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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부자의 계략 (3) (79/197)

79화. 부자의 계략 (3)2022.03.03.

시카르가 돌아오고 난 후 우리는 금세 다시 그가 원래부터 있던 때로 일상을 되찾았다. 단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시카르와 키안의 사이였다. 분명히 첫날엔 둘이 앙숙처럼 신경전을 벌였던 것 같았는데 이 둘은 다시 사이가 원만해 보였다.

16549789139932.png‘두 사람의 사이는 정말 알 수가 없다니까.’

오늘이 가족의 날이어서 그런지 두 사람 사이가 더욱 좋아 보였다. 이를 테면, 아침 식사에서 시카르가 키안의 고기를 일일이 다 썰어서 준다든지, 키안이 그것을 먹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는 것 등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저게 과연 웃음인지 울음인지 의심될 만큼 어설픈 미소를 짓긴 했지만, 그건 아마 아직은 어색한 서로를 향해 웃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은 가족의 날인 만큼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 물론 시카르는 기겁을 하겠지만, 생일에는 꼬깔 모자를 쓰듯이 가족의 날에는 이런 것도 쓰면 좋을 것 같았으니까. 그것은 바로, 귀여운 토끼 귀가 달린 머리띠였다. 우리는 앞으로 사자 가족이 아닌, 토끼 가족처럼 단란한 분위기의 가족이 될 것이라는 포부도 있었고 가족의 날을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보내기 위한 각오를 표현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시카르가 거절할 수 없게 예전처럼 로즈마리 게임을 해서 시카르의 머리에 머리띠를 쓰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가족의 날을 기념해서 피크닉을 즐기기 위해 정원에서 만난 그때, 절대 그럴 일 없을 것 같던 시카르가 먼저 토끼 머리띠를 머리에 쓰고 나타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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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9789139932.png‘설마 전장에 나가서 머리를 다치고 온 건가?’

난 너무 황당하다는 듯 키안을 쳐다봤지만, 키안은 자신도 놀랐다는 듯 어색하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키안은 당황한 표정도 왜 이렇게 어색하게 짓는 걸까. 사실은 웃긴데 웃을 수가 없어서 이런 표정을 짓는 걸까. 그것보다 시카르가 이 머리띠의 존재를 어떻게 알고 착용한 거지? 이 머리띠의 존재를 아는 건 나와 키안 뿐인데. 설마, 키안이? 내가 설마하는 눈으로 키안을 보자 키안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16549789139946.png“공작님께서 제 부탁을 들어 주신 거죠.”

세상에. 키안이 내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미리 부탁한 모양이구나. 참, 배려가 깊기도 하지. 시카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1654978913995.png“가정의 날에 이 머리띠를 착용하는 게 유행인 것 같길래.”

16549789139932.png“그렇다고 네가 네 손으로 직접 이 머리띠를 꼈다고?”

1654978913995.png“물론 나만 착용하진 않았지.”

그게 무슨……. 나는 곧 시카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곧 거실로 듀리온과 비카가 어정쩡한 얼굴을 하고 나타났으니까. 듀리온은 어색한 듯 머리띠에 달린 토끼 귀를 만지고 있었고, 비카는 뭐 씹은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16549789139963.png“내가 140년을 넘게 살았지만, 이런 귀때기를 차는 건 처음이라고. 대체 이런 건 왜 쓰라는 거야!”

비카가 으르렁 거리는 것을 보니 시카르에게 또 협박을 당해서 어쩔 수 없이 쓴 것 같았다. 듀리온은 뭐가 그리 수줍은지 볼이 조금 빨개져 있었다.

16549789139966.png“전 이런 게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괜찮나요?”

말하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16549789139932.png“듀리온님. 머리띠는 마음에 드시는 거예요?”

16549789139966.png“네. 마님. 지금까지 이런 걸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귀엽고 마음에 쏙 듭니다.”

비카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듀리온의 토끼 귀를 잡아당겼다.

