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 * *
“팔 똑바로 안 들어?!”
마탑, 오스카의 집무실.
“슬슬 기어 내려온다?”
나는 바닥에 무릎 꿇은 채 양팔을 들고 있었다.
못된 제임스 브라운 씨…….
설마, 설마 했건만. 그는 기어코 오스카에게 모든 사실을 불어버렸다.
마탑 휴일인데도 쉬지 못하고 와서 벌을 서고 있는 이유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겁도 없이 외박을 해?”
내 앞에 선 오스카가 팔짱을 낀 채 이를 갈았다.
난 소심히 항변했다.
“의도하고 외박한 거 아니었다니까요…. 하필 그때 게이트가 방전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네가 방전시킨 거 아니고?”
“아니에요!”
“팔 제대로 들어!”
“우쒸.”
“뭘 잘했다고 주둥이를 댓 발 내밀고 있어?”
난 바로 입을 집어넣었다.
“게이트가 안 되는데 어쩌라구….”
억울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데 오스카가 꼭 돈 뺏는 양아치처럼 내 앞에 무릎을 벌리고 앉았다.
“게이트가 아니면 제도로 올 방법이 없으세요?”
“거기 발 묶인 거 다 아는데 그럼 순간이동이라도 해요? 게이트 충전되면 기다렸다 오면 되지, 안 그래도 수명 아까운데 굳이요?”
“누가 네 수명 까먹으래? 이동 마법 뒀다 뭐에 써? 체시어 그 새끼도 쓸 수 있잖아?”
“…….”
“남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내가 떡하니 마탑에 네 방 만들어 놨지? 거기로 좌표 찍고 들어오면 누가 알아? 그렇게라도 와서 나한테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
“체시어 그놈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너 안 보낸 거 맞잖아?”
나는 당황해서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니, 그… 갑자기 게이트가 방전되니까 당황해서… 저희 둘 다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요….”
“생각을 못 한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
말문이 막힌 나를 보며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대가리가 두 개나 되는데 너나 그놈이나 아무도 그런 생각을 못 했다? 말이 되나? 그냥 게이트 방전된 김에 애나 만들어 보자, 했겠지.”
“스, 스, 스승님? 무슨 그런? 아니에요! 저희 아무것도 안 했어요!”
“하루 내내 단둘이!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는데!!!”
“어윽.”
귀청 떨어질 것 같아.
나는 귀를 막았다.
“뭔 짓을 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씩씩거리며 소리친 오스카가 일어나며 선언했다.
“죽이겠다.”
“스승님…?”
“이번 일은 봐줄 수가 없어. 아주 시커먼 속내가 뻔히 보이거든.”
오스카가 단호하게 말하며 집무실 중앙에 있던 소파를 밀어냈다.
“차, 차라리 절 죽이세요! 체시어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벌은 제가 받을 테니까 저에게 주세요!”
“하하하.”
오스카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난 비장한 표정으로, 들고 있던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체시어는 건드리지 마시고 그냥 제 팔을 자르세요. 집에 갈 방법을 찾으려고 열심히 궁리하지 않았던 점은 인정할게요.”
“…….”
“팔 두 개 다 자르셔도 돼요.”
“약아빠진 기집애 같으니라고.”
중얼거린 오스카가 이번에는 테이블을 밀었다. 소파보다 더 무게가 있어 이번에는 잘 안 밀렸다.
“아오, 씨.”
결국, 마법으로 테이블을 밀어내 집무실 중앙에 널찍한 공간을 만든 오스카가 거기 서서 내게 말했다.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배짱이 아주 두둑해? 내가 지 못 건드는 거 뻔히 아니까 저러지. 약은 기집애.”
흠흠.
난 민망해져서 물끄러미 오스카를 쳐다봤다.
“그런데 내가 누구 좋으라고 널 벌줄까? 오늘부터 연좌제를 적용하겠다. 네가 저지르는 잘못의 대가는 다 그놈이 대신 치르게 될 거야.”
“네?”
“외박뿐만이 아니다.”
오스카가 턱을 치켜들며 악마처럼 말했다.
“너 혼자서 말썽 피워도 그놈이 맞고, 어디서 남들 몰래 일 치고 와도 그놈 팔이 잘릴 거야. 너에게 주는 벌은 너의 잘못으로 인해 그놈이 고통받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 무슨?”
이런 억지가?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번에 너희가 치밀하게 외박을 계획한 일은, 참작해 줄 여지가 전혀 없다. 그놈의 팔다리를 모두 잘라 배로 기어 다니게 할 테니 그리 알아.”
자, 잔인해!
오스카는 품 안에서 하얀 분필을 꺼냈다. 당장 마법진을 그려 아르고니아로 가려는 것 같았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스승님!”
난 허둥지둥 일어나 오스카의 허리를 잡고 매달렸다.
“이러지 마세요. 진정하세요.”
