“응?”

“어제 자기 전에, 나한테 꾸고 싶은 꿈 있냐고 물어봤잖아.”

“오오, 예리한데?”

“어쩐지.”

“그런데, 체시어.”

난 웃음을 참으며 체시어를 돌아보았다.

“내가 꾸게 한 건 맞는데, 네가 무슨 꿈을 꾸고 싶은지 말을 안 해 줘서 세세한 설정까지는 못 했어.”

“…….”

“꿈 내용까지 내가 만들었으면, 다 알 텐데 굳이 이렇게 물어보겠니?”

체시어가 눈을 껌뻑거렸다.

“난 그냥 ‘체시어가 좋은 꿈을 꾸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그러니까 네가 어제 꾼 꿈은 다, 네 무의식중의 깊은 바람이었던 거지.”

“…그런 거구나.”

“체시어.”

난 체시어의 배를 쿡 찌르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애 엄마는 누구였어?”

사실 내가 궁금한 건 그쪽이었다.

체시어의 꿈에 과연 아내도 있었을지!

있었다면 누구였을지!

“뭐야. 왜 대답 안 해? 내가 아니었나 보다?”

“…….”

“지, 진짜? 나 아니었어? 표정 보니 나오긴 나온 것 같은데? 누구야? 대체 누구야?”

“너 나랑 결혼할 거야?”

체시어는 내게 반문했다.

“…….”

난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손부채질했다.

“하, 참 나! 하! 이거, 참! 하!”

“…….”

“사, 사귄 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무슨 벌써 결혼을~?! 하!”

체시어는 그런 나를 빤히 보다가, 멋쩍은 듯 목을 매만지며 말했다.

“맞아, 너였어.”

“앗, 진짜…?”

“응.”

뭐야, 뭐야~!

얘 나랑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나 봐~!

미쳤어, 진짜~!

* * *

그 시각.

아르고니아 신전, 1층.

“끄응.”

주신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워프 게이트에 성력을 주입하고 있었다.

“애기들… 얼른 집에 보내 줘야지….”

아빠가 걱정한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던 어린 아가씨에게 매몰차게 군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새벽 내내 없는 성력 쥐어짜며 고생하는 중이었다.

“끄응, 이제 되었구먼…! 홀홀!”

찌뿌둥한 허리를 통통 두들기며 일어나, 워프 게이트를 가동한 순간.

팟―!

“리리스!!!”

“야, 좀! 천천히 가!”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반대편에서 시커먼 두 남정네가 뛰어들었다.

“워메!!!”

주신관이 놀라 나자빠졌다.

“아, 이런. 주신관님. 오랜만입니다. 괜찮으십니까?”

“……?”

아는 얼굴이었다.

제도의 성기사단장, 에녹.

뒤에는 부하 놈이고.

“자네가 아침부터 여긴 뭔 일이여…?”

몹시 다급해 보이면서도, 자빠진 저를 예의 바르게 일으켜 세우는 에녹에게 주신관이 물었다.

“제 딸이 어제 여기로 견학을 왔다, 게이트가 끊겨서 귀가를 못했거든요. 혹시 신전에서 묵었습니까?”

“아하! 그거이 자네 딸이었는가?”

주신관이 짝, 손뼉 쳤다.

“걱정 말어. 여기 사제 숙소에서 재웠어.”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지금 어디에 있죠?”

“아직 자는 것 같은디…. 끄응, 여기 3층. 올라가 봐….”

“감사합니다.”

“저, 주신관님.”

당장 올라가려던 에녹이, 긴장한 악시온의 목소리에 멈춰 섰다.

“애가….”

악시온은 침을 꿀꺽 삼키며 주신관에게 물었다.

“…혼자 묵었던 것 맞습니까? 다른, 뭐… 친구 없이?”

“엥? 아아!”

순간 내려앉은 정적.

에녹과 악시온은 바짝 굳은 채.

“아니~?”

주신관의 입을 뚫어져라 주시하며,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아주 훤~칠한 남정네랑… 같이 있었지! 둘이 연인 아녀? 방에 같이 들어갔는디…?”

두 남자의 입이 경악으로 떡 벌어졌다.

* * *

“아하하~! 진짜 웃기다!”

화장대가 없어서, 침대 위에서 대충 손거울을 보며 머리 묶는 중.

체시어는 기왕 털어놓은 김에 꿈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려주었다.

“네 생일이라고 내가 요리도 해 준 거야? 우와, 솔직히 나 같은 아내 없다. 그치?”

“응, 맞아.”

“혹시 먹어도 봤어? 맛 어땠어? 나 요리 잘했지?”

“…….”

체시어는 잠시 침묵했다.

“왜? 맛없었어?”

“아니. 먹어 보진 않았는데 맛있어 보였어. 분명히 맛있었을 거야.”

“그치?”

옛날 제논에서 살 때.

힘들게 하루 종일 나무 하고 돌아와서 밥까지 차리는 제임스 브라운 씨가 안쓰러워, 직접 스튜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감동한 아빠가 먹어 보더니 앞으로 절대 부엌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맛은 기억 안 나지만, 분명 그때 내 실력이 처참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때 난 7살이었다고!’

