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축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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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축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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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화. 축제 (3)
2022.09.19.
“밀크티가 인기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그동안 귀족 사회에서만 맛보던 밀크티여서 그런지 밀크티는 시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좋았다.
“저도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어요. 커피 대용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여기에 브라우니를 더해주면 인기가 더 많아질 것 같아요.”
“브라우니요?”
헤르시아와 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카르는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브라우니가 쫄깃한 맛이 있지.”
“하지만 그런 음식은 처음 들어봐요.”
이 세계에서는 베이킹파우더를 주로 쓰기 때문에 브라우니는 금시초문일 것이다.
“간단해요. 초코케이크를 만들 때 베이킹파우더를 빼고 만들어 보세요.”
“네? 그런 케이크가 다 있어요? 마침 재료도 있는데 지금 한번 아론에게 만들어 보라고 할게요.”
헤르시아는 당장 아론에게 뭐라고 설명을 했고 그녀의 말을 곰곰이 듣던 아론은 브라우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물 조절도 중요하다. 너무 많이 넣으면 머핀 같아지고 너무 적으면 딱딱한 굳은 빵처럼 되지.”
시카르가 한마디 거들었지만, 아론은 물 조절에 실패해서 머핀 같은 브라우니를 만들고 말았다.
“공작님이 좀 알려줘.”
“내가 왜?”
“어서.”
시카르는 정말 너무너무 귀찮지만 내가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도와준다는 얼굴로 화덕 앞으로 갔다.
그가 케이크는 만드는 것은 봤어도 브라우니를 구워 본 적은 없었지만, 이론은 정확 알고 있으니 알려주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브라우니에는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맛있었다.
아론은 시카르가 만든 브라우니를 맛보자마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이렇게 쫀득한 빵은 처음입니다!”
모두 어디 한 번을 중얼거리곤 시카르가 만든 브라우니를 한 조각씩 먹고는 두 조각, 세 조각, 계속 손을 댔다. 시카르가 만든 브라우니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특히나 초코케이크를 좋아하는 키안은 브라우니를 맛보고 황홀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나도 브라우니를 만들어 줄 걸 그랬나.
“이렇게 부드럽고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의 케이크는 처음이에요!”
“제가 먹어 본 케이크 중 최고였습니다. 공작님!”
입맛이 까다로운 비카도 종이에 묻어 있는 브라우니까지 떼어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인정해 줄게.”
시카르는 아론에게 물의 비율을 정확하게 알려주며 다시 만들게 했다.
아론은 금세 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연습하다 보면 금방 늘 것 같았다. 그는 정말 브라우니에 반한 것 같았으니까.
“아버지. 나 브라우니 더 만들어 주면 안 돼?”
이제 키안은 시카르가 정말 편해졌는지 저런 부탁도 서슴없이 하는구나.
아니, 부탁이 아니라. 당연하다는 듯 주문을 했고 시카르도 당연하다는 듯 주문을 받았다.
“원한다면. 하나 더 만들어 보도록 할까.”
키안은 박수까지 치며 시카르에게 맛있게 만들라고 응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저런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감격이 밀려왔다.
처음에 서로를 향해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던 때가 떠올라 가슴이 벅찬 느낌이었다.
시카르가 브라우니를 굽는 동안 헤르시아와 나를 제외한 이들이 그의 옆에서 넋 놓고 구경 중이었다.
비카는 관심 없는 척 곁눈질로 보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이따금 입맛을 다셨다.
“참, 그럼 이제 아론도 기사직을 내려놓고 같이 장사 할 거예요?”
헤르시아는 그건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되레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 장사요?”
“그래서 아론에게 브라우니 만드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게 아니에요?”
“아…… 그건 제가 요리를 못해서 부탁한 건데…….”
헤르시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아론을 힐끔 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론이 그러겠다고 할까요?”
지금 아론을 보면 검을 쓸 때만큼 제빵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잘 상의해 보는 게 좋겠죠? 그나저나 앞으로는 자주 못 봐서 어떡해요. 장사하게 되면 바빠지겠어요.”
“제가 정말 자주 찾아뵐게요. 맞춰가는 서비스로요. 참, 이번에 마히딜 부티크에 나온 카탈로그 보셨어요? 그것도 들고 갈게요.”
“그럼 저야 고맙죠.”
와중에도 헤르시아는 밀크티를 계속 팔고 있었는데 손님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료는 또 금세 소진되었다.
“아론. 우유가 더 필요하겠어.”
“또? 공작님, 우유가 떨어졌다고 해서 금세 사 오겠습니다.”
하지만 시카르는 빵을 굽느라 아론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다녀올게!”
헤르시아에게 인사를 건넨 후 급하게 바구니를 들고 가던 아론은 누군가와 부딪혀 바구니를 떨어트렸지만 다시 순발력 있게 떨어지는 바구니를 붙잡았다.
헤르시아는 그런 아론에게 다시 반한 듯 입을 벌렸다.
“어머. 멋있어라.”
하마터면 바구니 안에 든 우유병이 모두 깨질 뻔한 탓에 아론은 두 눈을 부라렸다.
“이것 봐! 앞을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하지만 쓰러진 남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깨까지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남자가 우는 탓에 아론은 머쓱한 듯 괜찮다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그는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그 후로도 한참 더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사연이길래 저러는 거지.
“주사위 게임으로 돈을 다 잃어서 그럴걸요.”
“주사위 게임이요?”
비카는 어떤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지금 주사위 게임을 하고 있는데 이 남자가 거기서 왔거든요.”
