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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악역을 길들이는 방법 (7) (66/197)

66화. 악역을 길들이는 방법 (7)2022.01.17.

시카르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그가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트램폴린을 탔을 때 붕붕 뜨는 기분처럼 마음이 붕붕 뜨는, 그런 느낌이었다.

16549785841392.png“난 졸린 것 같아서 먼저 자야겠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데 시카르가 내 손을 잡았다.

16549785841397.png“같이 자.”

16549785841392.png“뭐? 뭘 같이 자?!”

조금은 데워진 내 반응 때문인지 시카르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6549785841397.png“내 말은 일 끝나는 대로 같은 시간에 잠들자는 말이었다.”

16549785841392.png“아, 알겠으니까 손은 놔줘.”

하지만 시카르는 쉽게 놓아주지 않고 계속 내 손을 잡고 있었다.

16549785841397.png“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런 반응을 보인 거지?”

16549785841392.png“네가 또 내 침대로 올라오겠단 말을 할까 봐 그런 것뿐이야.”

16549785841397.png“아니. 그 반응 말고. 내가 네 남편 노릇이 할 만하다고 하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졸리다고 한 것을 묻는 것이다.”

16549785841392.png“얼굴을 붉힌 건 졸려서 그런 거야. 이제 이 손은 그만 놔줘.”

나는 그의 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팔목을 조금 비틀어 보았지만, 시카르의 커다란 손에 잡힌 내 손을 빼내기는 역부족이었다.

16549785841397.png“귀여움을 받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면 꼼지락대지 마라.”

16549785841392.png‘또 명령조야.’

그러고 보니 저 말투도 고쳐야겠다 싶었다. 성인식 축제에 평민 복장을 하고 평민인 척해야 하는데, 저런 말투라면 곤란하지. 그리고 나와 키안에게 계속 명령조로 말하게 둘 수도 없는 일이다. 이 상황도 벗어나고 저 말투도 고쳐야 했기에 나는 마음으로 고삐를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16549785841392.png‘먼저 성인식 축제를 빌미로 저 말투부터 고쳐놔야겠어.’

16549785841392.png“너, 그 말투부터 고치자.”

시카르는 무슨 소리냐는 듯 날 보며 물었다.

16549785841397.png“내 지엄한 말투를 왜 고쳐야 한단 말이지?”

16549785841392.png“네 말투는 너무 오만하게 느껴지잖아.”

16549785841397.png“전에도 말했지만, 이곳은 신분 사회이고 나는 태어나서 늘 명령을 내리는 말만 했었다. 그런데 무슨 말투를 바꾸라니 납득하기 힘들다.”

네 인간관계가 매우 협소한 데다 너와 같은 악역들과만 대화를 나누었던 탓에 말투가 그 모양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는 바란 말씀이야.

16549785841392.png“나도 알아. 네가 살면서 남들과 해본 대화라고는 명령하고 지시하고 거래하고, 그런 게 전부라는 것을 말이야. 하지만 지금 너는 한 가정의 가장이야. 아이 아빠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야. 물론 그게 위장이라고 해도 지금 그게 네 위치란 말이야.”

시카르는 내 말에 진지하게 경청하듯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16549785841397.png“듣고 있으니 계속해봐라.”

16549785841392.png“그러니까! 그 말투부터 고치자. ‘듣고 있으니 계속해봐라.’ 이렇게 말고, ‘듣고 있으니 계속 말해도 괜찮아.’ 이렇게, 말투는 물론이고 어조도 아주 부드럽게 말이야.”

시카르는 기가 막히다는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나도 같이 노려봐 주었다.

16549785841392.png“육아와 관련된 문제는 뭐든 들어주기로 했잖아.”

16549785841397.png“이게 육아와 상관 있는 건가?”

16549785841392.png“당연히 상관 있지. 내가 하는 모든 게 결론적으로는 모두 키안을 잘 키우기 위한 과정들이니까.”

16549785841397.png“하지만 난 그런 소름 돋는 말은 못 한다.”

시카르의 입장에서는 닭살스러운 말이니까 소름 돋는다고 표현하는 건가.

