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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화. 축제 (1) (134/197)


134화. 축제 (1)
2022.09.12.



“세상에!”

창밖을 보니 정말 푸른 해가 떠 있었다. 너무나 놀라운 광경이었다.

온 세상이 푸른 빛깔로 물들어 있는 광경이 너무나 신기했다. 세상이 푸르니 온 세상이 수심이 옅은 푸른 바닷속에 있는 것처럼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관에 나는 넋을 놓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키안도 지금 이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에! 원작처럼 진짜 푸른 해가 떴어! 이제 온 백성들이 국왕을 우러러 보게 될 거야! 이제 그 누구도 어린 왕이라 무시하지 못할 거야! 키안의 정통성에 대해 그 누구도 의문을 못 가질 거라고!”

얼마나 심장이 뛰는지 나는 펄쩍펄쩍 뛸 것만 같았다. 시카르도 밝게 웃으며 흥분 내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겠지. 그리고 이제 우리도 아이를 가질 수 있을 테고.”

아……?

시카르가 정말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은 꼭 이 말이었던 것 같았다.

이런 민망한 말을 언제부터 이렇게 잘하게 된 건지.

나는 민망해서 시선을 돌렸고 시카르는 조금은 기분 좋게 흥분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했다.


“고맙게도 우리가 입궁한 바로 다음 날 푸른 해가 떠오른 덕분에 명분이 생겼다. 우리 2세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던 각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기 좋게 됐어.”

그래도 설마 각료들이 그렇게 쉽게 물러날까 생각했지만, 푸른 해의 힘은 대단하긴 했다.

각료들은 더이상 우리의 2세 문제를 두고 더는 논쟁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들어온 직후 푸른 해가 떴기 때문에 우리 또한 길조의 아이콘이 되었으니까.

시카르는 그런 명분을 들어 우리의 2세 문제를 합리화시켰고, 이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초대 대왕 이후 전설처럼 존재하던 푸른 해가 뜬 까닭이었다. 모두 주인공 버프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시카르는 오전에 있는 어전회의에서 이 문제를 깔끔하게 담판 짓고 왔고 오늘 왕실의 모든 업무 일정을 취소시켰다.

푸른 해가 뜬 동안 세상은 축제 분위기였고, 한껏 들떠 있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오후가 되니 세상의 모습은 똑같았지만, 여전히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의 색은 파란색이었다.

파란색 태양이 떠 있다니.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밖에서는 시민들도 축제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비카의 말에 의하면 코스튬 의상을 입은 시민들이 거리에서 즐거운 축제를 즐기며 국왕을 칭송하는 중이라 했다.

원작에서도 그랬지.

그리고 우리도 옷을 갈아입었다.

원작에서는 키안이 드래곤 가면을 쓰고 나왔었기에 나는 당연히 키안이 드래곤 가면을 쓰고 나올 줄 알았지만 키안은 장미꽃을 분장을 하고 나왔다.

마치 빨간 모자가 머리에 장미꽃을 달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직 열 살이라 그런지. 장미꽃 옷을 입고 있는 키안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전하. 장미꽃이 되시다니요.”

키안은 활짝 웃으며 두 손으로 자신의 턱을 괴며 말했다.


“어머니께 제 온 마음을 다 바치고 싶었어요.”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국왕이 있을 수 있을까.

키안이 국왕의 신분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볼 뽀뽀를 마구 했겠지만, 입술을 깨물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키안이 이런 내 마음을 읽은 듯 내 손을 잡고 내 손등에 마구 입을 맞춰 주었다.


“어머니도 너무 아름다워요.”

물론 나도 키안처럼 귀에 장미꽃을 꽂고 있었다. 시카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기에 시카르의 앞머리를 옆으로 빗고 꽃을 꽂아 주었다.

그랬더니 시카르도 꽤나 귀여웠다.

복장은 우리 둘 다 평민들과 같은 복장이었다. 시카르는 평범한 무명 바지와 무명 셔츠를 입었고 나는 평범한 무명 원피스를 입었다.

