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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악역을 길들이는 방법 (4) (63/197)

63화. 악역을 길들이는 방법 (4)2022.01.06.

협박이 아니라면 키안이 갑자기 다정하게 시카르의 손을 잡는 게 설명이 안 되는데. 내 의심의 눈초리를 느낀 것인지 시카르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1654978503084.png‘아, 아니지. 시카르는 원래 날 항상 빤히 쳐다보고 있었지.’

아무래도 시카르에게 이 일에 대해 물어보려는 찰나에 키안이 내 옷깃을 잡았다.

16549785030847.png“어머니. 공작님을 의심하지 마세요.”

깜짝이야. 키안은 마치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 말해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654978503084.png“으응? 키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니.”

16549785030847.png“이제부터는 공작님과 사이좋게 지내보려고 해요. 어머니!”

1654978503084.png“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물론 키안의 생각이 기특하긴 했지만 아이가 갑자기 변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는 키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럴 텐데……. 키안은 조금 당황해하더니 제 볼을 슬쩍 긁적거리며 말했다.

16549785030847.png“어, 그게 그러니까…….”

역시나 재빨리 대답을 못 하는 것 같은데. 그때, 불쑥 시카르가 끼어들었다.

16549785030868.png“내가 잘해주기로 했으니까. 그래서 키안도 앞으로 내게 잘해주기로 했다.”

시카르는 그렇게 말하며 키안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고, 키안은 시카르의 다리를 붙잡았다.

16549785030847.png“네. 맞아요. 어머니. 공작님이 저에게 잘해줘서 저도 공작님께 잘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뭔가, 연출된 것만 같은 느낌이 계속 드는 두 사람의 태도에 나는 의심을 쉽사리 거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의 근처를 빙빙 돌며 말했다.

1654978503084.png“산책 중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면, 정말 두 사람이 잘 지내보기로 의기투합이라도 하게 된 거야?”

16549785030868.png“후자라고 할 수 있겠지. 우리가 잘 지내보기로 의기투합을 한 것이다.”

16549785030847.png“맞아요. 어머니. 공작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1654978503084.png“그런데 왜 이렇게…… 두 사람의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걸까.”

두 사람은 이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를 보며 하하하 웃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시카르를 살짝 불러내듯 데리고 와서 말했다.

1654978503084.png“시카르. 너, 키안한테 뭐 협박한 거 아니야?”

16549785030868.png“협박이라니. 넌 쟤가 나한테 협박을 받을 녀석이라고 생각하나? 키안은 내가 협박한다고 해서 먹힐 아이도 아니다.”

1654978503084.png“그런데 왜 저러냐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변한 게 이상하잖아. 지금 내 의심은 꽤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걸 너도 알고 있지?”

16549785030868.png“두 모자가 아주 나를 지지고 볶는군. 그건, 저 쥐방울이 얼마나 맹랑한지 네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되레 협박을 당한 건 나란 말이다.”

1654978503084.png“협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키안한테 무슨 협박을 당했다는 거야?”

16549785030868.png“큼…… 그러니까, 네게 잘해주지 않으면 내게 마음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

난 또 뭐라고. 그걸 협박이라고 할 수는 없지.

1654978503084.png“그게 어떻게 협박이야. 그 정도 말은 누구나 다 하는 건데.”

16549785030868.png“네게 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그런 게 있다.”

1654978503084.png“됐어. 것보다 키안에게 쥐방울이라니 앞으로 그 말은 금칙어로 정할게.”

16549785030868.png“금칙어라니? 앞으로 그 단어를 못 쓰게 하겠다는 건가? 나에게?”

1654978503084.png“응.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런 말은 금지야.”

16549785030868.png“내가 그 금칙어를 어기면, 뭐 벌칙이라도 받는 건가?”

방금 급조해낸 생각이라 벌칙을 따로 정한 것은 아니었다. 금칙어를 설정했으니 벌칙을 정해야 시카르가 조심할 텐데. 벌칙을 뭐로 하지. 고민하는 찰나에 시카르는 또, 그 특유의 냉기 서린 조소를 지었다.

16549785030868.png“왠지 받고 싶어지는데 그 벌칙이 뭔지 기대도 되고.”

1654978503084.png“그 벌칙이 뭐가 될 줄 알고 기대를 한다는 거야?”

16549785030868.png“글쎄. 네가 날 좋아하니까. 아무래도 벌칙이 뭐, 키스 이런 거려나? 아니면 뭐, 포옹? 아니면 뭐…… 또 뭐가 있지……?”

또 제대로 착각으로 빠지는구만. 그래. 내가 그 착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지. 고로 난, 시카르가 질색하는 걸 시킬 생각이었다.