지금은 다 컸으니까 분명히 잘할 것이다.

“히히, 사업 전날에 아빠한테 힘내라고 직접 요리해 줘야겠다!”

난 다짐했다.

“근데, 체시어. 왜 꿈에 딸 말고 아들이 나왔을까? 너 딸보다 아들이 더 갖고 싶어?”

“그런 건 아니지만, 딸보다 아들이 더 키우기 쉽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있어.”

“엥. 왜?”

“딸은 아무래도 아들보다 걱정되는 점이 많으니까.”

체시어는 날 보며 한숨 쉬었다.

“지금 공작님도 애타실걸. 딸이 연락 없이 외박이라도 하면, 나는 걱정돼서 잠도 못 잘 것 같아.”

“으응, 그치.”

체시어와 있는 걸 알고 있어도, 많이 걱정하겠지?

“흠. 얼른 가고 싶지만, 게이트가 아직 충전이 안 된 걸 어떡해.”

충전 다 됐어도 아침은 체시어랑 같이 먹고 돌아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아빠를 잠시 머릿속에서 밀어 두었다.

“우리 어제 갔던 식당에서 아침도 먹고 가자. 거기 맛있었어.”

“그래. 근데….”

“응.”

손거울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머리 묶기가 좀 어려웠다. 고전하는데 체시어가 말했다.

“…나 딸도 낳고 싶어. 아들 얼굴은 꿈에서 봤는데 딸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

“풉!”

뭐야, 얘? 계속 자식 생각하고 있던 거야?

체시어를 놀리고 싶어진 난, 새침하게 물었다.

“누구랑 낳을 건데?”

“…….”

“설마… 나? 근데 나는 너랑 결혼한다구 아직 말 안 했다? 혹시 나랑 결혼 안 하면 딸 누구랑 낳게?”

체시어는 나를 빤히 보다가 이내 섭섭한 듯 휙 고개를 틀었다.

“그럼 안 낳아.”

“아하하!”

귀엽긴.

“체시어, 넌 제임스 씨만큼 좋은 아빠가 될 거야. 제임스 씨는 내가 아는 아빠 중에 제일 최고니까, 이거 엄청난 칭찬이다?”

난 혼자 힘겹게 머리를 땋으면서 아빠를 떠올렸다.

“혼자서 아기 키우기 힘들었을 텐데, 내 기저귀도 갈아 주고 이유식도 직접 만들고 맨날맨날 머리도 묶어 주고….”

“나도 연습해 볼까.”

“응?”

“딸 낳으면 머리 묶어 주게.”

체시어가 손을 뻗어 내 머리끈을 가져갔다.

“네가 해 줄 거야?”

“응. 해 볼게. 돌아서 앉아 봐.”

체시어가 내 머리카락을 잡고 땋기 시작했다. 나는 손거울을 들고 그의 신중한 표정을 살피며 웃었다.

‘뭐야…?’

양 갈래로 곱게 땋아 내린 머리.

‘혹시 얘 다른 여자 머리 묶어 준 적 있나?’

그런 의심이 들 만큼 완벽한 솜씨였다.

역시 주인공은 못하는 게 없군.

“너무 예쁘다!”

“마음에 들어?”

“응!”

난 계속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때.

쿵, 쿵, 쿵, 쿵, 쿵!

“뭐야?”

바깥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굉음.

꼭 육중한 마수의 발소리 같았다.

“어디서 공사하나? 발소리 같기도 하고? 그런데 할아버지들 깡말라서 이런 소리 안 날 것 같은데, 설마? 글렙터 아냐?”

이번에 전쟁터 가서 하나 배웠답시고 글렙터 얘기를 하니, 체시어가 재밌는지 소리 내어 웃었다.

“글렙터가 여기 왜 있어. 그리고 있어도 괜찮아.”

“응?”

“몇 마리가 와도 내가 지켜줄게.”

어머….

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면서 체시어의 목에 팔을 두르고 안겨들었다.

“정말~? 네가 다 잡아줄 거야?”

“응.”

체시어는 내 허리를 안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가까워진 그의 입술에 쪽 뽀뽀했다.

그때.

쿵, 쿵, 쿵, 쿵, 쿵!

어쩐지 글렙터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싶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난 체시어에게 안긴 포즈 그대로 놀라 돌아보았다.

“헐.”

…아빠?

동시에 체시어가 벌떡 일어났다.

“공자…!”

우당탕, 쿵탕.

놀란 체시어가 허둥거리며 침대 아래로 내려가려다 넘어졌다.

“체, 체시어! 괜찮아?”

그도 잠시, 그는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공작님….”

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입을 떡 벌리고 아빠를 쳐다보았다.

영혼이 쏙 빠진 듯 창백한 표정.

이윽고 아빠 뒤에서, 아빠만큼이나 충격받은 얼굴의 악시온까지 튀어나왔다.

‘뭐야! 삼촌까지 왔어?’

악시온은 벌벌 떨다가, 말을 잃은 아빠 대신 체시어에게 삿대질했다.

“너, 너 이 자식… 미, 미쳤냐…?”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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