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국왕의 마법사 (2) (102/197)


102화. 국왕의 마법사 (2)
2022.05.23.



16549795683702.png

“무슨 명령이긴. 우리 마님과 같이 검은 눈의 사람을 찾으라는 명령이지.”

16549795683708.jpg

“이유. 무엇인가.”

16549795683702.png

“그것보다, 파시움. 너 눈도 제물로 바쳤구나? 그래서 눈을 가리고 다니는 거였어. 하긴 눈이 없어도 마법으로 보면 되니까 지장은 없겠지. 하지만 덕분에 후드로 눈을 그렇게 가리고 다녀야 하는데 불편하지 않아?”

비카는 파시움을 조롱하고 있었지만, 그는 비카가 아무리 조롱하듯 말해도 일말의 감정도 느끼지 않는 듯 자신의 목적만을 말했다.

16549795683708.jpg

“이유. 무엇인가.”

비카는 화가 난 얼굴로 단검보다는 조금 더 긴 스팅검을 꺼내 들었다.

16549795683702.png

“그따위 이유 내가 알 게 뭐야! 찾으라니까 찾는 거지!”

허리춤에서 스팅검을 꺼내는 비카는 파시움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그는 간단히 피했다.

파시움이 불러들인 회색 연기가 비카의 검을 간단히 막았다. 파시움의 주위로 회색 연기들이 자욱하게 솟아올랐다.

16549795683708.jpg

“비카. 넌 나를 이기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 소비.”

16549795683702.png

“지금 네 힘을 좀 빼놓으면 앞으로 한동안은 날 쫓아다니기 쉽지 않겠지. 그리고…… 너도 날 이길 수 없어!”

비카가 휘두르는 스팅검과 함께 어둠의 정령들이 그녀의 주변을 감싸 안았다.

비카가 불러낸 어둠의 정령과 파시움이 일으킨 회색의 마력이 공기를 반으로 가르고 서로를 겨누고 있었다.

16549795683702.png

“파시움. 네 놈의 눈깔이 어떤지 너무 궁금해 지는데? 그 모자 한번 벗겨봐?”

파시움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비카가 휘두른 검을 간단히 막으며 그녀를 나무 기둥까지 패대기쳤다.

16549795683708.jpg

“너도 혀, 뽑아줄까. 비카.”

나무 기둥에 몸을 박은 비카는 비릿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16549795683702.png

“그러고 보니, 너 말이야 제물로 바친 네 눈과 혀를 보관하고 있는 케이지가 있을 텐데. 그걸 찾아내면 네 마력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도 소멸되는 건가?”

파시움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비카의 공격만을 막아낼 뿐이었다.

1분, 2분, 시간이 지날수록 비카의 체력과 정령은 소모됐지만, 파시움의 마력은 아직 많이 소모되지 않았다.

그가 눈과 혀를 제물로 바친 만큼 그가 얻어낸 마력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다.

비카는 입안에 고인 피를 뱉으며 쓰게 웃었다.

16549795683702.png

“그래서 네 육신을 팔았구나. 그 맛에 말이야.”

파시움은 일말의 동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다시 비카를 공격할 뿐이었다.

16549795683708.jpg

“죽이진 않는다. 몸, 못 쓰게 한다.”

16549795683702.png

“안 죽이지만 어디 하나 분질러 놓겠다는 건가?”

이미 비카는 팔에 심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파시움이 보낸 마력이 비카의 팔의 절반을 썩게 만든 상태였다.

16549795683702.png

“마법도 이따위 마법이나 쓰는 버러지 같은 놈.”

16549795683708.jpg

“다음엔. 얼굴.”

파시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비카의 얼굴 위로 회색 그림자가 드리웠다.

비카는 곧장 몸을 돌려 엎드렸지만 그녀의 등이 괴사되었다.

비카는 낮게 신음하며 고통스러워했지만, 끌어들일 수 있는 정령이 많지 않았다.

체력적으로도 수세에 밀려있던 비카가 숨을 헐떡이며 일어서려 했지만,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16549795683702.png

“젠장.”

16549795683708.jpg

“다시. 얼굴.”

파시움은 비카의 얼굴을 향해 또다시 회색빛 음영을 보내었다.

비카는 필사적으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16549795683702.png

“너, 내가 죽여 버린다!”

퍽! 하는 굉렬한 소리가 울렸지만, 비카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그녀가 게슴츠레 눈을 떴을 땐, 시카르의 커다란 손이 제 얼굴을 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16549795683702.png

“공작?!”

