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 * *
“지금까지 키워 줬으면 됐잖아! 너도 독립하라고! 체시어 그 새끼랑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그때는 외박하는 거 봐줄 테니까!”
“따라오지 마라? 찾지 마?!”
오스카가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쯤이야 짐작했었다.
하지만, 직접 그의 입으로 듣고 나니 충격이 컸달까.
“네가 나 따라오는 순간 나 죽는다고 했다? 안 잊어버리긴 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패륜을 저지르려 하지 마라! 나 진짜 죽기 싫으니까!”
역시 오스카는 ‘스승님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내 말을 털끝만큼도 안 믿는 것 같았지만….
‘진짜인걸.’
난 팔찌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히, 제가 스승님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라고 소망하면,
팔찌에는 아무것도 뜨지 않는다.
전제가 틀렸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이미 같은 소원을 빌었기에 거듭 능력을 쓸 필요가 없는 상태.
오스카의 할아버지로부터 ‘회귀의 대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되고 나서, 난 곧바로 빌었다.
‘오스카를 잊지 않게 해 달라’고.
그렇게 나 자신에게 능력을 쓰는 데에 든 생명력은, 딱 1개월.
‘수명도 크게 안 들었고. 그때는 정말, 방법을 찾은 줄 알았는데….’
지금으로부터 3년 후.
금제가 발동되면 모두가 오스카를 인지하지 못한다. 그건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신이 내린 벌과 같았다.
그렇기에 금제를 푸는 것 자체는 내 능력 밖의 일.
하지만 놀랍게도, ‘오스카를 잊지 않게 해 달라’는 바람은 가능했다.
애초에 그를 잊지 않고 계속 인지하고 있다면, 금제가 발동될 여지가 없지 않나.
하지만.
‘에휴, 그게 쉽겠어?’
그런 간단한 편법으로 이 세계의 법칙을 피하려 했다니.
‘오스카가 아는 사람들 모두 오스카를 절대 잊지 않게 해 주세요.’
‘아빠가 오스카를 잊지 않게….’
‘체시어가 오스카를 잊지 않게….’
‘로벨이 오스카를 잊지 않게….’
다른 모두를 떠올리며 빌었을 때, 팔찌는 매정하게도 전부 작대기를 띄웠다.
그를 잊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만이 가능한 이유는 아마,
‘사도의 심장 때문이겠지.’
내 심장 속에 박힌 성물.
운명을 재단할 수 있는 사도의 심장 덕에, 정해진 법칙을 거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괜찮아. 나만 잊지 않으면 돼.’
나를, 아빠를, 모두를 살리고.
정작 오스카는 죽음처럼 모두에게 잊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니.
‘말도 안 되잖아.’
기꺼이 모든 걸 버리고 오스카의 옆에 있어 주는 것쯤이야.
‘가족들 보고 싶으면 나야 언제든 혼자 제도로 올 수 있으니까.’
어려운 일 아니다.
‘아빠랑 살던 제논으로 갈까? 거기 마당도 있고 그네도 있는 집을 만들어서….’
생각하던 나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정말 모든 걸 다 버려도 상관없는데, 정작 오스카가 그걸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아니야. 그래도 어차피 스승님은 내 손바닥 안이야.’
도망쳐 봤자 찾으면 된다.
내가 찾지 못하는 사람은, 딱 두 명.
성력이 없어서 내 능력이 통하지 않는 체시어와.
‘아빠.’
생명력을 거의 다 털어야 하니, 쓰고 싶어도 능력을 쓸 수가 없는 괴물, 제임스 브라운 씨뿐.
“하아.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오스카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똑똑했다.
무서울 만큼.
그는 지금까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지 않았던가.
‘아냐, 괜찮아. 쫄지 마, 리리스.’
난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천재와의 두뇌 싸움은 정말 자신 없지만, 그래도….
‘나는 프리메라인걸!’
* * *
마탑 최상층, 오스카의 사택.
에녹은 다가오는 오스카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뭐지? 실성했나?”
“아니, 웃기잖아.”
“뭐가요?”
목 늘어난 셔츠에 반바지 차림.
깔끔하게 꾸며 놓은 으리으리한 규모의 복층 사택 집주인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후줄근한 모습 아닌가.
“아냐. 그런데 왜 불렀어? 집 좌표까지 이렇게 턱턱 내줘도 되는 거야?”
“내 집에 보안 이중, 삼중으로 쳐 놔서 이동 마법으로 오면 마나 왕창 드는데. 혹시 많이 닳았어요?”
“응?”
멀뚱멀뚱 눈을 깜빡이던 에녹이 장난스럽게 고개를 기울였다.
“마나가 닳는다는 게… 뭐지?”
오스카가 이를 갈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패고 싶네.”
“아하하! 왜 불렀어, 진짜?”
“앉아 봐요.”
거실 테이블을 턱짓한 오스카가 에녹과 마주 앉아 종이 한 장을 턱 내려놓았다.
