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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악당의 육아 방식 (3) (38/197)

38화. 악당의 육아 방식 (3)2021.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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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지나면 드레스는 그 가치가 떨어진다지만, 보석은 가치가 배로 올라간다. 5년 뒤에는 훨씬 더 가치가 올라간다는 거지. 나는 확답을 얻어야겠다 싶었다.

16549778544136.png“이거 정말 나 주는 거지? 나중에 다시 뺏어가거나 그런 거 아니지?”

16549778544141.png“그래. 주는 거다. 앞으로 있을 결혼식, 연회, 티파티 등에 쓰도록 해.”

나중에 이혼 후에도 나에게 줄 거냐고 물으려다가 일단, 그 질문은 보류하기로 했다. 시카르의 심보가 뒤틀려서 뺏어가면 안 되니까. 그전에 몰래 몇 개를 빼돌려도 되겠지. 보석들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모두 달랐는데 결혼식장에서 뭘 착용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결혼식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시카르는 결혼식에서 입을 드레스와 어울릴 만한 보석을 고르라고 했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팔면 가장 돈을 많이 받게 될 보석이 무엇인가였다. 그럼 가장 싼 것들로 착용을 하고, 가장 비싼 것들은 잘 보관해뒀다가 팔면 되니까.

16549778544141.png“됐다. 그냥 내가 고를 테니 넌 준비된 대로 착용하도록.”

16549778544136.png“알겠어.”

16549778544141.png“뭐해? 나가지 않고.”

16549778544136.png“응?”

16549778544141.png“곧 키안이 도착한다. 다이닝룸으로 내려가지. 저녁 먹어야지.”

16549778544136.png“어, 그런데 이것들 다 나한테 주는 거라고 하지 않았어?”

16549778544141.png“맞아. 네 거야.”

16549778544136.png“그럼 내 방에 옮겨 주는 거 아니야? 이것들 내 방으로 옮기는 거 보고 가려고 했거든.”

16549778544141.png“네게 주는 건 맞지만, 보관은 내가 한다.”

16549778544136.png“저기, 내게 준 선물은 내가 보관을 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16549778544141.png“이 보석들의 가치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비싸다.”

16549778544136.png“그거야 나도 알지.”

16549778544136.png‘그래서 달라는 거잖아.’

16549778544141.png“오늘 내가 수도 시내에서 이 보석들을 모두 구입했다는 소문이 이미 레카도르 전역에 퍼졌겠지.”

16549778544136.png‘뭐 그렇겠지.’

16549778544141.png“어리석은 누군가가, 이 보석을 털기 위해 우리 공작저를 방문할 수도 있겠지. 만약 네 방에 이 보석을 두게 된다면, 그 어리석은 도둑이 네 목을 베고 이 보석을 들고 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밤의 사냥꾼들이 범람하는 세계였다.

16549778544141.png“그러니 내가 들고 있는 게 안전하겠지.”

16549778544136.png“하, 하지만. 여긴 블레이크가잖아? 밤의 신사들이라도 죽고 싶지는 않을 텐데 이곳을 감히 침입할까?”

16549778544141.png“물론 내 방엔 침입하지 않겠지만, 네 방이라면 말이 다르겠지. 그들은 마음만 먹는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네 방을 침입할 수 있는 자들이니까.”

그 말은 내가 금세 수긍하게 만들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16549778544136.png“그. 그래. 그렇겠네.”

시카르의 말을 듣는 동안 밤의 사냥꾼들에게 목을 내어줬다가 되찾은 기분이었다. 내 안전을 위하는 저런 용의주도함이 이럴 땐 꽤 마음에 든다. 아직은 목숨의 위협을 받은 게 아닌데도 왠지 시카르에게서 보호를 받은 기분이었다. 다이닝룸으로 내려가니 키안은 이미 도착해서 씻고 옷까지 모두 갈아입은 상태였다. 또래 친구와 놀아본 게 처음일 거라서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16549778544136.png“키안, 오늘 어땠어? 친구들과는 재미있었어? 수업은 어때? 들을 만했어?”

아, 이렇게 질문하면 안 되는데 부모의 입장이 되니 나도 어쩔 수가 없나 보다. 키안은 점잖게 생각을 되짚어 보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더욱 키안이 의젓해진 것 같았다.

16549778603575.png“음…… 조금 정신이 없었어요.”

16549778544141.png“얼마나 정신이 없었길래 손에 상처를 입은 거지?”

시카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그를 향해 번뜩 시선을 돌렸다. 시카르는 키안을 쳐다도 보지 않았기에 나는 키안이 어디를 어떻게 다쳤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16549778544136.png“뭐? 어디를 다쳤단 말이야?”

그제야 시카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으로 키안을 보며 말했다.

16549778544141.png“손목을 다쳤군.”

16549778544136.png“손목? 손목을 다쳤다고? 왜?”

