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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화. 이별은 예고 없이 (2) (157/197)


157화. 이별은 예고 없이 (2)
2022.12.01.


헤르시아는 꽤 당황하긴 했지만 내 선택을 존중했다.

하지만, 며칠 후 헤르시아는 다시 나를 찾아와서 내 시녀가 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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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헤르시아는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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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공작부인. 저도 아는데…… 공작님께서 다시 지원하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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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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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께서 제가 시녀직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다시 지원해달라고 말씀하셨어요. 공작부인의 진심은 그게 아닐 거라면서요…….”

시카르가 내 기억을 보고 헤르시아에게 그런 말을 했던 모양이다.

만약 내가 사라짐으로써 헤르시아가 받게 될 충격도 걱정되었지만, 친한 친구에게 두 번이나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엔 그녀를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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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헤르시아.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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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서연 님의 빈자리를 꼭 잘 채울게요.”

이전에 한 번 해봐서인지 헤르시아는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시녀 일을 꽤 잘 해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한 헤르시아는 내가 오늘 입을 옷을 준비했다.

옷을 고르는 수준도 높아서 결코 아무 옷이나 준비하지 않았다. 요즘 유행하는 옷에서부터 액세서리, 향수까지 모든 것을 준비해주었다.

그리고 사교계에 돌아가는 소식까지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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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데뷔당트에서는 버렛 영애가 눈에 띄었다고 해요.”

나는 그녀를 알았다. 원작에서 그녀는 눈에 띄게 예뻐서 길리언의 눈에까지 들었고, 버렛을 시기한 다이엔느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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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모두 루시 영애의 데뷔당트를 기대했는데, 이제 루시 영애는 왕후가 되실 분이라 데뷔당트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것에 다들 아쉬워했어요.”

원작에서 루시는 데뷔당트을 무사히 치렀고, 숱한 귀족 영식들에게 프러포즈를 받았고, 그들은 루시에게 정강이를 차이는 것으로 거절을 당했었다.

루시의 아름다움 뒤에는 그런 거친 모습이 있었지만, 키안은 그런 루시에게 한 번 더 반하게 되었다.

물론 왕후가 된 이후에는 품위와 교양을 잃지 않긴 했지만, 간혹 각료들이 화나게 하면 잭나이프를 꺼내 들어 다트를 하기도 했다.

지금의 루시도 시간이 지나면 원작처럼 씩씩해지겠지.

그래. 모든 건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일이었다.

서연이 사라졌어도 우리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해 갈 테고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다들 일상을 회복해 가겠지.

시카르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 그만일 테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자 시카르가 요즘 방법을 찾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시카르가 저렇게 애쓰는데 마음 약해지면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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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번에 공작부인의 덕을 톡톡히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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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덕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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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작부인의 시녀가 됐다는 걸 알게 된 영애들이 제 결혼식 때 들러리를 서겠다고 수십 명이 지원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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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나 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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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게 잘 보이려고 다들…….”

말하다 헤르시아는 이게 아닌 것 같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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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작부인 덕분에 덩달아 우리 카페도 더욱 호황을 이루고 있어서 매장을 하나 더 내야 할 판이에요. 덕분에 아론이 요즘 돈독에 올랐지 뭐예요.”

내가 왕모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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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국왕의 사촌 여동생일 때도 이러진 않았거든요. 그땐 절 별 볼 일 없게 보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에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올라 새삼스러웠다. 그때는 그저 원작 속 시카르의 아내란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내 동료가 돼 있는 헤르시아.

부디 그녀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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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시아. 내가 국왕과 공작님께 말해둘 테니 혹시 내가 없더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국왕과 공작님께 말해요. 알았죠?”

헤르시아는 내 말을 전혀 못 알아듣겠다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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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부인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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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궁을 비웠을 때 말이에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헤르시아도 이제 알겠다는 듯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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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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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르시아가 나의 시녀가 된 지도 한 달이 넘어갔다.

그동안 시카르와 레이독스는 서연을 다시 돌아오게 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국사를 뒤로하고 매일 같이 돌아다녔다.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시카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얼굴로 어느 날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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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이 없어. 신관들도, 주술사들도. 마법사들도 아무도 모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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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님의 상심이 크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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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인데.”

시카르는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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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주를 지우지 않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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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입버릇처럼 네 저주가 풀리길 바란다고 해서. 그래서 그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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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네가 사라지는 것보다 나으니까.”

시카르는 괜찮은 척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건 그렇게 덤덤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버럭 고함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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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잖아. 내버려 두면 결국 온몸이 다 얼어서 죽어버리고 말 거라고. 아가시온이 심은 저주의 씨앗을 지워야 해.”

