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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악역의 신부 (1) (3/197)

3화. 악역의 신부 (1)2021.06.10.

사치와 향락에 빠져 국정은 나 몰라라 하면서, 자신의 왕위는 지키겠다고 제 형제들을 죽인 폐왕. 시카르는 폐왕이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왕국을 몰락시킨 죄로 처형했다. 폐왕을 처형한 후 시카르는 길리언을 왕좌에 앉힌다. 폐왕의 말로를 지켜본 길리언은 자신도 왕의 자리를 빼앗기진 않을까 노심초사했기에 왕이 되자마자 자신의 여동생인 베로니아의 아들이자, 소설 속 주인공인 키안을 없애기 위해 그의 엄마인 베로니아를 붙잡아 감금시킨다. 베로니아는 이 왕국의 공주였지만, 이미 폐왕이 폐악을 저지르기 전, 불의 정령사와 사랑에 빠져 궁에서 쫓겨난 인물이었다. 길리언은 시카르 몰래 감금시킨 베로니아를 붙잡아 키안이 어디 있는지 밝혀내려 하지만, 그녀는 제 아들의 행방을 결코, 발설하지 않는다. 길리언은 차후에 키안을 협박할 빌미를 마련하기 위해 베로니아를 죽이지 않고 어딘가에 감금시켜두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소설 속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주인공 키안은 엄마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며 자란다. 왕이 된 길리언은 시카르에게 키안을 찾아 제거해달라고 하고 시카르는 키안을 제거하지만, 그는 진짜 키안이 아니었다. 결국, 장성한 키안은 저주에 걸린 시카르를 제거해버린다. 그러니까, 시카르는 이 소설 속에서 나중에 주인공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마는 악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내 기억을 읽은 바람에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이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16549769556941.png“대답해. 이곳이 진짜 소설 속이란 말이야?”

내가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했다고 죽일 것 같고, 맞다고 하면 맞다고 죽일 것 같고.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그저 머리가 새하얗게 된 기분이었다.

16549769556941.png“대답하지 않겠다는 건가?”

이 와중에도 표정이 덤덤했기에 그가 화가 난 건지, 어떤 건지 알 수가 없었다.

16549769556991.png“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든 내 말이 아닌, 내 기억을 믿을 거잖아!”

16549769556941.png“네 말대로 이 상황을 믿기가 힘들지만, 네 기억 속에 있는 그 세계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곳이니 또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고, 내가 사람의 말보다 기억을 더 믿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는 내 기억을 읽어내느라 내 팔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의 손에 팔 하나가 잡혀 있는 나는 한 손을 내밀며 빌었다.

16549769556991.png“살려줘.”

아무래도 내 기억을 다 읽고 나면 날 죽일 것만 같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16549769556991.png“제발 살려줘. 난 이곳이 소설이라는 걸 알려주기 싫었어. 그래서 도망가려고 한 거야. 정말이야.”

시카르는 내 말에 전혀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한번 힐끗 노려볼 뿐이었다.

16549769556941.png“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되는군. 네 기억을 읽어야 하니 조용히 있어라!”

그는 사람의 기억을 읽을 때 컴퓨터 폴더 내 파일을 열어보듯 선택해서 볼 수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내 기억 속 소설을 모두 읽고 남았을 텐데도 계속 붙들고 있는 거였다. 대체 무슨 기억을 어디까지 보려고 이렇게 붙들고 있는 거지?

16549769556941.png“직업이 어린이집 교사군. 아이들에게 아주 상냥하고 친절한 교사. 부모에게 동생과 차별받으며 커서 그 서러운 마음을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것으로 보상을 받았군. 이곳에 오기 전엔 동생에게 사기도 당했고.”

이런 내 아픈 가족사를 건들다니! 기억을 읽히는 걸 직접 당해보니 발가벗겨진 기분이 따로 없었다.

16549769556991.png‘이제 그만 좀 보면 안 되나?’

시카르는 비릿하게 웃고는 내 팔을 놓으며 말했다.

16549769556941.png“너에 대한 정보는 대충 파악했다. 네 기억이 의하면 이곳은 소설이고, 난 악역이군.”

세상을 주름잡다가 한순간에 훅 가는 악역이지.

16549769556941.png“그것도 새파랗게 어린놈에게 처참한 죽음을 맞는 악역.”

