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푸른 해 (6)
(129/197)
129화. 푸른 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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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푸른 해 (6)
2022.08.25.
라페와 다이엔느가 오늘 처형 되었다.
나는 차마 처형식을 보러 갈 수 없었고 헤르시아 역시도 처형식을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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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엔느 폐후의 성대했던 결혼식이 떠올라요. 그렇게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고, 레카도르의 모든 여인이 부러워했던 신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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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군이 좀 더 사랑을 베풀 줄 알았다면 오늘의 이런 비극은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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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슬픈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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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린은…… 북부로 보냈다고 해요. 가기 전에 혹시 만나보셨어요?”
헤르시아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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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왜 그랬냐고 따져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전 그렇게 따지는 것도 힘든 거 같았어요. 어차피 그녀는 제 벌을 받을 테니까……. 그것으로 됐어요.”
나는 헤르시아의 손을 잡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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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가 편하면 그것으로 된 거예요.”
날 바라보는 헤르시아의 미소가 슬퍼 보였지만, 시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나쁜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때마침 안드레아가 차를 가지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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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시죠.”
헤르시아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밀크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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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 역시 밀크티는 공작저의 밀크티가 맛있는 것 같아요. 저희 집 하녀들은 이 맛을 못 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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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리를 통해서 백작저에 레시피를 보낼게요. 레시피대로 하면 금방 흉내 낼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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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궁으로 들어가신다고 들었어요.”
어제 결정된 건데 하루 만에 소문이 모두 퍼진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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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이 아닌 여인이 궁에 들어갈 때는 보통 왕비가 되었을 때인데. 정말 부러워요. 공작부인. 아니, 이젠 앞으로 왕모 저하라고 불러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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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이 아닌데 저하라는 말은 과해요. 이전처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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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친모이신 베로니아 공주님을 찾았지만, 여전히 공작부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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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그런 소문이 퍼졌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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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정말 빨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귀찮을 만큼 저한테 묻고 확인하고…… 아, 물론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냥 원래부터 전하께서 효자이셨다. 라고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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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니 이해해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도 왕족인데 왕족이 공작가를 부모로 따르고 있으니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호기심이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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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과분한 관심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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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은 이제 시작일 거 같아요. 이제 궁으로 들어간다는 소문도 퍼졌을 테니 궁에 들어가시는 순간……!”
그 순간. 헤르시아가 말하지 않아도 그다음 말을 알 것 같았다. 나는 피곤한 듯 찻잔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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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하러 오겠군요.”
왕권이 바뀌었으니 라인을 타려고 하겠지.
하지만 길리언 집권 이후부터 래카도르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지키고는 있던 블레이크가 왕궁까지 들어가게 됐으니 불만을 품을 자들도 분명히 생길 텐데.
내가 정치를 잘 알아서가 아니라 항상 지난 역사가 그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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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는 사실 앞으로 공작부인을 궁에서 뵙게 된다 생각하니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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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도 좋아요. 아, 그리고 일전에 도와주신 거 너무 감사해요. 그땐 경황이 없어서 인사를 제대로 못 한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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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받은 건 제가 더 많아서 안 하셔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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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론 님과 결혼은 언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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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론과 결혼은…….”
헤르시아는 말을 하다말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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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이 지금은 저와 결혼을 못 하겠다고 나중에 하자고 해서 우리 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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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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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는 지금 모아둔 돈도 없고 아직 직위도 낮아서 결혼을 못 하겠다고 하는데 전 핑계라고 생각해요. 하려고 하면 하지, 왜 못하겠어요. 저와 결혼할 마음이 없어졌나 봐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싸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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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말로는 제가 백작가의 딸인데 사용인도 없이 살 수 있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는 정말 다 괜찮거든요. 그래서 괜찮다고 말했는데 자기가 안 괜찮대요. 핑계죠. 핑계.”
저번부터 싸우더니 아직도 싸우는구나.
당신들은 서로 없으면 죽고 못 사는 사이니 이만 화해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참아야겠지.
어디까지나 이들이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것뿐이지, 서로 죽고 못 사는 건 여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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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론 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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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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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와 더욱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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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저도 이해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불안하다고요. 왜냐면 저희 가문은 이제 망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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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 헤르시아의 가문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을 거예요.”
울상을 짓던 헤르시아의 얼굴이 조금은 밝게 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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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군의 외척인데요?”
원래라면 연좌제를 물었겠지만, 헤르시아의 공을 인정해서 죄는 묻지 않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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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께서 세운 공도 있고 당분간 몸을 숨기고 계셨으니까요. 더군다나 모비아트 가문에서 폐군을 원조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는걸요. 그래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거예요.”
헤르시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두 손을 들어 제 뺨을 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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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게 정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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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니 마음껏 기뻐하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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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제 저희 가문은 큰일 났다고, 어떡하냐고.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해도 재산이 다 몰수될 것 같다고 했거든요.”
헤르시아는 그동안 마음을 많이 졸였던 모양인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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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을 마무리 해주신다니. 전하께서 정말 자비로우시군요. 실은 아론은 큰 공을 세웠는데 저희 가문은 망하기 직전이라 정말 불안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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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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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인께서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헤르시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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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표정은 안 좋아 보이는걸요?”
