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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주인공을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10) (15/197)

15화. 주인공을 입양하게 되었습니다 (10)2021.07.22.

키안이 잠드는 모습을 보고 시카르의 서재로 향하니 복도에서부터 사용인들이 훌쩍이며 나오는 모습들이 보였다. 하인들은 나를 보며 울먹이면서도 인사를 한 후 종종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갔다. 나는 목이 돌아갈 정도로 그들이 복도 끝까지 사라질 때까지 보고 서 있었다.

16549772655383.png‘많이들 혼난 모양이구나. 저 훌쩍이는 모습들이 남 일 같지가 않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습공격을 하듯 시카르가 내 손을 잡았다. 얜 정말 말로 하는 법을 모르는 걸까. 손부터 덥석 잡으니 대화하는 법을 모르지! ‘허락받고 내 손 잡으라고 했지?’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기억을 읽히는 동안 잔뜩 긴장해야만 했다. 내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렸다. 복도를 올라오던 하녀들은 시카르가 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곤 ‘어머어머. 죄송합니다.’를 남발하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16549772655383.png‘어허. 지금 이거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로맨스가 아니라 호러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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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시카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니 내가 키안에게 친모가 아니라고 하는 것까지 본 것 같았다. 이미 각오하고 저지른 일이다. 쫄지 말자. 쫄면 안돼! 나는 그래서 뭐, 나를 죽일 거냐는 듯 당찬 얼굴로 시카르를 쳐다보았다. 물론 시카르가 보기에는 내가 의도한 표정이 아니었던 것 같지만.

16549772655398.png“그런 가여운 표정을 지으면 내가 봐줄 것 같나? 왜 내 말을 안 들었지?”

16549772655383.png“그런 천륜을 어기는 거짓말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니까.”

16549772655398.png“잘 안 들린다. 좀 더 크게 말해봐.”

16549772655383.png“그러니까…… 우린 이제 가족이고 천륜을 어기는 그런 거짓말을 하려니 무섭고…… 또, 미안하고…….”

16549772655398.png“누가 들을까 봐 그렇게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 같은데. 방으로 들어가지.”

누가 들을까보다는 네 놈이 무서워서 목소리가 줄어든 거거든. 서재로 들어간 시카르는 문을 쾅 닫으며 들어와 나를 소파에 앉혔다.

16549772655398.png“이제 편하게 대화 좀 해볼까? 왜 그랬는지 말해봐라.”

내가 지금 이 말을 몇 번을 하는 건지.

16549772655383.png“비록 서류상 가족이라고 해도 우리는 가족이잖아. 가족끼리 거짓말하는 것도 그렇고, 천륜을 어기는 그런 거짓말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고 생각해서 키안만은 속이고 싶지 않았어. 네 말대로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나는 키안과 친모자처럼 지낼 수 있으니까.”

16549772655398.png“만약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16549772655383.png“아니.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지금이야 키안이 아무것도 모르지만, 레이독스에게서 왕세자 수업만 받게 되면 원작에서처럼 금방 익히고 똑똑해져서 매우 용의주도해질 거라고. 키안은 주인공이니까!”

시카르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느릿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16549772655398.png“조금이라도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대가는 모두 네가 치러야 한다는 건 알고 있을 테니, 한 번 지켜보도록 하지.”

또 칼춤을 추진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도 시카르는 상황을 유연하게 넘어간 편이었다. 그제야 나는 편하게 한숨을 쉴 수 있었다.

16549772655398.png“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할머니께 정식으로 키안을 소개하도록 하지. 우리 호적에도 입적시키고.”

16549772655383.png“알겠어…….”

16549772655398.png“그리고.”

시카르는 말을 던지고는 좀 더 깊어진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16549772655398.png“키안에게 나를 아직 아버지라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것은 아주 잘했다. 아니, 당분간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일러라. 나를 죽이려는 놈에게 아버지 소리를 듣는 건 썩 유쾌하지 않을 거 같으니까.”

아직도 키안을 자신을 죽이려는 주인공으로 보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시카르가 키안을 보는 시선을 바꾸는 게 더 시급한 거 같았다. 자신을 죽이려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저주를 제거해주는 아이로 말이다. 그러려면 먼저 보모를 둬야겠지.

16549772655383.png“시카르. 먼저 키안의 보모부터 구해줘.”

시카르는 제 머리를 쓸어 올리곤 나른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16549772655398.png“보모라…… 좋은 생각이야. 비카에게 맡기면 되겠군.”