저주를 받아 얼음덩이가 된 시카르의 손이 겨우 파시움이 던진 마법을 흡수했다.

곧이어, 연이어 날아든 마법을 두 손으로 짓이겨 버린 시카르의 손이 금세 퍼렇게 상처로 얼룩졌다.

그와 동시에 시카르의 날카로운 검이 파시움의 목을 겨누었다.

16549795712492.png

“왕의 수하가 블레이크의 사람을 치다니, 이게 무슨 짓이지? 파시움? 블레이크와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16549795683708.jpg

“……먼저 비카가 공격했습니다. 가벼운 충돌…….”

시카르가 겨눈 칼끝이 파시움의 목을 조금 찔렀다. 그의 목에서 붉은 피가 조금 흘러 내렸다.

16549795712492.png

“비카의 피부 곳곳이 괴사가 됐는데, 가벼운 충돌이라고?”

16549795683708.jpg

“파시움. 전하의 수족. 칼, 치우십시오.”

16549795712492.png

“네가 아무리 왕의 수족이라도 블레이크가의 사람을 건들면 죽어 마땅하지 않겠나? 내가 당장 네 놈의 목을 베어낸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있을까?”

16549795683708.jpg

“저주받은 공작. 예전의 공작이 아니다. 내 목을 베기 힘들다. 알고 있다.”

16549795712492.png

“내가 저주 때문에 아무리 예전의 내가 아니라 해도, 너 하나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지.”

16549795683708.jpg

“나는 파시움. 예전의 파시움 아닙니다.”

16549795712492.png

“그래서, 네 놈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16549795683708.jpg

“놓아주십시오.”

지금은 파시움과 싸우느라 힘을 뺄 수가 없었다. 베로니아의 처형식에서 그녀를 빼내려면 힘을 아껴야 했으니까.

시카르는 파시움의 목에서 칼을 빼내며, 그의 눈을 덮고 있던 후드를 걷어냈다.

비소로 가려져 있던 파시움의 두 눈이 드러났다. 깊게 패인 눈은 암흑과도 같았고, 그 중앙으로 점같이 작은 붉은 눈동자가 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마법이었다.

시카르는 인상을 쓰며 그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16549795712492.png

“파시움. 얼굴이 많이 변했군. 예전에 그렇게 총명한 눈동자가 이렇게 흉측하게 변하다니.”

16549795683708.jpg

“…….”

16549795712492.png

“난 내 욕심 때문에 저주를 받았지만, 넌 눈과 혀를 잃었군.”

파시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후드를 다시 덮어쓰고 시카르를 향해 묵례를 한 후 자리를 떠났다.

파시움이 완전히 자리를 뜨자, 날 선 눈매로 노려보고 있던 비카는 긴장이 풀린 듯 어깨를 늘어트리며 웃었다.

16549795683702.png

“하하. 하하.”

16549795712492.png

“죽을 뻔 해놓고, 뭐가 좋아서 웃는 거지.”

16549795683702.png

“내가 저놈에게 언젠간 그 낯짝을 반드시 보겠다고 했는데, 공작이 보여줘서.”

시카르는 화난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16549795712492.png

“저놈의 낯짝을 보자고 위험 신호를 보낸 건가. 지금, 지금 공작저에 유라와 키안이 혼자 있다.”

16549795683702.png

“내가 겨우 저놈의 낯짝이나 보자고 그 위험을 감수한 줄 알아?! 저놈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대책을 세울 거 아니야.”

비카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시카르는 더는 추궁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인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16549795712492.png

“걸을 수 있겠나?”

16549795683702.png

“걱정 마. 이 정도는 걸어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말과는 달리 비카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카르가 손을 잡아주려 하자 비카는 그 손을 쳐내며 말했다.

16549795683702.png

“말이나 불러줘.”

곧 쓰러져도 시카르의 부축은 받기 싫다는 고집이었다. 하지만, 시카르는 지금 시간이 없었다. 공작저에는 유라와 키안 둘 뿐이었으니까.

시카르는 비카의 손을 잡아끌어 어깨에 들춰 맸다. 평소의 비카라면 난리 법석을 떨었을 테지만, 상처로 얼룩진 몸을 움직이기엔 너무나 쇠약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시카르의 말도 한몫했다.

16549795712492.png

“거듭 말하지만, 지금 집에 아내와 소공자 뿐이라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니 입 다물고 있어라. 비카.”