나는 걱정스레 물었지만, 키안은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16549778603575.png“글쎄요. 무슨 말인지 잘…….”

16549778544136.png“아무래도 안 되겠어. 내가 확인해 봐야겠어.”

키안의 옷 소매를 걷어보니 정말 손목 등에 할퀸 자국이 있었다. 키안은 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내가 걷어 올린 옷 소매를 다시 내렸다.

16549778603575.png“아, 별거 아니에요.”

16549778544136.png“별거 아닌 게 아니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16549778544141.png“솔직히 말해라. 키안.”

시카르가 눈을 가늘게 뜨자 키안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16549778603575.png“루시의 손톱에 긁혔어요.”

16549778544136.png“왜? 어쩌다가?”

16549778603575.png“루이드와 루시가 싸워서 말리다가요. 그건, 그냥 사고였어요.”

그럼 이건 원작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건데. 원작에서는 키안이 고아라 키안을 무시해서 그런 일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키안이 공작의 자식임을 알고도 할퀸 것을 보면 천성 루시와 루이드의 성격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 달리 시카르는 꽤 괘씸했던 모양이었다.

16549778544141.png“감히 블레이크 공작가 소공자의 손목에 상처를 내다니! 내일 유카나다르가의 버릇을 고쳐야겠다. 비카에게 어둠의 정령을 풀어서 아이들을 호되게 혼내라고 일러야겠군.”

이 남자가 애들 싸움을 어른 싸움으로 만들려고 하네. 어쨌든 그런 얘기는 키안이 들어서 좋을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카르에게 어서 식사부터 할 것을 권했다.

16549778544136.png“시카르. 나도 그렇고 키안도 배가 많이 고플 텐데, 우리 일단 식사부터 하는 게 좋겠어.”

식사를 빨리 끝내야 키안을 올려보내서 재울 수 있고, 키안이 잠을 자야 시카르와 대화다운 대화도 나눌 수 있겠지. 우리는 조용히 식사를 했다. 다친 건 키안이었지만, 신경이 예민해진 건 시카르였다. 시카르는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간혹 ‘유카나다르의 개…… 어쩌구 건방진 유카나다르의 어쩌구…….’를 연발해서 식은땀이 나게 만들었다. 공포스러운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곧장 키안을 방으로 보내고 시카르와 티타임을 가졌다. 시카르가 화가 난 것은 키안이 다쳐서가 아니라, 블레이크 공작가의 소공자를 건드린 것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블레이크 그 자체가 시카르의 자존심이자 명예였으니까. 지금 시카르는 유카나다르가 자신의 명예를 건드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6549778544136.png“시카르. 원작대로 가고 있는 거잖아. 나쁘지 않은 거야.”

16549778544141.png“그땐 키안이 오갈 곳 없는 고아라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유카나다르의 꼬맹이들이 키안을 우습게 본다는 건 우리 가문을 우습게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16549778544136.png“아직 애들이야. 쌍둥이가 얼마나 말썽꾸러기인지 잘 알잖아. 그렇게 친해지게 내버려 둬. 그리고 아직 그 아이들은 가문에 대해 잘 몰라.”

16549778544141.png“하긴, 그에 비해 키안은 너무 어른스럽지.”

잠시 동안은 아빠 바보를 본 것 같아서 조금 흐뭇한 기분이었다.

16549778544136.png“아이들 일은 레이독스에게 일임하는 게 좋겠어. 우리는 키안과 잘 놀아주기만 하면 되니까.”

시카르는 별 대답은 하지 않고 차만 마셨다. 뭐, 침묵은 긍정이라고 하니까. 이 정도면 시카르도 알아들었겠지. 라고 생각한 것은 완전히 착각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듯, 시카르는 결국 다음 날 유카나다르를 찾아갔다. *** 우리를 맞이하는 레이독스의 표정을 보니, 아마도 그는 우리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으니까.

16549778665727.png“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아침 해가 뜨자마자 달려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시카르의 성정을 잘 알고 있는 탓에 이미 짐작을 했던 모양이다.

16549778544141.png“어젯밤에 오려던 걸 아내가 말려서 겨우 참았지.”

16549778665727.png“어쨌든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침도 거르고 오셨을 텐데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16549778544141.png“아니. 우리 악수부터 하지.”

레이독스는 그 악수를 거절했어야만 했다. 이마에서 핏줄이라도 솟을 같은 얼굴로 손을 내미는 시타르 족의 손을 맞잡는 바보는 아마 레이독스 밖에 없을 것이다. 시카르는 레이독스가 제 악수를 받아주자마자 그의 손목을 슬쩍 비틀었다.

16549778544141.png“어제 쌍둥이가 우리 키안의 손등을 할퀸 사실을 알고 있나?”