시카르가 소름 끼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바람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항상 자신의 허리에 꽂아 놓는 장검을 꺼내든 후 바로 나를 위협했다. 아니, 이건 위협이 아니라 정말 죽이려는 것 같았다.

16549769556941.png“그럼, 나를 죽이려는 그 주인공을 놈을 죽이면 되겠군. 그리고 너도 죽이고.”

16549769556991.png“사, 살려줘!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아니, 애초에 나는 이곳에서 조용히 살 작정이었어! 너 하고는 무관하게 쥐죽은 듯 조용히 살 생각이었다고!”

16549769556941.png“맞춰봐. 내가 너를 살려줄지 죽일지. 나에 대해서 잘 아니까 그 정도는 알 수 있겠지.”

16549769556991.png‘죽이겠지. 자기에게 아무 이득도 안 되는 데다 이곳이 소설인 것을 알고 있으니 날 살려 둘리가 없어…… 어, 어떻게 해야 하지?’

16549769556991.png‘어떻게 해야. 저 미친놈이 날 죽이려는 걸 말릴 수 있는 거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

그 순간 시카르에게 피할 수 없는 저주가 걸려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16549769556991.png“저주! 저주를 없애야 하잖아. 주인공 키안을 죽이게 되면, 넌 영원히 그 저주를 못 없앨 거라고!”

시카르는 오래전 정령사와 싸우다 그가 죽기 전 혼신을 다해 불러낸 아가시온에 의해 때때로 몸의 일부가 얼음처럼 굳어 버리는 저주에 걸렸었다. 아가시온은 인간에게 저주를 내리는 정령으로 정령사가 자신의 생명을 소멸해야 쓸 수가 있었고, 정령사의 능력만큼 저주가 발현되었다. 정령사가 시카르의 몸에 새긴 저주는 저주의 씨앗과도 같았다. 가령, 몸속 깊숙이 숨어 있는 대상포진 같은 존재랄까? 아가시온보다 더 월등한 능력을 지닌 정령사가 몸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저주의 씨앗을 제거해야만 그 저주를 풀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푼다기보다는 완전히 제거하는 개념과도 같은 것이다. 원작에서는 그 저주를 푸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키안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을 것이다.

16549769556941.png“키안을 잘 구슬린 후 저주를 풀고 나서 죽이면 되겠지. 그러니 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16549769556991.png“그러려면 키안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네가 할 수 있을까? 키안은 바보가 아니야. 주인공이라고! 네 계책에 쉽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

16549769556941.png“그럼, 그냥 죽이면 되니까 상관없다.”

16549769556991.png“너, 너, 때때로 그 저주 때문에 고통스럽잖아! 나중에 주인공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이유도 모두 그 저주 때문이었잖아! 내가 키안이 너의 저주를 풀어줄 수 있게 도와줄게!”

16549769556941.png“네가 어떻게?”

16549769556991.png“내가 어린이집 교사잖아. 유아심리학도 공부했어. 내가 아이들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너도 내 기억을 봐서 알 거 아니야!”

16549769556941.png“네 말대로 네가 아무리 아이를 잘 다룬다고 해도 주인공에게 그게 통할까?”

16549769556991.png“당연히 할 수 있어! 키안을 잘 아니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 저주받은 몸으로 평생 사는 것보다 낫지 않아? 저주는 갈수록 심해질 텐데?”

긴가민가하는 표정이었지만, 그제야 시카르는 내 목에 겨눈 칼을 거두었다.

16549769556941.png“계획을 들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잘 설득해야 할 거야. 아니면, 이 검이 다시 네 목을 치려고 들 테니까.”

나는 차분히 조금 전 급조한 생각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6549769556991.png“키안이 저주를 푸는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기까지 5년이란 세월이 더 필요해. 원작에서는 장성한 키안이 너의 수하로 들어와서 결국 너의 약점을 캐내서 널 죽이게 되잖아? 하지만 이번엔 네가 그 시간을 함께하는 거야.”

16549769556941.png“함께하라니. 어떻게?”

16549769556991.png“키안은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갔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에 대한 갈증이 깊어. 원작에서 키안은 자신을 거두고 키워준 후작 가문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잖아. 그러니 키안을 입양하는 거야! 네가 잘 키우면 키안은 널 아빠로 생각할 테니. 널 죽이진 않을 거야!”