16549789139963.png“너만 마음에 들면 뭐해. 사람들이 널 봤다면, 네가 미친놈인지 알고 도망갔을 거야.”

16549789139966.png“내가 그 정도로 귀여워졌어?……?”

비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듀리온의 토끼 귀 양쪽을 잡고 흔들었다.

16549789139963.png“넌 그게 귀엽다는 말로 들리냐? 엉? 누가 공작의 충복이 아니랄까 봐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들어!”

그동안 키안은 흥분한 비카를 다루는데 꽤 능숙해져 있었다. 키안은 비카를 진정시키듯 그녀를 밖으로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16549789139946.png“비카님. 진정하시고 이제 우리 이제 피크닉을 즐겨요!”

  *** 우리는 공작저 내에 녹음이 우거진 정원에서 피크닉을 준비했다. 듀리온은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서 그런 듀리온을 배부른 돼지라며 놀리던 비카도 금세 잠이 들었다. 오늘은 도란도란 못 다한 얘기를 좀 더 하려 했는데, 두 사람이 잠든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키안도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보니 나무 그늘 아래가 꽤 시원했던 모양이었다. 이따가 깜짝 선물로 시카르에게 카네이션을 주기로 했는데 이렇게 졸다니. 하지만, 조금 자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16549789139932.png“키안. 많이 졸리면 잠깐 눈을 붙이는 게 어때? 이따 내가 깨울 테니까 조금만 자도록 해.”

16549789139946.png“그럼 어머니. 저 조금만 눈을 붙일 게요. 어제 비카 님과 정령수업을 오래 해서 그런지 잠이 쏟아지는 것 같아요.”

16549789139932.png“그래. 그렇게 해.”

시카르는 키안이 다 컸다고 생각해서인지 잠을 청하려는 키안을 더는 무릎 위에 재우지 않았다. 하지만, 다리를 베개 해줘야지.

16549789139932.png“시카르. 뭐해. 베개가 없잖아.”

시카르는 그제야 제 다리를 베개 삼으라는 말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리 한쪽을 펼치고는 제 허벅지를 툭툭 쳤다. 여기 와서 제 다리를 베고 누으란 말이었다. 키안도 별로 내켜하는 눈치는 아닌 듯했지만,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시카르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어색한 사이는 잦은 스킨쉽으로 메워야지. 우거진 녹음을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총총히 들어오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모두가 잠이 든 평안한 오후였다. 시카르는 제 머리에 차고 있는 토끼귀 머리띠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1654978913995.png“이제 이건 그만 빼도 되지 않나?”

16549789139932.png“다들 끼고 자는 거 안 보여? 오늘은 우리가 토끼 가족이 됐다 생각하고 끼고 있어.”

1654978913995.png“이런 걸 착용할 생각을 하다니 네가 사는 곳에 있는 사람들의 발상은 정말 기상천외하군.”

16549789139932.png“왜, 귀엽잖아.”

심드렁한 얼굴로 바닥에 손바닥을 짚으며 시선을 돌리는 시카르를 보자, 대신전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미처 그때는 알지 못했던 말이.

16549789139932.png“쿠마마.”

내 말에 시카르가 움찔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16549789139932.png“쿠마마.”

움찔하던 시카르의 귓볼이 붉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비카의 말로는 이 말이 엘프어라고 했는데, 알고 보면 시카르의 귀를 빨개지게 하는 주문인 거 아니야? 시카르는 의외라는 듯 보다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웃었다.

1654978913995.png“그래. 그땐 그냥 지나갔지만, 생각해보니 네가 그 말을 비카에게 물었더군.”

16549789139932.png“맞아. 그게 그런 뜻이었다며? 그래서 네가 그때 얼굴이 벌게져서…….”

1654978913995.png“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내가 언제 얼굴이 벌게졌다고 그래!”

16549789139932.png“지금도 얼굴이 붉은데? 못 믿겠으면 내 기억을 통해서 봐. 그럼 되잖아.”

내가 손을 내밀자 시카르는 내 손을 잡으려다 말았다.

1654978913995.png“됐다.”