“비켜.”
“내, 냉정하게 생각하세요. 저는 체시어가 걱정돼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난 하나 깨달았다. 체시어를 싸고돌아봤자 오스카의 화만 자극할 뿐이라는 걸.
“체시어 벌주세요. 주는데, 지금 말고 나중에요. 걔를 지금 배로 기어 다니게 만들면 사업은 어떻게 하라구요!”
“…….”
“스승님, 제발…. 무사히 사업 끝내고 놀러 다니기로 했잖아요, 우리…. 한스랑 애들이랑 다 같이 피크닉도 가기로 했잖아요. 우리 좋았잖아요…. 네?”
“…….”
울먹이는 나를 일말의 자비심도 없는 눈으로 내려다보던 오스카가 들고 있던 분필을 휙 내던졌다.
‘아싸!’
속으로 환호한 나는, 멀찍이 밀어놓은 소파로 터덜터덜 걸어가 앉는 오스카 옆에 냉큼 달라붙었다.
“으항.”
“으항, 좋아하시네.”
“스승님 최고….”
“맨입으로 살려 줄 순 없어. 조건이 있다.”
“네?”
“녀석을 살려 주는 대신에 나랑 약속 하나 해.”
“네! 외박 안 할게요! 어제처럼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도, 잘됐다고 모른 척하지 않고 어떻게든 연락하겠습니다!”
“오호라, 역시. 게이트 방전되니까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나 보군.”
“…….”
…이놈의 입방정.
말실수해 놓고 파르르 떨리는 내 입술을 보며 오스카가 킬킬 웃었다.
“외박은 당연히 하면 안 되지. 그거 말고, 다른 거.”
“네? 다른 거?”
소파 등받이에 양팔을 걸친 오스카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내 부탁 하나 들어줘.”
“부탁이요?”
“어.”
“…….”
난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참 생각하다,
“아르고니아 가세요, 그냥.”
고개를 저었다.
“체시어 세니까 팔다리 없어도 황제 폐하 잡을 수 있을 듯.”
“뭐, 뭐? 진심이냐?”
“네.”
오스카는 황당한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말했다.
“…부탁이 뭔지 들어보지도 않고 이렇게 거절을 한다고?”
역시, 당황하는 목소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못하는 거 없는 스승님이 저한테 부탁할 게 뭐가 있겠어요. 뭐가 됐든 제가 들어드리기 힘들겠죠.”
“아닌데? 완전 쉬운데?”
“안 쉬울 것 같은데요?”
“쉬운데? 너 손 하나 까딱 안 해도 되는데? 부탁 들어준다고 하면 말할 테니까, 들어준다고 약속해.”
“싫다구요. 그리고 뭔지 알 것 같으니까 말 안 하셔도 돼요.”
“뭔데!”
난 숨을 삼키고 말했다.
“어느 날 스승님이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지면, 찾지 말라구요?”
“…….”
오스카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러다 이마를 긁적,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참 침묵, 다리를 덜덜 떨다―
“내 머릿속 읽었냐?”
―그렇게 물었다.
“아뇨.”
난 고개를 돌리고 대답했다.
“속마음 읽는 거 가성비 안 좋아요.”
“아니, 그럼 어떻게 알았는데?”
“저 아무 생각 없는 애 아니에요. 제가 지금, 제일 많이, 사업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스승님 일인걸요.”
“왜 남의 문제를 네가 고민하고 난리야?”
“스승님한테는 제가 남이에요? 전, 제 능력으로 스승님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으면 지금 당장 꼬부랑 할머니가 돼도 상관없는데.”
“…지랄.”
“…….”
“야, 나 살고 싶거든? 네가 나 찾는 게 곧 나 죽이는 거랑 같아. 알지?”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스승님 안 잊어버린다고. 스승님을 잊었다가 다시 알아보면… 그러면 스승님이 죽겠지만, 애초부터 안 잊어버리면 상관없어요.”
“와, 얘 진짜 말 안 통하네. 네가 신이야? 어? 남들 다 날 못 알아볼 텐데 너만 어떻게 피해 가?”
“저는 정말, 스승님 안 잊고 계속 알아볼게요. 믿어 주세요.”
오스카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네 말대로 너는 나 알아볼 수 있다 치자. 그럼 다른 사람들은?”
“…….”
“제도는 나한테 지뢰밭이야.”
지뢰밭….
맞는 말이다.
오스카가 이곳을 떠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짐작한 이유도 그래서다.
“네, 알아요.”
“네, 알아요~? 알면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제도에서 계속 나 알고 있던 인간들이랑 섞여 살다가, 지뢰 밟고 뒤지란 말이야?”
신의 권능에 도전한 ‘불용 마법’을 쓴 대가를 치르는 날.
오스카는 감쪽같이 사라질 거다.
하지만, 사람들이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뿐 그는 분명히 살아 있겠지.
