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악역 사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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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악역 사용법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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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악역 사용법 (2)
2022.04.07.
시카르의 말처럼 정말 듀리온은 ‘으어어어’ 밖에 못 하고 있었다.
아, 불쌍한 듀리온.
“시카르! 듀리온한테 그렇게 마법을 날리면 어떡해!”
“이 물건의 쓰임새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줘야 했으니까.”
“쓰임새를 알려달라고 했지 사람에게 실험하라고 했니?”
“듀리온처럼 이렇게 강인하고 덩치큰 사람도 라이트닝을 정통으로 맞으면 이 꼴이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빗맞으면 잠시 기절하는 정도일 수도 있으니 항상 정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겠지?”
“알았어. 하지만, 다음부터 이러지 마. 알았어?”
시카르는 조금은 겸연쩍은 듯 콧등을 긁적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그럼 듀리온을 소파로 옮겨.”
“좀 지나면 곧 깨어날 텐데…….”
“어서.”
내가 힐끗 노려보자 시카르는 피곤한 얼굴로 듀리온을 업어서 밖에 있는 편안한 소파 위로 눕혔다.
듀리온의 키가 워낙 큰 탓에 소파밖으로 다리가 다 나왔지만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눕혀놓았을 때보단 나아 보였다.
듀리온은 더는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거봐. 듀리온은 곰이라서 잠만 잘 자잖아. 괜한 걱정이었다.”
그러게. 듀리온은 정말 얼굴까지 긁적이며 잘만 자고 있었다. 그를 걱정했던 내가 민망해질 만큼 말이다.
***
키안은 이제 비카가 보낸 정령을 불태워 버릴 만큼 성장해있었다.
비카는 키안 때문에 자신의 불탄 머리카락 끝을 매만졌다.
“제법이다. 도련님?”
“가만히 있어봐요. 비카 님.”
키안은 곧장 비카의 머리카락을 만져 불타서 끊어진 머리카락을 되살렸다.
비카는 다시 자라난 제 머리카락을 봤다가 물끄러미 키안을 쳐다보았다.
“내가 고맙다고 해야하나?”
“제가 고맙다고 해야죠.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스승님과 비카 님의 도움이 컸으니까요.”
“레이독스의 수업은 어때?”
키안은 비카를 따라 폴짝 올라 창문턱에 앉았다.
“나쁘지 않은데 이상한 게 있어요.”
“뭐가?”
“전에는 몰랐는데 듣다 보니까. 꼭 군주 수업을 받는 것 같다랄까. 스승님께서는 리더의 수업이라는데…… 그렇게만 믿기에는 또 이상한 게 있어요.”
“또, 이상한 거?”
“그땐 몰랐는데 제 아버지께서 알려준 저의 성과 국왕 전하의 성이 같아요. 이상하죠?”
비카는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키안의 시선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글쎄 난 잘 모르겠네. 그 바보 공작은 알려나? 참, 마님께서 지금 매직 완드를 쓰는 법을 배우고 계신다는데 그거나 보러 갈까?”
그 말은 키안을 창문턱에서 뛰쳐내려오게 만들었다.
“뭐라고요? 매직 완드요?!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뭐, 마님처럼 아무런 이능도 없는 사람이 쓰기엔 위험하겠지.”
키안은 서둘러 방을 빠져 나가며 말했다.
“어서 가요! 어머니가 다칠까 봐 걱정돼요!”
거의 달려가다시피 급하게 서둘러 가는 키안을 보며 비카는 유난스럽다는 듯 천천히 걸어갔다.
“마님이 안 다치게 공작이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하여튼, 두 부자가 유난이라니까.”
***
“너 지금 어디로 휘두르는 거야?!”
시카르는 유라가 휘두른 완드를 피해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시카르의 발자국이 지나간 자리로 완드가 날린 라이트닝 볼트가 떨어졌다.
“이게 마음 같지가 않아! 꼭, 팔딱이는 커다란 생선을 잡고 있는 것 같다고!”
원하지 않아도 완드는 마치 생명체를 탐지해서 추적하듯 시카르를 향해 기가 막히게 날아갔다.
시카르가 재빠르게 피하고 있긴 했지만, 발을 바닥에 붙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르니까 그렇지!”
“그게 그렇게 마음 같지가 않다니까!”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완드에서 나온 라이트닝 볼트가 이제 막 방으로 들어온 키안을 향해 날아갔다.
