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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어쩌면 착각일까 (2) (55/197)

55화. 어쩌면 착각일까 (2)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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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782905411.png“그, 그렇게 하기만 해봐?!”

16549782905416.png“그러니까 그렇게 하겠다고.”

16549782905411.png‘갑자기 왜 이렇게까지…….’

단순히 내게 장난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속으로 뇌까리던 말을 밖으로 꺼내었다.

16549782905411.png“너, 너, 혹시 나 좋아해……?”

16549782905416.png“네 희망 사항을 말하는 건가.”

16549782905411.png“네, 네가 지금 하, 하는 게 이상하잖아.”

16549782905416.png“겁내기는.”

겁을 주니까 겁내는 거지.

16549782905416.png“내가 네 침대로 올라가는 게 무섭다면, 내게 키안을 목마 태우라고 한다든지, 키안을 잘 돌보라던지 요구하지 않도록 해. 그럼 내가 봐줄 테니까.”

아. 이, 미친놈이 왜 이러나 했더니 그게 목적이었구나.

16549782905411.png‘얼마 전에 목마를 태우라고 시켜서 골이 좀 난 걸까?’

16549782905411.png“키안에 관해서는 내 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잖아.”

16549782905416.png“흠. 이곳은 공작저와 달리 방이 많지 않을 텐데. 네가 정 나와 한 침대를 쓰기 불편해서 방을 나간다고 해도 잘 데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내가 무조건 불리한 상황이니 말 잘 들으란 거군.

16549782905411.png“알았어……. 그렇게 할게. 대신에 침대 위로 올라올 생각은 꿈도 꾸지 마.”

그러자 시카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볼을 꼬집었다.

16549782905416.png“귀엽군.”

귀여워? 시카르가 사람을 귀여워한다고?

16549782905411.png“혹시 너…….”

16549782905416.png“또 널 좋아하느냐고 물으려는 건가?”

16549782905411.png“아, 아니. 혹시 해피한테도 귀엽다며 볼을 꼬집어 준다거나 그런 적이 있나 해서.”

16549782905411.png‘이젠 내 스스로 해피와 비교를 시작하는구나.’

16549782905416.png“나를 강아지와 사람도 구분 못 한다고 생각하나 보군.”

16549782905411.png“그게 무슨 말이야?”

16549782905416.png“강아지는 작아서 볼을 꼬집을 수 없다.”

강아지를 귀여워하듯 나를 귀여워한단 건지. 헷갈림 속에 생각이 많아지려 할 때, 시카르가 내 얼굴 위로 수건을 던졌다. 그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16549782905411.png“뭐 하는 거야.”

그래서 수건을 내리려 할 때였다.

16549782905416.png“내 벗은 몸을 보고 싶다면 그 수건을 내려도 좋다.”

나는 수건을 치우려던 것을 멈추고 자처해서 다시 수건으로 머리를 덮었다. 얼굴이 화끈거려서 그대로 경직된 채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16549782905411.png‘저 미친놈이…… 한 방을 같이 쓰니 더 미친놈이 되었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옷을 갈아입고 있는 건 확실했다.

16549782905411.png‘저 성격에 얌전히 나가서 옷을 갈아 입어줄 리가 없는데, 내가 너무 큰 걸 바랐지.’

그나마 침대라도 양보해주니 그걸로 감지덕지해야 하는 형국이구나.

16549782905411.png“근데, 내가 옷 갈아입을 때는 어떡할 참이야? 너도 수건으로 얼굴을 가릴 참이야?”

16549782905416.png“글쎄.”

16549782905411.png“글쎄 라니?”

16549782905416.png“네가 옷 갈아입을 때 수건으로 내 눈을 가린다고 해도 그게 의미가 있겠냐만.”

아. 그렇지. 다 보이지. 그래서 내가 요즘 옷을 입을 때마다 눈을 감고 입었었지.

16549782905416.png“네가 원한다면 수건으로 눈을 가려주고.”

16549782905411.png“아니.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나가는 거야.”

16549782905416.png“혼자 옷 입기 쉽지 않을 텐데.”

16549782905411.png“괜찮아. 나 등에 팔이 다 닿거든.”

16549782905416.png“네가 혼자 옷 입기 불편하지 않다면, 그건 내가 배려해주지.”

16549782905411.png“그리고 네가 옷 입을 때도 내가 널 배려해서 나가줄게.”

16549782905416.png“그러지 않아도 된다. 네 눈을 가릴 방법은 얼마든 있으니까.”

부스럭거리며 옷 갈아입는 소리가 다 들려서 불편한데. 다음부터는 내가 알아서 재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겠지. 곧 눈앞에서 수건이 걷어졌다. 시카르는 그새 말끔하게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제복에서 조금 더 편하게 셔츠와 조끼 차림이었다.

