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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장르가 착각계 였나요? (3) (23/197)

23화. 장르가 착각계 였나요? (3)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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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 놀이방이라는 것을 처음 본 키안은 감탄했다는 표현을 한동안 입을 쩍 벌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곤 내게 쪼로로 안겨 와 말했다.

16549774272407.jpg“너무 예뻐요! 어머니!”

나는 키안의 눈높이에 맞춰 낮게 앉으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1654977427241.jpg“키안. 정말 마음에 들어?”

16549774272407.jpg“네. 너무너무 마음에 들어요!”

1654977427241.jpg“네 마음에 든다니 공작님께서도 매우 기쁘실 거야. 그렇지 시카르?”

나는 키안과 함께 시카르를 쳐다보았고, 우리를 지켜보다가 키안와 눈이 마주친 시카르는 무언가 뜨끔했는지 시선을 돌렸다.

16549774272421.jpg“뭐, 아마도, 어쩌면, 그런가?”

키안은 시카르가 왜 기뻐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어서 나는 그의 업적을 살짝 귀띔해 주었다.

1654977427241.jpg“공작님께서 널 위해 만드신 놀이방이야.”

그러자 키안은 그게 사실이냐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시카르를 쳐다봤다가 곧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16549774272407.jpg“고맙습니다.”

고맙다고는 하고 있지만, 영혼 없는 목소리였다. 참, 친해지기 힘든 부자구나. 하지만, 시큰둥한 키안도 너무 귀여웠다. 나는 애정을 가득 담아 키안의 볼에 얼굴을 비비며 내 마음을 한껏 표현했다.

1654977427241.jpg“그럼 우리 이제 색종이 접기 놀이를 해볼까?”

색종이 접기란 말에 키안은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16549774272407.jpg“어제 하자고 했던 거 말이죠?!”

1654977427241.jpg“응. 저길 봐. 비카와 듀리온이 하고 있는 거 보이지? 우리도 저런 놀이를 할 거야.”

원작에서 키안은 색종이 접기를 매우 좋아한다고 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설산에서만 자란 키안은 눈으로 눈사람, 동물, 장난감 등을 만들고 놀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종이 하나로 모든 것이 만들어지는 놀이에 흥미를 느낀 것이었다. 키안이 너무 즐거워하는 걸 보자 시카르는 나를 구석으로 데려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16549774272421.jpg“신성력을 익히고 수련해야 할 시기에 이런 거에 재미를 붙이는 왕손이라니.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1654977427241.jpg“그러지 말고 색종이 만들어 주면서 키안에게 조금 마음을 열어봐.”

16549774272421.jpg“내가 내 집으로 들였으면 이미 마음을 연 것이지.”

1654977427241.jpg“아니, 그건 생각을 연 거지. 이성적으로 필요하다 판단해서 들인 거니까.”

16549774272421.jpg“말장난을 하는군. 그것이 그것이다.”

1654977427241.jpg“좋아. 그럼, 말장난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키안과 함께 색종이 접기를 해.”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무서워서 손을 벌벌 떨고 있었지만, 내 목적이 시카르의 저주를 푸는 것이니 두 사람의 사이를 좋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 시카르에게 명령을 하는 이런 위험도 감수해야 했다. 물론 매우 무서웠지만.

16549774272421.jpg“지금 내게 명령하는 것인가?”

나는 큰소리를 치고 싶었지만, 시카르의 강렬한 눈빛에 한없이 작아지는 약자처럼 목소리가 모기만 해졌다.

1654977427241.jpg“그,…… 그래.”

시카르는 덜덜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16549774272421.jpg“나만 보면 그렇게 떨리나?”

당연하지. 네가 툭하면 목에 칼을 들이대는 미친놈과 대화 한다고 생각해봐. 떨리는지 안 떨리는지.

16549774272421.jpg“내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이렇게 덜덜 떠는 걸 보면 정말 재미있단 말이지.”

1654977427241.jpg“……뭐. 그래.”

또, 그렇다 쳐준다. 내가.

1654977427241.jpg“그럼 이제 우리 키안과 함께 색종이 접기나 하러 갈까?”

16549774272421.jpg“그러지. 네가 내 저주를 풀어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애를 쓰는데, 그 정도는 나도 해야겠지.”

