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8화. 믿을 수 없는 일 (1) (168/197)


168화. 믿을 수 없는 일 (1)
2023.01.09.


시카르가 사라지고 없는 지금.

그를 그리워하는 키안의 눈에 이제는 발리제가 보이는 것일까.

어쩌면 그런 것일 수 있겠다 싶었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앙숙과도 같았던 두 사람이 이제야 서로 편해졌는데 이런 갑작스런 이별을 맞이하게 됐으니 키안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국왕…….”

나는 키안을 꼭 안아주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겠죠. 우리 조만간에 설산에 가서 부마님도 뵙고, 공작님도 봬요. 그렇게 해요.”

그러자 키안은 나를 살짝 밀어내며 내게서 벗어났다.


“그, 그런 걸까요? 제가 아빠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헛것이 보이는 걸까요?”

허상을 보며 자신의 친아빠라고 믿는 키안 때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기에 나는 시선을 피하며 믿어주는 척 고개를 돌렸다.


“그래요? 어디요? 어디 봅시다.”

“저기요. 어마마마 옆에 계신 분이 보이죠?”

키안의 말대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베로니아 옆에는 왠 남자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갈색 머리를 한 그는 어딘가 낯이 익어 보였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번뜩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보니 그가 누군가를 닮아 있다는 건 느낄 수가 있었다.

발리제 타히곤.

그가 살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분명 그는 설산에 잠들어 있던 발리제 타히곤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멀쩡히 걸어서 온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은 아니었기에 그가 발리제 타히곤이라고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비슷한 사람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저 사람이 정말 발리제가 맞거나 내가 키안과 함께 헛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가까이 다가오는 그 남자의 눈가가 촉촉해 지고 있었으니까.

그 눈빛이 나를 보고 촉촉이 젖은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키안을 향해 있었고, 아주 애틋하고 깊은 그리움을 나타내는 눈빛이었다.


“키안!”

그가 키안의 이름을 불렀을 때, 키안은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뛰어갔다.


“아빠?!”

키안은 영락없는 열 살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발리제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너무나 혼란스러운 나머지 나는 정말 발리제가 다시 살아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니. 말이 안 되잖아!’

물론 이곳은 최고위 신관들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곳이지만, 발리제처럼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능했다면 원작에서 그렇게 살렸을 테니까.

정말 발리제가 살아나다니. 믿기지 않았지만 바로 눈앞에 살아 있는 그가 존재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는 이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감동을 느꼈다. 비록 시카르는 없지만 키안에게 다시 발리제가 돌아왔으니 더는 애타게 제 아빠를 그리워하며 살지는 않을 테니까.

키안과 발리제는 서로를 끌어안으며 한 맺힌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 아빠? 정말 아빠야?”

발리제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저를 쳐다보는 키안의 뺨을 어루만졌다.


 


“우리 키안. 그새 많이 자랐네? 한 뼘은 넘게 자란 거 같은데?”

“아, 아빠. 허상이 아닌 거지? 정말 아빠인 거지?”

“그래. 나 맞아……. 나 진짜 네 아빠야. 우리 키안. 그동안 아빠 없이도 이렇게 잘 자라주었구나…….”

발리제는 말을 하면서도 목이 메이는지 말끝을 흐렸다.


“아빠. 어떻게 된 거야? 다시 가야 하는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난 하나도 모르겠어.”

발리제는 자신의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을 훔친 후 키안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빠 이제 안 가. 나 이제 우리 키안 곁에 있을 거야.”

“정말이야? 이제 정말 내 곁에 계속 있을 수 있는 거야? 나와 평생 함께 사는 거야?”

“그래. 이제 우리 함께 사는 거야. 옛날처럼…… 아니, 이젠 네 엄마도 있으니까 우리 세 식구가 다 함께 살 수 있어.”

“세 식구?”

“그래. 우리 세 식구.”

키안은 이젠 좀 진정이 된 듯 눈물을 닦으며 울음을 참아내며 말했다.


“아빠. 나한테는 내가 평생 지켜드려야 할 어머니가 있어.”

발리제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길에 네 엄마에게 들었다. 널 키워준 분이 계시다지?”

키안은 눈물을 닦으며 발리제의 손을 끄집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인사드려. 내 어머님이야.”

죽었다 살아 돌아온 발리제를 보고도 나를 잊지 않고 챙기는 키안의 모습이 고맙고 감격스러웠다.

발리제는 내게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우리 키안을 입양해서 잘 키워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순수하게 키안을 잘 키우려는 목적만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발리제에게 이런 말을 듣기에는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에요. 우리가 키안을 키운 건 단지 키안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어요.”

발리제는 내 말에 의구심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 수긍했다.


“어쨌든 블레이크 공작 부인께서 우리 키안을 거두신 덕분에 제가 다시 이 땅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모로 우리에게는 은인이십니다.”

그때, 나는 발리제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덕분에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니. 납득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저희 때문에 부마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인가요?”

발리제가 처음 보는 나를 상대로 농담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지금은 농담을 할 상황도 아니었고 그는 쓸데없이 농담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다.

발리제는 내게 대답하는 대신 베로니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베로니아는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놀랐겠군.”