비카는 아무 분장도 하지 않았고 듀리온은 해적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었다.

쌍둥이들도 부르려 했지만, 쌍둥이들은 아프다고 해서 부를 수가 없었다.

레이독스는 일찍 일을 마친 김에 쌍둥이들 간호를 해야 한다고 먼저 갔고, 제르미와 로엔은 사람들을 축복하러 갔다.


“우리도 봉사활동을 할 걸 그랬나.”

“오늘은 왕국을 축복하는 날이니 축제를 즐겨야지. 헤르시아라도 부르는 건 어때?”

“헤르시아에게 서신을 보내 봤긴 한데 연락이 없어.”

“그래? 그거 정말 아쉽게 됐군.”

헤르시아와 연락이 된 것은 밀크티 레시피를 보내고 난 후 그녀에게 고맙단 답장을 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원래라면, 백작가에서 내가 보내는 서신을 받고 재깍재깍 답을 주던 헤르시아였지만, 오늘은 아직 답이 오지 않는 중이었다.

나는 아쉬운 듯 키안을 쳐다보았다.


“모처럼 밖에 나가는데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어떡하죠?”

“전 오랜만에 어머니와 함께 나가는 것만도 너무 신나요. 그리고 어머니…….”

“네?”

“밖에서는 신분을 숨겨야 하기도 하니 오랜만에 이름을 불러주시면 안 돼요?”

“하, 하지만…….”

“제발요. 예전처럼 이름도 불러주시고 말도 편하게 해주세요. 사실……. 요즘 어머니께서 절 대하는 말투가 아직 적응이 안 돼요.”

“그건 예법이 그래서 할 수 없이…….”

이곳의 예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키안이 너무나 간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에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 뭐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끼리 하루만 예법을 어겨도 되겠지. 그럼 오늘 하루만 예전처럼 엄마 노릇 좀 해볼까?

나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키안은 내 팔에 얼굴을 부비적거렸다.


“고마워요! 어머니!”

옆에서 그런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시카르는 키안에게 자신의 팔도 내밀었다.

하지만 키안은 시카르의 팔에 얼굴을 부벼주진 않았다. 그러자 시카르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마치 토라진 사람처럼 팔짱을 끼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키안은 그런 시카르를 보며 피식 웃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남자끼린 이렇게 해야지!”

시카르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키안과 손뼉을 마주쳐 주곤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마치 ‘얘 하는 거 봤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겐 좋아 보이기만 한 모습이었다.

키안이 친아버지인 발리제가 그리워 더, 시카르를 제 친아버지를 대하듯 하는 것 같았으니까.

곁에 서 있던 비카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우리를 재촉했다.


“그래서 광장엔 가는 거야, 마는 거야.”

“당연히 가야지.”

“잠깐만요!”

키안은 장미꽃을 하나 뜯어 비카의 머리에 꽃아주었다.


“축제인데 아 정도는 꾸며도 좋을 것 같아요.”

성격상 싫으면 당장 저 꽃을 빼서 던졌을 비카였지만, 싫지는 않은지 귀에 꽂은 채로 투덜거렸다.


“에이, 거슬려.”

“이제 그만 가시죠. 비카님.”

키안이 웃으며 먼저 앞장 서 걷자, 비카와 듀리온은 그 뒤를 바짝 쫓으며 말했다.


“오늘 마차는 제가 몰도록 하죠!”

시카르는 마차에 오르기 전 나를 슬쩍 잡았다.


“광장에 가면 사람이 매우 많을 거다. 만약 견디기 힘들 정도라면 말해. 약 챙겼으니까.”

이미 광장에 가기로 할 때부터 각오한 바였기에 나는 시카르에게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번…… 시도는 해봐야지. 키안과 함께니까 괜찮을 거야.”

시카르에겐 키안이 있어서 괜찮다고 말했지만, 실은 그때를 떠올려 보면 내 곁에 시카르가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았다.

