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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로맨틱 악역님 (2) (50/197)

50화. 로맨틱 악역님 (2)2021.11.22.

16549781629154.png‘맞아! 왕후는 결혼식 반지와 목걸이로 핑크 다이아를 선물 받았지?’

이곳에서도 핑크 다이아는 귀했기에 그 가치는 엄청났다. 나는 대단한 일이라도 생긴 듯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16549781629154.png“참, 왕후 전하께서는 국왕 전하께 핑크 다이아 반지와 목걸이를 선물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지금 착용하고 계신 것이…….”

다행히 의도대로 핑크 다이아라는 말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귀족 부인들은 이제라도 눈치를 챙긴 듯 왕후의 목걸이에 시선이 홀린 듯 집중했다.

16549781629164.jpg“영롱한 핑크 다이아가 왕후 전하와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16549781629164.jpg“맞아요. 이런 건 구하기도 힘들지만 아무나 착용할 수도 없는 것이죠.”

저게 모두 무려 27캐럿인 걸 알면 더 놀라겠지. 사람들이 왕후에게 신경을 쏟고 있는 동안 나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고 말한 후 자리를 피했다. 그런데 헤르시아가 내 뒤를 따라왔다.

16549781629174.png“공작부인! 어디 가세요?”

16549781629154.png“아, 바람 좀 쐬려고요.”

16549781629174.png“바람은 저기 테라스에서 쐬는 게 어때요? 아까 길을 잘못 들어서 테라스로 갔는데 거기 정말 좋아서요. 가서 저와 밀크티 한 잔 더 어떠세요?”

원작에서 헤르시아는 어떤 귀족 영애와 테라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암살자들의 공격을 받았었다. 그 귀족 영애는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그녀와 함께 암살자들이 쳐들어올 장소로 가는 게 썩 내키진 않았다. 그래서 거절했다.

16549781629154.png“아, 밀크티도 여러 잔 마시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요. 저는 그만 마시려 해요.”

16549781629174.png“아…….”

헤르시아는 풀죽은 얼굴로 나를 계속 따라 나왔다. 이렇게 나를 졸래졸래 따라 다니면 안 되는데, 왜 날 따라다니는 거지?

16549781629154.png“헤르시아. 어디 가시나 봐요?”

16549781629174.png“주변 산책이나 해볼까 해서요.”

16549781629154.png“테라스는 안 가보시고요……?”

16549781629174.png“네…….”

그럼 안 되는데, 테라스에 나가야 보호를 받는데. 만약, 산책을 하다가 암살자를 만나면 목숨을 보호받을 수가 없잖아?! 나는 돌아서 나가려는 헤르시아를 불렀다.

16549781629154.png“헤르시아!”

밖으로 나가려던 헤르시아는 나를 향해 돌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16549781629174.png“네?”

16549781629154.png“저, 저랑 테라스에서 바람 쐬지 않을래요?”

헤르시아는 아이처럼 해맑게 미소지었다.

16549781629174.png“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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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왕실의 밤이었지만, 주변에 가로등이 많아 그리 어둡지만은 않았다. 뻔히 암살자가 나타나는 걸 알고 있는 장소에 앉아 있으려니 좌불안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헤르시아는 환하게 웃으며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16549781629174.png“정말 감사해요. 공작부인.”

16549781629154.png“네?”

16549781629174.png“저와 함께 차를 마셔주셔서 감사해요.”

16549781629154.png“별말을요.”

16549781629174.png“그리고 하나 더 고마운 게 있어요.”

16549781629154.png“말씀하세요.”

16549781629174.png“정말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편하게 대해주신 것도 감사드려요.”

편하기야, 편하긴 했다. 성격이 나와 비슷한 데다 착한 성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16549781629174.png“저, 사실 공작부인께 반했어요.”

16549781629154.png“네?”

16549781629174.png“공작님은 정말 무서우신 분이시잖아요. 데뷔당트에서 공작님을 처음 뵈었는데, 그때 어느 집 자작가의 영식을 혼내시는 모습이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뿐 아니고 늘 허리에 장검을 차고 다니시면서 질서를 바로잡으시겠다고 막, 조금만 누가 거슬리게 해도 칼로 겁주시고…….”

16549781629154.png‘그치. 그치. 나도 그걸 당했었지.’

16549781629174.png“춤 신청을 할 때도 엄청 무서운 눈으로 춤 신청을 하셔서 영애들이 무서워서 다들 덜덜 떨면서 손 내밀고 그랬거든요.”

16549781629154.png‘안 봐도 상상이 가는군.’

16549781629174.png“그런데 막상 손을 내밀면 손가락 끝만 살짝 잡아 보고는 막상 춤은 안 추시고…….”