“풉.”
그때, 에녹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오스카의 오른쪽 팔목.
큼직한 진주알과 붉은 하트 모양 장신구가 달린 팔찌는 리리스가 끼고 다니는 것과 똑같았다.
“커플 팔찌야? 질투 나게…. 나도 하나 만들어 줘.”
“개소리 말고. 이거 외우는 데 시간 얼마나 들겠어요?”
“음.”
그제야 오스카가 내놓은 종이로 시선을 옮긴 에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긴 걸 보니 마법식이었다.
마법식이었는데….
“뭐야, 이게?”
황당할 만큼 복잡했다.
수많은 마법식을 봤지만, 이렇게 복잡해 보이는 경우는 태어나 처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쭉 외워 두라는 게 아니에요. 한 번 쓰고 말 거니까. 머릿속으로 구현할 수 있을 만큼 외웠을 때 시전하면 돼. 시간 얼마나 들겠어요?”
“이틀? 아니, 사흘? 아니다, 나흘?”
“뭐래. 빡대가린가? 오늘 새벽 내로 끝내요.”
“이봐, 그렇게 말해도….”
“당신 딸을 위한 거예요. 정확히 내가 14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고, 7년쯤 전에 완성해 놨던 거지.”
14년이라면, 분명 오스카가 회귀하자마자 만들기 시작한 마법이다.
이 마법의 필요성을 느껴서였겠지.
“할 거지?”
게다가 리리스를 위한 거라면….
“어. 당연히 해야지.”
에녹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할게.”
“좋네.”
“무슨 마법이야?”
“외우면 알려 줄게요. 시작해요.”
에녹은 복잡한 마법식을 찬찬히 눈에 담기 시작했다.
“이 복잡한 꼬라지 보면 눈치챘겠지만, 아무도 못 써요.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거든. 그래서 지금까지 되도록 마나 덜 들게끔 계속 수정하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한 달도 안 남았으니까.”
“설마, 내 마나 다 털어도 못 쓸 수 있다는 거야?”
“아마도?”
에녹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마나가 어마어마하게 드는 마법이라면, 당연히 평범한 종류는 아닐 터.
“예상했죠? 프리메라의 능력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거예요.”
“……?”
에녹의 눈이 커졌다.
“…그게, 그게 가능해?”
“당연히 불가능이지. 마나가 천만 가까이 드니까. 도스들 평균이 오십만인 거 생각하면, 그냥 터무니없는 낙서나 다름없지만.”
오스카가 마법식을 턱짓하며 피식 웃었다.
“에녹 루빈슈타인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완전 도박이긴 한데, 어차피 당신도 당신 한계를 모르잖아요?”
“그렇긴 한데….”
“시도나 해 봅시다. 다 외우면, 여기 시전해 보게요.”
오스카가 제 팔목에 찬 팔찌를 들어 보였다.
“이거 뭔지 알죠? 애가 차고 다니는 거. 차고 있을 때 코어랑 연동되는 마도구거든.”
“어, 알아.”
“정확히는 시전자인 당신의 능력치를, 대상에게 덮어씌우는 거예요. 당신 능력으로 일회성 실드 한 번 걸어 주는 원리.”
“…….”
생소한 개념이었는지 에녹의 눈이 가늘어졌다.
“프리메라가 인간을 대상으로 능력 쓸 때 드는 생명력 있죠? 내가 전에 애한테 들었을 땐, 당신한테 종속 마법 거는 데 282년 든다고 했거든요?”
어렴풋이 이해한 에녹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잠깐, 잠깐. 그러니까 내가 이걸 공주 팔찌에 걸어 놓으면….”
“맞아요. 혹시나 황제가 종속 마법 같은 거로 애를 인질 삼으려고 할 때, 당신에게 드는 생명력이 똑같이 필요해요. 282년이나 드니까, 애를 건드릴 엄두도 못 내겠지. 지금까지 황제가 당신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했듯이요.”
“와, 마탑주. 대체 뭘 만든 거야?”
에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그럼 7년 전에 만들었을 때 바로 좀 알려 주지 그랬어? 공주한테 진작 걸어 줄 수 있었잖아?”
“그건 안 돼요. 오히려 위험했을 거야. 미리 이 마법을 걸어 놨으면, 혹시나 황제가 아이에게 능력을 쓰려 했을 때 분명히 들켰을 거예요.”
모르긴 몰라도, 능력을 사용하기 전에 프리메라가 필요한 생명력을 가늠할 방법 정도는 있을 것이다.
“능력을 쓸 때, 어렴풋이 생명력이 얼마 드는지 인지하고 사용하겠죠. 애가 옥타바인 줄 알고 있는데 능력 쓸 때 과한 생명력이 필요하다면, 분명 뭐든 의심하기 시작했을걸?”
“그런가. 그렇다면….”