내가 의지하고 믿을 사람이 있었기에 약 한 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

시카르는 나를 다독이듯 끌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나도 곁에 있다는 거 잊지 말고.”

그의 말이 고마워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의 귓불을 붉게 만들었던 말을 꺼내었다.


“쿠마마.”

이제 이 말도 약발이 다 떨어진 모양인지 시카르는 이번엔 얼굴을 붉히진 않았다. 그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이미 네 영혼은 내가 접수했다.”

역시 지나간 유행어는 쓰는 게 아닌데, 괜히 했어.

***

광장에는 레카도르 시민들이 모두 나와 있는 것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열린 축제임에도 사람들은 푸른 해가 뜬 것을 기념하며 춤을 추거나 악기를 연주했고 마술을 하거나 각종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로 넘쳤다.

먹을 걸 팔거나 재미있는 놀이를 준비한 행상인들도 꽤 많이 보였다.

키안은 솜사탕을 보자마자 앞으로 달려가서 듀리온과 함께 멍하니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것을 구경했고 비카는 옆에 서서 빨리 만들라고 재촉 중이었다.

시카르는 주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때? 괜찮나?”

“조금 토할 것 같긴 한데 그런대로 나쁘지 않아.”

“정말 많이 좋아진 것 같군.”

“그러게. 나도 이제 저주가 풀려가는 거 같은데.”

“저주?”

시카르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저 피식 웃으며 키안의 옆으로 갔다.


“솜사탕 두 개 더!”

“아이고! 감사합니다!”

솜사탕 상인은 신이 난 얼굴로 솜사탕을 만들었다.

키안과 듀리온은 어린아이처럼 ‘우와’를 연신 외치며 솜사탕 구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곧, 우리는 다들 한 손에 솜사탕을 들고 거리를 활보했다. 시카르는 자괴감이 드는 얼굴로 한 손엔 솜사탕을 들고 한 손은 얼굴을 가렸다.


“머리에 꽃 꽂고 다니는 거로도 모자라 한 손에 솜사탕까지 들고 다니다니. 치욕스럽군.”

비카는 시카르를 보며 은근히 통쾌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잘 어울리는데, 왜? 앞으로도 자주 그러고 다녀. 머리에 꽃 꽂고 있으니 미친놈이 따로 없어 보이긴 하지만…….”

시카르가 노려보는 바람에 비카는 놀리는 것을 멈추긴 했지만 큭큭 거리는 웃음을 멈추진 않았다.

아무래도 시카르가 맹약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비카와 사이가 좋아지기는 힘들 것 같은데.

솜사탕을 먹다보니 은근히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목마른데 길거리 음식이나 사 먹을까?”

나는 음료를 파는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시카르는 엄한 얼굴로 고개를 내리 저었다.


“솜사탕 정도는 괜찮지만, 국왕에게 길거리 음료를 함부로 사 먹일 수는 없다.”

시카르는 말을 멈추고 키안에게 명심하라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앞으로 궁에서 검열을 끝낸 음식이 아니면 손도 대면 안 돼. 알고 있지?”

키안이 대답않고 입술만 비죽이 내밀고 있자 사카르는 대답을 얻은 주먹을 내밀었고 키안은 힘없이 시카르와 주먹치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많은 제약 속에서 살아야 하니 기운이 빠지겠지.

그것도 그런데, 마치 래퍼들처럼 주먹치기를 하고 있는 시카르와 키안을 보니 묘하게 부러웠다.

둘이 이런 거로 통하는 모양인데 보기가 좋았다. 더 다정해 보인다고나 할까.


“키안. 나도 그거 해 주면 안 돼?”

“네? 어떤 거요?”

“나도 공작님처럼 주먹치기 해 주면 안 될까?”

키안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방긋 웃었다.


“알겠어요. 어머니. 주먹을 내밀어 보세요.”

뭔가 설레는데?

키안을 향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그러자 키안은 내 주먹을 잡고는 내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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