16549781629154.png‘그거야 기억만 엿보려고 일부러 그런 거니까.’

그냥 간단하게 미친놈 같았다고 말해도 되는데, 헤르시아는 내 기분이 상할까 봐 조심조심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론은.

16549781629174.png“그런 공작님을 공작부인께서 변화시켰잖아요! 그래서 너무 멋지다고 생각해요. 존경해요!”

실상을 알면 놀라 까무러칠 사람이 여기 또 한 명 생겼군.

16549781629174.png“공작부인.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무슨 질문을 하려고 저렇게 순수하고 해맑은 눈으로 쳐다보는 걸까.

16549781629154.png“곤란한 질문이 아니라면요.”

16549781629174.png“공작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나 해서요.”

16549781629154.png“그건 기밀 사항이라 말할 수가 없겠군요.”

헤르시아는 실망하진 않았다. 그녀는 되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16549781629174.png“죄, 죄송해요. 공작부인. 제가 큰 결례를 범한 거 같아요.”

16549781629154.png“아니에요.”

기밀이라기보단, 아직 우리가 어디서 만났다고 입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에 둘러댈 말이 없었다.

16549781629154.png“하지만, 언젠간 들려줄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조금 전 미안해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녀의 얼굴이 금세 해맑게 빛났다.

16549781629174.png“영광이에요. 공작부인!”

후, 이 정도면 대략 시간을 보냈으니 나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 볼까.

16549781629154.png“헤르시아. 저 손 좀 씻고 올게요.”

헤르시아를 여기 두고 슬쩍 자리를 빠지려고 했지만, 그녀는 곧장 나를 따라 일어섰다.

16549781629174.png“저도 같이 가요. 공작부인.”

정말 헤르시아는 나한테 반해서 이렇게 졸래졸래 따라다니는 걸까. 시카르와 그녀의 남자친구가 이곳 위에서 대기 중인데, 날 따라왔다가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곳에서 죽으면 어쩌려고! 나는 정말 이 살벌한 장소에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암살자들이라니. 나처럼 아무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엉덩이를 들었던 나는 그대로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날 따라왔다가 죽임을 당할 게 뻔하니까. 사람이 죽을 게 뻔한데 어떻게 모른 체할 수 있을까.

16549781629154.png“생각해보니까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될 거 같아요.”

16549781629174.png“그럼, 저도 조금 이따 부인이 갈 때 같이 갈래요.”

16549781629154.png“그래요. 그래. 하하.”

내가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카르한테 교양이 아닌 검술 같은 거나 배워 둘걸. 아니면, 사람을 기절시키는 법이라도 익혀둘 걸 그랬다. 그랬다면 이 자리에서 헤르시아를 기절시키고 슬쩍 몸을 빼는 건데. 그래도 시카르가 잘 지켜보고 있겠지? 행여라도 없는 거 아니겠지? 소설 속에서 암살자들이 어디로 나타나더라? 아, 그래 테라스 아래에 벽을 타고 기어 올라왔었지.

16549781629154.png‘일단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

나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테라스 난간에서 최대한 떨어져서 자리를 옮겼다. 헤르시아는 그런 나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내가 한 행동 그대로 따라하며 자리를 옮겼다.

16549781629174.png“이건 무슨 놀이 같은 건가요?”

피신이지. 피신.

16549781629154.png“그냥 조금 멀리서 테라스를 보고 싶어서요.”

16549781629174.png“아…… 정말 공작부인의 말씀처럼.”

16549781629154.png“잠깐만요. 쉿.”

16549781629174.png“네?”

16549781629154.png“잠깐만 우리 조용히 바람을 맞죠?”

조용히 있어도 암살자의 인기척을 느끼기 힘든데, 떠들면 더 정신이 나가 있을 테니 제시간에 도망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괜히 말을 꺼냈다가 민망해하는 헤르시아를 외면하고 테라스 난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16549781629154.png‘여차하면 무조건 뒤로 뛰는 거야.’

고요한 침묵이 오래되고 헤르시아가 부산하게 내 눈치를 살필 때쯤, 그들이 나타났다. 암살자들이. 소설에서는 암살자들이라고만 돼 있지 몇 명이라는 정확한 숫자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껏해야 2~3명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테라스 위로 올라오는 암살자들은 적게 잡아도 다섯이었다.

16549781629154.png‘맙소사!’

