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 * *
[제국력 1786년, 5월 18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폰 파빌리온이 죽고 남아 있던 황족들 또한 숙청당함으로 18세기에 걸쳐 제국을 지배했던 파빌리온 황조가 막을 내렸다.]
* * *
눈을 뜨지 못하는 아빠를 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어떻게 끝이 났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체시어는 곧바로 나와 아빠를 집에 보냈는데, 미리 연락해 뒀던 모양인지 자드키엘 사제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왜 이렇게 얼굴이 창백하세요. 속상하게.”
“어머, 눈물 좀 봐…. 공작님은 금방 깨어나실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제님이 봐 주시잖아요.”
제티와 쥰이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빠에게 치유 마법을 퍼붓고 있던 자드키엘도 힘겹게 웃었다.
“공녀님, 울지 마세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공작님은 제가 책임지고 회복시킬게요.”
모두 날 안심시키려 하는데도 자꾸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나는 아빠가 이렇게 심하게 다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눈도 뜨지 못하고 겨우 숨만 쉬는…….
27years
직접 능력을 쓰려 하니 예상대로 어마어마한 생명력이 필요했다.
치유에 드는 생명력은 저렴했고, 거듭 타인에게 능력을 써 가며 그마저도 덜 들도록 깎아내 왔었지만….
능력자에게 능력을 쓸 때는 역시, 그 대상의 능력치에 비례하는 생명력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진짜, 다치면 안 되겠다.’
나는 울음을 삼켜 내며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가 더 잘못되기 전에 4년가량의 수명을 소모해 세뇌를 푼 것은 현명했다고 생각하면서.
“하아, 하…. 죄, 죄송해요.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게요.”
겉으로 보이는 아빠의 상처가 반쯤 아물었을 때, 마나를 다 끌어다 썼는지 자드키엘이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숨을 골랐다.
“고생하셨어요, 사제님. 쥰, 공작님 피 좀 마저 닦아 드리게 물이랑 수건 갈아 와. 그리고 우리 사제님 마나 회복하시려면 뭘 해야 하지?”
“식사! 식사라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제가 간단하게 챙겨올게요. 넘기시기 편한 게 좋을까요?”
“앗, 아니에요.”
제티와 쥰이 바쁘게 말하자, 자드키엘이 고개를 저었다.
“스푼 들 힘도 없어서요….”
마나가 동나면 허기도 못 느낄 정도라고 했지.
난 미안해져서 팔찌를 봤다.
“저, 사제님. 죄송해요. 제가, 다는 아니라도 조금 도와드릴게요.”
“네? 아니에요!”
자드키엘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마음만은 정말 감사하지만, 공녀님은 마나 다 써서 도와주셔도 힘드셔요. 괜히 지치기만 하실 거예요.”
“맞아요, 아가씨.”
물이 담긴 대야를 들고 방을 나서려던 쥰이 고개를 휙휙 저었다.
“도스인 사제님도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옥타바인 아가씨가 공작님 치료하려 하셨다간 말린 오징어가 되어버릴 거예요.”
…뭐지?
그런 말을 남기고 나가 버리는 쥰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자드키엘과 제티가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때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프리메라라고 대놓고 말로 안 해서 모르는 걸까?’
아빠의 세뇌를 풀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시점부터, 나는 내 정체를 숨길 생각은 버렸다.
훌쩍 자란 모습을 감추지도 못할 테고, 어차피 황제가 죽고 나면 내 능력을 숨기려고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런데 확실히, 이상했지? 처음에 체시어가 집으로 아빠랑 나를 보내줬을 때….’
제티와 쥰은 옛날에 내가 성열에 걸렸을 때 이미 이동 마법의 존재를 알았다고 했고, 워프 게이트도 없이 뿅 하고 나타나자 놀란 것은 자드키엘뿐이었다.
그런데, 딱 그뿐.
자드키엘도, 제티도, 쥰도 훌쩍 자란 내 모습에는 딱히 의문을 갖지 않는 듯했다.
“저… 사제님, 저 뭔가 달라지지 않았어요?”
“네? 무슨?”
내 얼굴을 가리키며 묻자, 자드키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 안 자랐어?”
옆에 서 있던 제티에게도 얼굴을 휙 돌려 보이며 물었지만.
“…뭐가 자라요?”
같은 반응이었다.
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분명 자라 있었다.
“저, 저거 봐.”
아마 열여덟 살쯤.
누가 봐도 성인인데…….
“컸잖아, 나.”
“에휴, 충격을 많이 받으셨나 봐요. 아가씨는 원래 또래보다 좀 크셨잖아요.”
“…….”
“아가씨도 쉬시면 안 될까요? 푹 주무시고 일어나면, 분명히 공작님도 깨어나 계실 거예요.”