“어?! 키안!”
깜짝 놀란 유라는 본능적으로 완드의 머리쪽을 자신을 향해 돌렸고 놀란 시카르가 손을 뻗어 완드의 머리를 막았다.
그 바람에 완드에서 나온 전기가 시카르의 손을 타고 흘러갔다.
시카르는 잠시 손을 부르르 떨긴 했지만, 듀리온처럼 바닥에 드러눕지는 않았다.
“시카르, 괜찮아?!”
따라 들어선 비카는 그거, 참 샘통이라는 듯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공작. 아프겠다?”
하지만, 시카르는 손이 조금 뻐근하다는 듯 손목을 몇 번 움직이고는 웃을 뿐이었다.
“미안한데. 아주 멀쩡하군.”
아무리 시카르가 강하다 한들 완드에서 나온 마법을 한 손으로 가뿐하게 막아내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간단히 막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냉기로 가득했던 저주받은 손 때문이었다.
시카르의 손을 본 비카는 아쉽다는 듯 비소를 띄었다.
“하필 또 손이 얼어 있군. 운이 좋은데?”
‘시카르의 손이 또 얼었다고?’
유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키안을 안으며 시카르의 손을 살폈다.
‘역시 빈도가 잦아졌어.’
“키안. 괜찮다면 공작님의 손을 좀 봐주지 않을래?”
“그럴게요. 그런데, 어머니는 괜찮으세요?”
“응. 공작님이 막아줘서 난 괜찮으니 공작님 좀 봐줘.”
키안은 제 어머니가 놀라진 않았을까 더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키안은 뻐근한 제 손을 만지고 있는 시카르에게 가서 그 손을 봐주었다.
“제가 녹여드릴게요.”
시카르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제 손을 키안에게 맡겼다.
키안은 시카르의 손을 녹여주며 조곤조곤 말했다.
“어머니께 왜 저렇게 위험한 것을 가르쳐주는 거죠?”
“네 어머니도 이제 제 몸을 보호해야 하니까.”
“어머닌 제가 지켜드릴 거예요.”
“어린애 같은 소리를 하는군. 너라고 항상 네 어머니 옆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 네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선 항상 만일을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머니께 좀 더 상냥하게 알려주세요.”
“……이미 친절히 알려주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죠. 칭찬도 하시며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쥐방울이 또 냉기를 녹여주는 조건으로 거래를 걸고 있군.’
시카르는 한숨이 나오는 걸 참고 말했다.
“그냥 간단하게 네가 원하는 걸 말해라. 이왕이면 구체적으로.”
“어머니께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세요.”
키안은 어른의 목소리를 흉내내듯 말했다.
“구체적으로 ‘부인. 정말 못 하는 게 없으시군요.’ 이렇게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카르는 키안을 향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장담하건데 내가 그렇게 느끼하게 굴면 네 어머니가 도망칠 것이다.”
“그, 그럼 웃으며 알려주세요.”
“난 인상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웃지도 않으셨으니 웃으며 알려주세요. 그럼 제가 발도 녹여드리죠.”
시카르는 절로 나오는 긴 한숨을 내쉬며 비카 옆에 앉아 있는 유라에게 가서 키안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부인.”
시카르의 미소를 맞닥뜨린 유라의 표정은 ‘미쳤나 이 인간이 왜 웃고 그래?’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라는 경계하듯 인상을 썼다.
“너 어디 아파?”
“아프진 않지만 아파질 것 같긴 하군. 여튼 부인. 친절히 가르쳐 드리리다.”
“말투는 또 왜 그래?”
“키안이 우리가 사이가 다정해 보이는 게 좋다고 해서 하는 말투니 협조 좀 해주면 좋겠는데?”
“키안이?”
“그래. 키안이.”
‘그렇다면 협조해줘야겠지.’
유라는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시카르를 향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 그래? 그럼 같이 웃어야지.”
유라가 자신을 향해 싱글 방글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카르는 이 상황이 참 기가 막히다고 느꼈다.
귀가 밝은 비카는 시카르가 키안뿐 아니라 유라와 하는 얘기를 모두 들었다.
‘마님과 도련님이 서로를 위하느라 정신이 없군.’
비카는 지루한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
“전 그럼 이만 퇴장하죠. 오글거려서 더는 못 있겠으니까.”
