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낯선 가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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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낯선 가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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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화. 낯선 가족 (2)
2023.01.30.
어색한 식사자리.
아니, 시카르만 어색하게 앉아 있는 식사자리였다. 특히 식사가 나오기전 발리제가 시카르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공작님께서 제 목숨을 살려주고 고아가 된 제 아들을 거두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까지 감사해하실 일은 아닙니다. 부마님. 그러니 이제 이 손은 그만…….”
시카르는 제 손을 붙잡고 있는 발리제의 손을 떨어트리려 했지만, 발리제는 좀처럼 시카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참으로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에 누가 제 양자의 친부를 되살리겠다고 그렇게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자처하겠습니다. 공작님께서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내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제가 그 산 증인이고요. 그러니 제발 제게 은인의 손을 조금만 더 잡고 있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유라도 이쯤되니, 난처해하는 시카르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삐질삐질 진땀을 흘리고 있는 시카르의 모습이 꽤 귀엽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그러고 있는 사이, 베로니아는 아직 근심이 깃든 얼굴로 유라에게 말했다.
“공작이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지.”
“공주 저하께서 마음 쓰실 일이 아니오니 염려 놓으시옵소서.”
“내 남편을 구하느라 공작이 곤란해진 건데 그럴 수는 없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신전에게 왕실까지는 추적하지 않는다는 구나.”
“그렇다 들었습니다. 공주 저하.”
“하지만, 영원히 궁 안에 공작을 숨겨둘 수도 없겠지.”
“그동안 저희도 방법을 찾을 생각이니 공주 저하께 심려 끼칠 일은 만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발리제도 찾았겠다. 유라는 진심으로 베로니아가 행복하길 바랐다.
유라는 여전히 시카르의 손을 잡고 있는 발리제를 봤다가 다시 베로니아를 쳐다보았다.
“부마님께서 크게 감동하신 듯 합니다.”
베로니아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듯 신경쓰지 않고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원래 꽤 감성적인 사람이었는데 키안을 낳고 나서는 더 감성적으로 변했지. 사실 저렇게 감동한 모습은 나도 처음이구나. 키안을 낳았을 때도 저러지는 않았거든.”
“그러시군요.”
시카르는 어떻게 좀 해보라는 듯 유라를 쳐다보았지만, 유라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애석하다는 얼굴이었다.
베로니아는 그런 시카르의 표정을 귀신같이 집어내었지만 모른 척했다.
어색하고 고요한 침묵만을 예상했던 시카르는 발리제가 손을 놓아주지 않자 고함을 쳐서라도 그를 떼어내고 싶었지만, 제 양자의 친부인 것을 떠나서도 국왕의 친부였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유라가 그런 시카르를 당황스러운 눈으로 볼 때마다 베로니아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버려 두어라. 발리제가 저럴 땐 나도 말릴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시카르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발리제에게 한 손을 붙잡혀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 시카르는 듀리온과 비카를 발리제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여기는 비카 램버스트. 제 수족이자, 정령사입니다.”
발리제는 이미 비카의 대한 얘기를 베로니아에게 들어서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날 구하는 데 일조했으니까요. 그리고 다크엘프 혼혈이라는 것도 베로니아에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발리제는 비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전에 정말 고마웠다. 비카.”
비카는 차분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알려주신 썰매 덕분에 무사히 탈출이 가능했습니다.”
발리제는 호탕하게 껄껄거리며 웃었다.
“그것이 몇 년이 지나도록 그 자리에 있어 준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지. 베로니아가 썰매를 잘 보관해주었다고 하더군. 베로니아에게 감사드리게.”
그저 베로니아가 설산에서 지내는 줄로만 알았지 설산을 관리하고 있었던 건 몰랐기에 시카르를 비롯해 모두들 놀라운 듯 베로니아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놀라건 말건 관심이 없었다. 베로니아의 관심은 키안이 언제 도착하느냐였으니까.
곧 시카르는 듀리온을 발리제에게 소개시켜주었다.
“이쪽은 듀리온 아이반디카. 저의 수족이자, 현재는 임시로 궁성수비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현 국왕의 치세가 안정되고 나면 물러날 예정입니다.”
“국왕이 치세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공작의 수하들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모두 물러난다면 누가 있어 국왕을 보필한단 말인가. 그대들이 계속 맡아 하지 않고.”
“국왕이 성인이 되고 나면 제 사람을 스스로 잘 등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국왕은 사람을 잘 판단하는 눈을 갖고 있으니까요.”
시카르의 설명에도 발리제는 아쉽다는 듯 듀리온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임시로 수비대장을 맡기에는 듀리온의 우람한 기세가 너무 아깝군.”
이건 칭찬이었고 듀리온이 아무리 둔해도 제 칭찬은 철썩같이 알아 들었다.
듀리온은 제 칭찬에 귀를 쫑긋거리며 이때다 싶은 듯 고개를 숙였다.
“부마님을 이렇게 만나뵙게 돼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우리 키안을…… 아니, 국왕을 잘 부탁하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제 목숨을 걸고 레카도르 왕실을 지키겠습니다.”
인사가 끝난 후 비카는 오버하지 말라며 듀리온의 목 뒷덜미를 잡아 끌고 나갔다.