나도 내가 이렇게 임기응변에 강한 줄은 몰랐다. 나는 꽤 그럴싸한 계획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카르는 그게 아니었던지 못 미더운 얼굴로 또,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16549769556941.png“입양?”

16549769556991.png“그래. 입양! 아들로 잘 키우면, 키안이 널 죽이진 않을 거라니까?”

16549769556941.png“하지만, 난 아이를 싫어한다.”

16549769556991.png“그,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한 거야. 내가 아이를 잘 아니까. 아직 이 세계에서는 아이에 대한 육아 교육이나 정보가 없잖아. 하지만, 난 그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있어. 물론 네가 내 기억을 읽어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기억은 실전하고는 달라!”

난 꽤 쓸모 있는 사람이고, 네 저주를 풀기 위해선 내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계속 어필했다. 하지만 시카르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계획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를 진짜 죽일 생각인 건가. 설마? 라고 생각했던 건. 설마가 아니었다.

16549769556941.png“근데 넌 왜 자꾸 반말이지?”

16549769556991.png“내, 내가 다섯 살이나 더 많아서 나도 모르게 반말한 건데, 네가 기분 나빴다면 조…… 존대할게요. 공작님.”

16549769556941.png“버릇을 고쳐야겠군.”

스르릉. 시카르는 다시 검을 꺼내 들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16549769556991.png“엄마야!!!”

곧 내 목으로 칼날이…… 들어올 줄 알았지만, 다행히도 고요했다.

16549769643096.png“언니야!!”

고개를 들어보니 시카르의 할머니 힐리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16549769643096.png“야! 이놈아! 이 나쁜 놈! 우리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할머니는 들어오자마자 시카르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16549769643096.png“우리 언니 괴롭히지 마! 이 나쁜 놈아!”

16549769556941.png“아, 하…… 할머니! 할머니 저예요! 시카르예요! 진정하세요. 할머니……!”

16549769643096.png“우리 언니 괴롭히지 말라고!!!”

16549769556941.png“아, 안 괴롭힐 테니까 진정 좀 해요. 할머니!”

이거다. 내가 살 길은 바로 할머니였구나! 감사합니다. 할머니! 시카르와는 다르게 은혜를 아시는군요. 나는 조르르 할머니 뒤로 가서 섰다.

16549769556991.png“할머니. 할머니. 저 좀 살려주세요!”

16549769643096.png“우리 언니 괴롭히는 놈들은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다 가만 안 둘 거라고!”

힐리스 할머니는 어릴 때 마차사고로 하나뿐인 언니를 잃은 경험이 있었다. 할머니의 언니는 병약해서 어릴 때 짓궂은 애들로부터 할머니가 언니를 항상 지켜줘야만 했었다. 하지만, 마차사고가 있던 날은 그 언니가 힐리스 할머니를 보호하고 대신 목숨을 잃었다. 할머니는 잠시지만 언니같이 보살펴준 나에게 언니와 같은 애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살았다. 시카르는 내게 겨누었던 검을 거두었다.

16549769556941.png“네 목숨을 살린 것은 우리 할머니라는 것을 잊지 마라. 지금처럼 또 탈출을 시도한다면 그때는 정말 죽여버릴 테니까.”

나를 노려보던 시카르가 할머니를 데리고 나가자 다리의 힘이 풀렸다.

16549769556991.png‘어떻게든 살려면 할머니를 붙잡고 있어야겠는데.’

곧이어 하녀들이 달려와 나를 내 방까지 올려놓은 후 침대에 곤히 눕혔다. 이미 기억도 다 들켰겠다. 이젠 탈출을 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치고 지친 탓일까. 나는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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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49769672347.jpg“아가씨. 아가씨. 일어나세요.”

대체…… 아가씨가 누구야……. 아가씨란 분 어서 일어나시……. 그 아가씨가 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앞에는 메이리가 방긋 웃으며 세숫물을 들고 서 있었다.

16549769672347.jpg“아가씨. 세수하셔야죠.”

16549769556991.png‘상냥하기도 하지.’

시카르가 사람들을 뽑을 때 기억을 통해 인성을 보기 때문에 이 저택에 일하는 사람들이나 그의 수하들은 모두 착하고 의리가 있었다.

16549769556991.png‘본인이나 좀 착하게 살지.’