16549782905416.png“너도 좀 더 편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오도록 해. 이곳은 신전이니까. 모두 가볍게 입고 다니는데 우리만 묵직하게 치렁치렁 차고 다닐 수는 없잖아.”

16549782905411.png“알겠으니까 어서 나가.”

나는 시카르의 등을 밀었고 그는 재미있다는 듯 버티고 섰다가 내 볼을 꼬집고는 방을 나갔다.

16549782905411.png‘애 키우는 거보다 시카르를 길들이는 게 더 힘든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시카르의 말대로 가볍게 블라우스와 롱 플리츠 스커트를 입고 나왔다. 내 옷차림을 본 시카르는 잘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16549782905416.png“훨씬 낫군.”

그리고 우리는 곧장 할머니를 따라 대신관님을 먼저 찾아뵈었다. 원작에서는 대신관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정도로만 나왔기에 어떤 인물인지 궁금했었다.

16549782905411.png‘아마 매우 카리스마 넘치고 고귀한 분이시겠지.’

그렇게 두근거리면서도 두려운 마음으로 대신관님을 뵙게 되었다. 그런데 대신관님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동네 할아버지 같은 푸근한 인상과 털털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계셨다.

16549783019114.jpg“허허. 어서들 오십시오. 저희 레페르 대신전에 성금을 아끼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16549782905416.png“저희 할머니를 이곳에 기거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16549783019114.jpg“이곳은 신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올 수 있는 곳입니다. 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느끼신다면 언제든 오십시오.”

16549782905416.png“언제든 성금이 더 필요한 일이 생기거든 말씀해 주십시오. 여력이 되는 대로 정성을 바치겠습니다.”

16549783019114.jpg“허허.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군요. 그럼 기탄없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성금을 요청하겠습니다.”

16549782905416.png“바라는 바입니다.”

고귀하신 대신관 님의 성격이 이렇게 호탕하다니.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꾸밈없고 좋아 보였다. 대신관 님께 인사를 올리고 거금의 성금도 전달한 후에 우리는 신관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다음은 할머니가 기거 중이신 생활관 전체를 대충 둘러보고 난 뒤, 예배실로 향했다. 본관에 예배실은 매우 크다고 하지만, 생활관에 있는 예배실은 협소했다.

16549783019143.png“앞으로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란다.”

16549782905411.png“네. 할머님.”

신전에 있는 동안은 할머니를 따라 신전 일정에 맞춰서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일정이 꽤 빡빡했다.

16549783019143.png“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은 오전 예배와 저녁 예배는 결코 빠져서는 안 된단다. 그리고 오전 예배가 끝나고 나면 단체 체조가 있는데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차분하게 듣고 있던 시카르는 단체 체조 얘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16549782905416.png“단체 체조라고요? 할머니? 운동도 아니고 체조라니.”

16549783019143.png“네가 그동안 했던 운동과는 다르니 막상 해보면 재미있을 게다.”

시카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82905416.png“알겠어요. 할머니.”

16549783019143.png“내가 편지에 쓰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수습 신관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단다. 요즘은 이곳 마을 아가씨들이 입을 옷을 만들고 있지.”

16549782905416.png“옷이요?”

16549783019143.png“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뭔지 보여줄 테니 따라오거라.”

할머니를 따라간 작은 방은 가내수공업을 할 수 있는 봉제 공장 같았다. 구석에는 천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테이블 중앙에는 반짇고리들이 있었다. 곧 있으면 이 마을에서 성인식이 열리는데, 그것은 마을 평민들의 데뷔탕트와도 같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이곳 수습신관들은 성인식 때 마을 청년들이 입을 옷을 만들고 있는 중이란다.

16549783019143.png“원래 이 방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던 중이었는데, 너희들이 온다고 해서 다들 자리를 비워줬단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이든 시카르는 등골이 싸해졌는지 갑자기 깜짝 놀라며 경계하듯 물었다.

16549782905416.png“할머니, 그 말씀은…….”

16549783019143.png“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단다. 시카르. 여기 있는 동안 너희도 함께 봉사활동 체험을 했으면 하는구나.”

16549782905416.png“할머니, 전, 바느질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16549783019143.png“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모르는 게 있을 때마다 하나씩 배우는 것이지. 바느질을 할 줄 모르는 건 자랑이 아니니 이번 기회에 배우도록 하거라.”

16549782905416.png“하지만, 할머니. 제가 배워서 쓸 일이…….”

16549783019143.png“지금처럼 봉사활동을 할 때 쓰면 되겠지.”

시카르는 더 대꾸하지 않고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시카르가 바느질이라니. 저 덩치에 손에 바늘을 들고 있는 것만 봐도 웃길 것 같았다.

