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 * *
“하, 씨…. 많이도 만들어 놨네. 이걸 언제 다 먹냐….”
“……?”
오스카가 냄비 가득 완성된 내 특제 스튜를 접시에 옮겨 담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 저 못 믿으세요? 진짜 맛있을 거라니까요? 남은 거 내일 아침으로 먹어요. 스승님이랑 저랑 두 끼만에 다 비울 수 있다구요!”
“으응, 그래.”
비주얼이 지옥탕 같아 그런가?
오스카는 내 말을 전혀 안 믿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 입 맛보면 제임스 브라운 씨처럼 눈물을 줄줄 흘려 대겠지!’
식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앞에 스튜가 한 접시씩 놓였다.
내 앞에는 오스카가 따로 만들어 준 샌드위치 두 조각도 함께.
“후.”
오스카는 엄청나게 큰 물통까지 옆에 두고, 무슨 전쟁 앞둔 사령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히힛, 맛있다고 맨날맨날 만들어 달라고나 하지 마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하지만 스승님이 원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스승님의 삼시 세끼를 책임지는 요리사가 되어 드릴 수 있어요. 평생!”
“…….”
턱에 꽃받침을 하고 눈을 빛내는 나를, 오스카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스승님도 요리 잘하시지만, 저도 엄청나다고요. 우리 나중에 같이 살 때 역할 분담해야 하니까 요리는 제가 할게요.”
“…….”
“스승님은 뭐 하실래요? 청소? 빨래? 돈은 안 벌어 오셔도 돼요. 생활비는 제가 가져올게요. 제도랑 왔다 갔다 하면 되니까요.”
“야.”
“혹시 저 아래 남부에, 제논이라고 가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다, 스승님은 제도 토박이라 모르겠지?”
“…….”
“저 제도 오기 전에 아빠랑 거기 살았거든요. 산골짜기에 사람들도 몇 없어서 딱 좋은데, 다들 착하고 순박해요. 스승님도 좋아할걸? 수잔 아줌마랑 죠 아저씨 보고 싶다.”
“야.”
또 우울한 얘기가 나올까 봐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내 입을 기어코 막은 오스카가 말했다.
“너 진심이야? 다 버리고 떠나서 나랑 같이 살 수 있어?”
“네, 그럼요.”
“남들 눈에 띄면 안 되니 시끄럽게는 못 살아. 귀족으로 살던 버릇 버리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다 해야 해. 하인들도 못 쓴다?”
“엥. 지금도 스승님은 그렇게 살고 있으시잖아요?”
“아, 나는 딴 놈들이랑 부대끼는 거 귀찮고 싫어서 그런 거고!”
“저도 상관없는데요? 그리고 저 인생의 절반을 산골짜기에서 그렇게 살았다니까요? 직접 빨래하고 밥도 해 먹으면서?”
“아빠 보고 싶으면 어떡할래?”
“가끔 제도에 가면 되죠. 그 정도는 기다려 주실 거죠?”
“아빠가 서운해할 텐데.”
“아빠는 이해해 줄 거예요.”
“하아.”
하나하나 받아치는 내 대답에 오스카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엇! 방금 그래, 라고 하셨죠? 저랑 같이 사신다 이거죠?”
“사서 고생한다는데 내 알 바야? 더 말려 봐야 뭐 하겠냐?”
“우와아! 그럼 스승님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고 약속해요! 3년 후에는 저랑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시골에 집 구해서 떠나는 거예요!”
“…….”
피식 웃은 오스카가 물컵에 물을 한가득 따르고 스푼을 들었다.
“일단 이 지옥의 스튜부터 해결해 보자.”
“지옥의 스튜라니요! 말이 좀 심하시네! 먹고 더 만들어 달라고나 하지 마세요!”
“오냐.”
눈을 질끈 감은 오스카가 스튜를 떠 한 입 맛보았다.
그리고는 역시.
“…….”
예상했던 대로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서는 스푼 쥔 손을 벌벌 떨었다.
“놀라셨죠? 생긴 거랑 달라서?”
꿀꺽, 한참 입에 머금은 채 음미하던 스튜를 목으로 넘긴 오스카가 물잔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와, 하. 후우. 하아…. 하!”
“아하하핫!”
격렬한 반응! 난 부끄러워져서 몸을 배배 꼬았다.
탁!
소리 나게 물잔을 내려놓은 오스카가 화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이거 나 죽이려고 만들었지?”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이긴 하죠?”
“어쩐지 요리할 때 간을 한 번도 안 본다 했다. 넌 이 맛을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러면서 나한테 먹인 거야. 이 괘씸한 기집애 같으니라고!”
“엥? 아니에요. 주방장 아저씨가 그러는데, 요리하는 사람은 부엌에서 먼저 자기 요리를 맛보면 안 된대요.”
난 우리 집 주방장, 쿠냑 씨의 고향에 있다는 속설을 설명해 줬다.
“그러면 요리하면서 간절히 바란 마음을 악마가 훔쳐 가거든요. 저, 이거 만들 때 스승님이랑 평생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는 소원 빌어서… 악마한테 빼앗기면 안 됨.”
“와, 씨. 지랄도 풍년이네, 진짜.”
이를 가는 오스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앗! 스승님 눈에 눈물 고인 것 봐! 하하, 제가 말했죠? 아빠도 먹고 울었다고?”
“어, 그래! 이제 왜! 그 인간이 눈물 흘렸는지 알겠다!”
오스카는 이를 갈며 스튜를 한 입 더 먹었다. 그리고는,
쾅―!
“깜짝아!”