“당장 황제 목 치러 쳐들어갈 거 아니면,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서 애한테 미리 써 둘 순 없었어요. 최악의 상황에는 애 정체도 들켰겠지.”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황제가 공주 정체를 의심하든 말든 상관없는 최후의 날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걸어 두려고 만든 거구나.”
“바로 그거죠. 알아들었으면 얼른 마저 외웁시다.”
“좋아. 내가 새벽 안에 꼭 끝내고 만다.”
열의를 태우는 에녹을 보며, 오스카가 피식 웃었다.
아이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사실 하나가 이렇게도 좋은 모양이었다.
* * *
“마탑주! 나, 다 외운 것 같아!”
새벽 4시.
에녹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휙, 오스카를 돌아봤다.
“벌써?”
한가로이 소파에 드러누워 있던 오스카가 벌떡 일어나, 리리스와 같은 팔찌가 달린 제 팔목을 에녹에게 들이밀었다.
“자, 한번 해 봐요!”
오스카의 팔을 잡은 에녹이 집중하고 팔찌에 마나를 흘려 넣었다.
복잡한 마법식을 머릿속에 구현해 완성하는 순간―
“헉.”
―순식간에 마나가 빨려 들어가는 생경한 느낌에, 에녹이 인상을 찌푸리며 무너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고, 일순 몸에서 모든 기력이 빠져나갔다.
규격 외의 능력자, 에녹 루빈슈타인이 태어나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상태.
‘이런… 느낌이었구나.’
마나가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다.
“완벽해! 이게 진짜 되네?”
오스카가 벌떡 일어나 손뼉 쳤다.
“대단하다, 에녹 루빈슈타인!”
“…성공, 한 거야?”
“당신 상태 보면 모르겠어요? 역시 에녹 루빈슈타인! 최고의 전사! 최고의 능력자!”
소파 위에 무너져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에녹을 보며 오스카는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하하…. 내가 마탑주한테 칭찬을 듣는 날이 다 오네….”
“어때요, 마나 다 써 본 느낌이? 아주 죽겠지?”
“어어,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겠어….”
“죽을 때까지 못 해 볼 경험 하게 해 줬으니까 나한테 고마워하세요.”
“그래…. 고마워….”
씩 웃은 오스카가 거실 카펫을 둘둘 말아 걷었다. 언제 준비해 둔 건지 이동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선심 썼다. 마나도 없는데 집에 보내 주는 것 정도는 내가 해 드릴게.”
“서비스 좋네….”
비틀거리며 일어난 에녹을 마법진 위로 보낸 오스카가, 마법식 종이를 집어 건넸다.
“복잡하니까 가지고 가서 계속 봐요. 그리고 마나 다시 차면, 방금 했던 것처럼 애 팔찌에 걸어 놓으면 됩니다.”
“알겠어.”
“애 잘 때 몰래 걸어 둬요. 굳이 이런 마법 있다는 말도, 걸어 놨다는 소리도 하지 말고요. 황제에게 노려질까 봐 대비해 놓는 거라고 하면, 괜히 애 무서워할 테니까. 그 정도 눈치는 있지?”
에녹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수고했어요.”
이동 마법진에 마나를 흘려주는 오스카를 보며, 에녹이 말했다.
“마탑주, 고마워.”
에녹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오스카가 웃으며, 답지 않게 짝, 마주쳐 주었다.
“고마우면 꼭 성공합시다.”
“당연하지.”
동시에 에녹의 모습이 사라졌다.
“…….”
혼자 남은 오스카는 그 자리에 한참 서 있다, 천천히 돌아가 다시 소파 위로 몸을 뉘었다.
그리고는 제 오른쪽 팔목을 들어보았다.
에녹이 마법을 걸어 놓은 팔찌.
“흠.”
회귀하자마자 오스카가 가장 먼저, 아주 당연히, 연구를 시작한 마법이었다.
최후의 순간에 혹시라도 황제가 리리스를 지배하게 되는, 전생과 같은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 마법을 이런 식으로 쓰게 될진 몰랐는데 말이야.’
에녹에게는 거짓말했지만, 실은, 이 마법은 식을 외우기만 하면 누구든지 쓸 수 있었다.
시전하는 데 드는 값은, 시전자의 마나 전부.
에녹의 능력치를 그대로 복사해 담아둔 이 팔찌를 차고 있는 한.
‘넌 이 스승님 찾을 엄두도 못 낼 거다.’
리리스가 오스카에게 능력을 쓰려면, 에녹을 다룰 수 있을 만큼의 생명력이 필요할 것이다.
불가능이란 뜻이다.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네.”
오스카는 두 팔을 괴고 누워 눈을 감았다.
‘욕심내지 말자.’
아이는 자신을 사랑해 주는 많은 이들과 함께 살아야 행복할 테니까.
‘나중에 만나러 갈게.’
그 모습 하나를 보려고,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거니까.
‘넌 그냥….’
술래잡기의 승자.
그건 처음부터 오스카였다.
‘아빠랑 행복하게 살아.’
나 찾지 말고.
아빠가 힘을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