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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악당의 육아 방식 (10) (45/197)

45화. 악당의 육아 방식 (10)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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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같았어도 화났을 거야. 저 어린아이들에게 그렇게 무서운 형상을 보여줬으니 부모라면 화가 나고도 남을 일이지. 무조건 납작 엎드려 잘못했다고 해야겠어. 어차피 저녁이라 키안이 잘 시간이 다 되었기에 나는 비카에게 키안을 재워달라고 말한 뒤 현관으로 나갔다. 레이독스가 현관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납작 엎드려 사과할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그가 내게 먼저 고개를 납작 숙였다.

16549780131303.png“안녕하세요. 블레이크 공작부인. 늦은 시간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라진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수도를 다녀오는 길에 고맙단 인사를 드릴 겸 잠시 들렸습니다.”

16549780131308.png“갑자기 인사라니,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건가요?”

16549780131303.png“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공작님은 안 계신지요?”

16549780131308.png“공작님은 일 때문에 나가셨어요.”

16549780131303.png“그렇군요. 공작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16549780131308.png“무슨 일이길래. 그러시죠?”

16549780131303.png“쌍둥이들이 많이 좋아져서 고맙단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모두 공작님과 공작부인 덕분입니다.”

16549780131308.png“그게 정말이에요?”

레이독스는 어딘가 편안해진 듯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16549780131303.png“저희 쌍둥이들은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싸우는 게 일상다반사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쌍둥이들이 싸우려 하다가도 눈치를 보며 멈추더군요. 원래는 눈치라고는 전혀 모르는 아이들인데 말이죠.”

싸우지 않는다는 건 부모 입장에서는 좋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쌍둥이들이 걱정되었다.

16549780131308.png“다행인 일이긴 합니다만, 쌍둥이들이 많이 놀라서 그런 게 아닌지 걱정도 되는군요.”

16549780131303.png“저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싸울 때가 아니면 평상시와 다름이 없더군요. 오직 싸울 때만 서로의 눈치를 보고 멈추게 되니 저로서는 참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시카르가 그런 걸 노리고 데스나이트 같은 일루전을 부르게 한 거겠지.

16549780131303.png“감사 인사는 후작저를 찾아오셨을 때, 드릴까 했지만, 아무래도 인사는 먼저 하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오게 되었습니다.”

따지러 온 줄 알았는데 감사 인사를 한다니. 나로서는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쌍둥이들이 싸움을 멈춘 건 다행이기도 했지만, 것보다 나는 이렇게 좋게 넘어가 준 레이독스에게도 고마웠다.

16549780131308.png“잘 오셨어요. 후작님. 안으로 드세요.”

16549780131303.png“감사합니다.”

보통은 손님을 응접실에서 맞이하는 게 관례지만, 일전에 아이들을 보느라 거실에서 티타임을 가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레이독스를 거실로 안내했다. 그때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레이독스를 키안을 함께 왕좌로 보내기 위해 단합한, 동지보다는 함께 아이를 기르는 육아 동지로 느끼게 된 것 같았다.

16549780131303.png“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공작부인.”

16549780131308.png“저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후작님.”

16549780131303.png“그래서 오는 길에 선물을 하나 사 왔습니다.”

선물? 선물이란 단어에 반사적으로 동공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레이독스가 내게 내밀어 보인 것은 손 크기보다 작은 고급스러운 상자였다. 설마 보석인가? 보석 상자치고는 크기가 너무 직사각형 모양인데. 그리고 레이독스가 내게 보석을 사줄 이유까지는 없잖아?

16549780131303.png“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16549780131308.png“뭔지 정말 궁금한데요?”

나는 선물을 지금 열어도 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선물을 궁금해하는 모습이 너무 겉으로 확연히 드러난 모양인지 레이독스는 내게 건넨 상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16549780131303.png“안에 내용물이 궁금하시죠? 제가 포장을 풀어 드리겠습니다.”

16549780131308.png“실은 정말 궁금하던 차였는데, 감사드려요. 후작님.”

레이독스가 상자의 포장을 차분히 뜯었다. 포장을 열기 시작하면서부터 향긋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느껴졌다. 레이독스는 향수를 꺼내 건네주며 설명했다.

16549780131303.png“사실 공작부인께서 다른 귀족 부인들과 소통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향수를 준비했습니다. 요즘 귀족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 중이라 사교계에서는 이걸 뿌리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진다 생각해서 말들이 많습니다. 구설에 오를 수도 있구요.”