하지만 시카르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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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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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성격에 네 저주를 풀어줄 날만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때 국왕에게는 뭐라고 할 거야. 네 왕모가 사라질 것 같으니 저주를 풀어 줄 수 없다고 할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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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은 이해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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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못 할 거야. 나도 이해 못 해. 그리고 내가 사라지는 조건이 반드시 네 저주가 아닐 수가 있잖아. 그러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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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라는 조건은 그래서 위험하지. 만약 네가 사라지는 조건이 내 저주가 맞다면 그땐 서연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겠지. 아무 방법도 없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내 저주를 풀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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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린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거야. 나는 키안과 바닷가에도 가고 싶어. 키안이 결혼하는 것도 보고 싶고 너와 단둘이 여행도 가고 싶어. 네 말대로라면 우리 아무것도 못 해.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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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원하는 걸 이루며 살 수 없다. 그중 가장 소중한 걸 지키며 살 수밖에 없겠지.”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카르는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시카르가 근 한 달간 방법을 찾아다니는 동안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가 방법을 찾길 바랐지만, 못 찾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여럿 그려 보았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사라지는 게 옳은 일이었다.

시카르의 죽음을 발판으로 이곳에 남아 있는 건 무의미하다 느꼈다.

물론 시카르가 얼마나 가족에 대한 애정이 깊은지 나는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 부모의 죽음을 용인할 수 없었던 시카르가 아가시온의 저주를 받게 된 것도.

모두 이미 한참 전에 돌아가신 부모를 살리기 위해 한 일이었으니까.

고대의 부활서.

시카르는 그런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결국 부모를 살리려다 저주받은 몸이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남은 평생을 제 저주라도 없애기 위해 살아간 가여운 시카르의 삶을 저대로 방치하고 싶진 않았다.

그가 내 포비아를 치유해준 것처럼 나도 하나쯤은 그를 치유해줘야 했다. 그게 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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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라지지만, 넌 죽어. 사라진 사람에게는 분명 다시 기회가 있을 거라고 난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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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이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아직 돌아온 이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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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더 시간이 지나 봐야 아는 거야. 저주는 너를 고통스럽게 만들다 죽일 거야.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시카르는 내 말은 하나도 귀에 들리지 않는 듯 고집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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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행복은 너다. 네가 없으면 모두 소용없을 뿐이야.”

시무룩해 보이는 시카르의 눈빛이 너무나 슬퍼 보였다.

서연이 사라진 이후. 요즘 그는 정말 넋이 나가 있는 사람 같기만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바보 인형처럼 툭하면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가여운 시카르.

나는 일어서 앉아 있는 시카르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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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순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을 해야 해. 우리, 내 말대로 하자.”

내게 안긴 시카르는 내 손을 꽉 쥐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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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키안이 내 저주를 풀려면 2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동안 난 무조건 방법을 찾을 생각이다.”

원작에서 키안이 시카르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능력이 되는 나이가 열두 살이었으니,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2년 남짓 안 되었다.

이 세계가 누군가의 절망으로 이루어진 곳이라면. 그래서 누군가의 희망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곳이라면 시카르가 어떤 방법을 모색한다 해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있다면 좋겠지만. 너무 기대를 갖다가 실망하는 건 더 타격이 컸기에 나는 아무 기대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해답도 얻지 못한다면 우리의 남은 추억은 방법만 찾다 끝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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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르. 난 우리가 그동안 추억을 더 많이 쌓았으면 좋겠어. 네가 후작님과 함께 한 달간 방법을 찾는 동안 우리 얼굴도 잘 못 봤잖아. 나와 남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고 싶어?”

시카르는 내 팔을 잡아끌어 나를 옆으로 앉혔다. 그의 표정은 꽤나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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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몇 개의 가정을 놓고 그것만 붙들고 있다가 한순간에 서연을 잃은 후작의 심정을 생각해봤어?”

물론 내가 그것까진 가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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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님이 그렇게까지 죄책감을 느끼는 줄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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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 사라지고 레이독스가 가장 후회했던 부분이 그것이었다. 그녀가 있는 동안 다른 그 어떤 가정도 들지 않았다는 것. 아무런 방법도 모색하지 않았다는 것. 그냥 몇 개의 가정에만 의지했던 것을 가장 후회하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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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걸 보고 넌 그러지 않겠다고 생각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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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난 그러지 않을 거야. 무슨 수를 써서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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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뭐든 다 해. 대신에 국왕이 능력이 된다면 그땐, 네 저주를 없애겠다고 약속해. 아직 2년이나 남았잖아. 그러니까 그것만이라도 약속해줘. 키안이 두 번이나 아버지를 잃게 할 순 없어!”

시카르는 마지 못한 듯 한숨을 쉬고는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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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다. 내가 그동안 방법을 못 찾는다면 국왕의 치유를 받겠다.”

하지만 시간은 시카르의 편이 아닌 내 편이었다.

키안은 원작에 비해 훨씬 이르게 많은 수업을 받았고 훨씬 일찍 푸른 해를 띄웠다.

그런 까닭일까. 아니면, 저주의 진행으로 자주 고통스러워하는 시카르를 본 까닭일까.

원작에서 열두 살에 시카르의 저주를 푸는 힘을 가질 수 있었던 키안은 벌써 그런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시카르가 방법을 찾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몇 달 뒤.

아침 식사 중 키안은 불현듯 이런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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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저 이제 아버지의 저주를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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