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외전7
(187/197)
187화. 외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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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외전7
2023.03.16.
베로니아는 키안이 휘낭시에를 먹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덕분에 키안은 빵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디저트를 먹을 땐 담소가 오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인 게 보통이었지만, 지금 이곳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국왕이 요즘 휘낭시에를 좋아한다고 해서 준비하라 이른 건데 입맛에 맞는지 모르겠군요.”
키안은 난처한 듯 손에 든 휘낭시에를 보며 긁적거렸다.
“아. 사실 루시 영애가 좋아해서 요즘 자주 먹게 된 건데 나쁘지 않은 거 같아요.”
“그렇군. 루시가 좋아한다니 챙겨줘야겠지. 루시에게도 휘낭시에를 보내도록 일러두지요.”
기대하지 않았던 탓에 키안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발리제가 베로니아를 향해 엄지를 계속 올리자 그녀는 그만하라는 듯 발리제를 흘겨보았다.
그러곤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발리제는 베로니아를 향해 채근하듯 눈을 흘기며 속삭였다.
‘태몽 얘기해주기로 했잖아.’
베로니아는 한숨을 내쉬며 키안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국왕.”
“네 어마마마.”
“혹시…….”
“네?”
“혹시 국왕의 태몽…… 얘기가 궁금하다면 해 줄까 하는데.”
이미 키안은 태몽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부터 미어캣처럼 목을 빼며 베로니아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그러곤 아주 기다렸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듣고 싶습니다!”
너무나 기다렸다는 키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한 덕분에 기분이 살짝 좋아진 베로니아는 피식거리며 웃고는 말했다.
“그토록 알고 싶다니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 하지만 생각보다는 대단할 게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도록 하시오.”
“네. 어머니.”
“국왕의 태몽은 말입니다…….”
***
베로니아는 홀로 바닷가를 걷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뿐이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걷는 바닷가는 황홀할 만큼 몽환적이고 아름다웠다.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을 홀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파도가 베로니아를 덮치듯 몰려왔다.
그렇게 크게 올라선 파도는 베로니아를 집어삼킬 듯하다가 그대로 고형처럼 멈추었다.
손으로 만져보자 파도는 그저 물이었다. 하지만 꼼짝도 않고 베로니아의 머리 위에서 멈추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언가 영롱한 것이 반짝거렸다.
그것은 황금 진주였다.
생전 처음 보는 황금 진주의 아름다움에 홀린 듯 베로니아는 저도 모르게 황금 진주를 꺼내 잡았다.
그러자, 파도는 다시 뒤로 물러나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놓을 새도 없이 베로니아의 손에 든 황금 진주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그것은 어느새 공처럼 커져 있었다.
당황한 베로니아가 품에서 황금 진주를 떨어트리려 하자, 그것은 베로니아의 뱃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베로니아의 배가 예쁘고 둥글게 커졌다.
[그건 황금 진주가 아니라 황금알이었던 것이지.]
***
이야기를 모두 들은 키안은 감탄한 얼굴로 입을 슬쩍 벌리고 있었다.
저 이야기 속에 나오는 황금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었다.
“그럼 그 알이 저…….”
“국왕의 태몽이 황금알인 것이지요.”
“!!!…….”
태몽을 듣기 잘한 것 같았다. 발리제가 태몽을 말해주지 않는 이유가 저는 태몽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긴 까닭이었다.
하지만 황금알의 태몽이라니.
키안은 반드시 왕실 역사에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노년의 자신의 일대기를 저술하는 동안 반드시 기록하고 싶은 태몽이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지 않으셔서 태몽이 있는지 몰랐는데, 루시 영애에게 들려줘야겠어요.”
“영애께서 좋아하시겠군요.”
또다시 조용해지자, 발리제는 찻잔을 들어 올리며 베로니아를 슬쩍 쳐다보았다.
“또 들려줄 얘기가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저하.”
베로니아는 발리제를 슬쩍 노려봤다가 키안에게 다시 시선을 돌릴 땐 차분해졌다.
“그것보다 국왕이 듣고 싶은 얘기가 있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듣고 싶은 얘기가 또 있습니까.”
키안이 발리제의 눈치를 살피자, 발리제는 어서 말을 하라는 듯 윙크를 했다.
그러자 키안은 안심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는지 궁금해요…….”
베로니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발리제를 흘겨보았다.
“부마께서 해 주신 말씀이 전혀 없으신가 봅니다.”
“네. 아바마마께서는 어마마마께서 말씀해주실 거라고 했거든요.”
‘그랬단 말이지?’ 하듯 베로니아가 발리제를 쳐다보자, 발리제는 뻔뻔할 정도로 그랬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니 어서 말씀해주시죠.”
베로니아가 말을 하지 않기에는 저를 쳐다보는 키안의 눈빛이 너무나 반짝반짝거렸기에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 또 운을 떼기 시작했다.
