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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힘을 숨김-246화 (247/261)

246화

* * *

제도, 파빌.

“마법사단은 방비군 2소대가 롬웰 영지를 점거하지 못하도록 지원해 주십시오.”

사령관, 체시어 리브르는 회군한 제국군에게 신속히 명령했다.

“권사단은 황제의 평민 학살 방비대에 병력을 지원한 귀족들의 사택을 점거, 가주들을 생포하시고, 성기사단은 제도 곳곳에 배치된 황실 기사들을 상대합니다.”

명령을 받든 능력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성법사단은 나뉘어 각 군을 지원하며 전투에 휘말린 비능력자들을 대피시키고 부상자를 돌보십시오. 그리고, 마검사단은.”

체시어가 검을 쥐며 눈을 빛냈다.

“나와 함께 황궁으로 갑니다.”

그때.

사령관의 명에 따를 수밖에 없어 엉겁결에 회군해 버린 성궁사단장, 가리온 호프만은 떨고 있었다.

‘반란이라니….’

계획된 회군.

황제의 군대와 맞서라는 명령.

그리고, 이 길로 황궁을 향해 진군하겠다는 사령관.

제국 황실에 반기를 드는 이 모든 상황이 반란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령관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리온의 옆에 서 있던 마궁사단장이 창백한 표정으로 물었다.

체시어는 두 궁사단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궁사단장 둘은 회유하기 어려워. 황제의 측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이 반란에 동참할 성격도 아니지.”

에녹은, 반란 계획이 새어나갈 것을 염려하여 회유하기 힘든 두 궁사단장의 포섭은 포기했다.

나머지 단장들을 전부 반란군에 동참시킨 시점에, 이미 두 궁사단의 전력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원이 없어도 반란군의 전력은 충분했고, 혹여 막아서는 일이 있어도 상대할 수 있었다.

“나는 황궁으로 가, 황제의 목을 칠 것입니다.”

담백한 체시어의 선언에, 두 궁사단장은 사색이 되었다.

“오늘, 파빌리온 황조는 멸문하고 이 제국에서 계급제는 사라질 것입니다.”

계급제의 소멸.

반란군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나는 이 시간부로 제국군의 사령관이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들은, 내 명에 불복하여도 군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참할 필요 없다. 하지만,

“다만 나를 막아서거나 반란군에 대적할 생각이라면, 지금 당신들을 베겠습니다.”

막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는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매우 관대한 처사임을, 가리온은 곧바로 깨달았다.

반란이 실패하든, 성공하든.

이러나저러나 손해 볼 게 없으니 고민할 이유가 없다.

그래, 없다.

없는데도….

“막지 않겠습니다.”

가리온이 고민하는데, 옆에 있던 마궁사단장이 재빨리 대답하며 말고삐를 쥐었다.

“…건투를 빌겠습니다.”

그리고는 떠나갔다.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가리온은 멀어지는 동료를 보며 멍하니 입술만 떨었다.

“…….”

이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저를 오롯이 쳐다보는 체시어의 시선이 느껴졌다.

가리온은 차마 그를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떨어뜨렸다.

잠깐의 기다림.

침묵이 흐르고….

대답 없는 가리온의 뜻도 마궁사단장과 같음을 깨달은 체시어는, 더 지체하지 않고 황궁으로 향했다.

“…….”

가리온은 흔들리는 눈으로,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 * *

제도, 평민 거주 지역.

“다들 흩어져! 각개전투다! 우리 목표는 비능력자들의 제거야! 황제 폐하의 명령에만 집중해!”

방비군 3소대장, 브루스 챔버는 각개전투를 명령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말이 각개전투지, 젬과 용병들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었다.

‘침착해, 브루스 챔버. 일단 사는 게 중요하지.’

몸을 피한다. 하지만, 대놓고 꽁무니를 빼며 도망쳤다간 후에 당연히 징계를 받게 될 터.

‘예상 못 한 디에즈 놈들의 전력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후퇴했지만, 그 와중에도 황명을 열심히 수행했다고 말할 수 있게….’

후퇴하며 마주치는 비능력자들을 전부 죽이고, 그들의 터전을 파괴해 놓으면 될 거다.

‘……?’

골목 두어 개를 돌아 큰길로 나온 브루스는, 누군가와 마주치고 그대로 굳었다.

‘뭐야, 이 덩치는?’

