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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악역을 다루는 방법 (6) (31/197)

31화. 악역을 다루는 방법 (6)2021.09.16.

시카르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제 이마를 주먹으로 한 번 치고는 듀리온을 시켜 초코케이크를 주문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손뼉을 쳤다.

1654977658777.png“얘들아! 초코케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됐어! 여기 엄청나게 멋지고 용맹하신 기사님께서 초코케이크를 사러 가실 거거든!”

갑자기 엄청나게 멋지고 용맹해진 기사가 된 듀리온은 얼떨떨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래서 나는 미안하지만 단순한 듀리온의 성격을 조금 이용했다.

1654977658777.png“그쵸? 용맹스러운 듀리온 기사님.”

듀리온은 아이들의 기대에 찬 눈을 한 번에 받게 되자 어깨를 쫙 펴더니 허허거리고 웃었다.

1654977658778.png“그, 그래. 얘들아. 용맹한 내가 가서 초코케이크를 사 올 테니까 이제 그만 울어.”

아이들은 초코케이크를 사 온다는 말밖에 들리지 않는 듯 금방 울음을 그쳤다.

16549776587785.jpg“저, 정말요……?”

1654977658778.png“지금 당장! 가서 사 올게. 기다려! 내가 올 때까지 울면 안 된다?!”

초코케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들은 금세 울음을 그쳤다. 곧 빵집으로부터 케이크가 한가득 도착했고, 듀리온은 친절하게 웃으며 아이들에게 초코케이크를 나누어 주었다. 나는 케이크 상자를 집어 들어 비카와 시카르의 손에도 각각 들려주었다.

1654977658777.png“같이 나눠 주지 않고 뭐 하는 거죠? 자, 어서들 듀리온을 도와 같이 나눠 주도록 하세요.”

내게서 케이크 상자를 건네받은 비카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시카르를 쳐다보며 말했다.

16549776587798.png“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16549776587802.png“내 아내의 명령은 곧 나의 명령이다. 그러니 시키는 건 뭐든 군말 말고 해라. 나도 하니까.”

어린애라면 질색인 건 비카도 시카르와 다름없었다. 비카는 어린애뿐 아니라, 인간들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시카르를 향해 입술을 비죽거렸다.

16549776587798.png“네가 미래에 뭘 단단히 잘못하는 모양이지? 그러니 이렇게 꽉 잡혀 살지.”

16549776587802.png“알면 군말 없이 일해라. 내가 잘못되면 맹약에 의해 너도 끝장이니까.”

16549776587798.png“애초에 네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었는데.”

16549776587802.png“아이들 떠드는 소리 보다 네 녀석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더 시끄럽군. 이제 그만 궁시렁거리고 케이크나 나눠줘.”

비카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16549776587798.png“아수라 현장으로 뛰어드는 기분이군.”

비카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듯 케이크 상자를 들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아이들이 케이크를 달라고 하며 손을 내뻗는 바람에 세 사람은 정신없는 모습들이었다. 이 세계의 악당 중의 악당들이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흐뭇했다. 악당들을 갱생시킨 기분이랄까? 흐뭇한 건 키안도 마찬가지인지 세 사람을 보며 방긋 웃고 있었다.

1654977658777.png‘그럼 이제 내가 저 세 사람을 조금 구원해볼까.’

나는 박수를 치며 아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1654977658777.png“얘들아. 케이크를 먹기 위해선 질서를 지켜야지. 모두 차례대로 줄을 서도록 해. 줄 서는 법은 모두 알고 있지?”

16549776624022.jpg“네!!!”

1654977658777.png“그럼 이제 앞에 있는 아저씨와 아줌마 앞으로 길게 한 줄로 서는 거야. 알았지?”

16549776624022.jpg“네!!!”

아이들은 당차게 대답하며 일렬로 길게 줄을 섰다. 갑자기 용맹한 기사에서 아저씨가 된 듀리온은 나를 보며 엄지를 척 올렸고, 갑자기 아줌마가 된 비카는 ‘조금 하는데?’라는 표정을 짓듯 콧방귀를 살짝 뀌어 주었고, 시카르는 조금 숨구멍이 트인 듯 긴 숨을 내쉬었다.

1654977658777.png“우리도 나눠주자, 키안.”

아까부터 키안은 모든 게 마음에 든다는 얼굴로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1654977662527.png“네. 어머니.”

우리도 세 사람을 도와 케이크를 나누어 주고 난 후 아이들과 함께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같이 케이크를 먹었다. 아이들이 케이크 맛에 취해 웃고 떠드는 동안 나는 시카르에게 슬쩍 물었다.

