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외전14
(194/197)
194화. 외전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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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화. 외전14
2023.04.10.
“로엔 님! 제르미 님!”
나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이에요?!”
로엔을 나를 보자마자 짐가방을 제르미에게 던지며 달려왔다.
“오! 세상에 공작부인! 하나 변한 것 없이 그대로시군요! 너무 그리웠어요!”
“저도 너무 그리웠어요!”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로엔에게 함께 달려가 손을 맞잡았다.
“국왕의 결혼식이라 오신 거예요?”
“아니요. 베로니아 공주님은 그렇게 말랑한 성격이 아니시더군요.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결국엔 신성초 일백 드라크마를 모두 다 채워서 대신전에 주고 오는 길이랍니다.”
뿌듯하다는 듯 어깨를 펴며 말하는 로엔을 보니 정말 그대로란 생각이 들었다.
“저런 고생 많으셨겠어요.”
“어휴. 말하자면 입 아플 정도라니까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들어보니. 말도 못 할 정도였다.
신성초라는 것은, 지형, 기후를 따지지 않아서 험준한 산악지대는 물론 메마른 사막, 열대야로 들끓는 정글, 광활한 황무지 등 안 다녀본 곳이 없다고 한다.
“참, 서한은 잘 받았어요. 그동안 소공녀께서 태어나셨다구요?”
“네. 그렇게 됐어요. 로엔 님.”
“너무 뵙고 싶어요. 얼마나 예쁘실까.”
예쁘긴 하지만, 로엔이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지. 우리 로미라면 로엔을 좋아하겠지.
나는 안드레아에게 로미를 데려오게 했고, 낮잠 시간이라 로미는 시카르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나는 로엔에게 소곤거리며 말했다.
“지금 낮잠 시간이거든요.”
“어서 와. 로엔. 고생이 많았겠군.”
“안녕하세요. 공작님. 소공녀님의 머리카락 색이 공작부인을 빼닮으셨군요.”
“눈은 날 닮았지.”
“그래요? 그럼 소공녀님의 카리스마가 엄청나겠는데요?”
시카르는 잠들어 있는 로미가 무서워 죽겠다는 얼굴로 보며 말했다.
“카리스마만 있으면 다행이겠지. 커서 뭐가 되려고 하…… 아니야. 우리 로미는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천사지.”
로미가 기억을 읽을 게 뻔하니, 말을 함부로 못 하는 거겠지.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지닌 딸을 보는 심정이 어떨까.
생각할수록 시카르의 처지가 웃음이 나왔다.
“아, 정신이 없어서 제르미 님과 인사를 나누지 못했군요. 제르미 님, 잘 지내셨죠?”
제르미는 나를 향해 젠틀하게 미소지었다.
“안 죽고 살아 돌아왔습니다. 공작부인.”
“공주님도 오셨겠군요. 저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입궁해야겠군요.”
“아마. 저하는 전하의 결혼식 전까지는 뵙게 힘드실 겁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저하께서 어디가 아프신 건가요?”
“고생을 많이 하셔서 몸이 많이 상하셨거든요. 결혼식 전까지는 여독을 풀겠다고 방문을 금하라고 하셨어요.”
제르미와 악수를 나누던 시카르도 그를 유심히 보며 말했다.
“너희들도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으니 들어가서 쉬도록 해.”
로엔은 너무 아쉽다는 듯 로미를 쳐다보았다.
“이런. 소공녀님께 인사도 못 드리고 들어가게 생겼군요.”
“한 번 잠들면 옆에서 누가 아무리 떠들어도 모르는 효녀지. 이럴 때가 가장 예쁘달까?”
“자식 자랑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건 없다던 말이 떠오르는데요. 공작님?”
“로엔이 부러운가 보군.”
로엔은 사실 매우 부럽다는 듯 두 손을 모았다.
“네. 너무 부러워요. 그래서 저도 곧장 아이를 가지려고요.”
“로엔 님께서 젊으시니 금방 가지게 될 거예요.”
로엔은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듯 나를 부둥켜안았다.
“항상 따스하신 공작부인께 늘 감사드리고 있어요. 후아. 저도 이제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신성력을 다 소진한 것 같거든요. 좀 쉬고 오도록 할게요.”
“그러세요. 로엔 님.”
로엔은 갑자기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사람처럼 제르미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하는 시카르에게 상황을 물었다.
“공작님. 대체 무슨 일이에요? 왜 저렇게 기운들이 없는 거예요?”
“신성초를 구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군요. 뱀파이어의 공격까지 받은 모양입니다. 부인.”
“세상에!”
“대신전에서 치유를 받긴 했지만 완전히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로엔이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왔던 건 우리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서 남은 신성력을 끌어모아 버티고 있었던 것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쉬게 두는 것이 좋겠군요.”
하긴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천만다행인 일일 수도 있었겠지.
“그래도 다들 무사히 돌아와서 너무나 다행이에요.”
“물론 입니다. 부인.”
“국왕의 결혼식 전에는 모두 회복하겠죠?”
“그럴 겁니다. 이제 대신전에 진 빚은 갚았으니 후련하군요.”
***
결혼식을 앞두고 마치, 시집가는 딸이 친정을 찾듯 키안은 공작저를 찾았다.
이제 열일곱이 된 키안은 이곳에서는 성인의 나이로 벌써 남자가 된 것 같았다.
키안이 이렇게 훌쩍 커버리다니. 아쉬우면서도 너무나 멋있게 변한 모습이 유라는 보기 좋았다.
키안의 방문 소식에 로미는 현관까지 뛰어나왔다.
