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앗! 리리스, 왔어?”
마침 나오려던 길이었는지, 문을 열자마자 코앞에 서 있는 한스.
그리고.
“여기, 인사해. 제임스 그레이 씨야.”
한스가 비켜서자, 그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로 리리스의 시선이 가 닿았다.
“아….”
* * *
이른 아침, 마탑 시험장.
오스카는 1차 시험지를 받아 보고 황당했다. 이 난이도에 합격점은 50점이란다. 반타작만 하면 2차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니.
‘장난해? 출제자 누구야?’
출제자: 한스 위버
…내 제자였구나.
이런 변별력 없는 문제를 출제한 것이…….
‘미친 건가? 마탑에 사람이 없으니까 일단은 신입 뽑으려고 쉽게 낸 건 알겠는데, 천 명이나 지원했잖아! 천 명 다 뽑을 생각이야, 뭐야?’
…라는 오스카의 걱정이 무색하게 1차 시험 통과자는 천여 명 중 고작 열 명이요, 만점자는 딱 한 명.
제임스 그레이뿐이었다.
“만점자가 나왔다고?”
웅성웅성.
“자유 지원제 도입되고 만점 나온 건 처음 아니야?”
웅성웅성.
“저기 봐봐, 저 사람인가 봐.”
웅성웅성.
들키면 죽음뿐인 오스카 마뉘엘!
안 그래도 지뢰밭인데 격렬하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감독관들도 전부 놀라서 제 얼굴을 한 번씩 뚫어져라 보는데,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안 되겠다 싶었던 오스카는 2차 시험부터는 적당히 틀리기로 했다.
그리하여 2차도 치르고 나자.
‘신이시여. 이게 이 나라 사람들 지능 수준이라고?’
1차 통과자 열 명 중 여덟 명이 짐을 싸고, 두 명만 남았다.
오스카는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과 함께 2차 시험을 통과한 동갑내기 귀족 사내를 보았다.
이름은 안드레 헬슬리.
헬슬리 자작 가문 차남이라는데, 그 많던 지원자들 중 최후의 2인이 된 것이 그렇게도 뿌듯한지 어깨가 거만하게 솟아 있었다.
3차 시험장으로 가는 길.
“3차 시험 감독관인 로베르트 퀀이라고 합니다. 편하게 로벨이라고 불러 주세요.”
오스카는 3년 반 만에 제 보좌관, 로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로벨, 반갑습니다. 그런데 혹시, 궁금한 게 있는데 질문해도 되나요?”
“오, 얼마든지요.”
안드레가 말하자 로벨이 상냥하게 대꾸했다.
“잠적한 전대 마탑주 있잖습니까? 제국 황제에게 마법식을 제공했던 것으로 아는데. 역시, 숙청당할까 봐 도망친 것 맞죠?”
“…….”
안드레의 질문에 로벨의 걸음이 뚝 멎었다. 이내 하하, 웃은 그가 다시 걷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 당시 혁명군이 제국 황실을 점거함과 동시에 마탑주님이 사라지셨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죠.”
“맞죠?”
“아뇨, 헛소문입니다. 애초에 마탑 연구원들이 혁명군을 지원하러 갔던 것도 전대 마탑주님의 명령 때문이었는걸요?”
“아…. 정말요?”
마음에 안 드는 답변이었던 모양인지 안드레가 입을 삐죽거렸다.
“루빈슈타인 공작 각하께서 그런 소문을 정정하시는 데 꽤 공을 들이셨던 것으로 압니다만, 어째 헬슬리 자작 가문은 소식이 느렸나요?”
“아뇨, 그렇다고 듣긴 했죠. 근데 누가 믿나요. 전대 마탑주 같은 놈이 혁명군이었다니. 괜히 숙청 대상을 놓쳤다는 오명을 쓰기 싫어서 루빈슈타인 공작이 둘러댄 거라고 생각했네요.”
제일 뒤에서 걸으며 묵묵히 듣고 있던 오스카가 안드레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한 대 치고 싶네, 진짜. 지는 그때 집에서 배 긁고 자빠져 잠이나 자고 있었을 거면서….’