원작에서 사교계에 대한 얘기는 다룬 적이 없었기 때문에 향수 얘기는 너무나 생소했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는지 레이독스는 눈치를 보듯 말했다.

16549780131303.png“사교계 부인들은 유행을 따르는 것에 매우 민감합니다. 유행에 뒤처지는 사람들을 미개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이깟 향수 하나 안 뿌린다고 미개하단 소리까지 듣는다니.

16549780131303.png“특히 요즘 사교계에서 베일에 싸인 공작부인의 얘기가 많이 오간다고 합니다. 곧 있을 국왕의 결혼식에서 이 향수를 뿌리고 가시면 구설에 오르는 일은 면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식도 손님들 초대 없이 비공식적으로 올렸으니 말 많다는 사교계에서 내 얘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모양인 듯했다. 후. 그러니까 국왕의 결혼식에 더 가기 싫어지는데.

16549780131308.png“이 나라의 새로운 왕비가 탄생 될 국왕의 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16549780131303.png“새 왕비는 어떤 분이실지 베일에 싸여서 아직 아는 것이 전혀 없군요.”

16549780131308.png“정령사 라페 님의 여동생이에요.”

레이독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감탄한 듯 탄식했다.

16549780131303.png“아.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하셨죠. 그런 것까지도 볼 수 있으신지 몰랐군요.”

그러고 보니 길리언의 결혼식 때, 그의 이모의 딸 헤르시아도 참석했지. 헤르시아는 원작에서 후에 시카르의 아내가 되는 여자였다. 길리언의 결혼식 때 폐왕의 잔재들이 길리언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 헤르시아를 공격하게 되는데, 그때 시카르가 헤르시아를 구하게 된다. 이번 국왕의 결혼식에서도 시카르가 헤르시아를 구해줄까. 하지만 그가 헤르시아를 구해주지 않으면 그녀는 단지 길리언의 사촌이란 이유만으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16549780131308.png‘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지.’

길리언은 선왕의 형이었던 바이리온 대공의 아들로 왕궁에서 자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헤르시아는 길리언의 친모인 엘리시아 대공비 집안인 모비아트 백작가 막내의 외동딸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길리언의 막내 이모 되는 사람의 외동딸인 것이다. 길리언과는 자라며 몇 번 본적도 없었고 단지 사촌의 결혼식이라 참여하는 것뿐인데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인물로,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었지만 왕이 된 길리언의 강압으로 어쩔 수 없이 시카르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사카르 역시도 왕실과의 결속을 위해 헤르시아와 결혼을 한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하고도 늘 외로움에 방치되었다가 결혼 전 사랑했던 남자가 키안의 편에 서게 되면서, 사랑하는 남자가 이끄는 민병대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다. 원작에서는 길리언과 뜻을 같이하는 시카르였기에 헤르시아를 구했지만, 지금도 그녀를 구해줄지 알 수 없었다. 구해주지 않으면 가여운 삶을 살아온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 너무 눈에 훤했다. 레이독스는 갑자기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헤르시아 문제는 시카르와 먼저 얘기해보는 게 순서였기에 나는 적당히 웃음으로 때우며 말을 돌렸다.

16549780131308.png“아무것도 아니에요. 길리언의 결혼식이 별 일없이 잘 끝났으면 싶어서요.”

16549780131303.png“참, 이곳에 제르미가 다녀가지 않았습니까?”

16549780131308.png“언제 말인가요? 마지막으로 다녀간 것은 며칠 전이에요. 전에 보신 마법의 방을 제르미 님께서 꾸며주셨거든요.”

레이독스는 무언가를 떠올리듯 고개를 숙이며 골몰한 표정을 짓고는 답답한 듯 입술을 비죽거렸다.

16549780131303.png“제르미가 조금 당황스러운 말을 해서요. 확실해지면 말씀드리겠습니다.”

16549780131308.png“그런 얘기라면 언제든 편하실 때 말씀하세요.”

16549780131303.png“그러겠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잘못 말하면 안 되니까요.”

제르미는 원래 엉뚱하고 당황스러운 말을 잘하는 인물이었다.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레이독스가 당황스럽다고 하는 것을 보면 제르미가 정말 그런 말을 한 모양이었다. 무슨 말인지 궁금했지만, 신중한 레이독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묻진 않았다. 그가 제 입으로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레이독스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우려하던 것이 떠올랐다.

16549780131308.png“후작님. 실례지만 한 가지 부탁을 좀 해도 될까요?”

16549780131303.png“말씀하십시오.”