“제도에서 사는 건….”
타인에게 정체를 인지당하면 죽게 된다. 오스카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조심히 살아야 했다.
“…힘들겠죠.”
하지만, 오스카가 입을 열어 ‘내가 바로 마탑주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그를 인지할 방법은 많다.
말투, 습관, 행동…….
아주 작은 의심만으로도 금제가 적용되어 즉사할지도 모른다.
먼저 회귀 마법을 사용했던 오스카의 할아버지가,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제국을 떠나 평생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살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까지 스승님을 잊지 않게 할 수는…. 그런 능력은 저한테 없어요. 계속 노력하겠지만, 어쩌면 평생, 방법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노력? 하지 마. 네가 신이 아닌 이상, 백날 머리 싸매고 고민해 봤자 방법 없어.”
소파에 깊게 몸을 묻은 오스카가 귀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냥 날 좀 놔주라. 죽는 줄만 알았는데 기왕 얻은 삶이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제2의 인생을 살아 보게.”
“네, 그렇게 해요. 저랑 같이.”
“뭐래?”
인상을 찌푸린 오스카가 기대어 있던 몸을 벌떡 당겨 일으켰다.
“전 스승님 안 잊을 거니까 같이 살아도 상관없죠. 혹시나 스승님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는 곳으로 가요. 거기 가서 같이 살아요.”
“아니….”
오스카는 황당해했다. 난 눈물이 나려는 걸 꼭 참고 뻔뻔하게 말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스승님 마음은 알겠지만, 절 버리시면 안 되죠.”
“뭐?”
“한번 키워 주셨으면 끝까지 키워 주세요.”
“와, 이거….”
입을 떡 벌린 오스카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친 거 아니야…?”
* * *
리리스가 돌아간 뒤.
“하아, 돌겠네.”
오스카는 연신, 허망하게 웃음만 터뜨렸다.
“…절 버리시면 안 되죠.”
“한번 키워 주셨으면 끝까지 키워 주세요.”
호락호락하지 않을 줄은 알았다.
하지만, 떠난다고 해 봤자 프리메라인 리리스의 손바닥 안.
괜히 스승님 찾는답시고 수명 쓰는 헛짓거리 못 하도록 애를 달래 놓으려고 했는데.
“…혹시나 스승님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는 곳으로 가요. 거기 가서 같이 살아요.”
‘가지 마세요….’ 하고 질질 짜겠구나, 정도만 예상했었다.
다 버리고 자길 따라오겠다는 정신 나간 말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미친. 진짜 미친.’
격한 반응에 황당하면서도, 그렇게까지 말하는 리리스의 마음에 울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직 상황 판단도 미숙할 어린아이가 호기롭게 던진 말에….
모른 척, ‘그래. 그럼 나랑 평생 같이 살자.’ 하고 똑같이 정신 나간 대답을 할 뻔했던 것도 같다.
“미친 거지.”
정말, 미쳤지.
애초에 리리스만 이 잔인한 법칙에서 벗어날 수도 없지 않나.
‘스승님을 잊지 않겠다’고 한 건, 그저 아이의 바람일 뿐.
“미안합니다. 내가 아주 잠깐, 나쁜 생각 했어요.”
오스카는 아무것도 모르고 딸을 유괴당할 뻔한 에녹을 떠올리며 사과했다.
드르륵.
그리고, 서랍을 열어 깊숙한 곳에 있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복잡한 마법식이 그려져 있었다.
‘네가 뛰면, 이 스승님은 난다.’
처음부터 리리스를 따돌릴 방법은 있었다. 그냥, 말없이 떠나면 상처가 될 듯해 언질이라도 주려 한 거였지.
“가만있자….”
이제 뭘 해야 하지.
고민하던 오스카는 펜을 들었다.
생각해 보니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면서도 편지 한 장 써 준 적이 없었다.
낯 뜨거운 말도 잘하고, 워낙 밝아 마음을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아이는, 특별한 날이 아닌데도 편지를 써 주곤 했었는데….
“하, 씨. 손가락 오그라드네.”
처음 써 주는 편지가 마지막 인사라는 건, 조금 슬펐다.
아주 오랫동안 펜을 끼적이던 그는 마침내 마지막 줄을 적어 넣었다.
안녕, 잘 있어. 내
‘내… 뭐지?’
뭐라고 하면 좋을까.
리리스와의 관계를 정의하기는 항상 어려웠다.
딸? 아니고.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스승과 제자?
내 제자―라고 쓰면 되나?
‘그건 조금 멋없는데.’
한참 고민하던 오스카는, 아주 좋은 단어를 찾아냈다.
아이에게 느끼는 수많은 감정 중 가장 크고 한결같았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말 중에, 너를 향한 내 마음과 가장 가까운….
그런 단어.
안녕, 잘 있어. 내 사랑.
아빠가 힘을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