16549772655383.png“비……카? 다크 엘프에게 키안을 맡기겠다고……?”

이 인간이. 아무리 키안이 자기 친아들이 아니라지만, 다크 엘프에게 아이를 맡기려 하다니!

16549772655398.png“엄밀히 말하자면 비카는 혼혈일 뿐이다. 무엇보다 키안의 안전과 교육을 맡길 수 있으니 비카 만큼의 적임자는 없다.”

16549772655383.png“하지만 비카는 다크 엘프잖아. 키안을 이상하게 키우면 어떡해?”

16549772655398.png“강하게 잘 키울 테니 주인공답게 잘 자라나겠지.”

16549772655383.png“아, 안 돼! 비카는 안 돼!”

시카르는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린다는 듯 무심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16549772655398.png“키안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보모를 써야 한다면 비카여야만 한다.”

16549772655383.png“키안의 안전을 위해 비카는 안 되는 게 아니라?”

16549772655398.png“키안이 내 아들이 된다면 비카도 그 아이를 해칠 수 없을 테니 그 점에서는 안심해.”

하지만 다크 엘프는 화이트 엘프들과는 다르다. 이름만 같은 엘프일 뿐……. 화이트 엘프가 지나간 자리에 꽃이 핀다면 다크 엘프가 지나간 자리엔 꽃이 죽는다. 화이트 엘프가 생명을 의미한다면 다크 엘프는 죽음을 의미한다. 아이를 얼마나 어둠의 자식으로 키울지 알고! 물론 비카가 키안의 정신력에 그렇게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비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한데.

16549772655398.png“키안은 내일부터 비카에게 맡기기로 하고, 넌 내일부터 다시 교양수업에 들어가도록 하지.”

16549772655383.png“알겠어. 그럼 나도 비카에게 배울게.”

16549772655398.png“비카가 교양 따위를 알 거라고 생각하나?”

16549772655383.png“그…… 그럼 할머님께 배울게…….”

16549772655398.png“할머니께 내가 교양도 모르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걸 실토하란 말인가?”

16549772655383.png“아, 아님 듀리온?”

16549772655398.png“그 인간이 제일 교양 없는 놈이지.”

비카에 듀리온에. 모두 악역들이니 교양이 없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억울했지만, 이 악의 소굴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게 교양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시카르 뿐이었다.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키안을 예쁘게 단장시킨 후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과 인사하는 법 등을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키안은 기특하게도 금세 익혔다.

16549772655383.png“그리고 키안. 이제 네 성은 블레이크야. 누군가에게 너를 소개할 때는 공작님의 성을 따서 키안 블레이크가 되는 거야.”

16549772747219.png“아빠가 제 성은 레카도르라고 했었는데, 이제 그 성은 쓸 수가 없어요?”

키안의 얼굴에 조금은 실망이 깃든 것 같아서 나는 키안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어 주었다.

16549772655383.png“키안.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네 성을 말하지 말라고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만 그 성은 우리 가족끼리만 알도록 해. 너와 나, 그리고 공작님. 이렇게 셋만 말이야. 알겠지?”

키안은 아직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한 듯 보이진 않았지만,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72655383.png“그럼 이제 공작님께 가볼까. 너무 긴장하지 마. 키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상 경계라면 모를까 키안이 시카르에게 크게 긴장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긴장은 오히려 내가 하고 있었던 게 맞겠지. 시카르의 방으로 들어서자, 이미 그는 제복을 차려입고 할머니에게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그는 우리를 한 번 보고는 무심한 얼굴로 다시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쭈뼛하게 서 있는 키안에게 속삭였다.

16549772655383.png“키안. 어서 인사드려.”

키안은 썩 내키지는 않지만, 네가 아빠라니 어쩔 수 없이 인사는 하겠다는 듯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16549772747219.png“간밤 잘 주무셨습니까. 공작님.”

시카르는 키안의 아침 인사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머리를 몇 번 만지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16549772655398.png“오늘 너를 내 호적에 입적시킬 것이다. 그전에 먼저 할머니께 인사부터 올리도록 하지.”