비카의 눈에는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비카의 말을 들어보니 저 남자가 야바위꾼들에게 호되게 당한 모양이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왕국을 축복하는 축제 때 그런 사기나 치고 있다니. 참 괘씸하다고 생각하는 그때, 키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죠. 비카 님.”
평소 같으면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마지못해 갔을 비카였지만 브라우니를 기다리고 있어서인지 깜짝 놀란 듯 미어캣처럼 목을 세웠다.
“어딜요?”
“내 백성이 나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는데 군주 된 도리로 한가하게 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귀엽게 후드 모자를 쓰고 있던 키안이 모자를 벗으며 말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모습이 매우 멋져 보였다.
“아, 아니…….”
“가봐요. 어서.”
키안은 당황한 비카가 우물쭈물할 시간도 주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켰다.
“일어나시게. 돈 찾으러 가야지.”
남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키안을 보다가 비카가 키안을 따라나서며 당장 안 일어나면 죽여버린다고 말한 까닭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나섰다.
그리고 나도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시카르는 어딜 가냐며 당장 앞치마를 벗어 던지려다 잠시 앞에 좀 다녀오겠다는 말에 늦지 말라고 말하며 다시 빵 반죽을 시작했다.
듀리온은 키안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먼 곳이 아니니 시카르의 베이킹 보조를 하고 있으라고 이르고 우리는 사기도박이 행해지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야바위꾼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비카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며 주사위 게임을 보고 있었다.
“저런 속임수에 당하다니. 인간들이란.”
엘프들은 시력이 좋으니까 저런 거에 당할 일이 없겠지.
참, 그렇다면 비카가 저 돈을 다 따면 되잖아?
나는 키안과 비카에게 꽤 괜찮은 계획 하나를 알려주었고, 두 사람은 마음에 드는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 계획이란 것은 비카가 돈을 모두 따버리는 것이었다.
사기꾼들은 비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비카가 사실 다크엘프 혼혈인 걸 알면 절대 판에 끼워주지 않겠지만, 겉보기에는 그저 피부가 까무잡잡한 인간처럼 보였기에 두 팔 벌리며 환영하듯 맞았다.
그리고, 비카는 기가 막히게도 너무나 쉽게 주사위가 숨겨진 컵을 찾아내었다.
어떻게 저렇게 쉽게 찾을 수가 있지?
신기한 건 키안도 마찬가지였는지 주위에 있던 구경꾼들과 같은 입장이 돼서 입을 쩍 벌리며 비카를 구경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비카가 돈을 따자 사기꾼들도 화가 났는지 비카가 더는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것 봐요. 작작 해먹으슈. 양심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이제 그쪽이 거는 돈은 안 받겠수다.”
“이놈들 보게. 내 돈을 왜 안 받겠다는 거야?”
“거는 족족 돈을 따가는 게 수상하니까 그러는 거 아뇨.”
“그래? 그럼 안 하지, 뭐.”
뭐야.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거야?
아직 돈을 다 못 찾았는데 이렇게 쉽게 관둔다고 말하는 비카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히 아까는 돈을 다 따기로 했으니까.
귀찮아서 그런 건가? 싶은 찰나, 아이러니 하게도 야바위꾼들이 비카를 다시 붙잡았다.
“좋수다. 그럼 가진 거 몽땅 다 걸고 하쇼.”
비카는 대답도 않고 있는 돈을 모두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렸다.
“시작해.”
아무래도 낌새를 보니 사기꾼들이 작정하고 사기 치려고 하는 거 같은데.
다시 주사위 게임은 시작됐고 사기꾼들은 컵을 돌렸다.
“돈 놓고 돈 먹기. 운 나쁘면 쪽박, 운 좋으면 대박. 이거다 저거다 말하지 말고 돈을 거시오!”
사기꾼이 말을 끝내며 컵을 정렬하며 비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비카는 중앙에 있는 컵 앞에 돈을 놓았다.
“과연 이 컵 속에 주사위가 있는지 봅시다!”
사기꾼이 컵을 들어 올릴 때 우리는 당연히 거기 주사위가 있겠지 생각했지만, 거기에 주사위는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러니까 처음에는 비카가 잘했던 게 아니라 일부러 비카가 돈을 모두 딸 수 있게 유도한 거였던 거야?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사기꾼이 실실 웃으며 돈을 쓸어 담으려고 하자 비카는 사기꾼의 양손을 잡으며 내게 말했다.
“나머지 컵도 모두 뒤집어 보시죠.”
비카의 말에 따라 나머지 컵도 모두 뒤집어 보았지만, 주사위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비카가 사기꾼의 손을 잡고 털기 시작하자 옷소매 안에 숨겨져 있던 주사위가 튀어나와 데구르르 바닥으로 굴렀다.
“이런 식으로 돈을 땄군?”
저걸 알아낸 비카도 정말 대단했지만, 사기꾼의 반응도 대단했다.
“당신, 이게 무슨 행패야! 가만 안 두겠어!”
말은 가만히 안 둔다고 하고 있었지만, 비카에게 두 손이 잡힌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사기꾼이 다른 사기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쳐다보자 손님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비카에게 달려들었다.
“그 손 못 놔?!”
하지만 달려들던 이들은 모두 비카의 날라차기, 옆차기 등에 고꾸라졌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비카를 보며 입을 쩍 벌렸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미모의 여인이 사내 둘을 때려눕히고, 사내 하나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고 있으니 진귀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도 비카는 너무 멋있었다.
이제 이쯤 했으면 항복하겠지 싶었던 찰나, 쓰러졌던 사내들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며 비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내들은 순식간에 비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비카가 피하기에는 쉽지 않을 만큼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였다.
그 순간 레이독스가 나타나 검을 휘두르며 사내들의 손에 들려져 있던 칼을 쳐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