그와 동시에 안드레아에게서 키안이 관료들과의 석찬이 끝났다는 보고를 들은 유라는 베로니아 공주 부부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곧 국왕이 당도하신다 하니 그동안 차를 좀 내오겠습니다.”
베로니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시카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유라를 자리에 앉혔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부마님께서도 아직 밀크티를 마셔보지 못하셨을 테니 제가 한잔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밀크티라니요?”
“제 아내가 좋아하는 차인데 마셔보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유라는 시카르가 밀크티를 핑계삼아 이 자리를 잠시라도 벗어나려는 것처럼 보였다.
발리제는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에 호기심을 보이며 베로니아에게 물었다.
“당신도 마셔본 적 있어?”
“글쎄. 관심 없어서 모르겠는데.”
두 사람의 성격이 다르지만 너무 잘 어울려 보이는 모습에 유라는 안심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렇게 만나게 해준 시카르의 용기에 또 한 번 감탄했다.
그리고 준비했던 얘기를 꺼내었다.
“두 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베로니아는 탐탁지 않은 얼굴로 한숨부터 내쉬었다.
“네 부탁은 늘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럼에도 잘 들어 주셨지요.”
“말해 보아라.”
“저는 두 분이 이곳에서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베로니아는 예상했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내 예측을 빗나가지 않는군. 네가 그 말을 할 줄 알고 있었다.”
“황공합니다.”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베로니아와는 달리 발리제는 당황스러움에 눈빛이 흔들렸다.
“저희가 이곳에 머물기 원하는 것은…….”
“아마 부마님께서 하시는 생각이 맞으실 겁니다. 저는 두 분이 원래의 자리를 찾는 게 맞다고 판단됩니다. 원래 지금의 국왕 자리도 베로니아 공주님께서 앉으셨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하지만, 공주님은 그것을 마다하시고 부마님의 곁에 머물길 원하셨습니다.”
발리제는 정말 네가 그랬냐는 듯 베로니아를 쳐다보았고, 베로니아는 조금은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베로니아가 그런 큰 결정을 내린 줄은 몰랐습니다.”
“공주 저하께서는 부마님의 죽음에 크게 슬퍼하셨으니까요. 하지만 부마님이 다시 돌아온 지금. 저는 두 분이 다시 본래의 위치를 찾으시고 국왕의 곁에서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베로니아는 유라를 물끄러미 보다가 시카르의 말이 떠올랐다.
“네가 그런 결정을 올린 것은, 공작의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인가?”
유라는 베로니아에게 제 속을 들켰다는 생각에 당황하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닙니다. 공주 저하.”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묻어라. 국왕에게는 네가 필요하다. 너는 국왕이 어릴 때 내가 주지 못했던 살가운 어미의 정을 알게 해줬으니, 국왕에게는 친어미인 나보다도 더 애틋한 사람이겠지.”
“그럴 리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공주 저하.”
“어쨌든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고쳐라. 알겠느냐.”
하지만, 유라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고, 베로니아는 다시 물었다.
“알겠냐고 물었다.”
“숙고하겠습니다.”
베로니아는 알고 있었다. 제가 아무리 뭐라고 한다고 해도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그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파동을 일으키고 싶었다. 키안에 곁에 둘이 함께한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유라만은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베로니아가 유라에게서 더 대답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그 사이 키안이 도착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키안은 오자마자 시카르를 찾았기에 발리제는 서운한 듯 키안을 쳐다보았다.
“이놈아. 나는 안 보이냐.”
키안은 흘기듯 발리제를 쳐다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국왕에게 이놈이라니. 아빠.”
“아, 그렇지. 너 국왕이지.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렇다. 이놈아.”
“어서. 적응해. 아랫사람들이 보면 놀라 기절할 거야.”
키안에게는 3년 만에 보는 아버지였지만, 발리제에게 키안은 깨어나기 직전까지도 보았던 아들이었기에 시간의 간극이라곤 키안이 그새 훌쩍 자랐다는 것 말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키안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제 아들이 국왕이 되었다는 걸 다시금 상기해본다고 해도 쉽게 고쳐지진 않았다.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이놈…… 아니, 국왕아.”
키안은 섭섭한 얼굴로 앉아 있는 발리제에게 웃으며 차를 따라주었다.
“너무 서운해 하지마. 그 아버지가 아빠를 내게 돌려주느라 목숨도 걸고, 삶도 걸었으니까.”
키안의 말에 발리제는 다시 심각해졌다.
“들었다. 대신전의 추적을 받는 몸이 되었다지.”
“그래.”
“만약 붙잡히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봉인이 불가피하다고 했어.”
충격을 받은 건 발리제뿐만이 아니었다. 베로니아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베로니아는 결코 그런 일만은 막게 하겠다는 듯 키안을 쳐다보았다.
“만약 그런 사태가 발생한다면, 국왕이 어떻게든 막아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명이었다. 키안도 알고 있었기에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는 시카르가 이미 그것을 각오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키안은 근심으로 가득한 유라를 보며 이제는 대신전에서 합의 봤던 일을 말해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어머니.”
키안의 소리에 베로니아와 유라, 모두가 반응했다. 키안은 두 사람 모두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아버지 일은 제가 알아서 잘 해결했습니다.”
분명한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베로니아와 유라는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어떻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유라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해결을 보셨다는 말입니까?”
키안은 차분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