식탁에 주먹을 내리쳤다.
“으아아악!”
“대, 대체 뭐가 얼마나 맛있는 거예요? 감탄사 말고, 말로 표현해 주실래요?”
“네가 직접 먹어 봐!”
빽 소리친 오스카가 또 물잔을 가득 채우며 내 앞에 놓인 스튜를 턱짓했다.
음, 드디어 맛보는군.
난 기대하며 고기와 야채를 듬뿍 올려 크게 한 스푼―
“하―암.”
―떠서 입에 넣었다가,
“아부우에에엑.”
그대로 다시 뱉어내고 말았다.
?
??
???
“푸하하학!”
오스카가 낄낄거리며 물잔을 밀어 줬다. 난 급히 물을 들이켰다.
“…세, 세상에.”
맛은… 맛은 충격적이었다.
다른 의미로.
재빨리 입 안을 물로 헹궜는데도 이미 얼얼해진 혀에는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이게, 이게, 이게 뭐야…?’
난 실수하지 않았다. 분명 엊그제 아빠에게 만들어 준 레시피 그대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아빠 입에 들어간 스튜도 이 기상천외한 맛 그대로였다는 거겠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래, 너도 현실을 알아야지.”
고개를 끄덕인 오스카가 또 한 입 떠먹고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아악! 스승님?!”
난 눈앞이 새하얘져 얼른 식탁을 돌아가 오스카를 말렸다.
“이, 이걸 왜 계속 먹어요? 그만! 먹지 말아요! 숟가락 내놔!”
“됐어!”
오스카는 말리려는 내 손을 피해 접시를 들고 일어났다.
“먹지 마시라구요오오! 스승님 그러다 죽어!”
“아하하하!”
나도 눈물이 났다. 내 저주받은 요리를 꾸역꾸역 먹었던 사람들에게 미안해서인지, 충격적인 맛에 놀란 몸에서 보내는 반사적인 반응인지는 알 수 없었다.
“뭐? 역할 분담~? 요리는 네가 맡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주방장 쿠냑 씨와 하녀 언니들, 그리고 아빠의 반응이 파노라마처럼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요리에 소질만 없으면 됐지, 눈치까지 없을 건 또 뭔가?
이 맛을 예상한 오스카가, 나를 위해 미리 만든 샌드위치의 의미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흐윽. 스승님…. 제발… 제발 먹지 말아요…. 부탁이에요….”
미안해서 계속 접시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오스카는 나를 피해 다니며 계속 스튜를 비웠다.
“하, 씨. 정신 나갈 것 같은 맛이야.”
“흐아아앙…!”
저걸 굳이 다 비우려는 오스카의 마음을 알고 있어서 미안하고 민망하고,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뭐 그랬다.
“죄송해요, 스승님…. 저 그냥… 그냥 요리 말고 빨래 할게요…. 빨래는 잘해요…. 어흐흑.”
내 주제에 요리는 무슨.
그냥 팬티나 빨자….
* * *
깊은 밤.
남부, 아르고니아.
침략군 사령관, 제국 마검사단장 체시어 리브르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귀환 채비를 하고 있었다.
흑색 제복의 가슴팍 위로 수많은 전공을 기리는 견장들이 빛났다.
보좌관이 붉은 망토를 둘러주며 무심한 체시어의 얼굴을 일별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받으십시오.”
보좌관이 내미는 검을 받아든 순간.
체시어는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에녹, 악시온, 수많은 동료들….
그리고, 리리스.
마지막으로, 황제.
황제의 얼굴을 그려 본다.
기나긴 기다림의 끝을, 체시어는 딱 하루 앞두고 있었다.
황제의 목을 베어낼 자신을 상상하자 온몸에 생경한 전율이 일었다.
“…….”
이내 검을 찬 체시어가 날카로이 눈을 빛내며 나섰다.
“가자.”
끝내 나의 천사에게, 악마의 목을 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 * *
같은 시각, 제도.
루덴도르프 후작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루덴도르프 후작, 필릭스는 은밀히 아들을 채비시켰다.
“아버지…. 우리, 어디 가요?”
카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깊은 밤, 두꺼운 로브 차림으로 꼭 몸을 숨기려는 듯 찾아온 아버지.
그의 품에 안겨 세상모르게 잠든 갓난아기, 제 동생.
아버지와 비슷한 차림으로 선 자신.
모든 상황이 불안했다.
“…카일.”
두려워하는 아들을 보며 잠깐의 고민을 마친 필릭스가 물었다.
“엄마를 따라가고 싶니?”
“…….”
카일은 아버지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내일.
침략군 편성을 면제받은 자신이 제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머니에게 전해 들었으니까.
“아니요.”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제야 카일은 온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아버지, 시, 싫어요…. 저는, 저는 못 해요…. 하기 싫어요…. 저는, 사람들, 주, 죽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 카일. 그래. 울지 마. 울지 마, 괜찮아.”
아들을 끌어안은 필릭스도 괴롭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눈물 흘렸다.
“가자. 네가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아빠랑 떠나자. 괜찮아. 네가 맞는 거야. 네가….”
“아, 아버지…. 흐아아….”
이윽고 아이를 품에 안은 남자는 아들의 손을 잡고 숨죽여 후작저를 나섰다.
저택을 잠시 일별한 남자의 눈에 찰나의 미련이 스쳤으나, 잠시였다.
전쟁, 그리고 반란.
제국의 변혁을 하루 앞둔 그날.
처절하리만치 새카만 어둠이 달아나는 둘의 인영을 삼켰다.
아빠가 힘을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