1654978503084.png“그래? 그럼 벌칙을 칼 같이 지키겠다는 거지?”

16549785030868.png“뭐, 네가 원하는 건 내가 해준단 말이지. 룰은 룰이니까.”

1654978503084.png“좋아. 난 ‘사랑해’라고 말해주길 원해.”

그 순간 나는 보았다. 그대로 경직된 듯 굳어버린 시카르를. 곧 죽어도 이건 못 하겠지? 벌써부터 항마력이 똬리를 트는 것 같지? 조금 전만 해도 나를 잡아먹을 듯 다가오던 시카르는 그대로 돌아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한마디로 키안의 옆에 앉아서 차분하게 옷 만들기에 열중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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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카르와 내가 남아 있는 원단을 모두 재단해놓을 때까지도 할머니는 오지 않으셨고, 키안은 그새 낮잠에 빠져 있었다.

1654978503084.png“시카르. 어떻게 된 건지 가서 할머니 좀 찾아보면 안 돼?”

16549785030868.png“할머니를 찾기 시작하는 순간 나는 눈치 없는 손자가 될텐데?”

1654978503084.png“눈치 없는 손자라니?”

16549785030868.png“아직까지 안 오시는 거 보면 모르겠나. 우리 둘이 오붓하게 있길 바라는 것이지.”

도무지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있나.

1654978503084.png“그게 정말이야?”

16549785030868.png“내가 어릴 때도 할머니는 종종 그러셨으니까.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다시 말해주지. 할머니께서 내 동생을 원하셨을 때 그러셨지.”

나는 또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체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대화를 끝내기 위해 자고 있는 키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키안은 또 인상을 쓰며 자고 있었다.

1654978503084.png“시카르. 키안이 또 인상을 쓰는데?”

시카르는 심드렁한 눈으로 키안을 보며 말했다.

16549785030868.png“키안이 악몽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나?”

1654978503084.png“글쎄. 하지만 이 어린 키안이 인상을 쓰고 자는 걸 볼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파.”

16549785030868.png“그래도 예전보단 한결 좋아졌으니 곧 괜찮아질 것이다.”

1654978503084.png“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16549785030868.png“너를 잘 지키고 있으니까. 키안의 미간에 있는 주름을 펴주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

그래도 시카르가 그렇게 말해주니 위안이 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키안의 미간 주름을 펴주려고 하다가 시카르와 키안이 앞으로 잘 지내보기로 한 것이 떠올랐다.

1654978503084.png“음…… 키안의 미간은 시카르 네가 펴주는 게 좋겠어. 앞으로 키안에게 더 잘해주기로 했다니까 이런 것도 네가 해.”

시카르는 잠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1654978503084.png“어? 너 지금 나 노려본 거야?”

16549785030868.png“그런 적 없다.”

시치미 떼는 것도 냉소적이긴. 어쨌든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며 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키안의 미간 주름을 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말 키안의 미간이 그대로 펴졌다.

1654978503084.png“어떻게 된 거야? 정말 괜찮아서 그런 거야?”

16549785030868.png“네가 하도 걱정하길래 그냥 해본 말이었는데 정말 괜찮은 것 같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시카르는 키안을 한참 더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16549785030868.png“이 녀석도 잘 때는 평범한 꼬맹이군.”

방금 키안을 보고 웃은 건가? 아니면 내가 비웃음을 잘못 본 건가.

1654978503084.png‘아니야. 분명히 웃었어.’

1654978503084.png“너, 너 방금 키안을 보고 웃었지?”

16549785030868.png“내가?”

1654978503084.png“그래. 너 지금 키안을 보고 웃었어.”

16549785030868.png“그냥 피식한 정도겠지.”

1654978503084.png“그러니까, 너 그런 사람 아니잖아. 누구 보고 웃거나 피식거리거나 그러지 않았잖아. 인상 쓰거나 화내거나 무시하거나 조소하거나 그런 것만 하는 사람이잖아.”

16549785030868.png“그래? 그럼, 이제는 믿을 수 있겠지? 내가 키안에게 잘해주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말이지.”

글쎄. 저렇게 얼굴을 보고 웃는 건 마음에서 우러나야 가능한 일인 것 같은데. 잘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사람을 보고 웃음이 절로 나오는 건 아니니까. 이번만큼은 시카르가 키안과 잘 지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 왠지 진심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정말 서로를 위해서 다행인 일이었다.

1654978503084.png‘그럼 이제부터 시카르에게 고삐를 한 번 걸어볼까.’

1654978503084.png“시카르. 그럼 오늘은 키안과 함께 자보는 건 어때?”