우린 다시 안쪽으로 돌아와 색종이를 손에 들며 키안이 뭘 접고 있는지 살폈다. 키안은 꽃을 접고 있었다. 그것도 장미꽃을.

1654977427241.jpg“키안. 장미꽃 접기 어렵지 않아? 이 어려운 걸 접고 있다니 정말 대단한걸.”

듀리온은 마치 어렵다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투덜거렸다.

16549774301286.jpg“그죠? 마님? 이거 어려운 거 맞죠?”

그러고 보니 비카와 듀리온까지도 장미꽃을 접고 있었다.

1654977430129.jpg“인간들이란, 정말. 장미꽃을 꺾으면 될 걸, 왜 이런 걸 종이로 접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니까.”

비카다운 발언이었고, 키안은 또 비카의 입안에 사탕을 물려 주었다. 입에 사탕을 물려주는 건, 더는 말을 하지 말라는 입막음 효과도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시카르의 입안에 사탕을 물려줘 볼까. 생각하는 차에 키안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16549774272407.jpg“종이로 접는 꽃은 시들지 않으니까요. 어머니에게 시들지 않는 천 송이의 장미꽃을 만들어 주고 싶거든요.”

1654977427241.jpg“키안. 나를 위해 장미꽃을 접고 있다는 거야?”

16549774272407.jpg“네. 어머니. 당연하죠.”

1654977427241.jpg“왜……? 왜 장미꽃이야?”

16549774272407.jpg“어머님이 장미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어머님 방 창밖에 장미꽃이 가득하잖아요.”

이럴 수가! 그건 시카르가 나를 세뇌시키기 위해 심어둔 것이었는데 키안의 눈으로 보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어쩜, 이 아이는 매일 나를 감동시키는 걸까. 나는 코끝이 찡해져서 키안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1654977427241.jpg“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너무 고맙구나. 키안.”

이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게 시들지 않는 장미꽃을 선물하겠다며 종이접기를 하는 키안에 비해 나는 제대로 된 변변한 선물 하나 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모두 시카르의 손으로 선물을 대신했으니까. 키안에게는 시카르의 사랑뿐 아니라, 내 사랑도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답례로 시카르와 함께 천 개의 학을 접어 주기로 했다. 시카르가 학을 떼긴 했지만.

1654977427241.jpg“키안. 그거 아니? 천 개의 학을 접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16549774272407.jpg“정말이요?”

1654977427241.jpg“그럼.”

16549774272407.jpg“그럼, 천 송이의 장미꽃은요?”

1654977427241.jpg“그건…….”

나도 그건 잘 몰라서 어떻게든 말을 떠올려 보려고 하고 있는데, 시카르가 불쑥 끼어들었다.

16549774272421.jpg“천 송이의 장미꽃은 사랑을 이루어지게 해주지.”

16549774272407.jpg“사랑이요?”

16549774272421.jpg“그래. 그래서 네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한 것이지.”

1654977427241.jpg“음. 그러니까 시카르는 네 말은, 지금 내가 저, 천 송이의 장미꽃을 보고 기뻐한 이유가…… 너와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시카르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매우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불현듯 나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었다.

16549774272421.jpg“그렇게 벌게진 얼굴로 말하면 날 좋아하는 티가 너무 나잖아.”

아니나 다를까, 비카와 듀리온은 ‘마님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셨어.’라는 둥 사랑은 감출 수 없다는 둥의 말을 하고 있었다. 하긴, 평소에 얼굴색이 붉게 변해본 적이 없는 이 악역들은 사람이 너무 당황하거나 화가 나도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는 걸 모르겠지.

1654977427241.jpg“근데, 비카 님. 정말 그런 말을 들어봤어요?”

1654977430129.jpg“무슨 말이요? 장미꽃 천 송이가 사랑을 이루어 준다는 말이요? 사랑 따위 존재하든 말든 전 관심 없습니다만.”

아, 질문 상대를 잘못 골랐어. 그래서 난 듀리온에게 다시 물었고 듀리온은 생각하는 듯 제 턱을 긁적거렸다.

16549774301286.jpg“사랑을 이루게 하는 건 모르겠지만, 천 번을 우려 마시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꽃은 알고 있습니다. 매우 독성이 강하죠. 그래서 구하기도 꽤 힘들지만, 일단 한 번 구하게 되면 천 일 동안 천 번을 우려먹을 수 있으며…… 사람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것쯤은…….”