16549785841392.png“좋아. 그럼 네게 맞는 단계로 맞춰줄게. ‘듣고 있으니 계속해봐.’ 정도라도 바꿔.”

시카르는 또 대답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태어나 한 번도 누군가에게 말투를 고치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 심기가 매우 불편하겠지. 하지만, 나도 이제는 네 목줄을 쥐어야겠단 말이다. 키안을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 없다고! 나는 ‘엄마는 위대하다’라는 말을 속으로 되뇌며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뜻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16549785841392.png“이 정도도 못 고친다면 넌 한 가정의 아빠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자격 상실이야!”

시카르가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매서워서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지만, 나도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시카르의 괴팍한 성격이 나올까 봐 긴장한 탓에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기분이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16549785841392.png‘괜찮아. 여긴 신전이야. 할머니도 계신 곳이고 내가 기절해서 뇌진탕이 온다 해도 나를 치료해줄 신관들이 있어. 그러니까 시카르가 아무리 노려봐도 버텨야 해!’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던 시카르는 천천히 입을 떼며 말했다.

16549785841397.png“듣고 있으니 계속해봐.”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16549785841392.png“뭐라고?”

16549785841397.png“듣고 있으니 계속해보라고. 아니, 듣고 있으니 계속해봐.”

시카르의 말투는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명령조의 딱딱한 말투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한 것이 무색할 만큼 시카르의 말투가 너무나 부드러워져서 마음이 탁 놓였다. 입꼬리가 올라갈 것처럼 금세 기분이 나아졌지만, 나는 부러 좋아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매우 잘했다고, 그렇게 하는 거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를 따라 시니컬하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16549785841392.png“좋아. 통과.”

시카르는 본인의 본래 성격이 냉소적이라 그런지 그 말 한마디에도 매우 좋아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16549785841397.png“후후. 역시 한 번에 통과했군.”

16549785841392.png‘아. 좀 더 무심하게 말할걸.’

우리는 다시 오붓하게 제복 만들기에 열중했고, 실타래를 땋던 나는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침대에서 자고 있었지만, 시카르는 바느질을 하다가 잠이 들었는지 어울리지도 않게 한 손엔 천을 쥐고, 남은 한 손은 내 손을 잡은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침대로 옮겨 놓고 본인은 좀 더 바느질을 좀 더 하다가 잠들기 직전에 내 손을 잡은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잠든 그를 조용히 살폈다. 눈을 감고 있어도 길게 뻗은 눈매와 짙게 내려오는 속눈썹. 오똑한 콧대와 섹시하게 날렵한 입술은 조각 같기만 했다. 조각이란 말도 부족할 만큼 잘생겨 보였다. 그래서인지 심장이 또 쿵쿵 뛰었다. 나도 사람이니, 잘생긴 얼굴을 보고 심장이 뛰는 건 정상적인 반응인 것이다. 그러니까 꼭 심장이 뛴다고 해서 시카르에게 마음이 기운 건 아니란 말이다. 나는 시카르의 손등을 툭툭 치며 그를 깨우려다 그가 나를 잡아당긴 게 떠올라서 그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뒤로 물러나 그를 불렀다.

16549785841392.png“시카르. 일어나. 아침 가져와야지.”

둔하지는 않은 시카르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잠에서 깨어났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긴 했지만, 앞머리가 살짝 헝클어져 내려오는 몽롱한 시선에 정신이 홀리는 느낌이었다. 시카르는 나를 조금 더 쳐다본 후에 정신을 차리려는 듯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16549785841397.png“일찍 일어났군.”

16549785841392.png“나 배고파.”

그제야 완전히 정신이 드는지 시카르가 두 눈을 부릅떴다.

16549785841397.png“당장 식사를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아, 아니. 기다려.”

16549785841392.png‘학습능력이 좋은 건 인정해야겠는데.’

어제 딱, 한 번 지적했을 뿐인데도 스스로 점검하고 고치는 게 조금은 기특해서 미소가 나오려는 것을 나는 애써 참았다.

16549785841392.png“얼른 갔다 와.”

시카르는 벌떡 일어나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16549785841397.png“또 필요한 건 없는 건가?”