16549769672347.jpg“아가씨. 잠자리가 바뀌어서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나 봐요. 피부가 푸석푸석해지셨어요.”

16549769556991.png“그래? 잠자리가 바뀐 탓에 제대로 못 잔 거 같구나.”

16549769672347.jpg“저런. 어떡해요. 오늘부터는 제가 자기 전에 잠이 잘 오는 차를 대접하도록 할게요.”

16549769556991.png“그래. 생각해 줘서 고맙구나. 메이리.”

16549769672347.jpg“별말씀을요. 아가씨. 이제 내려가서 식사하세요. 공작님께서 내려와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어요.”

시카르가 내려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한 것은 모두 할머니 때문이겠지. 시카르가 고기를 썰기 위해 든 나이프만 보고 있어도 간담이 서늘해졌기에 나는, 할머니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았다.

16549769643096.png“언니. 어서 와.”

16549769556991.png“잘 주무셨습니까. 대마님…….”

내가 옆으로 앉자, 힐리스 할머니는 속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16549769643096.png“대마님? 언니, 날 왜 그렇게 불러?”

나는 시카르의 눈치를 살폈고 그는 매섭게 나를 쳐다보며 코를 찡그렸다.

16549769556941.png“할머니를 만족스럽게 해드려라. 할머니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이름을 불러 드려라.”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조금 비죽거려준 후 할머니를 보며 미소 지었다.

16549769556991.png“미안해. 힐리스. 실수였어. 그럼 우리 이제 밥 먹을까?”

16549769643096.png“응. 언니!”

할머니는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으며, 포크를 들고 고기를 찍어 먹었다. 힐리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한 게 열다섯 살 때인 걸 생각하면,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간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해맑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긴장되는 공포의 식사가 끝난 후 시카르는 나를 그의 서재로 불러들였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나는 할머니를 보며 도와주길 애원했지만, 시카르는 할머니가 좋아하는 초코케이크로 할머니의 시선을 잠시 돌린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가 디저트를 먹는 동안 시카르의 서재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서재에 불려간 나는 죄인처럼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소파에 앉았다.

16549769556941.png“네 말을 좀 생각해봤어.”

시카르는 무심하게 말했지만, 듣는 나는 숨 쉬느라 들어오는 공기조차도 목구멍에 걸리는 것만 같았다.

16549769556941.png“네가 말 한대로 키안을 입양하는 게 좋을 것 같더군.”

입양을 하든가 말든가. 어차피 키안을 입양하는 조건으로 나를 놓아줄 것도 아닌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16549769556941.png“내 말 안 들리나?”

16549769556991.png“어차피 나를 살려두는 이유는 할머니 때문 아닌가? 그러니까 이제 그 일과 나는 상관없는 일인데, 내가 그 얘길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어?”

16549769556991.png‘나도 열 받았다 이거야.’

16549769556941.png“할머니는 곧 치료를 위해 레페르 대신전으로 보낼 생각이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신전에서 치료를 받고 치매를 고치고 나면 이제 더는 네 도움은 필요 없게 된단 소리지. 그렇다면 내가 널 더 살려줄 이유는 없겠지?”

레페르 대신전은 이 세계에서 저명한 대신관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원작에서는 할머니가 사망했기 때문에 치매를 치료할 시도조차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할머니의 치매가 낫는다면…… 키안을 제외하곤, 시카르에겐 내가 필요 없어진다는 얘기였다. 나는 등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조금 전까지 툴툴대던 것을 멈추고 매우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16549769556991.png‘태세 전환을 잘해야 살아남는 거야!’

16549769556991.png“그래? 그렇구나. 그럼 나는 네가 키안을 입양했을 때 잘 키울 수 있게 도와주면 되겠구나. 내가 키안의 가정교사가 되어 주면 될까?”

16549769556941.png“가정교사는 필요 없다.”

16549769556991.png“그럼? 내가 뭘 해주면 좋을까?”

시카르는 살기 어린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사람 무섭게 왜, 또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16549769556941.png“나와 결혼해.”

16549769556991.png‘뭐?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

16549769556991.png“갑자기?”

스르릉. 시카르는 검집에서 나온 검날을 내 턱 아래로 들이대며 말했다.

16549769556941.png“택해라. 나와 결혼할지. 죽을지.”

프러포즈라는 것을 이렇게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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