1654977658777.png“아이의 기억이 어땠어? 혹시 원장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어?”

16549776587802.png“신체적 학대로는 꼬집힘을 많이 당했더군. 당장이라도 아이들의 옷을 걷어보면 등이나 옆구리에서 꼬집힌 멍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이 굶주렸다. 이곳에서는 하루 두 끼가 나오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된 식사가 나오지 않았지. 이런 케이크는 고사하고, 하루 한 끼에 빵 한 조각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 빵 반 조각과 물을 더 많이 탄 수프가 전부였지.”

1654977658777.png“그럴 수가.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나는 떨리는 주먹을 콱 움켜쥐었다.

16549776587802.png“너무 걱정 마라. 이곳의 법은 엄격해서 원장의 죄는 아주 무겁게 다뤄질 것이다. 아이들을 학대한 죄보다는 귀족들이 보내 준 후원금을 뒤로 빼돌린 죄를 더 크게 받을 테니까.”

그러겠지. 이왕이면 전자의 이유로 벌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게 좋겠지만, 후자의 이유라 해도 벌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꽤 마음에 들었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은 그동안 원장에게 당한 설움을 모두 씻겨내듯 초코케이크에 흠뻑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1654977658777.png“부족하면 더 말해. 얘들아. 오늘은 배가 터질 때까지 케이크를 먹을 수 있는 날이니까.”

16549776587785.jpg“와아아아아! 정말 그래도 돼요?”

1654977658777.png“그럼. 여기 계신 공작님이 모두 사주실 거야.”

아이들은 정말이냐는 얼굴로 시카르를 쳐다보았고, 시카르는 아주 피곤하다는 듯 나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16549776587802.png“꼬맹이들 이빨이 몽땅 썩게 해주지.”

기대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그래서 난 아이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1654977658777.png“그만큼 케이크를 실컷 사주겠다는 말이란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크림을 입가에 묻혀가며 달콤함을 마음껏 즐기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느덧 그늘도 사라진 듯했다. 키안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겠지. 나는 키안에게 멋지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었다.

1654977658777.png“우리 아들, 너무 멋있어.”

키안도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주었다. 원작에서는 키안이 왕좌를 빼앗은 후 훌륭한 왕이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얼마나 훌륭한 왕이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야 키안이 얼마나 훌륭한 왕이 될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654977658777.png‘더불어, 이번 일로 인해 시카르도 키안에게 점수 좀 땄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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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77662527.png“어머니가 더 멋있어요.”

1654977658777.png“아냐, 키안. 공작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 아이들을 결코 구하지 못했을 거야. 우리 공작님께도 한번 엄지 척, 해 줄까?”

키안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1654977662527.png“알겠어요.”

그리곤 시카르를 불렀다.

1654977662527.png“저기. 흠…… 공작님?”

하지만 정신없는 시카르가 대번에 대답하지 않자, 키안은 시카르에게 터벅터벅 로봇처럼 걸어가서는 시카르의 어깨를 툭 쳤다. 아마 이 세계에서 시카르의 어깨를 저렇게 겁 없이 툭, 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주인공 키안 뿐이지 않을까. 시카르가 뭐냐는 듯 인상을 쓰며 돌아보자 키안은 매우 로봇 같은 얼굴로 엄지 척을 보여주곤 쌩하니 뒤돌아서 내게로 걸어왔다. 겨우 이번 일로 키안이 시카르에게 마음을 확 열 수는 없는 일이겠지. 그래도 아주 조금이라도 시카를 향한 경계가 풀렸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시카르는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난 왠지 그런 둘 사이가 보기 좋게 느껴졌다. 우리는 아이들이 더는 질려서 못 먹겠다고 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했다. 듀리온과 비카는 아이들이 먹여준 케이크 덕분에 입가에 크림을 잔뜩 묻히고 있었다. 와중에 어른스러운 아이들 몇 명이 비카와 듀리온의 입가에 묻은 케이크를 닦아 주었다.

16549776587798.png“인형이 된 기분이군.”