16549789139932.png“참. 오늘 이따가 후작님도 오실 거야.”

1654978913995.png“대체 그 인간은 가정의 날에 왜 자꾸 공작저를 오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잠든 키안을 보며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16549789139932.png“키안에게는 또래 친구가 필요하니까.”

1654978913995.png“키안에게는 자신을 다해 충성을 바칠 신하가 필요할 뿐, 벗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

16549789139932.png“키안이 듣겠어.”

1654978913995.png“걱정마. 세상 모르고 자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하긴, 키안에게서 인기척을 느꼈다면 시카르가 그런 말도 하지 않았겠지. 시카르와 나는 말 없이 불어보는 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있다보니 점점 눈꺼풀이 짙게 내려와서 나도 모르게 낮잠에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비카와 듀리온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시카르의 품에 안겨 있었다.

16549789139932.png“비카 님과 듀리온 님은 어디로 가신 거야?”

1654978913995.png“네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악몽의 정령들을 찾아서 제거하라고 시켰다.”

그렇구나. 낮잠자는 사이에도 악몽은 꿀 수가 있으니까.

16549789139932.png“비카 님이 고생하셨겠구나.”

1654978913995.png“그걸 알면, 빨리 원인을 찾아서 제거를 해야겠지. 그런데 원인을 모르니…… 그렇다고 원인도 찾지 못하는 반복되는 악몽을 꾸게 할 수도 없으니 여러모로 딜레마군.”

시카르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키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6549789139932.png“시, 시카르. 키안이 다 듣고 있잖아.”

시카르는 뭐 어떠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4978913995.png“키안이 알면 안 되는 건가?”

16549789139932.png“괜한 걱정을 시키니까 그러지.”

생각대로 키안은 너무나 걱정이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16549789139946.png“악몽을 꾸시는 거예요?”

16549789139932.png“아, 아니 그게 아니고, 키안. 네가 그렇게 걱정할 게 아니고.”

하지만 이미 키안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해 보였다.

16549789139946.png“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가 있어요.”

16549789139932.png“괜한 걱정이니까 그렇지.”

16549789139946.png“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16549789139932.png“그래. 그건 우리가 찾을 테니까 키안 너는 네 앞날만 신경쓰도록 해. 난 네게 걱정을 주기 싫어. 그건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야.”

키안은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16549789139946.png“좋아요. 하지만, 제가 방법을 찾게는 해주세요. 저 또한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부끄러울 테니까요.”

나는 키안의 감동 어린 말에 또 코끝이 찡해졌다.

16549789139932.png“키안 넌 정말 종종 나를 감동 시킨다는 걸 알고 있니?”

16549789139946.png“어머니는 항상 저를 감동 시키는 걸요.”

16549789139932.png“키안…….”

우리는 감동한 듯 충만한 사랑으로 서로를 꼭 껴안았다. 키안은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내게서 몸을 빼냈다.

16549789139946.png“참, 어머니. 이제 공작님께 그걸 드릴게요.”

그거라면, 카네이션을 말하는 거겠지? 시카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보고 있었고 나는 그를 향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성격상 딱히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꽤 의외일 것이다.

16549789139932.png“좋아. 키안. 우리 공작님을 놀래켜 드릴까?”

16549789139946.png“네. 어머니.”

예상한 대로 키안은 피크닉 상자 안에서 카네이션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카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16549789139946.png“거두어주고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공작님. 제가 직접 키운 카네이션이에요.”

시카르는 조금 놀란 듯 키안이 건넨 카네이션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는 내 상상을 완전히 뛰어 넘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시카르는 미친놈처럼 껄껄 거리고 웃었다.

1654978913995.png“껄껄껄! 키안! 네가 이런 걸 준비할 줄은 몰랐구나! 껄껄껄! 고맙다, 키안! 너무 기뻐서 웃음이 다 나는구나! 껄껄껄!”

뭐, 뭐지? 이런 반응은? 시카르가 정말 전장에서 머리를 다쳤거나 미, 미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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