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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악당의 육아 방식 (11) (46/197)

46화. 악당의 육아 방식 (11)2021.11.08.

시카르는 저런 살벌한 말을 잘도 떠들고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16549780408421.png“레이독스가 향수를 선물해줬군. 녀석의 말이 틀리진 않다. 사람들은 베일에 싸인 너에 대한 무수한 추측을 하다가도 이 향수를 뿌린 것에 호기심을 느낄 테니까.”

참, 하도 겁을 주니 까먹을 뻔했다.

16549780408427.png“베로니아는?! 베로니아는 어떻게 됐어? 찾았어?!”

시카르는 하녀가 내온 차를 한 잔 들이켜고는 고개를 저었다.

16549780408421.png“찾지 못했다.”

16549780408427.png“그렇구나.”

길리언이 찾기 쉬운데 숨겼을 리도 없고, 원작에서도 키안이 베로니아를 만난 게 우연히 광장에서 본 것이 전부였으니 쉽게 찾을 수 없겠지. 너무 기대했던 탓에 갑자기 맥이 확 빠졌다.

16549780408421.png“하지만, 완전히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베로니아의 얼굴을 확인했으니까.”

16549780408427.png“어, 얼굴을 확인했다고?!”

16549780408421.png“얼굴을 확인했으니, 문장으로 찾는 것보다 조금 더 찾기 수월하겠지.”

시카르의 말대로 그것도 꽤 큰 수확이었다. 그가 사람들을 상대로 확인할 수가 있으니까.

16549780408452.png“대체 그 여자는 왜 찾는 거지? 공작?”

돌아보니 비카가 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16549780408452.png“베로니아는 공주잖아. 대체 공주를 왜 찾는 거지? 나한테 숨기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안 들어?”

시카르는 대꾸하기 귀찮다는 듯 손에 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16549780408421.png“넌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된다.”

16549780408452.png“저번에 국왕이 다녀갔을 때 말이야. 공작저에 악몽의 정령을 가득 퍼트려 놓고 갔더란 말이지. 그 덕에 오랜만에 포식해서 나쁘진 않았지만, 이상했거든. 국왕을 그 자리에 앉힌 게 우리인데 왜, 국왕은 이 공작저에 그런 걸 퍼트리고 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야? 공작은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거지?”

16549780408421.png“때가 되면 자연이 알게 될 테니 굳이 묻지 마라.”

16549780408452.png“왜 지금은 말을 못 하는 건데?”

16549780408421.png“내가 일일이 너에게 그런 걸 설명해야 하나? 너도 듀리온처럼 이유는 알려고 들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 지금까지는 안 그러더니 점점 안 하던 짓을 하려고 드는군.”

16549780408452.png“나 이젠 그렇겐 못 하겠는데?”

아직, 비카와 듀리온은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듀리온은 원래 복잡하고 머리 아픈 건 질색인 성격이라 이유를 말해줘도 듣기 싫다고 설명은 집어치우라고 할 성격이었다. 그리고 비카도 시카르와의 맹약 때문에 굳이 그를 의심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뭘 하고 다니는지 이렇게 묻는 성격이 아니었다. 확실히 그때 우리 대화를 엿들은 것도 그렇고, 내가 시카르와 결혼을 한 뒤로는 의심이 늘어난 것 같았다. 시카르는 성격상 자신이 하는 일을 일일이 말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니 내가 할 수밖에 없겠지.

16549780408427.png“비카. 제가 말해줄게요. 시카르. 비카에겐 내가 설명할게.”

16549780408427.png‘그러니 두 사람 좀 그만 싸우란 말이야.’

정말 내가 설명을 잘 해주려고 했는데, 막상 비카는 내게 설명을 듣기 싫은 모양이었다.

16549780408452.png“됐습니다. 마님께는 별로 듣고 싶지가 않아서요.”

비카는 나한테만 쌀쌀…… 맞은 게 아니고 비카는 원래 모두에게 쌀쌀맞지. 그런 생각을 하니 좀 위안이 되는군. 어쨌든 비카는 내게 설명을 듣느니 안 듣고 말겠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시카르는 내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16549780408421.png“비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군. 그래서 대처를 아주 잘했어.”

아니, 난 대처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싶었던 건데…….

16549780408421.png“비카는 자기보다 약한 사람과 대화하는 걸 매우 싫어하지. 특히 너처럼 아무 힘 없는 약골과는 말도 섞으려고 하지 않으니까. 그 점을 아주 적절히 이용했군.”

그래서 비카가 늘 가죽바지만 입고 다니는 건가. 사실 난 비카에 대해 잘 몰랐다. 저렇게 상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앞으로도 비카와 친해지기는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맥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기운 없이 말했다.