비카는 투덜거리긴 했지만, 아이들을 제지하진 않았다. 아이들도 시카르는 무서웠는지 그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정신없는 현장에서 오직 시카르만이 편안하게 앉아 차를 마실 수 있었다. *** 나머지는 수도 시청 관할이기에, 원장을 잡아 경비대에 넘겨주는 것으로 우리의 할 일은 끝났다. 원장은 곧장 수감 되었기에 구빈원은 한동안 시청에서 관리 한다고 한다. 그동안 공석인 구빈원 원장은 수도원에서 나온 성직자가 임시로 맡기로 했다. 우리는 성직자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구빈원을 나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우리가 작별인사를 하자,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시카르는 우는 애들은 질색이라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49776587802.png“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이만 일어나지.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1654977658777.png“가기 전에 작별인사는 해야지.”

16549776587802.png“난 그럼 마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끝내고 오도록.”

1654977658777.png“무슨 소리야. 너도 같이 작별인사를 해야지.”

16549776587802.png“내가?”

시카르는 내가 제정신인지 묻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등 떠밀었다.

1654977658777.png“우는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잖아. 무엇보다 키안이 엄청 실망할 거야.”

우는 아이들의 앞에 선 시카르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흘러서 너무 웃겼다. 평소에 당황하는 법이 없다고 묘사되는 악역이었기에 그 모습이 더 볼만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내 눈치만 보고 있던 시카르는 나를 따라 어색하게 손을 반쯤 올리고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시카르의 얼굴은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이 아니라 아이들을 어디 팔아먹으려는 사람의 표정 같았다.

1654977658777.png“아이들을 향해 좀 웃어줘. 아이들이 놀라서 더 울잖아.”

시카르는 웃기 위해 한쪽 입꼬리를 올려봤지만, 역시나 미소로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비웃는 듯 보일 뿐이었다. 몇 번 노력해보더니 자꾸만 아이들이 더 울자 더는 안 되겠는지 시카르는 그나마 흔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

16549776587802.png“작별인사는 여기까지다.”

시카르는 그 말을 하곤 밖으로 쌩하니 나갔고, 나도 더는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이만큼만도 그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가 이만큼 해준 것만도 많은 발전이었다. *** 다음 날. 나를 비롯해서 시카르를 제외한 모두가 십 년은 더 늙은 듯 다크 서클이 눈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이들을 보느라 정신을 쏙 빼놓은 탓에 아직도 나간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오늘은 키안이 비카와 정령 놀이를 하는 것을 구경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인물이 공작저를 방문했다. 바로 제르미였다.

1654977658777.png“어서 오세요. 제르미 님.”

16549776721323.png“잘 지내셨습니까. 블레이크 공작부인. 공작님께서 뭘 좀 부탁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제르미는 그 말을 하면서도 히죽히죽 웃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웃음은 나도 같이 히죽히죽거리며 웃어줘야 할 만큼 천진난만했다.

1654977658777.png“그렇군요. 다시 뵙게 돼 반가워요.”

16549776721323.png“이곳에 마법의 방이 있다고 하더군요. 혹시 거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1654977658777.png“아, 수련의 방을 말하시는 거군요. 마침 공작님이 수련의 방에 계시니 거기로 가시면 되겠군요. 나가면 사용인들이 길을 알려줄 거예요.”

16549776721323.png“수련의 방이었군요. 그래서 그곳에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달라 부탁했나 보군요.”

제르미가 시카르의 집에 와서 마법을 걸어주는 일을 하다니. 원작에서 마지막에 시카르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굉장히 신기한 일이긴 했다.

1654977658777.png“그럼. 수고하세요.”

16549776721323.png“저, 공작부인. 실례지만 고향이 어디 십니까?”

1654977658777.png“그건 왜 물으시죠?”

16549776721323.png“신비한 검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계셔서요.”

1654977658777.png“제르미 님께서 제게 그런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면 공작님께서 많이 노하실 거예요. 주의 부탁드려요.”

내가 대답하기 곤란해서 시카르를 들먹인 것도 있긴 하지만, 정말로 시카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제르미에게 칼을 꺼내 들었을 것이다.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했다간 다음엔 네 목을 몸에서 분리시켜 주겠다.’ 이런 대사를 날리고도 남을 위인이다. 제르미도 내 말을 이해하는 듯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16549776721323.png“이해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공작부인.”

나는 돌아서려다 제르미가 요즘 돈이 궁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럼 어쩌면, 레이독스의 근황 정보도 그에게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여주인공 루시와 키안을 어서 만나게 해주려면 레이독스와 하루빨리 더 친해져야만 했기 때문에 지금 내게는 그 문제가 가장 시급했다.

1654977658777.png“저기 제르미님.”

16549776721323.png“네?”

1654977658777.png“유카나다르 후작님의 정보를 살 수 있을까요?”

16549776721323.png“흠…….”

제르미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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