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백작이 될 소녀(1)
#7
로난이 자루를 거꾸로 뒤집었다. 푸른빛을 띠는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소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삐잇···?
“저, 저게 뭐야?”
“새?”
그것은 새였다. 부리를 제외한 온몸이 파란 깃털로 뒤덮인 새. 크기는 기껏해야 비둘기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푸른 새는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허, 무슨 새가 파란색이냐. 신기하네.”
로난이 새를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파란 깃털을 제외하더라도 생김새가 굉장히 특이한 편이었다.
굳이 기존의 조류에 비유하자면 까마귀를 닮았는데, 깃털이 엄청나게 풍성했다.
-삐이이이···?
“근데 이 새끼 왜 이렇게 얼빵해? 너 못 날아?”
새는 로난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웅크리고 있었다. 콕콕 건드려 봐도 기운 없게 늘어져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셀이 누운 채 입을 열었다.
“로난, 새 다리에 뭐가 있어.”
“뭐?”
로난이 새를 뒤집었다. 아셀의 말마따나 가느다란 다리에는 은색을 띠는 고리가 끼워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고리의 표면에 무슨 글자가 적혀 있었다.
“카···리볼···로?”
로난은 천천히 글자를 따라 읽었다. 기억을 곰곰이 더듬던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카리볼로. 카리볼로의 올가미.
자신의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밀렵 조직의 이름이었다.
‘그럼 그 두 명이 카리볼로의 밀렵꾼이었나? 그렇다기에는 너무···멍청해 보였는데.’
로난은 카리볼로의 악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밀렵 죄로 잡혀 온 징벌 부대 동기가 몇 명 있던 덕이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잡아본 괴상망측한 동물들에 대해 잠도 안 자고 떠들어 대고는 했다.
“그렇다면 이 고리는···.”
그는 머지않아 고리의 정체도 기억해 냈다. 테이머 링. 흔히들 환상종이라 부르는 신묘한 동물들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족쇄였다. 특수한 처리를 거친 금속이 포박당한 환상종의 마나를 교란한다고 했다.
“쯧.”
로난의 허리춤에서 칼이 뽑혀 나왔다. 그는 칼날을 고리 위에 가져다 댄 채 그대로 당겼다. 반으로 쪼개진 테이머 링이 바닥에 떨어졌다.
“머저리들이 할 짓거리가 없어서 말 못하는 짐승을 괴롭히고 있어.”
-삐잇?!
힘조절이 섬세했던지라 다리에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별안간 폭신하던 깃털이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이,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삐이이······
깃털은 단순히 딱딱해진다는 개념을 넘어서 맨질해지고 있었다. 새는 머리를 가슴 아래로 파묻으며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머지않아 깃털이 다 굳자, 새는 영락 없는 알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죽은 건가?”
로난은 알껍데기를 노크하듯 두드렸다. 속이 꽉 찬 금속을 두드리는 듯한 소리만 울릴 뿐,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로난의 귓가에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 연결됐다! 혹시 마르페즈를 보호하고 계신 분입니까?!]
“에이, 깜짝이야. 뭐야?”
[죄, 죄송합니다. 저는 마르페즈, 그러니까 꿈새의 원래 보호자입니다. 어제 새벽에 실종된 걸 찾고 있습니다.]
잘 들어보니 목소리는 귓가가 아닌 머릿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찍이 경험해본 전음 마법이었다. 그제야 로난은 알 위에 정교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충 맥락을 보아하니 분실 방지를 위한 연결 마법 같았다. 그동안은 테이머 링이 마법의 발동을 방해하고 있던 건가? 그는 입을 알 가까이 가져다 댄 채 말했다.
“마르페즈···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파란색 새를 말하는 거면 맞는 거 같은데요.”
[파란새! 맞습니다! 아, 정말 다행이군요···! 혹시 어디서 발견하셨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어떤 멍청이 둘이서 자루에 넣은 채로 도망치고 있었어요.”
[예에?!]
목소리의 주인은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로난은 현재 상황과, 이 새인지 알인지 헷갈리는 동물을 구하게 된 경위를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런···! 어딘가에 떨어뜨린 줄로만 알았는데 설마 도둑맞았을 줄이야···! 이거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됐어요. 그나저나 갑자기 새가 알로 변했는데, 이거 괜찮은 건가요?”
