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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8) (115/197)


115화. 등잔 밑이 가장 어둡다 (8)
2022.07.07.



“듀리온! 큰일 났어요! 키안! 키안이 사라졌어요!”

나는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듀리온의 방으로 뛰어 올라갔다. 듀리온의 방은 공작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꼭대기 방에 위치해 있었다.

창가에 서서 외부 침입을 감시하던 듀리온은 내가 갑자기 방으로 난입하자 놀란 듯 쫓아왔다.


“도련님께서 방에 없으시다고요?!”

“키안의 방 창문이 활짝 열려있고 쌍둥이들도 보이지가 않아요!”

“마님, 진정하십시오. 일단 내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진정할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비록 필요에 의해 입양해서 키웠지만, 입양한 그 순간부터 나는 키안을 내 아들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랑을 쏟지 않을 수가 없었을 만큼 날 사랑해준 키안이었기에 도저히 마음이 진정이 되지가 않았다.

키안의 방으로 내려간 듀리온은 침착하게 방 안을 조사하고 나서는 차분한 얼굴로 내게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도련님이 납치를 당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납치를 당한 게 아닌데 왜 방에 없는 거죠?”

“도련님들께서 옷을 갈아입은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직접 나가신 것 같습니다.”

어딜 나갔단 말이지? 키안이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한 거지?

아무래도 이러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키안을 찾기 위해 나가려는 그때, 쌍둥이를 찾아 저택 안을 조사하겠다던 서연도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나타났다.


“공작 부인! 저택 안 어디를 찾아봐도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요!”

“아이들이 제 발로 여길 나갔다는군요. 아무래도 우리도 아이들을 찾으러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듀리온은 곧장 길을 막았다.


“무슨 짓이에요! 듀리온!”

“송구하지만, 나가실 수 없으십니다.”

“듀리온. 경고하는데 비켜요. 이건 공작 부인으로서의 명령이에요!”

“도련님이 어디로 가셨을지는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짐작 가는 바가 있다고요? 그게 어디에요?”

“도련님께서는 아마 공작님을 찾아가셨을 것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키안이 시카르가 어디 있는 줄 어떻게 알고 찾아가요!”

듀리온은 갑자기 나를 향해 무릎을 꿇으며 숙연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레이독스에게 보내는 서신을…… 일부러 도련님이 볼 수 있게 유도했습니다.”

“그 서신에 뭐가 적혔길래요?”

“그 서신에는 공작님과 레이독스가 만나는 장소가 적혀 있습니다. 전 그곳이 국왕과 공작님의 결전이 될 장소라 판단했습니다. 현재 공작님께서는 저주의 발현으로 인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만약 그 중대한 시점에서 공작님의 저주가 발현된다면 공작님이 잘못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 어린아이를 그런 사지로 보냈단 말이에요?!”

“저는 장소만 알려준 것뿐입니다. 물론…… 도련님께서 공작님을 도와주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선택은 도련님께 맡겼고, 도련님은 그 길을 택하신 것 같습니다.”

“듀리온…… 키안은 뭔가를 선택하기엔 아직 너무 어린 열 살짜리 아이라고요!”

“왕손이십니다. 그보다 더 어린 나이라도 영민한 선택을 하셔야 하는 분이십니다.”

그동안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시카르에 대한 듀리온이 충심이 얼마만큼인지를 알 수가 있었기에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카르가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은 듀리온에 못지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였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걸리는 건 언젠간 자연스럽게 왕좌에 앉았을 키안이 우리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 그럼 쌍둥이들은요. 쌍둥이는 왜 왕손 저하를 따라간 거죠?”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도련님께서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가신 거라고 추정할 수밖에는 없을 듯합니다.”

주인공 키안을 지켜야 하는 일은 쌍둥이들의 숙명이니 저들도 모르게 그 숙명을 따라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 신이 아이들을 지켜주길 빌어줄 수밖에는 없는 건가.

듀리온은 갑자기 예민한 얼굴로 몸을 뒤척였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마님. 이 방에서 꼼짝도 하지 마십시오.”

“치, 침입자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하지만 금방 오겠다던 듀리온은 금방 오지 못했다. 서연은 걱정하는 얼굴로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우리 내려가 볼까요?”

“아니요. 여기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으니 우린 여기 그대로 있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나는 만일에 대비해 주머니에서 마정수 하나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완드를 손에 꽉 쥐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서연 님. 이럴 때를 대비해서 공작님께 배운 것들이 있어요.”

나를 보던 서연은 경악한 눈으로 창밖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고, 공작 부인! 차, 창밖에 사, 사람이 있어요!”

나는 곧장 창문을 향해 완드를 겨누었다. 창문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오려는 자는 왕의 근위대였다.


“서연 님, 제 뒤에 숨어요!”

시카르가 수련의 방에서 완드 사용법을 알려줄 때 적으로 불러낸 시뮬레이션이 바로 왕의 근위대였다.

내가 사람을 공격하지 못 할까 봐 일부러 시카르가 왕의 근위대의 복장을 한 사람들로 시뮬레이션을 맞춰 준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그가 창문을 열자마자 완드를 발사시킬 수가 있었다. 완드에서 나오는 라이트닝이 근위병의 가슴을 맞추었다. 놀란 탓에 한 번에 맞추진 못했지만 세 번 만에는 맞출 수가 있었다.

근위병이 창문 밖으로 나가떨어져 가는 것을 보니 자신감도 생겨났다.


“세상에, 공작 부인! 너무 대단해요!”