사람이 너무 놀라면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말처럼, 나와 헤르시아는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멍하니 암살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헤르시아는 저들의 정체를 미처 파악하지 못해서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저들의 정체를 아는데도 왜 비명 대신 딸꾹질이나 나오는 거지? 두건을 쓴 암살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의 형체로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우리 둘 중 누가 헤르시아인지 분간하기 위해서 천천히 걸어오는 건가. 시카르는 어디 있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 봤지만, 시카르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뭐 하는 거야! 암살자들이 나타났는데, 안 나오고 뭐 하는 거냐고! 그제야 목청이 트이기 시작했다.

16549781629154.png“꺅! 도망쳐요!”

나는 헤르시아의 손을 잡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아니, 치려 했다. 하지만, 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한 것에 더 자극이 된 듯, 천천히 걸어오던 암살자들이 갑자기 껑충 뛰어오르고는 우리를 뛰어넘어 연회장 문 쪽에서 투두둑 떨어져 내리듯 착지했다. 때문에 퇴로가 막힌 탓에 우리는 뒷걸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16549781629174.png“누……누구세요? 왜 이러는 거예요?”

헤르시아의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물론 나도 사지가 덜덜 떨려왔다. 이런 상황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가 까마득했다. 두건에 쓰여진 채로 시카르의 공작저에 끌려갔을 때에도 느끼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무엇보다 시카르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 같았다. 대체 뭐하길래 안 나타나는 거지? 설마 날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걸까. 이젠, 이런 생각을 할 시간조차도 내겐 없었다. 암살자들이 바로 코앞까지 걸어와 손에 든 검날을 높게 쳐들어 올렸으니까. 정말 이렇게 죽는 건가? 이, 이 엑스트라 암살자들 손에 이렇게 허무하게?! 하지만 시카르는 물론이고 헤르시아의 남자친구 또한,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암살자의 칼날이 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피할 수 없을 만큼 강하고 빠른 속도로. 이제 난 꼼짝없이 죽……었구나, 라고 생각한 순간. 암살자의 칼날이 내 코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하더니, 갑자기 뒤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던 그 순간, 뒤에 서 있던 암살자들이 하나둘씩 픽픽 쓰러졌다.

16549781629154.png‘어, 어떻게 된 거지? 주, 죽은 건가?’

헤르시아와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암살자를 향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곧.

16549781629164.jpg“드르렁…….”

16549781629154.png‘이건 코를 고는 소리잖아?’

정말로 암살자들이 코를 드르렁거리며 골고 있었다.

16549781629154.png‘암살을 하러 와서 잠들었다고?’

덕분에 살아서 너무 다행이긴 했지만, 너무 황당한 상황이기도 했기에 얼이 빠졌다. 그때, 위층에서 비카가 툭, 하고 떨어지더니 이내 시카르도 뒤를 따라 툭, 하고 떨어졌다.

16549781810327.png

  비카는 지루한 얼굴로 팔짱을 끼며 걸어왔다.

16549781810332.png“이딴 새끼들 재우는데 체력을 소모해야 하다니.”

그러더니, 비카는 잠들어 있는 암살자를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16549781810332.png“이 새끼 봐라? 코 고네?”

16549781629154.png‘아, 비카가 암살자들을 재웠구나. 그래서 이들이 픽픽 쓰러지며 잠든 거였어.’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다리의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휘청거리자 무감한 얼굴로 걸어오던 시카르는 다급히 달려와 내 등을 손으로 받쳤다. 그때, 또 한 명이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리며 착지를 잘못했는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어어’ 거리며 휘청휘청거리던 그는 헤르시아의 앞으로 달려오며 그녀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16549781810346.png“헤르시아!”

휘청거리는 모습이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저쪽은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다.

16549781629174.png“아론!”

16549781629154.png‘음. 이름이 아론인가 보군.’

아론이란 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헤르시아에게 달려와 그녀를 껴안으며 얼굴을 살폈다.

16549781810346.png“괜찮아? 괜찮은 거야?!”

헤르시아가 아론이란 자에게 안겨 눈물을 줄줄 흘리며 뭐라고 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 놀랐겠지. 나도 지금 기절하지 않은 것만 해도 기적일 만큼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16549781629154.png“시카르. 저렇게 암살자들을 재울 생각이었다면 나에게 귀띔 좀 해줬어도 좋았잖아?”

16549781841188.png“계획에 없었으니까.”

16549781629154.png“그럼, 계획에 없었는데 갑자기 왜 재운 거야?”

16549781841188.png“계획에 없이 나타난 건 너다.”

16549781629154.png“물론, 내가 계획에 없이 나타난 건 미안한데, 근데 그것과 암살자를 재운 게 무슨 상관이야?”

16549781841188.png“네가 놀랄까 봐.”

16549781629154.png“그게 무슨……?”

16549781841188.png“아무리 그게 암살자라도 눈앞에서 사람이 죽으면 네가 놀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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