그때.
“놈…. 하하, 놈이라….”
혼잣말로 조용히 중얼대던 로벨이 휙 돌아보았다.
“그런데 안드레 씨는, 전대 마탑주님을 뵌 적 있으신가요? 어찌 그리 잘 아는 것처럼 말씀하시는지?”
“성격 파탄자 아니었나요?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입만 열면 독설에, 돈밖에 모르는 썩어빠진 권력자였죠.”
뭐야? 말로 연타 공격을 얻어맞은 오스카가 이를 악물었다. 눈을 껌뻑이던 로벨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성격 파탄자, 자기 잘난 맛에 삶, 입만 열면 독설까지는 인정.”
저놈이?
오스카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그런데 그분의 악명이 마탑 밖에까지 소문 자자했단 말인가요?”
“사실 옛날에, 영재 교육 시험을 신청한 적이 있거든요. 전대 마탑주가 막 마탑을 물려받았을 때였는데, 그때 그놈 얼굴 본 적 있어요.”
아하, 구면이었구나.
하지만 오스카의 기억에는 없는 얼굴이었다.
막 마탑을 물려받았을 때면 아마, 회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리리스를 위한 마법들을 만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때인데, 그 와중에 귀찮게 찾아오는 멍청이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리가.
“헉! 그렇다면 안드레 씨도 전대 마탑주님께 ‘당했나’ 보군요?”
“네, 당했죠. 그놈이 저한테 했던 막말이 아직도 안 잊히네요.”
얼굴도 모르겠고,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지만 ‘당했다’는 안드레의 말이 거짓이 아님은 안다.
머리도 안 되면서 시험 보게 해 달라고 꾸역꾸역 마탑에 기어들어 와 제 금 같은 시간을 뺏었던 놈들에게, 오스카는 공평히 막말을 날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때 절 떨어트린 것도 이해가 됩니다. 척 봐도 자기보다 더 똑똑하니까 위기감이 들었겠죠. 부당하게 불합격했던 거라고 확신해요.”
“오, 글쎄요. 그건 아닐걸요. 전대 마탑주님 성격이 영 괴팍하긴 했습니다만, 철저한 능력주의라 오려는 인재를 막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느새 도착한 3차 시험장.
로벨은 오스카의 앞에만 시험지를 내려놓았다.
“…저는 안 주시나요?”
그리고 의아해하며 묻는 안드레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안드레 헬슬리 씨는 2.5차 시험에서 탈락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3차 시험에 지원하실 자격이 없네요.”
“예? 2.5차 시험이라니요?”
“사실 전 2차와 3차 사이에 있는 2.5차 ‘인성검사’ 감독관도 겸하고 있거든요. 안드레 씨 말마따나 전대 마탑주 같은 성격 파탄자가 마탑에 들어와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제, 제가 인성검사에서 탈락했다고요? 제가 뭘 했는데요?”
“제가 봤을 때, 당신이 마탑 연구원이 되면 허구한 날 상사 욕이나 하면서 직장 분위기를 흐릴 것 같습니다. 저는 연구원들에게 쾌적한 연구 환경을 조성해 줄 의무가 있고.”
방긋 웃은 로벨이 얄밉게 검지를 들며 덧붙였다.
“안드레 씨는 우리 마탑의 근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지원자라는 판단이 들었답니다. 그럼, 짐 싸고 나가 주세요.”
“어, 억지야! 시험도 못 보게 하고 쫓아낸다고요? 당신, 이렇게 맘대로 할 권한이 있어요? 어?”
“어휴, 목청도 크셔라. 떽떽 소리치는 꼴을 보니 제 발로 얌전히는 절대 안 나가시겠죠?”
로벨이 손을 까딱하자 시험장 안에 있던 가드들이 안드레를 끌어냈다.
“안 돼! 이렇게는 못 가! 억지야, 억지라고!!!”
쾅―!
이내 닫혀버린 시험장 문.