시카르는 아무도 건들지 않았는데 혼자 의자에 앉아 있다가 넘어질 뻔하더니 뭔가 헛소리를 들은 것 마냥 나를 보며 말했다.

16549785030868.png“뭐라고?”

1654978503084.png“이왕 키안과 잘 지내기로 했으니 오늘 둘이 오붓하게 함께 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나도 오랜만에 할머님과 단둘이 오붓하게 함께 자고 말이야.”

예전에 키안이 잠시 머물렀을 민가에서 할머니와 배곯아 가며 함께 잤던 기억이 종종 떠올라 그때가 그리웠던 참이기도 했다. 그때 할머니와 지냈던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의지했던 할머니를.

1654978503084.png“아무튼, 그럼 오늘은 나 오랜만에 할머니와 같이 잘 테니까. 넌 키안과 자. 알았지?”

16549785030868.png“쿨럭. 뭐, 나는 그렇다 쳐도 키안이 그러자고 할지 모르겠군. 나보다 더 질색할 거 같은데?”

1654978503084.png“아니. 좋아할 거야. 앞으로 키안이 너와 잘 지내겠다고 했으니까.”

내 말이 과했나? 크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시카르에게는 꽤 무리한 요구처럼 느껴졌는지 그는 꽤 충격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16549785030868.png“그러니까 네 말은 꼭 같……이 자라는 거지? 저 쥐방울과…….”

1654978503084.png“그 말 금칙어라고 했지? 내가 그 금칙어 쓰면 벌칙이 ‘사랑해’라고도 말한 것도 같은데?”

16549785030868.png“뭐든 한 번은 봐주는 법이다. 그러니 봐주도록 하지.”

1654978503084.png‘마치. 날 봐준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16549785030868.png“그리고 벌칙이 너무 편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난 이 벌칙에 동의 못 하겠다.”

1654978503084.png“좋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편향적이지 않은 벌칙이 있으면 말해봐. 내가 들어보고 수용해줄지 말지 판단할 테니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벌칙이 사라져서인지 시카르의 표정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았다. 그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내 손을 잡고는 내 손등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16549785030868.png“손등에 하는 키스라면 좋을 것 같군.”

나는 손등에 불이라도 난 듯 손을 뒤로 뺐다.

1654978503084.png“이, 이건 아니지. 벌칙을 말하기로 해놓고 다짜고짜 손등에 키스부터 하는 건 반칙이지!”

16549785030868.png“왜, 시범이 너무 악했나. 그렇다면 좀 더 짙게 할 수도 있는데.”

이 미친놈 이거, 또 이러네.

1654978503084.png“너, 말 잘했어. 그럼 ‘사랑해’라는 말도 시범으로 했어야지. 그건 왜 안 하는 거야?”

16549785030868.png“난 그, 사…… 어쩌고를 벌칙으로 정하지 않았으니까. 난 태어나서 그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안 할 것이고. 그러니 그런 말을 시킬 생각이라면 관둬라.”

1654978503084.png“나도 이 손등 벌칙을 받아들일 수 없긴 마찬가지야!”

16549785030868.png“그럼 네가 원하는 벌칙은 대체 뭐지?”

그래서 나는 좀 더 현실적인 벌칙을 목표로 했다.

1654978503084.png“키안과 색종이 접기를 하고 놀든 정령놀이를 하고 놀든, 키안과 함께 놀아주는 거로 할게.”

16549785030868.png“그건 벌칙이 아니라도 어차피 같이 놀아줄 생각이니 다른 것으로 하지.”

다른 것? 다른 게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정말 기막힌 것이 하나 떠올랐다.

1654978503084.png“좋은 게 하나 생각났어.”

16549785030868.png“너무 기뻐하는 네 표정을 보니 의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군. 이상한 것 이라면…….”

1654978503084.png“키안에게 비행기 태워주기! 내 바람은 이거야!”

16549785030868.png“비행기 태워주기……?”

이번에는 내가 직접 시카르의 손을 잡았다. 시카르는 움찔하며 내 손에 잡힌 제 손목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1654978503084.png“자, 내 기억 속에서 하늘을 나는 물체를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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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나는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비행기를 태워주는 모습을 흉내 내기 위해 두 손을 들어 몸을 좌측으로 기울였다가 우측으로 기울였다가를 몇 번 반복했다.

1654978503084.png“이런 거 말이야. 이런 걸 해줘.”

하지만 시카르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내가 잡은 제 손목을 빤히 보며 그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1654978503084.png‘내가 갑자기 잡아서 놀란 건가?’

1654978503084.png“뭐해. 시카르?”

그러자 시카르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16549785030868.png“제대로 못 봤으니까. 다시 내 손 잡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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