16549783019143.png“마침 너희가 떠나기 전에 마을에서 성인식이 열리니 가기전에 보고 가려무나.”

내가 살던 현대에도 성년의 날이 있긴 하지만, 나는 그날 아무것도 받은 게 없었다. 성인식도 들어보기만 했을 뿐 경험해 본 적 없었기에 궁금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역시나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할머님이 우리를 생각해서 좋은 뜻으로 해주시는 말씀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겠지.

16549782905411.png“성인식이라니. 너무 재미있을 거 같아요. 할머님.”

할머니는 뜻밖이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16549783019143.png“유라. 네가 살던 곳에서는 성인식을 하지 않았니?”

16549782905411.png“네? 어, 그러니까…….”

나는 도와달라는 듯 시카르를 쳐다보았지만 시카르는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어디 어떻게 변명을 하는지 두고 보자는 식이었다. 괘씸한 인간. 괜히 맞장구치려다 말실수만 해버린 건가.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리려는 찰나에 시카르가 웃으며 말했다.

16549782905416.png“유라가 그때 아파서 성인식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16549783019143.png“저런,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이번에는 꼭 참석해서 구경하고 오도록 해라. 나는 나갈 수 없겠지만 너희들이라도 마음껏 가서 구경하련.”

16549782905416.png“평민들 축제에 우리가 가면 폐나 끼치겠지요. 저희는 할머니와 함께 있다 돌아갈 생각입니다.”

16549783019143.png“그때만큼은 신분을 감추고 놀아도 나쁘지 않겠지.”

묵묵히 듣고 있던 시카르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는 듯 얼굴을 붉혔다.

16549782905416.png“그렇게까지 참석하고 싶은 축제는 아니니 괜찮습니다. 할머니.”

시카르가 역시 눈치가 있어. 아무래도 나를 배려해서 하는 말 같았다. 나도 성인식이 궁금하긴 했지만 참석할 자신은 없었으니까.

16549783019143.png“유라가 아파서 성인식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가서 구경시켜 주려무나.”

16549782905416.png“할머니의 마음은 잘 알지만, 유라는 광장공포증이 있습니다. 할머니.”

16549783019143.png“광장공포증?”

16549782905416.png“사람이 너무 많거나 낯선 곳을 두려워하는 심리인데, 갑자기 숨이 막히거나 기절을 할 수도 있다고 해요.”

16549783019143.png“저런. 그런 게 있다니. 세상에는 참 몹쓸 병들이 많구나.”

16549782905416.png“할머니. 그건 병은 아니고 장애라고 해요. 불안 장애같은 그런 거요.”

할머니는 내가 많이 딱 하다는 듯 내 손을 잡고는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다.

16549783019143.png“그렇구나.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

내 손을 붙잡아준 할머니 손이 너무 따뜻했다. 그저 손 한번 잡아줬을 뿐인데도 나를 정말 생각해주는 할머니의 마음이 와 닿는 것 같았다.

16549782905411.png“아, 아니에요. 할머님.”

16549783019143.png“결혼식을 조촐하게 올려서 왜 그런가 했더니,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그건 그렇지. 시카르가 그런 거 보면 은근히 배려를 잘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16549783019143.png“하지만, 유라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이곳 마을은 몇 가구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많지 않거든.”

16549782905411.png“그래요?”

16549783019143.png“그럼. 어림짐작 잡아도 수십 명도 안 될 것 같구나. 그 정도도 힘드니?”

16549782905411.png“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낯선 사람들이라…… 어울리긴 힘들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으면, 한편에 앉아서 구경은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할머니. 주목받지만 않는다면요.”

16549783019143.png“그렇게만 해도 아주 큰 추억을 만들고 올 수 있겠지.”

우리의 얘기를 곰곰이 듣고 있던 키안은 뭔가 굳게 다짐을 한 듯 나를 보며 말했다.

16549783136914.png“걱정 마세요. 어머니. 제가 어머닐 지켜드릴게요.”

16549782905411.png“응……?”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는 키안에게 감동의 눈빛을 보내려는 그 순간, 시카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16549782905416.png“내 아내는 내가 지키겠다.”

16549783136914.png“됐어요. 공작님. 제 어머니니까 제가 지킬게요.”

16549782905416.png“그전에 내 아내이다.”

16549783136914.png“그전에 제 어머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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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르 때문에 민망해서 할머니 얼굴을 볼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마우시게도 흐뭇한 눈으로 내 손을 잡은 채 활짝 웃으셨다.

16549783019143.png“우리 유라는 좋겠구나. 지켜 줄 남자들이 많아서 말이지.”

16549782905411.png“아, 아니에요. 할머님.”

부끄러웠지만, 할머니의 말씀대로 두 남자가 나를 지켜 주겠다고 하니, 기분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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