나는 키안의 귀를 급히 막으며 됐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1654977427241.jpg“듀리온 님? 이제 그만 설명해도 되겠어요.”

질문 상대들을 잘못 골랐어. 악역들 소굴에서 내가 무슨 정보를 얻겠다고. 이건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레이독스를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하루 만에 목표한 만큼의 종이접기를 하지 못한 우리의 종이접기는 다음 날까지 계속되었다. 시카르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한결같이 무표정했고, 비카는 어제와 다를 바 없이 투덜거렸고, 듀리온은 여전히 머리를 긁적이며 색종이를 잡고 꼼지락거렸다.

1654977430129.jpg“대체 이런 건 왜 만드는 건지. 귀찮아.”

비카는 더는 못해 먹겠는지 어둠의 정령을 불러내 색종이를 만들게 했다. 연기 같기도 하고, 물 같기도 한 무형의 검은 무언가가 색종이를 접고 있는 모습이 꽤 이색적이었다. 그 모습이 신기했던지 키안도 자신의 작은 정령을 불러내었지만, 속성이 불인지라 색종이를 태워 먹기만 할 뿐이었다.

1654977430129.jpg“바보 도련님. 종이는 불에 타서 안 되잖아.”

1654977427241.jpg“비카. 키안에게는 예쁜 말만 해주세요.”

비카가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자마자 키안이 비카의 입안에 사탕을 물려주었다. 앞으로 나도 비카의 입에 사탕을 물려줘 버릴까. 듀리온은 정말 무언가를 꼼지락거리며 만드는 재주가 없었는지 장미꽃 하나를 접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다 하나가 완성되면 자신이 너무나 대견한 듯 뿌듯한 눈으로 종이 장미꽃을 쳐다보며 내려놓곤 했다.

16549774301286.jpg“검술만 어려운 줄 알았더니 세상엔 정말 어려운 게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작은 종이 하나를 다루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니. 와우!”

저런 걸 보면 듀리온은 악역이긴 해도 어딘가 순수한 데가 있어 보였다. 이제 다 끝나가나 싶을 때쯤, 색종이를 접던 시카르의 오른손이 차갑게 굳어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색종이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카르에게 내려진 이런 저주의 현상은 항상 갑자기 오는 것이었다. 그는 익숙한 탓인지 인상을 조금 찌푸리고 말았다.

16549774272421.jpg“난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군.”

시카르가 오른손이 뻐근한 듯 손목을 몇 번 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할 때였다. 처음으로 키안이 시카르의 옷깃을 잡았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모두 놀란 듯 키안을 쳐다보았지만, 시카르는 무감한 얼굴로 쳐다볼 뿐이었다.

16549774272421.jpg“할 말 있나?”

키안이 시카르를 뚫어져라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16549774272407.jpg“나, 이거 녹일 수 있을 거 같은데.”

벌써 키안이 시카르의 손을 녹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된 건가? 시카르는 별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지만,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16549774272421.jpg“그래? 그럼 어디 한번 녹여봐.”

키안은 비장한 얼굴로 두 손을 모으곤 얼어붙은 시카르의 오른손을 잡았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집중했다. 그러자 키안의 손에서 나온 불의 정령이 시카르의 손 주변을 뱅뱅 돌아다니며 얼어붙은 냉기를 녹이기 시작했다. 신비롭고 진귀한 광경에 우리는 모두 넋을 잃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16549774301286.jpg“와. 이게 뭐야. 지금 저 도련님께서 공작님의 손을 녹이고 있는 건가? 이야. 도련님 멋진데?”

듀리온의 칭찬에 키안은 조금 기분이 좋아진 듯 얼굴을 붉혔고, 비카는 별것도 아닌 걸로 웬 호들갑이냐는 듯 팔꿈치로 듀리온의 옆구리를 쳤다. 그리고 나는 감격한 눈으로 두 손을 모으며 키안을 쳐다보았다. 냉기를 녹일 수 있다는 글귀만 봤지, 정말로 눈앞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니 경이롭기 그지없었다. 시카르도 마음에 드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16549774272421.jpg“쓸만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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