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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악녀가 체질 (4) (95/197)


95화. 악녀가 체질 (4)
2022.04.28.


홀린 듯 시카르와 입을 맞추고 나자 어느새 마차는 공작저에 도착해 있었다.

도착하고 나니 내가 방금 뭐에 홀린 듯 입을 맞춘 게 조금은 괘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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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 나한테 뭐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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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긴. 재회의 인사를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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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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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미리 인사했는데, 나도 미리 인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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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중을 미리 한 거고, 너는 배웅을 미리 하는 격이잖아.”

시카르는 찬찬히 나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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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못 올까 봐 걱정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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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네가 못 온다면 네 전 재산 내가 다 빼돌릴 테니까. 아까우면 무사히 돌아오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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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협박인 것 같으니 들어주지.”

사악한 협박이었는데. 전 재산을 다 털어 가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이것을 친절하게 들을 수가 있지?

그 순간, 마차 문이 벌컥 열리며 비카의 얼굴이 시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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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를 마구간에 넣어야 하니, 두 분 그만 들어가시죠. 두 분 대화를 더 듣고 있기가 힘들어서 말이죠.”

그제야 오늘 마차를 몰고 온 사람이 비카라는 게 떠올랐다.

비카의 얼굴을 보기가 창피했던 나는 냉큼 저택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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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공작의 가족은 이른 아침부터 후작저를 찾았다.

유라가 서연과 함께 아이들을 볼 동안 시카르는 레이독스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카르는 레이독스에게 서연이 왕후에게 노출된 사실 및 그동안 알아본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매우 놀랄 줄 알았던 레이독스의 반응은 생각보다 평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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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좋지 않은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왕이 단지 이유만으로는 제게 해를 입히진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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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서연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꽤 덤덤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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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보호하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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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을 그 곁을 지키겠다고 확신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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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후작저를 침범해서 서연 님을 데려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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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장담할 수가 없지. 국왕 곁에는 파시움이라는 마법사가 있으니 제르미도 없는 상황에서 작정하고 서연을 납치하려 든다면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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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런 일로 서연 님을 납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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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움이 라페와 경쟁하고 있다. 그러니 혹시 모르지. 라페에게 모든 공을 빼앗기느니 길리언의 총애를 얻기 위해 한서연이라도 납치하려 들지 말이야.”

시카르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레이독스의 미간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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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걱정해서 하시는 말씀이신지. 아니면, 제게 다른 무언가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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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움을 막으려면 제르미를 불러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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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르미는 파시움을 상대하기에 아직은 미숙한 중급 마법사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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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이든 중급이든 마법사를 탐지하려면 마법사가 필요하다. 조속히 서둘러라. 그것이 네 여자를 지키고 네 주군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될 테니까.”

시카르의 경고에도 레이독스는 회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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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상황이 그렇게까지 심각하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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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곧 베로니아 공주를 찾기 위해 잠시 공작저를 비우고 북부로 떠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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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은, 베로니아 공주님께서 북부에 계신단 말입니까? 북부 어디에 계신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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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봐야 알겠지. 그러니 네 안전뿐만 아니라 내 아내의 안전도 네가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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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르미를 부르라 하시는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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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가 남아서 공작저를 지키겠지만, 아무래도 비카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다.”

공작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레이독스도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북부에 있는 제르미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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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도 북부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가시면 공작님께서 직접 제르미를 설득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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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엔을 따라 북부까지 갔던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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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바론에 있으니 바론을 한 번 들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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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론이면 외곽이긴 하나 어차피 돌아볼 생각이었으니 그곳부터 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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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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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로.”

더이상 긴말은 필요 없었다. 레이독스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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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앞으로 모든 걸 준비하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

공작저를 다녀오고 난 후 서연은 언제까지고 별택에서 지낼 수만은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레이독스와 만나고 있다는 얘기는 차마 할 수가 없어서 헌재는 보모로 지내고 있는 중이라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쌍둥이들은 요즘 검술 시합을 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검술 시합을 정말 좋아하는 건 루시인 것 같았다.

루이드는 루시의 목검에 머리를 자꾸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덤비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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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 다시 해!”

루이드의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주인공 루시는 타고난 검술 능력이 뛰어난 데 비해 루이드는 활 쏘는 능력이 우수하다고 서술돼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타고난 피지컬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루이드가 고집을 부린다 한들 머리에 혹만 생기고 말 것이다.

물론 서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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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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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려서 들으면 말리겠는데 말려도 듣질 않으니 포기했어요. 그리고 이건 저보단 키안이 더 해결을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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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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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두고 보시면 키안이 이 모든 상황을 종결시키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나는 서연과 함께 관중이 된 듯 턱을 괴고 앉아 구경을 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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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 님, 답답하시겠지만 당분간은 후작저를 벗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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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무슨 일이 생겼나요?”

그래서 나는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그러자 서연은 겁을 먹은 듯 제 두 팔을 붙잡았다.

다이엔느 왕후가 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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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이 국왕이 되기 전부터 산전수전을 함께 했으니 보통 사람은 아니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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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앞으로 일이 어떻게 돌아갈는지 정말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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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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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게 궁금했어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찾지를 못했거든요. 저희는 이 책을 읽었다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공통점이 하나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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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저도 그래서 그게 정말 궁금해요. 대체 그 이유가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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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레이독스 님을 만난 건 정말 천운인 것만 같아요. 의지도 많이 되고, 사실 여기 와서 많이 의지하다 보니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요.”