2m가 훌쩍 넘는 듯한 키와 근육질의 덩치.

주황색 턱수염을 가진 거구의 중년 사내였다.

그의 뒤로는 비능력자들이 우왕좌왕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제미언 트라하, 그 개 같은 X의 용병인가?’

벌벌 떨던 브루스는, 이내 당황한 사내의 표정을 읽어내고 반색했다.

“아하, 아니네~?”

무장했다기에는 허술한 차림.

무기라곤 없이, 그저 큰 덩치만 좀 쓸 만해 보이는 모습.

“비능력자구나?”

브루스가 히죽 웃었다.

“…그렇소만. 그래도 주먹 하나는 이 근방에서 아주 유명하지.”

거구의 사내, 정보 길드 <붉은 매>의 행동대원, 빌리 블랙은 애써 웃어 보였다.

태연한 척했지만,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빌리가 받은 지령은 디에즈 용병들이 패배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

적들이 방어선을 뚫고 거주 지역 깊숙이 밀고 들어온다면, 목숨을 걸고 그들을 상대하며 평민들을 대피시키는 것이었다.

‘한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브루스가 혼자 도망쳐왔다는 것을 모르는 빌리는 긴장했다.

“어어, 가까이 오지 마! 이 벌레 새끼야!”

일단 빌리가 몸으로라도 막아 보기 위해 다가서는데,

쉬익―!

브루스의 권갑에서 풍압이 터져 나갔다.

정확히 머리를 겨냥한 공격.

순간 옆으로 고개를 기울여 피했지만, 빌리의 뺨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젠장, 이런 걸 정통으로 맞으면 바로 골로 가겠군.’

빌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절망적인 전력 차이를 느낀 그의 표정을 보며 브루스가 킬킬거렸다.

“그래, 이거지!”

브루스는 위협적인 덩치의 빌리와 절대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서 무차별적으로 권갑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쉬익, 펑―!

쉬익!

쉴 새 없는 공격이 거리 곳곳에 쏟아졌다.

“아아악!”

“꺄악!”

울며 도망치는 평민들.

그 사이에서, 놀라 굳어버린 어린 여자아이를 향해 푸른 마나 덩이가 날아갔다.

“위험해!”

빌리가 등을 내보이며 아이를 감싸 안았다.

“커헉!”

동시에, 그의 눈이 커지며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등가죽이 찢어지는 듯한 생경한 고통과 함께 내장이 울렁거렸다.

“어, 커흐, 헉….”

아찔해진 시야에, 다급히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리코가 보였다.

“빌리!!!”

“큭, 아이, 빠, 빨리….”

빌리가 지켜낸 아이를 리코에게 밀었다. 리코는 주춤했다.

“얼른! 망서, 이지….”

망설이지 않기로 했잖아, 리코.

아무런 희생도 없이 승리할 수는 없다고.

끝내 뱉어지지 못한 빌리의 말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리코는 결국, 울컥하며 짧은 망설임을 뒤로하고 아이와 함께 도망쳤다.

‘빌어먹을, 이런 힘이라니.’

입가에 묻은 피를 훔치며 빌리가 힘겹게 뒤돌았다.

“풉! 덩치만 컸지, 역시 벌레잖아?”

멀리서, 브루스가 비웃으며 둘의 사이를 손짓했다.

“보이지? 지금 이 거리가,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나, 그리고 너 같은 벌레들 사이의 간격이야.”

“…컥, 크.”

또 피를 토하며 빌리가 무너졌다.

시야가 가물거렸다.

단 한 번의 공격에 전투 불능이 된 몸.

그러나 몸이 성했더라도 빌리는 절대, 적과 거리를 좁힐 수 없었을 것이다.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간격….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능력자와 비능력자.

같은 인간이라기에는 힘의 격차가 너무나도 현저했으므로.

“제미언, 그 빌어먹을 X 때문에 기분 더러웠는데 조금 풀렸네.”

브루스가, 무릎 꿇은 채로 연신 피를 토하는 빌리를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그 점은 고마우니까, 깔끔하게 보내 주지.”

공격 한 번에, 도망칠 힘마저 남지 않은 상황.

‘죽을 땐 죽더라도 뭐 하나 도움이라도 돼야 했었는데….’

눈뜨는 것조차 힘겨웠다. 멀리서 자신을 겨냥하는 적의 주먹을 보며, 빌리는 초연해졌다.