레이독스도 지지 않기 위해 꺾인 손을 반대쪽으로 비틀었다. 하지만,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거의 트롤 급에 맞먹는 시타르 족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16549778665727.png“고의가 아니었습니다. 키안에게는 충분히 사과도 했고요.”

16549778544141.png“사과로 상처가 사라지나?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16549778665727.png“평범한 아이들은 으레 그렇게 크는 법입니다.”

시카르는 이를 살짝 으드득 갈더니 다시 레이독스의 손목을 비틀었다.

16549778544141.png“네가 교육을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레이독스도 또다시 손목을 비틀어 넘겼다.

16549778665727.png“제 교육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16549778544141.png“아이들이 화가 많은 거 같은데, 심리 치료 좀 받아보지 그래?”

16549778665727.png“아이들은 원래 잘 울고 떼쓰고 하며 큽니다만.”

16549778544141.png“누누이 말하지만, 우리 키안은 그러지 않지.”

16549778665727.png“특이한 케이스를 평범한 케이스에 빗대며 평범함이 정상이 아니라고 하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만.”

16549778544141.png“그럼 아이들이 저렇게 쌈닭마냥 매일 싸우게 두겠다는 건가?”

16549778665727.png“아이들은 원래 싸우며 큰다는 말을 모르시는 겁니까?”

16549778544136.png‘에휴. 이래서는 정말 끝나지 않겠구나.’

나는 가서 두 사람을 말려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레이독스의 손은 잡을 수가 없으니 시카르의 손을 잡아당겼다.

16549778544136.png“그만해. 시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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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르는 그제야 마지못한 듯 손을 놓았다.

16549778544136.png“시카르. 우리는 이 일에 개입하면 안 돼.”

16549778665727.png“들으셨습니까? 공작부인께서도 개입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요.”

16549778544141.png“내 아내는 마음이 여리다. 마음이 여린 내 아내를 내세워서 네 그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철부지 같은 행동들을 합리화시키려 들지 마라.”

16549778665727.png“아이들은 모두 철부지에 말썽꾸러기라는 것을 공작님께서 먼저 인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양쪽으로 손을 쭉 뻗으며 두 사람의 거리를 넓혀 놓았다.

16549778544136.png“잠깐! 내가 그만하라고 했죠? 이러다 정말 애들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고요. 그러니 그만 해요. 그리고, 시카르. 우린 후작님께 키안을 잘 부탁한다고 했으니 믿고 맡기면 되는 거야.”

16549778544141.png“믿을 수가 있어야 믿고 맡기지.”

16549778665727.png“그럼 다시 데려가시죠.”

16549778544141.png“무책임한 소릴 하는군.”

16549778544136.png“레이독스 님, 잠깐만요. 저희 얘기 좀 하게 잠시만 자리 좀 비켜주시겠어요?”

레이독스는 별 대답하지 않고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레이독스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시카르의 앞으로 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16549778544136.png“너 지금 되게 극성 부모 같다고.”

16549778544141.png“난 내 가문이 우선이라 그런 것이다.”

16549778544136.png“그러지 말고 우리가 애들한테 직접 부탁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는 게 좋겠어. 지금 후작님께 말해서 될 게 아닌 것 같아.”

16549778544141.png“그건 네가 상황을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

16549778544136.png“상황을 모른다니……?”

16549778544141.png“루이드란 꼬맹이 녀석이 우리 블레이크가의 아이는 싫다는군.”

16549778544136.png“그게 무슨…….”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시카르의 말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블레이크 가에서 그동안 유카나다르에 했던 일들을 떠올려 본다면, 루이드 입장에서 이 집 아들이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성격에 금세 친해진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고. 그때,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16549778544136.png“그럼, 차라리 아이들한테 우리가 직접 키안과 잘 지내 달라고 부탁해보면 어때?”

16549778544141.png“직접 어떻게?”

16549778544136.png“수련의 방 말이야. 저번에 제르미 님을 불러서 장치를 더 추가했다고 들었어. 이번에도 그분께 부탁해서 아이들이 놀기 좋을 만한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나서 아이들을 초대해서 우리 공작저의 인식을 바꿔 주는 거지. 이곳이 이렇게 동심이 가득한 곳이란다, 라고 하듯이 말이야.”

16549778544141.png“수련의 방을 애들 놀이동산으로 만들자는 건가?”

16549778544136.png“애들이 잘 지내면 좋으니까.”

16549778544141.png“그래도 싸울 애들이지. 차라리 키안에게 얻어맞지만 말고 먼저 때리라고 가르치는 게 낫겠군.”

16549778544136.png“뭐? 애들은 그렇게 가르치는 게 아니야.”

시카르는 내 말을 흘려듣지는 않았는지 잠시 생각하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6549778544141.png“생각해보니 그거 괜찮을 거 같군. 당장 아이들을 초대하도록 하지.”

그렇게 나오니 오히려 불안했다.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 불안은 현실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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