16549780408427.png“대화 다 끝났으면 난 이제 내 방으로 가볼게.”

16549780408421.png“잠깐.”

시카르는 하인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인이 종이에 쌓인 무언가를 가져와 시카르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시카르는 그것을 다시 내게 건네었다.

16549780408421.png“받아라.”

16549780408427.png“이게 뭔데……?”

하고 받아보니 그것은 다름 아닌 로즈마리였다.

16549780408427.png“이건……?”

16549780408421.png“종이에 그린 게 아닌, 진짜 로즈마리 꽃이지. 그 안에 로즈마리 씨앗도 있다. 네 말대로 그것이 가정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잘 키워봐. 우리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16549780408427.png“시카르…….”

이거 조금은 감동인데? 내가 지금 감동하고 있는 건가? 아까만 해도 나를 죽이겠다고 말한 이 악역한테?

16549780408427.png‘겨우 이런 거로 감동하면 안 되지. 내가 당한 협박이 얼만데.’

그런데, 로즈마리 꽃을 사 올지는 정말 상상도 못 했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것이 단지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든 아니든, 이 순간만큼은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16549780408421.png“나도 피곤해서 이만 자야겠군. 내일 보지.”

나는 로즈마리를 보고, 마치 시카르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16549780408427.png“우리 가족의 평화를 지켜줘.”

말하고 보니 시카르가 내 기억을 읽다가 이것도 보게 될 것 같아서 조금 민망했지만, 어쨌든 오늘은 마음이 어딘가 포근해졌다. 나는 메이리에게 시켜 로즈마리를 거실에 두었다. 매일 저것을 보며 가정의 평화를 되새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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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이 펑펑 내리는 것을 제외하면 꽤 평온한 아침이었다. 어쩌면, 시카르가 내게 가정의 평화 어쩌고 하며 로즈마리를 선물한 것은 실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아침부터 그를 조금 귀찮게 했다. 바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직접 아침 식사로 토스트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었다.

16549780408421.png“대체 가정의 평화와 내가 아침부터 토스트를 만드는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

이라고 말은 했지만, 양육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지켰다. 물론 달걀이 모두 부서지긴 했지만, 어쨌든 시카르는 토스트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서 키안의 접시 위에 놓아주었다. 이 모습을 듀리안과 비카가 보지 못한 게 안타까웠지만, 매우 훈훈한 모습이었다. 아침 식사가 끝난 후, 아직은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기에 시카르는 키안과 공놀이를 해주지 못하는 대신 본격적으로 비카와 하는 정령 놀이에 참여하기로 했다.

16549780408427.png“안 그래도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했는데 나도 구경 좀 해도 돼?”

16549780408421.png“물론.”

시카르의 흔쾌한 허락에 나는 방해되지 않게 키안의 방구석 한편에 놓아둔 의자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나는 비카와 키안의 정령 놀이라는 것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막연히 그것이 재미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매우 복잡하고 힘든 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령 놀이라는 게 말이 놀이지, 엄청난 정신력 소모가 필요한 것이었다.

16549780408452.png“도련님. 내가 뭐랬어. 도련님은 아직 미숙해서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정령이 안 모인다니까.”

비카는 그녀가 자주 앉는 삐딱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았지만, 키안은 한치 흔들림 없는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 나 또한 저런 자세를 30초 이상만 유지해도 힘들 것 같았지만, 키안은 용케 잘 버티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키안은 멋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키안은 내가 실망할까 봐 신경 쓰였는지 틈틈이 곁눈질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기절할 듯 귀여웠지만 키안의 집중력을 방해하기 싫어서 모른 척 진지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16549780408452.png“도련님. 오늘따라 시선이 너무 분산되잖아. 집중을 하라고. 집중을.”

16549780502766.png“하고 있어요.”

비카의 잔소리에 키안은 조금 미간을 찌푸렸지만, 곧 진지한 눈으로 비카와 시선을 마주했다. 시카르도 이런 구경은 처음이라는 듯 꽤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한 듯 키안은 자신의 주변으로 불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전과 같이 정말 작은 그런 불씨가 아니었다.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런 작은 불나비도 아니었다. 키안의 주변으로 불씨들이 조금씩 점점 모이더니 완전히 둘러싸고도 남을 만큼의 불의 졍령들이 모여들었다.

16549780408427.png‘벌써 이만큼 성장했다고?’

아직은 키안은 어린 데다 작은 체구였지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불의 정령들과 그것을 소환해서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있는 키안의 모습이 너무나 멋졌다. 나는 황홀한 얼굴로 키안을 쳐다보았고 키안도 때마침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기 때문에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키안은 머쓱했는지 얼굴이 붉어졌고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불의 정령들이 꺼져버렸다. 내가 저건 알지. 보통 아이들이 자기가 잘하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막상 나와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서 숨어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기껏 불러들인 불의 정령들이 모두 사라지자 비카는 힘이 빠진다는 표정이었다.