“네. 아무래도…….”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 묻고 싶겠지. 너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을 테니까.”

“네. 저하. 부마님의 부활이 저희와 연관이 돼 있다고 말씀하시니 저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아서…….”

“고대의 부활서라고 들어본 적이 있겠지?”

“네.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 덕분에 발리제가 살았다. 너희가 그를 설산에 안치해서 그이의 육신이 잘 보존된 덕분에 이리 살아날 수가 있었지.”

그래서 우리 덕분이라고 했던 모양이었구나.


“정말…… 정말…… 감축드립니다. 저하의 깊은 마음에 하늘도 감동해 이런 기적이 일어난 게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축드립니다.”

베로니아는 굳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건 기적이 아니다.”

“네?”

“누군가의 노고 덕분이다.”

그렇게 말하는 베로니아의 숨에서 끊임없이 한숨이 베여 나왔다.


“아. 네, 그렇군요.”

“바로 블레이크 공작의 노고 덕분이었지.”

시카르가? 시카르가 죽기 전에 무슨 일을 했다는 건가?


“공작님께서 어떤 도움을 주셨다는 건가요?”

베로니아는 두 눈을 번뜩이고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공작은 살아 있다.”

“네?!”

“내가 오늘 이곳을 급히 찾은 것은 키안에게 제 아비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있지만, 네게 정황을 말해주기 위함이다.”

“정황…… 이라니요? 공주 저하.”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듣도록 해라.”

 

***



“이미 부, 부활서는 소, 소실 되었습…… 에취!”

대신관은 코를 훌쩍거리는 신관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밤 신관들은 설산의 추위를 예상하지 못하고 대기하다가 결국 하산하고 말았지만, 동상을 입거나 심하게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다시 대신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로엔을 비롯해 그나마 건강 상태가 양호한 신관들만이 남아 대신관에게 상황을 보고 중이었다.


“부활서를 되찾지 못했으면 공작이라도 찾아왔어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브, 블레이크 공작이 설산을 버, 벗어나는 것을…… 에취! 마, 막지 모, 못…… 에취!”

말을 하던 신관은 본인도 민망한지 튀어나온 콧물을 닦느라 고개를 숙였다.

대신관은 꼴 보기 싫다는 얼굴로 쯧쯧 거리며 신관들을 훑어봤다.


“무작정 설산에만 가면 레페르께서 네놈들을 추위에서 보호해줄 것이라 믿은 것이냐!”

“아, 아닙니다. 저희가 너무 설산의 추위를 얕본 탓에…….”

말을 멈춘 신관은 애꿎은 로엔을 노려보았다. 설산의 추위라면 이중에서 가장 잘 알고 있는 로엔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기에 모두 그녀의 탓이라 여겼다.

모든 신관이 로엔을 노려보자 대신관은 그 시선을 받아 로엔을 쳐다보았다.


“로엔 넌 알고 있었다지?”

“무슨 말씀이시죠?”

“설산의 추위 말이다.”

“네.”

“그런데 왜 동료들에게 미리 경고해주지 않았던 것이냐.”

“그 전에 부활서를 찾을 줄 알았거든요. 물론 계획대로 되진 않았지만요.”

“네가 계획에 협조를 하지 않은 건 아니고?”

로엔은 그럴리가 있겠냐는 듯 당당하게 대신관을 쳐다보았다.


“설산에는 베로니아 공주님께서 기거 중이셨어요. 대신관님께서 항상 우리는 레카도르 왕실과 함께 하는 운명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공주님의 거처에서 무례를 범할 수는 없었어요.”

“공주님께 양해를 구하지 그랬느냐?”

곁에서 듣고 있던 신관이 이때다 싶은 듯 앞으로 나섰다.


“공주님께서는 블레이크 공작을 비호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전과 더는 운명을 함께하지 않겠다는뜻이 아니겠습니까?”

대신관은 그 말에 수긍하지는 않았다.


“부활서를 놓쳤다면 공작이라도 잡아 와야겠지. 너희는 지금 당장 공작을 추적해서 붙잡아 오거라. 파인더를 고용해도 좋다.”

“알겠습니다. 대신관 님.”

“그리고 로엔. 너는 이 일에서 손을 떼거라.”

로엔은 반문하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이 일에서 자격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신관들이 모두 물러나자 대신관은 아직 남아 있는 로엔을 향해 말했다.


“로엔. 나가지 않고 뭐하고 섰느냐.”

“블레이크 공작님을 어쩔 생각이십니까?”

대신관 역시도 블레이크 공작을 잡아들이는 일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블레이크 공작이 그동안 신전을 위해 행한 일들을 감안해서 부활서만 돌려받으면 이 일을 덮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부활서가 소실된 지금 블레이크 공작은 엄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블레이크 공작이 그동안 대신전을 위해 했던 일들을 참작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렇게 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가 저지른 죄는 중죄이다.”

“그래서…… 설마…….”

로엔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중죄를 진 블레이크 공작을 엄벌에 처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그 벌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엔은 제발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기를 바라며 숨죽이고 대신관의 말을 기다렸다.


“공작님을 어쩌실 생각인지 알려주세요.”

“봉인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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