제티는 내가 충격에 헛소리하는 줄 알고 있었다.
‘내가 원래 또래보다 컸다니?’
모두 내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미안해. 내가 조금 더 강했으면 네가 능력을 쓸 필요 없었을 텐데.”
체시어는 분명히, 훌쩍 자란 나를 알아봤었다.
‘대체 왜… 아!’
의아해하며 생각하다가 깨달았다.
‘체시어는 내가 프리메라라는 걸 알고 있었지.’
체시어와 달리, 자드키엘과 하녀 언니들은 아니었다.
‘설마….’
나는 원작을, 아니,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신은 왜 영웅, 에녹 루빈슈타인을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마지막에 그가 딸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했을까.
아마 그건 영웅에게 시련을 주고 싶어서도 아니고, 비극적인 결말을 선물하려는 의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신은…….
‘더는 프리메라가 존재하지 않길 바라는 거야.’
언젠가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 있었다.
황제는 죽었지만, 그의 자리를,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진 ‘프리메라’가 다시 차지한다면….
‘또 황제 같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지.’
그렇기에 신은 최후의 순간에 모든 프리메라가 소멸하기를 바랐다.
다만 신은, 이번에는 끝내 나의 생존을 허락했다. 하지만 황제처럼 프리메라로 군림하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구나. 알겠어.’
그 뜻을 짐작한 순간 내 마음은 후련해졌다.
마지막 프리메라.
나를 끝으로,
이 땅에 더 이상 프리메라가 태어나지 않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 * *
치료가 다 끝났는데도 아빠는 눈을 뜨지 못했다.
‘아빠, 미안.’
나는 아빠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옆에 있으려 했지만, 기약이 없어서 오스카의 집무실로 온 참이었다.
거사가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은 알려 두었었다. 그럼에도 왜인지, 그의 얼굴을 직접 봐야 할 것 같아서….
“스승님!”
집무실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
“마탑주니이임! 오셨습니까! 대체 이 와중에 저한테는 말도 안 하고 어디 가셨다가…!”
그때,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오스카의 보좌관, 로벨이 들이닥쳤다.
“…리리스?”
그는 오스카 없이 혼자 서 있는 나를 보고 놀라더니 이내 아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수제자라고 너한테는 별의별 마법식을 다 공유하셨나 보구나.”
내가 이동 마법으로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마탑주님은? 너희 집에 계시니?”
“네? 스승님 여기 없어요?”
“…….”
“…….”
로벨이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없는데?”
“어디 갔는데요?”
“나도 모르지. 밖에 난리 나서, 나는 너 걱정돼서 너한테 가 계신 줄 알았어.”
순간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깨어나길 기다리지 못하고 얼른 오스카의 얼굴부터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움직였던 이유…….
그건 어쩌면 이 불길함을 감지한 내 본능이었을지도 몰랐다.
“집에는, 집에는 없어요?”
“세상에나. 너 어디 아프니? 애가 왜 이렇게 삽시간에 얼굴이 창백해져?”
“괘, 괜찮아요. 스승님 집에는 가 보셨어요?”
“어어, 사택에는 안 가봤어. 그렇지만 평소에도 집에 잘 안 가시는걸. 밖에 이 난리가 났는데 집에 계실 리가… 어엇, 리리스!”
나는 로벨을 뒤로하고 집무실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무작정 계단을 타고 올랐다.
눈앞이 새하얘져서 몇 번 걸음이 휘청거렸다.
‘아니겠지?’
말없이 떠나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옆에 붙어 있겠다고 몇 번을 졸랐으니까.
‘아닐 거야.’
어쩔 수 없이 회귀의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면, 당신 혼자 외롭게 살게 두지 않겠다고….
내가 옆에 있어 주겠다고….
귀찮을 만큼 말했으니까.
그러겠다고 했잖아.
알겠다고, 말없이 떠나버리지 않겠다고 했잖아.
“스승님!”
마치 내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열려 있는 문.
안도감이 들었다.
“스승님! 집에 있죠?”
하지만 널따란 집 안, 어디에도 기척은 없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온 방을 다 뒤지고 다녔다.
“어디 있어요? 어디….”
나는 어느 한 곳의 문을 열고 나서 멈칫했다.
내 방이었다.
내가 올 때면, 항상 내어줬던 방.
넓은 침대 위에, 오스카와 같이 입었던 하늘색 구름 잠옷 두 벌이 바르게 개켜져 있었다.
잠옷 위에는 내 칫솔, 그리고….
분명 내게 남겨 두었을 편지 한 장도 함께 올려져 있었다.
‘아.’
그 작별인사 같은 흔적을 발견한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빠가 힘을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