그래도 얼마 전에는 키안에게 죽도 먹여주려고 하고 나름 노력하는 것 같더니, 이제 호적에 올라간다 싶으니까 원상태로 돌아온 것 같았다. 시카르도 오늘부터 육아 수업을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교양수업, 시카르는 육아수업. 어느 수업이 더 힘들지는 안 봐도 눈에 훤했기에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교양수업을 받는 고통을 육아 수업을 하는 걸로 풀어나가겠다는 의미의 웃음이었다. 시카르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자기 얼굴을 봐서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16549772655398.png“아침부터 내 얼굴을 봐서 기분 좋은 건 알겠지만, 그만 웃어라. 할머니께 인사드릴 때는 정숙하고 품위 있게 인사를 올려야하는 것이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키안의 손을 잡고 할머니 방으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이미 전갈을 받은 듯 우아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계셨다. 키안은 할머니를 보자마자 낯설어서 그런 건지 이미 잡고 있던 내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곤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고, 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다짐한 듯 인사를 올렸다.

16549772747219.png“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지만, 긴장한 까닭인지 좀 전에 알려준 것을 모두 다 까먹은 듯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16549772655383.png“키안. 증조할머님이라고 해야 해.”

키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조심스럽게 할머니를 보며 인사를 올렸다.

16549772747219.png“아, 안녕하세요……. 증조할머님. 키안이라고 합니다.”

16549772774749.png“어쩜, 똘똘하게 생겼을까. 우리 시카르 어릴 때와 똑같구나.”

키안이 시카르를 닮은 건 아니었지만, 할머니의 눈에는 시카르의 어린 시절이 떠오를 만큼 예뻐 보인다는 말씀과도 같았다.

16549772774749.png“키안. 할머니 무릎 위로 올라와 보겠니?”

기대했던 것보다 할머니가 키안을 많이 좋아 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키안이 할머니를 많이 어려워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었다. 키안은 내게 그렇게 해도 되냐는 듯, 혹은 그렇게 해야 하냐는 듯 쳐다보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키안은 나를 보고 빙긋 미소를 한 번 지은 후에 조르르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하녀들이 키안을 할머니 무릎 위로 앉히는 것을 거들어 주었다. 할머니에게 안겨 있는 키안을 보니 어릴 때 내가 안겨 있던 할머니 품이 떠올라 그렇게 따스해 보일 수가 없었다. 할머니에게 받는 사랑은, 부모에게서 받는 사랑과는 또 다른 것이었기에 키안도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져 왔다.

16549772774749.png“어느새 시카르가 너무 커버려서 이 무릎은 해피가 독차지하곤 했었단다. 그런데 이젠, 해피도 하늘이 별이 되고 말아서 내 무릎은 항상 허전하단다.”

어색하게 앉아 있던 키안은 문득 그게 뭐냐는 듯 두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며 물었다.

16549772747219.png“증조할머님 해피가 뭐예요?”

16549772774749.png“우리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야.”

16549772747219.png“강아지라니. 전 아직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요…….”

16549772774749.png“그래? 그럼 이 할미가 다 나으면 같이 강아지를 키워볼까?”

할머니가 아프다는 말을 들은 키안은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 듯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16549772747219.png“증조할머니 아프세요……?”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키안을 쳐다보셨다. 어쩌면 할머니는 키안에게서 시카의 어린 시절을 보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16549772774749.png“치료받고 있으니 곧 좋아질 게다.”

16549772747219.png“다행이에요. 증조할머니!”

16549772774749.png“키안. 동화책이 읽고 싶다거나 낮잠이 온다거나 할 때는 언제든 이 할미의 무릎을 이용해주지 않으련?”

키안의 눈에 보이는 할머니의 온기는 얼만큼일까. 어쨌든 키안은 매우 기쁜 듯 밝은 미소를 지었다.

16549772747219.png“너무 좋아요! 증조할머니!”

할머니는 나를 보며 너무나 기쁜 듯 자상하고도 품위 넘치는 미소를 지으셨다.

16549772774749.png“정말 예쁜 아이구나.”

16549772655383.png“감사합니다. 할머니.”

16549772774749.png“키안. 이젠 네 아빠의 무릎에 한 번 앉아보련.”

할머니의 그 말은 평온한 분위기를 꺼트린 찬물과도 같은 말이었다. 특히나 시카르와 키안은 날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얼굴이었다.

16549772774749.png“시카르, 뭐하니. 키안은 이제 네 아이다. 아이의 아빠로서 양육에 최선에 다하는 모습을 보여라. 아이를 대하는 너의 그런 어색한 행동이 유라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그러니까 할머니 말씀은, 시카르가 나와 결혼했으니 내 친아들인 키안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받아들이란 말씀이셨다. 이거 왠지 시카르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거 같은데? 나는 그것참 고소하다는 듯 시카르를 향해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16549772655383.png‘내가 뭐랬어. 거짓말엔 그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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