16549780131308.png“수련의 방에서 말이에요. 루이드가 너무 놀라서 키안의 등 뒤로 숨었다고 해요.”

16549780131303.png“그랬었군요.”

16549780131308.png“루이드 성격에 그건 너무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죠?”

레이독스는 매우 그렇다는 듯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80131303.png“아마 그럴 겁니다. 루이드가 자존심이 강하다 보니 키안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것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겠죠.”

16549780131308.png“그래서 말인데, 후작님께서 두 아이를 조금 더 눈여겨 봐주시면 안 될까요?”

16549780131303.png“그러겠습니다.”

16549780131308.png“그러니까, 제 말은 그냥 보기만 하지 마시고 두 아이가 조금 더 허물없이 친해질 수 있게 후작님께서 힘을 실어주셨으면 해요.”

레이독스는 자신 없는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16549780131303.png“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건 어렵지 않게 하는 편입니다만, 그런 문제는 저도 어렵더군요. 아무래도 제겐 세상에서 육아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16549780131308.png“육아는 누구라도 가장 어려운 일이죠. 그럼 혹시, 제가 가서 좀 도와 드려도 될까요?”

레이독스는 마치 자신을 구제해줄 은인이라도 만난 듯 두 눈을 반짝였다.

16549780131303.png“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신단 말씀입니까? 저희 아이들은 수십 년 경력을 지닌 보모들도 포기할 만큼 다루기 힘든 아이들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내가 어린이집 교사여서 잘할 수 있지. 싸우는 아이들을 화해시키는 건 내 전문이니까. 내가 맡았던 아이들이 3, 5살 정도였다면 이 아이들은 일곱 살이라는 게 장애이긴 했지만, 주인공의 성향을 잘 아는 만큼 이 세계에서는 그 누구보다 훌륭한 보모가 되어줄 자신이 있었다.

16549780131308.png“가끔 아이들을 저의 공작저에 보내주시면 돼요.”

16549780131303.png“그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16549780131308.png“그럼 약속하신 건가요?”

레이독스는 그제야 밝게 미소를 지었다.

16549780131303.png“물론입니다. 공작부인. 저야 매우 감사한 일일 테니까요. 왕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쌍둥이 공작저를 다시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16549780131308.png“감사해요. 후작님.”

16549780131303.png“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거운 얘기를 하다가 아이들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아이들 얘기를 하며 더 크게 웃었고, 하필 그때 베로니아를 찾아 나섰던 시카르가 돌아왔다.

16549780281522.png“웃음소리가 현관까지 들리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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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들어선 시카르에게서 한기가 느껴졌다. 밖이 추워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인지 그의 분위기 때문인지 헷갈릴 만큼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16549780281531.png“일을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마님.”

뒤따라 들어온 듀리온은 내게 인사를 하며 레이독스를 슬쩍 흘겨봤지만, 설득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전처럼 멱살이나 목덜미를 잡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16549780131308.png“잘 다녀오셨어요. 듀리온.”

16549780281531.png“그럼 전 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듀리온은 내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제 방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여기 더 있다간 레이독스의 멱살을 잡고 싶어 하는 자신을 제어할 수 없어서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카르는 레이독스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16549780281522.png“후작은 이렇게 늦은 시간에 방문한 이유가 뭐지?”

16549780131303.png“그건…….”

16549780281522.png“됐다. 아내를 통해서 알아내면 되니까 네 설명은 필요 없겠군.”

16549780131303.png“공작님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좀 편해졌으니까요.”

16549780281522.png“아이들은 돌아서면 까먹는다는데, 그게 먹힌 걸 보면 쌍둥이들이 영 바보는 아닌 모양이군.”

불편한 듯 보고 서 있는 시카르를 보며 레이독스는 그가 서 있는 자리까지 걸어 나와 말했다.

16549780131303.png“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십시오.”

16549780131308.png“들어가세요. 후작님.”

시카르는 대꾸하지 않고 레이독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16549780281522.png“레이독스와 너무 격 없이 보이더군. 말해두는데, 우리 해피는 나밖에 몰랐다. 다른 인간도 주인으로 섬겼다면 아마 죽여버렸겠지.”

16549780131308.png‘……이 무서운 놈.’

16549780131308.png“나, 나도 너밖에 몰라!”

저 말이 너무 살벌해서일까.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이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16549780131308.png‘아. 치욕.’

시카르는 마음에 든다는 듯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16549780281522.png“죽고 싶지 않다면 앞으로도 쭉 나만 좋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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