모든 광경을 지켜본 오스카는 입을 떡 벌렸다.
‘뭐야, 로벨 이 자식? 이래도 돼? 인성검사? 마탑에 그런 게 생겼어?’
오스카가 어이없어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굴색이 어두워진 로벨이 털썩, 감독관석에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시말서 감이네….”
그럼 그렇지.
충동적인 짓이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인력난인데, 2차 시험까지 통과한 인재를 제멋대로 쫓아내다니.
“제임스 씨…!”
그때, 눈을 번뜩인 로벨이 오스카에게 말했다.
“제 목숨이 당신께 달렸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합격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전, 방금 저지른 짓에 대해 무려 백 장짜리 시말서를 써야 할 거예요….”
오스카는 물끄러미 3차 시험지를 내려다보았다.
점점 난도가 높아진다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앞선 1, 2차 시험에 비해 어디가 어떻게 더 어려운지.
“부디,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피식 웃은 오스카가 손가락으로 펜을 휘릭, 굴렸다.
‘쉽지, 뭐.’
* * *
면담장.
오스카의 예상과 달리, 최종 시험까지 통과해야 얼굴이나마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마탑의 최고 권력자, 한스는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럴 수밖에. 연구원 자유 지원 제도가 도입되고 난 후 3차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오스카가 처음이라고 했다.
“하아.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사람 기다리는데….”
한스는 다리를 덜덜 떨며 초조해했다.
지원자의 눈치를 보는 마탑주라니. 마탑의 인력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오전 반차를 내주는 게 아니었는데….”
중얼거리는 한스의 말을 들으며 오스카는 긴장했다.
그의 예상과 달랐던 것은 하나 더 있었다. 무사히 마탑에 입성하고 나서 찾아보려 했던 아이를, 지금 당장 만나게 됐다.
리리스가 최종 시험 감독관이라나.
“안 되겠다! 먼저 시험장으로 가 계시죠. 감독관은 그쪽으로 오라고 하면 되니까요.”
“아, 예.”
한스가 오스카를 데리고 일어났다.
“제임스 씨라면, 분명 최종 시험도 거뜬하게 통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입이 귀에 걸린 한스가 문을 열려는데, 반대편에서 먼저 열렸다.
“앗! 리리스, 왔어?”
순간, 오스카의 눈이 커졌다.
“여기, 인사해. 제임스 그레이 씨야.”
한스가 비켜섰다.
그제야 오스카는,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리리스…….
자랐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리리스는 놀라울 만큼 변해 있었다. 나름대로 그렸던 상상 속에서보다 훨씬, 훨씬 더….
‘…예쁘네.’
떠나 있던 시간 동안 조금도 지워지지 않던 기억.
오히려 매일매일 선명해져서, 다시 보게 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했던 얼굴.
‘잘 자랐구나.’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할 수는 없었다.
“반가워요, 제임스 씨. 최종 시험 감독관인 리리스 루빈슈타인이에요.”
오스카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던 리리스가 웃으며 악수를 청해 왔다.
‘아.’
오스카는 리리스가 내민 손을 보며 멈칫하다, 이내 픽 웃었다.
‘뭘 또 서운해하고 있어.’
스승님의 얼굴을 잊지 않겠다던 약속은 그저 아이의 바람이었을 뿐.
“제가 말했잖아요. 저는 스승님 안 잊어버린다고. 스승님을 잊었다가 다시 알아보면… 그러면 스승님이 죽겠지만, 애초부터 안 잊어버리면 상관없어요.”
당연히 리리스도 자신의 금제를, 신이 내린 형벌을 비껴갈 수는 없었겠지.
그런데도 바보처럼 기대했었나.
“예….”
저를 잊어버린 아이를 보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반갑습니다.”
오스카는 리리스와 악수하며 활짝 웃었다.
맞잡은 손에 느껴지는 온기…….
그래, 이것으로 괜찮다.
나를 잊었어도.
나는, 이렇게 살아서, 살아 있는 너를 느낄 수 있음으로도 족하니까.
아빠가 힘을 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