비카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16549795800129.jpg

 

***

밤중에 레이독스는 물론이고 서연과 쌍둥이들까지 공작저에 모두 와 있었다.

쌍둥이들은 키안의 방에서 다 같이 잠들어 있었고, 서연은 나와 함께 거실에 앉아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는 꽤 많이 놀란 듯 혼란스러워 보였다.

16549795800133.png

“베로니아를 처형한다고요?! 갑자기 왜요?!”

16549795800137.png

“알아봐야죠. 곧 알아볼 거예요.”

레이독스도 그것은 생각을 못 했다는 듯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6549795800141.png

“뭔가 눈치를 챈 게 분명한 것 같습니다. 제가 애초에 너무 국왕에게 적대감을 표해서 공작님까지 의심을 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건 레이독스의 탓은 아니었다. 그는 애초에 길리언 보다는 베로니아가 왕이 되길 바랐던 사람이었던 데다, 길리언이 폐왕을 몰아낸 속셈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16549795800137.png

“후작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냥 일이 이렇게 된 것뿐이에요.”

레이독스는 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16549795800141.png

“공작님께서 다른 말씀은 없으셨습니까.”

16549795800137.png

“다른 말을 할 시간도 없었어요. 비카 님이 위험하다며 나갔거든요.”

16549795800141.png

“비카 님이 위험하시다고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16549795800137.png

“공작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요.”

정말 시카르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레이독스가 오면서 후작저의 병사를 지원했기에 공작저 초입은 온통 병사들이 교대근무를 하며 지키고 서 있었다.

시카르가 길리언에게 암살자들 때문에 필요한 병사를 보충하겠다고 이미 말했기 때문에 레이독스가 병사를 보충해준 것에 대해 크게 꼬투리를 잡진 못할 것이다.

시카르가 이렇게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 어느 정도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자, 시카르가 비카를 손에 안고 들어왔다. 비카는 어디를 다쳤는지 옷이 온통 해져 있었다.

16549795800137.png

“어떻게 된 거야? 비카 님은 괜찮아?”

16549795800141.png

“공작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16549795712492.png

“소란스럽다. 비카를 방에 가서 눕혀야 하니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모두 여기 있어라. 부인은 따라오시고.”

나는 그를 따라 비카의 방으로 가는 길에 안드레아에게 따뜻한 물과 깨끗한 수건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밝은 데서 보니 비카의 상태는 더욱 엉망이었다. 비카의 혈색은 창백하고 옷은 무언가에 녹은 것처럼 걸레짝이 돼 있고 구멍 뚫린 옷 사이로 비카의 피부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16549795830278.png

 

16549795800137.png

“어떻게 된 거야?”

16549795712492.png

“비카가 파시움의 공격을 받았다.”

파시움! 그가 사악한 마법사라는 것 외에는 나도 크게 아는 정보가 없었다. 어차피 그도 결국 장성한 키안에 의해 한 조각 재가 되고 마니까.

하지만, 지금 키안은 아직 열 살 된 어린아이일 뿐이다.

시카르는 서랍에서 힐링 포션을 꺼내 비카의 입안에 털어 넣고 몸에 발랐지만, 크게 차도는 없는 것 같았다.

16549795712492.png

“하루 이틀 만에 나을 상처는 아닌 것 같군. 날이 밝는 대로 신관을 불러야겠다.”

16549795800137.png

“그런데 비카 님이 파시움과 싸웠다면 큰일 아니야?”

16549795712492.png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시카르의 말에 의하면 비카가 먼저 공격을 했지만, 파시움이 비카를 미행한 것을 해명하기가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일은 국왕의 귀에 들어가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것이라고.

그렇다면 다행인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이 완전히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곧 베로니아가 처형당한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겠지.

16549795712492.png

“해가 뜨는 대로 듀리온을 불러들여야겠다. 베로니아의 처형일이 잡히는 날 그녀를 구해야 하니까.”

베로니아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 모른다. 나는 시카르에게 고맙고도 기쁜 마음으로 물었다.

16549795800137.png

“정말 베로니아를 구할 생각이야?”

16549795712492.png

“그래. 네가 키안에게 반드시 친어머니를 찾아준다고 약속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겠지.”

시카르의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16549795800137.png

“고마워. 정말 고마워.”

16549795712492.png

“고마워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날, 우리의 반정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 될 테니까.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겠지.”

그 말을 듣자,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16549795800137.png

“뭐, 뭐라고?”

16549795712492.png

“그 방법이 아니면 베로니아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 말은 곧, 우리 모두가 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과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