“첫 만남은 연회장에서였죠. 그땐 어떻게든 내게 장가들기 위해 수작질을 부리는 영식들이 꼴 보기 싫어서 틈만 나면 도망 다닐 때였는데, 부마께서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더군요.”
“와. 아빠한테…… 아니, 아바마마께 그런 용기가 있었단 말이에요?”
갑자기 발리제의 어깨가 넓어지며 그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땐 내가 혈기왕성할 때니까. 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때 그 일을 알려준 게 블레이크 공작님이시구나. 그땐 어린아이였는데 지금은 늠름한 청년이 되셨지.”
키안은 믿기지 않는 듯 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블레이크 아버지께도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게 낯설긴 해요.”
“매우 똑똑하셨단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어요?”
“그래서 그다음은…….”
***
베로니아는 생각할수록 제게 수그리지 않고 기세등등하게 구는 발리제가 용서되지 않았다.
‘차기 근위대장을 노리는 자가 겁도 없이 훈계질을 하다니.’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겁이 없고 독한 놈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있는 걸 보니 자신에게만 딱딱할 뿐. 부드럽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건방진.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베로니아는 왕실 연무장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훈련을 위해 모여 있던 자들이 베로니아를 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납시었사옵니까. 저하.”
베로니아는 칼을 뽑아 들어 그들 중 발리제를 정확하게 지목했다.
“그대가 차기 근위대장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라지?”
“아직 결정된 건 아닙니다.”
“얼마나 잘났길래 그런 소문이 도는지 어디 실력 좀 보여주지 그래?”
“감히 공주님과 대무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누가 대무를 한다고 했나? 네 실력을 보자고 했지.”
발리제는 공주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베로니아를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실력을 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베로니아는 다른 이들을 향해 고함 질렀다.
“발리제 타히곤을 제외하고 모두 원형 밖으로 나가도록 해라!”
공주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베로니아의 명을 따라 원형 밖으로 물러섰다.
베로니아는 발리제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준비는 됐겠지?”
“그, 무슨…….”
베로니아는 그 즉시 스크롤을 풀었다. 스크롤이 번쩍번쩍이더니 이윽고 스켈레톤이 소환되었다.
‘챙, 챙,’ 스켈레톤이 입고 있는 철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이 정도는 해치울 수 있겠지. 혹여 죽을 거 같더라도 걱정 마. 죽기 전엔 치료해 줄 테니까.”
“공주님!”
“나 불러도 소용없어. 어차피 10분이 지나면 다시 봉인되니까. 그때까지 목숨 보존만 잘해. 아무리 망령이라지만, 꽤 세니까 너무 만만하게 보진 말고.”
***
이야기를 듣던 키안은 그게 정말이냐는 듯 발리제를 쳐다보았다.
“와…… 그게 정말이에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니까.”
키안은 다시금 감탄스럽다는 듯 베로니아를 쳐다보았다.
“어마마마께선 정말. 한다면 하시는 성미시군요!”
“그때 전 공주 저하께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국왕.”
베로니아는 남의 얘기를 듣듯 관심 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
발리제는 이를 악물고 싸웠다. 싸울 수밖에 없었다. 이건 환상이 아니니까!
베로니아가 불러낸 스켈레톤의 갑옷은 너무나 단단해서 발리제의 공격이 먹히지도 않았다.
망령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런 평범한 칼도 소용이 없었다. 신성수나 은도금이 된 칼이라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가 들고 있는 것이라곤 훈련 중에 쓰고 있던 목검뿐이었다.
그러니, 결국 공격에 맞아 죽지 않게 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확히 10분을 버티고 나서야 스켈레톤은 스크롤 속으로 다시 사라졌다.
진땀을 흘리며 쓰러져 있던 발리제는 화가 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주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말했잖아? 그대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고.”
“공주님은 정말 남의 목숨을 돌보지 않으시는군요.”
“그대가 목숨을 돌보지 않고 입을 함부로 놀렸다곤 생각 안 하나?”
베로니아는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연무장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앞으로 왕좌를 이어갈 강력한 차기 군주의 위압감에 짓눌린 듯 누구도 발리제에게 괜찮냐고 물어볼 수 없었다.
***
“아바마마도 그땐 멋졌구나.”
“지금도 멋지지.”
“하긴 그건 그래.”
베로니아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웠다.
“지금은 바보가 됐지요.”
“바보라니요! 저하!”
“사람이 달라졌잖아?”
“그건, 죽다 살아나서 그런 겁니다. 죽다 살아나면 사람이 달라진다지 않습니까? 그저 모든 게 좋아 보이는 것이지요.”
키안은 발리제의 말에 매우 공감한다는 듯 박수를 쳤고, 베로니아는 그런 두 부자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래. 살아 있다는 것,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겠지.’
베로니아는 지그시 미소를 짓다 키안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우리가 만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다음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