16549780408452.png“도련님. 오늘따라 너무 산만해. 마님이 있어서 그런 거야?”

16549780502766.png“그런 거 아니에요.”

16549780408452.png“그럼 쓸데없이 내 시간 뺏지 말고 다시 집중해. 오늘은 공작도 도와준다고 했는데. 더 잘해야지. 안 그래?”

키안은 눈을 한 번 감고는 자세를 바로 한 뒤 비카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16549780502766.png“다시 해.”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조금 더 빨리 불의 정령들이 키안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비카는 대충 눈대중으로 정령들의 숫자를 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80408452.png“좋아. 오늘도 정령 수가 늘었어. 이제 시작해.”

뭘 시작하는 걸까 싶은 찰나에 비카가 어둠의 정령을 불러냈고, 키안이 불러낸 불의 정령들이 어둠의 정령을 따라 움직였다. 하지만, 잘 쫓아가지 못하거나 갑자기 꺼지거나 되돌아오거나 하는 등이 다반사였다.

16549780408452.png“그래서 공작의 방해를 피할 수 있겠어?”

키안은 이를 악물고 다시 정령을 불러냈고 다시 비카의 정령을 쫓아다녔다. 정령을 부르고 쓰는 일에는 정신력이 많이 소모된다고 하니 키안에게는 많이 무리일 것이다.

16549780408452.png“공작도 시작해.”

시카르가 정령을 부르지는 못하지만 정령사가 불러낸 정령들을 컨트롤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령의 정신을 지배하는 시타르 족의 특성 중 하나인 데다 시카르의 뛰어난 능력 중 하나이기도 했다. 다만 왕족의 정신력엔 관여할 수 없었던 탓에 키안이 불러낸 정령의 정신은 지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키안에게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아가시온의 저주까지 걸린 몸이었으니 시카르는 원작에서 성인이 된 키안에게 허망하게 당하는 비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그래서 뭘 도와주려나 봤더니, 키안의 정령을 움직일 수 없으니 비카를 도와 비카가 불러낸 정령의 움직임을 더 빠르게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혼자보단 둘이다 보니 비카가 불러낸 어둠의 정령들의 움직임이 매우 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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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안을 그것을 따라가느라 꽤 낑낑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만 실수를 하면 내 눈치를 살피곤 했다. 어린 마음에 나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시카르는 힘들어하는 키안을 보며 비카를 제지했다.

16549780408421.png“이제 그만 하지. 더 하다간 애가 기절하겠군.”

16549780502766.png“아니에요. 더 할 수 있어요.”

16549780408421.png“쓸데없는 고집은 무모할 뿐이다.”

키안과 비카가 정령술을 쓰는 걸 보는 것은 매우 멋진 일이긴 했지만, 키안이 무리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16549780408427.png“키안. 이제 정령 놀이는 그만하고 우리 같이 로즈마리 씨앗이나 심어 볼까?”

16549780502766.png“로즈마리 씨앗이요?”

16549780408427.png“응. 어제 공작님께서 로즈마리 씨앗을 사 오셨어. 같이 씨앗을 심어보지 않을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령술에 날을 세우던 키안은 씨앗 심기를 하자는 말에, 금세 관심사가 바뀐 얼굴로 입을 활짝 벌렸다.

16549780502766.png“좋아요!”

그렇게 키안의 관심을 정령 놀이에서 씨앗 심기로 바꾼 후, 우리 세 식구는 거실에 나란히 앉아 씨앗을 심었다. 비카는 씨앗을 심다 보면 짓밟아 버리고 싶어질지 모른다고 해서 씨앗 심기에서 제외되었고, 듀리온은 우리 세 식구가 오순도순 지내는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며 자리를 슬쩍 피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 셋만 씨앗을 심었다.

16549780502766.png“이 작은 씨앗에서 정말 저 예쁜 로즈마리가 자라는 거예요?”

16549780408427.png“물론이지. 키안도 지금은 작지만 나중에는 공작님처럼 매우 커지듯이 식물도 작은 씨앗부터 자라는 거야. 신기하지?”

16549780502766.png“네. 너무 신기해요.”

화분에 씨앗을 심던 키안은 다 자란 로즈마리를 한 번 보더니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16549780502766.png“어머니. 저 여기에 카네이션 씨앗도 심어도 돼요?”

16549780408427.png“으응?”

16549780502766.png“저, 카네이션도 키우고 싶어요. 어머니께 제가 직접 키운 카네이션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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