“전하 오빠!”
또, 저렇게 부르다니.
유라는 로미를 뒤쫓아 따라갔다.
“로미. 국왕 전하를 그렇게 부르면 안 돼!”
키안의 눈에 보이는 로미의 온기는 환하고 붉었다. 로미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키안은 그저 로미의 모든 것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달려오는 로미를 번쩍 들어 안으며 미소 지었다.
“우리 로미 잘 지냈어? 이 오빠가 보고 싶다고 울진 않았고?”
로미는 키안과 결코 떨어지기 싫다는 듯 키안의 품에 폭 매달리며 말했다.
“오빠 너무 보고 싶었어!”
로미가 키안을 부르는 호칭에 격식이 없던 터라, 유라는 키안을 보기가 민망했다.
“로미. 국왕 전하라고 불러야지! 그렇게 부르면 감옥에 간다고 했지?!”
로미는 고개를 홱 돌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감옥 안 가는데?”
다른 어린이들은 이런 말을 하면 놀라서 말을 들을 텐데. 로미는 타인의 기억을 다 보는 통에 믿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것도 모르냐는 얼굴로 쳐다보곤 했으니 유라는 또 말문이 턱 막혔다.
“어머니. 로미가 크면 자연스럽게 호칭을 습득할 테니. 지금은 그냥 두세요. 전 아직 로미에게 오빠 소리 듣는 게 더 좋기도 하고요.”
“국왕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긴 하지만…….”
“전 정말 괜찮아요. 어머니.”
로미는 거보라는 듯 키안의 품에 달라붙어서 유라에게는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았다.
“전하 오빠.”
“응?”
“전하 오빠 결혼하지 마.”
방금 키안이 왔다는 말에 걸어 나오던 시카르가 기가 막힌 듯 입을 쩍 벌렸다. 기가 막힌 건 유라도 마찬가지였다.
“로미, 그게 무슨 말이니. 결혼을 하지 말라니.”
“전하 오빠. 로미와 결혼해! 로미 클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아이쿠.
시카르는 몹시 서운한지 거의 절망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로미! 아빠한테 시집 안 오고?! 오빠한테 시집갈 거야?!”
“아빠는 엄마 있잖아! 아빠 욕심쟁이!”
유라는 질투하는 시카르를 가리며 로미를 달랬다.
“국왕은 안 된단다. 로미야. 남매 사이는 결혼할 수 없어요.”
그러자 로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내일 결혼하는 오빠에게 결혼하자고 떼쓰는 로미를 그냥 둘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로미도 곧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왜냐면 엄마 아빠가 같기 때문이에요.”
“전하 오빠는 엄마도 둘이고 아빠도 둘이잖아!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전하 오빠 엄마 아빠 안 하면 되잖아.”
‘아휴, 쓸데없이 말 잘하는 녀석 같으니.’
유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그건 안 돼. 엄마 아빠가 둘이라도 엄마 아빠는 변할 수 없는 거니까.”
로미는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소리를 들었다는 울먹이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싫어! 나 전하 오빠한테 시집갈래!”
로미가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유라는 키안에게서 로미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로미. 낮잠 자러 가야지. 이리 오련. 국왕. 로미를 이리 주시지요.”
“제가 달랠게요. 어머니.”
키안은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느긋하게 로미를 다독거렸다.
“이제 울음을 그치는 게 어때요. 우리 울보 숙녀님.”
자상하고도 다정한 말투였다.
키안이 다독여주자, 로미는 얌전히 키안의 품에 안겨 이내 졸린 두 눈을 깜빡거더니 그새 잠이 들었다.
“신성력을 써서 노곤해지게 만들었는데 금세 잠들었네요.”
그 짧은 순간 동안 유라는 숨이 멎는 줄만 알았다. 로미가 한번 고집을 피우면 당해낼 재간이 없었으니까.
“국왕. 수고했어요. 로미는 제가 방에 데리고 가겠으니 이리 주세요.”
“저, 그리고 어머니.”
“네?”
“저 아버지랑 낚시 좀 하러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럼요. 그런 건 제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답니다. 다녀오세요.”
왜인지 이유조차 묻지 않는 어머니.
키안은 일일이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그런 제 어머니의 담대한 모습이 좋았다.
***
두 사람이 함께 간 낚시터는 키안이 이곳에 왔을 때 갔던 곳이었다.
그 얼음 낚시터는 이제 봄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아직 불어오는 바람은 쌀쌀했다.
사카르와 키안 부자는 낚시터에 앉아 멍하니 낚시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하고도 조용한 침묵 속에는 편안함이 있었다.
“근데 갑자기 낚시는 왜?”
시카르가 침묵을 깨트리고 묻자 키안의 시선도 낚시 찌에서 물러나 시카르에게로 향했다.
“얼음낚시 갔던 거 기억나?”
“당연히 기억나지. 그때 아주 큰 놈을 잡았으니까.”
“그때 내가 크면 다시 같이 낚시 가기로 한 건 기억 안 나?”
시카르는 그게 어떻게 그렇게 되냐는 듯 키안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야. 네가 크면 직접 물고기를 잡아서 요리해준다고 했지, 나와 같이 오자고는 안 했지. 어흠.”
“그 말이 결국 나중에 크면 아버지와 같이 낚시하러 오겠다는 말이었어.”
“거짓말. 너 그때 나 싫어했잖아.”
“아버지도 나 싫어했잖아.”
“그거야 네가 날 보자마자 불덩이를 던지겠다고 협박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비긴 걸로 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