16549785841392.png“없어.”

간단한 내 대답에 다시 나가는 시카르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 음…… 나도 잠이 덜 깼군. 식사를 끝내고 나면, 하루 종일 공방에서 할머니와 키안을 만나 봉사활동을 하고 저녁에는 시카르와 함께 제복을 만드는 나날이 반복됐다. 며칠간 같은 날들의 반복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즐겁고 평안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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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바야흐로 성인식 축제 당일이 찾아왔다. 성인식 축제는 젊은 남녀들의 축제와도 마찬가지였기에 할머니와 키안은 참석할 수가 없었다. 키안은 너무나도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즐거운 축제를 보내고 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너무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내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아쉬웠다. 제르미를 데리러 가는 길에 푸념하듯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들은 시카르는, 오른손에 든 제복을 왼손으로 치우더니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16549785841397.png“할머니께서 키안에게 아쉬워하면 네가 가서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기지 못할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키안이 전혀 아쉬운 내색을 하지 않았던 거지. 키안이 속이 깊군.”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항상 말하지 않아도 가려운 곳을 긁어주시듯 나를 잘 챙겨주시는 할머니가 새삼 또 고마웠다. 제르미의 방문 앞에 도착한 우리는 노크를 몇 번 했지만, 안에서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16549785841397.png“뭘 하길래 인기척이 없는 거지.”

시카르가 먼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나도 따라 들어갔지만,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왜냐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카르가 손으로 내 눈을 가리며 나를 자신의 앞으로 끌어당겼으니까.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을 대화를 통해 시카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16549785954433.png“어? 공작님 오셨습니까.”

16549785841397.png“어서 옷부터 입어라. 하마터면 내 아내가 못 볼 걸 볼 뻔했다.”

시카르의 목소리는 조금 화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시카르의 손에 눈이 가려진 채로 인사를 해야 하는 건지 아닌지 고민스러웠지만, 일단은 인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그래서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일단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말했다.

16549785841392.png“안녕하세요. 제르미 님.”

16549785954433.png“어서 오십시오. 공작부인.”

16549785841397.png“그 꼴로 내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게 불쾌해서 들어줄 수가 없으니 어서 옷부터 입어라.”

16549785954433.png“그럼 다시 나가시면 될 텐데요. 공작님…….”

16549785841397.png“까불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16549785954433.png“……죄송합니다. 공작님.”

제르미는 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꼭 저렇게 한마디씩 대꾸를 하다가 혼이 나는구나. 시카르가 사자라면 마치 제르미는 힘은 없지만, 깡은 있는 벌꿀 오소리 같았다. 몸을 닦는 소리가 끝나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툭 던지는 소리가 잇따라 들렸다. 아무래도 시카르가 테이블 위로 준비한 제복을 던지는 모양인 듯했다.

16549785841397.png“이것으로 갈아입어라.”

16549785954433.png“아, 이건…….”

16549785841397.png“전에 말했던 제복이다.”

16549785954433.png“네. 공작님.”

곧이어 부스럭부스럭 옷 갈아입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제르미의 투덜거리는 불만도 들려왔다.

16549785954433.png“이, 이렇게 달라붙는 옷은 처, 처음…… 끄응…… 처음인데요? 공작님? 무슨 옷이 이렇게…… 끄응. 공작님은 대체 이렇게 불편한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셨던 겁니까. 끄응…….”

늘 오버핏으로 된 로브만 입다가 갑자기 타이트한 옷을 입으려니 불편하겠지. 물론 그가 불편할 것을 예상은 했지만 제르미의 불만은 상상 초월이었다. 제르미는 옷을 입는 동안 계속 구시렁구시렁거리다가 결국 시카르가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 입을 어쩌고저쩌고 등의 섬뜩한 말로 일갈하고 나서야 완전히 다물었다. 옷을 다 갈아입은 제르미의 헉헉거림이 멈추고 나자 시카르는 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제복을 갈아입은 제르미의 모습이 매우 궁금했던 참이었기에 나는 시카르의 손이 풀리자마자 제르미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는 멋진 왕자님이라도 구경하듯 낮게 탄식했다. 제르미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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