키안과 시카르는 유라의 곁에서 완드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 주느라 비카가 돌아서 나갈 때까지도 비카의 말을 들어줄 경황이 없었다.
“완드를 쓸 때는 정신을 잘 집중해야 한단 말입니다. 부인.”
“그러니까. 정신을 잘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 아직 잘 이해가 안 된단 말입니다. 공작님.”
“공을 던질 때 내가 어디에 공을 던져야 할지 모르고 마구 던지면 목표물을 맞추기 힘들겠지? 지금은 네가 목표물을 정하지 않고 손이 가는 대로 공을 던지고 있으니까 마법이 사방으로 마구 튀는 거지.”
시카르는 거기까지 말하고 난 뒤 자신을 노려보는 키안과 눈이 마주쳤다. 키안의 눈빛은 어서 칭찬도 해주라고 하듯 나무라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시카르는 한숨을 쉬며 다시 한번 더 말했다.
“물론 부인께서는 매우 잘해주고 계십니다만, 조금만 더 노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카르는 말을 끝낸 후 키안을 향해 이제 됐냔 듯 턱짓을 했다. 그러자 키안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쥐방울 비위 맞추랴. 유라 비위 맞추랴.
시카르는 번뇌에 빠진 사람처럼 절로 관자놀이에 손이 갔다.
둘 사이에 어떤 시그널이 오가는지 모르는 유라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설명하니 이해가 돼.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럼 다시 해보시죠. 부인.”
유라는 다시 완드를 잡고 길이는 자신의 키만하고 넓이는 야구 방망이 정도인 목표물을 겨냥했다.
시카르의 말대로 저 막대를 맞추겠다는 듯 시선을 집중하고 나니 완전히 중앙을 맞추진 않았지만, 막대기를 맞출 수는 있었다.
“만약 중앙을 맞춘다면 목표물을 두 동강 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인께서 목표로 정한 대상이 이 막대처럼 미동 없이 가만히 있기는 힘들 테니,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데 집중하는 법을 연습하도록 하죠.”
그렇게 불러낸 시뮬레이션이 농구공 크기만한 동그란 공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날개라도 달린 듯 사방을 돌아다녔다.
“매일 이 공들을 맞추다 보면 완드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겠죠.”
유라는 마치, 시카르가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해 농구공을 불러낸 것만 같았기에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사람이 이 공 크기만큼 작진 않을 텐데요? 너무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시카르는 그 작은 공을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누군가 정령이나 다른 마법을 불러낸다면, 이 공보다도 훨씬 작은 크기일 테니, 나중엔 더 작은 표적을 맞추는 것을 연습해야 할 겁니다. 부인.”
사람만 생각했던 유라는 국왕의 최측근이 정령사와 마법사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잘해 보죠. 잘 가르쳐만 주신다면.”
유라는 웃으면서 말하고는 있었지만, 그 웃음의 의미 뒤에는 제대로 안 가르쳐주면 두고 보자는 무언의 겁박도 담겨 있었다.
시카르는 유라의 말투에 담긴 겁박의 의미를 알아듣고는 장난치듯 작은 시뮬레이션 공을 불러내 그것은 손에 들고 탕탕 튕기며 말했다.
“잘 가르쳐 달라니 조금 더 난이도를 올려보죠. 이것도 한번 맞춰 보시겠습니까? 부인?”
아직 농구공 크기만 한 것도 맞추기가 힘든데, 야구공 크기만 한 걸 꺼내든 시카르를 보며 유라는 이를 악물고 완드를 집어 들었다.
그러자 키안은 생긋 웃으며 유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어머니.”
“응?”
키안은 잘 보라는 듯 유라의 손을 잡고 완드를 휘둘렀다. 완드에서 발사된 마법은 정확하게 시카르가 들고 있던 공에 맞았다.
하지만, 키안의 손에서 날라간 것은 완드의 마법뿐만이 아니었다. 키안이 불러낸 불의 정령도 함께였다.
불의 정령은 시카르의 윗머리를 살짝 태우며 사라졌다.
그것은 제 어머니를 놀린 대가이기도 했다. 키안은 실수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런 공작님. 죄송해요. 방금 불을 날린 건 제 실수였어요.”
실수라고 말을 하면서도 피식 웃는 키안의 표정은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