그 말에 나는 매우 공감했다. 나도 이곳에서 시카르에게 의지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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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 말에 서연은 매우 수긍한다는 듯 밝게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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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은근히 말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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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쌍둥이들에게 들키진 않았어요? 애들 눈치가 보통이 아닐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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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고 있어요. 루시 성격에 제가 후작님과 교제 중이라고 하면 집에서 쫓아내고도 남을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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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이에요. 루시가 어릴 땐 철이 없으니 클 때까지만 좀 기다려요.”

이내 서연은 근심하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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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면 왕후나 길리언이 알게 될 텐데 제 신분이 위험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더 안전해지기 전까지는 결혼은 유보하려고요.”

레이독스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길리언의 의심을 사는 행동을 더 해서는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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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아이들이 눈동자 색에 대해 다른 말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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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했었지만, 공작부인의 고향 친구라고 둘러댔더니 저를 매우 반겨주던걸요. 쌍둥이들이 모두 공작부인께 호의적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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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잘하셨어요. 잘 대처하셨군요.”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루이드는 제 머리를 잡고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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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내 머리! 내 머리!”

아무래도 정통으로 맞은 모양이었다. 정말 애들을 저대로 두어도 될까 걱정스러운 가운데, 서연은 이 광경이 아주 익숙한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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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렇게 되면 키안이 나설 거예요.”

키안이 어떻게 이 사태를 무마시키는지 궁금했던 나는 루시와 키안의 검술 대결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루시는 민첩하고 재빠르게 검을 휘두르면서도 동작에 절도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시카르가 내게 말했던 맞출 곳을 생각하고 던지라는 말이 떠올랐다.

루시는 자신이 어디를 공격할지, 어디에서 트릭을 쓸지 모두 꿰고 있었다.

역시 뛰어난 여주다운 면모였기에 서연과 나는 조금 전에 나누었던 심각한 대화도 까먹고 두 눈에서 하트를 발사시키며 두 아이의 검술 싸움을 구경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놀라운 남주이자 내 새끼 키안은 루시의 공격을 막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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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이 꼼짝도 못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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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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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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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루시가 매우 뛰어나고 키안이 막느라 정신이 없는 줄 알았는데, 후작님 말씀이 키안이 봐주고 있는 거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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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고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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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는 속도를 잘 보세요. 이미 루시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미리 피하고 있잖아요.”

서연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우리 키안이 언제 이만큼 컸을까 감탄하는 사이, 등 뒤에서 시카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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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이 봐주고 있군.”

시카르는 걸어오며 이미 파악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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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루시도 보통이 아니군.”

결국, 키안이 손에서 칼을 놓치며 대결은 끝이 났다. 키안이 숨을 헐떡이며 항복 선언을 하자, 루시는 이번엔 시카르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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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 가르쳐 주시죠. 공작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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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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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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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할 텐데. 난 아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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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노인이라고 봐주지 않아요.”

졸지에 노인이 된 시카르는 사나운 얼굴로 목검을 손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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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대신 난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 테니 재량껏 공격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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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께서도 후회하실 거예요. 절 만만히 보신걸.”

시카르는 오만의 대가를 톡톡히 보여주겠다는 듯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

저 표정 봐라. 저 표정이 어딜 봐서 아이를 상대하는 표정이란 말인가.

루시를 보는 시카르의 표정은 살벌했다.

***

시카르는 정말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한 손은 뒤로하고 단 한 손으로 루시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고 있었다.

한 대도 때리지 못해서 루시는 분이 났는지 더 사납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온 힘을 실은 루시의 공격에 시카르가 뒤로 넘어질 뻔하자 검지로 루시의 이마를 밀어내며 중심을 잡았다.

루시는 뒤로 밀려나며 그대로 나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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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잠시 중단!”

경지 중단을 외친 키안이 시카르에게 다가가 신발 끈이 풀렸다며 고개를 숙이며 멀쩡한 신발 끈을 풀어서 다시 묶어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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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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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라면 받아주고 협박이라면 통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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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예요. 져주시면 일주일간 공작님이 하라는 대로 하죠. 루시는 아직 애잖아요. 애한테 져주는 미덕도 보여주세요.”

이렇게 시카르는 또, 예기치 않게 키안과 거래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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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 거래, 나쁘지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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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걸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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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건, 내가 없는 동안 네 어머니에게 내가 너무 잘해줘서 행복하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말하는 것이다.”

잠잠히 시카르의 신발 끈을 묶어주던 키안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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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출정을 가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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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일이 있어서 북부로 가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많이 늦을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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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가시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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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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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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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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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됐습니다.”

키안은 시카르의 신발을 다 묶어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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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끈 다 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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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다.”

키안의 부탁대로 시카르는 루시에게 손등을 맞아주며 매우 아프다는 듯 얄팍한 비명 비슷한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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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매우 아프군.”

연기는 어색했지만, 루시는 만족한 듯 환호성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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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사탄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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