‘에밀리…. 우리 딸…. 멀쩡히 살아 돌아간다고, 약속을….’

…약속을, 했었는데.

죽음 앞에서, 그는 어엿한 숙녀가 된 딸을 떠올렸다. 이제 라라 공주는 유치하다며, 생일에 꽃다발이나 달라고 했던 딸.

꽃다발과 함께, 비로소 행복하고 평화로워진 세상을 선물해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아니, 아니다.’

자신은 지금 여기서 죽더라도, 딸은 끝내 아름다운 세상을 선물 받을 것이다.

‘에녹 루빈슈타인.’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검을 쥔 사내.

그라면, 반드시 성공할 테니까.

“재밌었어, 젊은 양반. 나 요 옆 골목에서 펍을 운영하고 있거든. 언제 한번 놀러 오라고. 시원한 맥주 한잔 대접하지.”

“예, 형님. 저도 재밌었습니다. 나중에 놀러 갈게요.”

딸을 데리고, 평민 행세를 하며 축제를 즐기던 남자였다.

빌리는 귀족답지 않은 그의 소탈함에 단숨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확신했었다.

이 사내라면,

끝내 자신의 신념으로 이 얼룩진 땅을 씻어낼 수 있으리라.

“잘 가, 벌레.”

“…….”

한쪽 눈을 감고 자신의 머리통을 겨냥한 적의 주먹에, 마나가 모이는 것이 보였다.

‘맥주 한잔 사기로 했었는데, 아쉽구만.’

모든 것이 끝나면, 고마운 사내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하게 술잔을 기울여 보고 싶었는데.

“팡!”

이내, 조롱하는 탄성과 함께 날아오는 죽음.

빌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쉬익―!

공중에서 마나를 입은 화살이 쏘아졌다. 그것은 날아가던 브루스의 공격을 명중시켜 상쇄하며,

척!

바닥에 매섭게 꽂혔다.

“……?”

브루스가 화살이 날아온 곳을 향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건물 위.

낮의 햇살을 등지고 선 누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브루스가 반색했다.

“성궁사단장님!”

왕국 침공을 위해 제도를 떠났던 성궁사단장, 가리온 호프만!

제국군이 돌아왔다!

아마 디에즈들의 불온한 움직임을 읽고 급히 회군했을 것이다.

“때맞춰 잘 와 주셨습니다! 대체 뭔 수작을 부렸는지 디에즈 용병 놈들의 저력이 대단합니다!”

“…….”

가리온은 무심한 표정으로, 두 번째 화살을 걸고 활시위를 쭉 당겼다.

“그래도 제국군이 돌아왔으니 이 벌레들은 다…!”

신이 나서 외치던 브루스의 입이 굳었다.

한계까지 당겨진 활시위.

“……?”

죽어가는 벌레에게 날아갈 거라 생각했던 성궁사단장의 화살은, 왜인지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 * *

[제국력 1786년, 5월 18일.

회군하여 제도로 돌아온 도스 성궁사단장, 가리온 호프만이 위대한 혁명에 합류하였다.]

* * *

쉬―익!

매섭게 날아와,

“…커, 헉!”

적의 가슴에 박힌 푸른 화살.

털썩.

무릎 꿇는 브루스를 멍하니 바라보던 빌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죽음 앞에서 등장해 제 목숨을 구한 저 사내가 누구인지.

빌리는 모른다.

다만 펄럭이는 푸른 망토를 보고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도스’라는 것.

* * *

[수많은 나라, 그만큼 셀 수 없는 역사 속에서, 파빌리온 제국 혁명이 유독 기념비적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국에 있었던 최고위 계급, 도스 59인 중 무려 45인이 혁명에 가담하였다.

계급제의 최대 수혜자인 이들이 계급제의 폐지를 주장하며, 황실의 인권 탄압을 타도하고 비능력자들의 해방을 위하여 싸웠다는 점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 * *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었던, 계급제의 꼭대기에 서 있는 ‘도스’.

그의 화살이,

가장 핍박받는 계급제의 밑바닥, 비능력자를 위하여 쏘아졌다.

적의 심장에 박힌 화살.

얼룩진 땅을 끝내 정화할 그 작은 움직임을 느낀 순간.

빌리는 흐느끼며 전율했다.

* * *

[……그러하므로, 제국 황실에게는 이 위대한 혁명이 곧,

‘도스의 반란’이라 할 수 있었다.]

아빠가 힘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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