헤르시아는 한숨을 쉬며 넋두리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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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 결혼해서 알콩달콩 사는 게 꿈이었어요. 아론이 가진 거 없는 빈털터리 기사 지망생일 때도 그를 좋아할 수 있었던 건 다른 귀족 영식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넓은 가슴과 근육…… 아, 아니. 듬직한 모습에 반했었죠.”
그러니까 아론의 근육에 반했군. 원작에 그런 내용은 없어서 몰랐는데, 그랬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애절하게만 느껴졌던 둘의 사랑이 귀여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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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렇게나 듬직했는데 저한테 하늘의 별도 달도 다 따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보니까 하나도 듬직하지가 않아요. 제 가문이 망했다는 걸 알고 바로 결혼을 미루었잖아요. 돈 얘기는 핑계로 들려요.”
원작에서 아론이 유카나다르의 기사 대장이 되는 게 3년 뒤쯤이었다. 그런데 그땐 전투로 인해서 공을 인정받아 기사 대장이 된 것이었는데…….
이젠 전투를 할 일도 없으니 기사 대장이 된다고 해도 늦게 될 것 같았다.
지금 아론의 처지로는 몇 달 치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헤르시아의 드레스 하나를 살까 말까니까.
그러니 현실적인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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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의 오해일 거예요. 아론 님과 얘기를 한번 나누어 보도록 하세요. 오해라고 팔짝 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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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겠죠? 제 오해겠죠? 하필 너무 시기적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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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 결혼은 급할 게 없어요. 중요한 건 아론님을 향한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아론님이 헤르시아 님을 결코, 떠나지 않고 지켜줄 거라는 믿음이요. 예전처럼 다시 그를 믿어봐요.”
헤르시아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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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믿음직스럽다고 해놓고 정작 믿지를 않았군요.”
나는 그녀의 마음을 좀 더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 헤르시아를 향해 누구보다 자상하게 미소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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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서 아론과 화해하세요.”
헤르시아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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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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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화해 잘해요. 헤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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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화해하고 아론과 함께 입궁하도록 할게요.”
돌아서 가는 헤르시아의 발걸음이 매우 가벼워 보였다.
나도 연애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헤르시아에 대한 아론의 마음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고 있으니 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그래서 난 이들이 오붓하게 손잡고 입궁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
일주일 뒤 드디어 우리는 궁으로 입궁했다.
안드레아와 메이리는 공포의 집에라도 들어가는 듯 으스스하다는 몸짓으로 마차에서 내린 후 넓다 못해 황량하기까지 한 궁을 멀거니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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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 어서들 들어가지.”
안드레아와 메이리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 나는 좀 더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온통 붉은 장미가 깔려 있는 넓은 정원의 길목과 야외 테라스와 흔들 그네와 아름다운 조각상이 새겨진 분수대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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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은 정말 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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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르는 이게 뭐 크냐는 듯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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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작저도 만만치 않게 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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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공작저도 크긴 하지만 이곳은 말도 안 되게 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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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긴. 그냥 조금 더 클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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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여긴 공기부터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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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어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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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공기가 느껴지는 거지.”
시카르는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아무리 블레이크가 유서 깊은 가문이라 해도 왕실에 비견할 건 못 되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듀리온과 비카가 황급히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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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비카 님과 듀리온 님 아니야?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뛰어가시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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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탑 층을 먼저 선점하겠다고 경쟁하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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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서 저렇게 치열하게 서로의 발을 걸어가며 뛰어가는 거구나…….
역시나 비카가 좀 더 민첩했다. 듀리온은 비카의 발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으니까.
비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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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공작저에서 탑 층을 두고 저렇게 경쟁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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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듀리온이 먼저 꼭대기 방을 쓰고 있어서 비카의 선택권이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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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다들 탑 층을 쓰려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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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조용하고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방이니까.”
듀리온이 조금 억울해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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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몇 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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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아. 2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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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네 서재도 1층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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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곳 1층은 모두 하녀들의 공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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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하녀들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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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와 별 다를 바는 없다. 시녀가 붙는 것을 제외하곤 말이지. 이제 곧 시녀도 구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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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헤르시아만 괜찮다면 헤르시아로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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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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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할게.”
라고 말한 뒤 나는 시카르가 사람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 하는 행동이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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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물어볼게. 그게 예의인 것 같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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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지 그럼.”
내 방은 어떻게 꾸며져 있을까. 생각하니 조금 설레었다. 공작저 방도 물론 좋았지만, 이곳은 궁전이었으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벌써 정원만 봐도 공작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넓고 화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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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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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복도로 올라오면 바로 보이는 중앙 방이 네 방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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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네 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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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같은 방.”
너무나 기분 좋은 마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걷던 나는 순간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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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소리야? 왜 네가 내 방과 같은 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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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니까 당연히 같은 방을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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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니. 우리 공작저에서는 같은 방을 쓰지 않았으니까 하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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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저에서는 우리가 따로 방을 쓰든 말든 말이 새어나가는 일이 없지만, 궁전은 그렇지 않지. 우리가 따로 방을 쓴다고 소문이 나면 좋을 것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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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런 말 없었잖아?!”
시카르는 시치미를 뚝 떼듯 새초롬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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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해도 아는 줄 알았지.”
아는 줄 알았던 게 아니라 일부러 말을 안 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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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혹시 대신전에서처럼 욕실도 같이 써야 하는 건 아니지?”
시카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마치 독 안에 든 쥐를 쳐다보듯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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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같이 써야지. 하지만 욕실이 훨씬 넓을 테니 둘이 같이 사용해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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