대단하기로 따지자면, 이런 때를 대비해서 내게 근위병을 맞추는 것을 가르친 시카르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좋아하긴 이른 것 같아요. 서연 님.”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보던 서연은 이내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창문으로는 또 다른 근위병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

왕의 근위대 중에서도 정예부대인 제1 병기들은 레이독스의 칼날에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레이독스의 칼날이 한 바퀴 돌 때면 1병기들의 칼날은 세네 번씩 찔러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로엔이 신성력으로 들어오는 칼날을 튕겨내고 제르미는 로엔을 공격하는 병기들을 상대하면서 버티고 있었지만, 근위대가 많아서 금방 지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곧 파시움이 도착할 것이라는 심리적 압박이 짓누른 탓에 온전히 싸움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다


“대체 공작님이 여기서 나오긴 나오는 거야? 우리가 그 상인에게 속은 거 아냐?”

“제르미 님, 힘들어도 조금만 버텨요!”

지친다는 생각이 드는 그 순간, 활짝 웃으며 응원하는 로엔을 보자 제르미는 문득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력의 소모로 인해 자신이 힘들듯 로엔도 신성력의 소모로 힘들 텐데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웃어 보이는 여유가 있었다.

지금에 보니 레이독스도 로엔도 공작이 나올 때까지만 버텨보자는 마음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현재의 전투에 집중 중이었다. 공작이 나오기 전에 일망타진을 하겠다는 각오들 같았다.

제르미는 기사들처럼 기합을 넣었다.


“이얍!”

그는 마법을 이용해 로엔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들의 손목을 꺾었다.

덕분에 로엔을 공격하려던 근위대들의 손목이 꺾여나갔다. 손목이 꺾인 근위대들은 검을 제대로 쥐지도 휘두르지도 못했다.


‘이 방법이 제일 좋겠어.’

제르미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다 죽었어!”

 

***

제르미의 그 목소리는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쌍둥이들에게까지도 들렸다.


“누가 죽었다는 거 같은데?”

미어캣처럼 고개를 쳐든 루이드를 따라 루시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빠 힘들어 보이는데, 우리도 이만 가서 도와주자.”

키안은 미어캣이 돼버린 쌍둥이들의 머리를 다시 내렸다.


“안 돼. 너희들 지금 무기도 없잖아.”

“무기야 저기 쓰러져 있는 병사 걸로 쓰면 되지.”

이번엔 키안이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어 안을 살폈다. 아직 공작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공작님이 없어서 안 돼. 내가 먼저 붙잡히게 되면, 공작님께 도움이 될 수가 없어. 공작님께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면 우리가 이곳에 온 의미가 없단 말이야.”

“하지만 아버지가 위험하다고!”

루시가 씩씩거리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든다는 것을 키안은 잘 알고 있었다.


“좋아. 내가 도울게.”

루이드와 루시는 키안의 말이 미심쩍었다.


“네가? 어떻게?”

“무슨 수로?”

키안은 레이독스를 향해 일어서며 아직은 미숙한 신성력으로 그를 돕기 위해 두 손을 모았다.

키안의 손에서 환하게 번지는 불빛에 루이드와 루시는 넋을 놓았다.


“이, 이게 뭐야?”

루시는 그런 것 따위 알게 뭐냐는 듯 멍한 눈으로 키안을 바라보았다.


“몰라. 멋있어.”

“우린 이런 거 안 돼?”

“따라 해보자.”

쌍둥이들은 키안을 따라 두 손을 뻗었지만, 변화가 일어날 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당황해하면서도 왠지 이것을 따라 하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쌍둥이들은 키안을 따라 두 손을 모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

로엔은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재빠른 눈으로 주변을 훑어도 조력자가 드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자신을 돕고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지 않은 신성력이 작용해 레이독스에게 쏟아지는 검날을 자신보다 먼저 막아내는 신성력이 분명히 존재했다.

몇 번을 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지금은 그것을 계속 찾고 있을 수가 없었다.

미약한 도움이었지만, 지쳐있는 로엔에게는 무엇보다 큰 도움이었다.

지쳐가는 전투에서 키안의 도움은 약하다 해도, 단 한 방울의 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리는 두 방울의 물과 같았다.


“좋아! 힘내요!”

어차피 지치는 건 병사들도 마찬가지였기에 나가떨어지는 병사들이 눈에 보이게 늘어갔다.

자신을 방어하는 힘이 늘어났다는 것은 누구보다 레이독스도 몸소 체감할 수가 있었다. 그는 로엔이 남은 힘을 짜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에 근위병들 사이로 나타나지 않길 빌었던 파시움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르미는 파시움을 향해 이를 으드득 갈았다.


“징그러운 놈!”

곧, 파시움이 만든 파이어 로프가 각각, 제르미의 목과 손, 발을 옥죄여왔다.


“으윽!”

제르미가 인상을 구기며 그것을 풀려고 애를 쓰는 동안 근위병들이 일제히 제르미를 향해 창을 휘둘렀다.

그 순간, 로엔이 제르미를 향하는 창을 막아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대로 둔다면 창 꽂이가 될 것만 같았다.

로엔은 이를 바드득 갈며 비명을 질렀다.


“레이독스! 도와줘요!”

레이독스는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멈칫하는 그 순간, 제르미를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창을 돌의 정령들이 막아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불러낸, 혹은 자연계에 떠도는 정령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사람.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시카르. 단 한 명뿐이었다.

제르미는 반가운 얼굴로 앞을 쳐다보았다.


“고, 공작님!”

시카르는 자신을 향해 덤벼오는 근위병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제르미를 향해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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