[아, 알로 변하는 것은 우리 마르페즈의 능력 중 하나입니다. 평소에는 재빠르게 뛰어다니지만, 피곤하거나 상처를 입으면 알로 변해서 휴식을 취하지요.]
파란새의 이름은 마르페즈였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일단은 환상종에 속하는 ‘꿈새’인지라 깃털을 알껍데기로 변화시키는 것 외에도 여러 재주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 잃어버린 건데요?”
[그러니까···제가 원래는 제도의 연구실에서 환상종을 연구하는데···.]
그는 업무 때문에 인근의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는 중 도둑질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마르···어쩌고는 잘 때도 알의 모습으로 변하는데, 아마 그 즈음에 범행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하고 있었다.
[막 제도 경찰청에다가 실종 신고를 하려 했는데···정말 다행입니다.]
“뭐, 그렇네요. 그나저나 이 친구를 어떻게 돌려주죠? 당장은 제도로 갈 예정이 없는데.”
[당연히 제가 찾아봬야지요. 위치를 말씀해 주시면 이틀 내로 가겠습니다.]
“음···이틀을 기다리기에는 우리가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데. 혹시 풀어주면 자기 집은 똑바로 찾아가나요?”
[예? 아 네.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이 요상한 새는 다행스럽게도 귀소본능이 강해서 대륙의 어디에 버려두든 간에 알아서 둥지를 찾아간다고 했다.
다만 걸리는 점은, 한 번 알로 변한 새가 회복을 마치고 알에서 깨어나려면 보통 사흘에서 나흘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혹시 포션을 뿌려 주면 좀 빨리 나올까요?”
[예? 포션을요?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는···]
“맞아요? 아니에요?”
[무, 물론 마르페즈의 깃털에는 자신에게 이로운 성분을 흡수하는 기능이 있긴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금방-]
로난은 이미 포션병을 꺼내 들고 있었다. 새벽에 아셀에게 쓰고 남은 그 포션이었다. 그는 포션 몇 방울을 알껍질 위에 떨어뜨렸다.
“작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방금 뿌렸으니까 새장 문이나 열어 두세요.”
[서, 선생님! 왜 굳이 그런···!]
“별 건 아니고, 사흘이나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요.”
포션이 효과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별안간 알 위에 균열이 일기 시작하더니, 깨진 조각 사이로 다홍색 부리가 삐죽 튀어나왔다.
그는 새가 되어가는 알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르페···뭐시기는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완전한 새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깃털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처음 자루에서 꺼냈을 때보다 몇 배는 건강해 보였다.
로난이 말했다.
“집에 가 인마.”
-삐이?
새는 로난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맑은 눈을 연신 깜빡이고 있었다. 새가 나은 것을 어찌 알았는지, 아까보다 한층 다급해진 전음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세상에! 정말, 정말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아니지, 이럴 게 아니고 어서 깃털을 하나 뽑으세요. 아마 자신을 구해준 걸 알아서 저항하지 않을 겁니다.]
“깃털?”
영 미심쩍었지만, 로난은 일단 그의 말대로 했다. 과연 새는 저항하지 않았다. 되려 깃털이 유난히 탐스러운 꼬리깃 부분을 슬쩍 들이밀기까지 했다.
깃털은 어떤 화가도 훔칠 수 없을 것 같은 신비한 파란색을 띠었다.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쁘긴 한데 이걸 왜 뽑으라는 거지?
휙!
그때 손에서 깃털이 빠져나왔다. 화살처럼 날아간 깃털은 다시 파랑새의 몸에 박히며 제자리를 찾아갔다. 로난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건 또 무슨 요술이야?”
[모든 꿈새의 깃털은 주인에게 돌아가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만약 제도로 오시게 되면, 그 깃털을 따라서 와 주세요. 반드시 만나봬서 사례하고 싶습니다.]
“거 괜찮다니까요. 짐승 하나 구한 걸로 유세 떨 생각 없어요.”
로난은 진심이었다. 돈이야 많을수록 좋긴 하지만, 등신 같은 짓거리를 해가면서까지 돈을 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마세요. 아름다운 마음씨는 보답받아야 마땅합니다.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환상종을 연구하고 있는 바렌 파나시르 교수라고 합니다. 그럼···만날 날을···고대하고 있겠···습.]
갑자기 전음이 끊어졌다. 마법진이 새겨진 알껍데기가 모두 깃털로 돌아간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새는 다시 로난이 깃털을 뽑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마지못해 꼬리깃 하나를 뽑는 순간이었다.
-삐이이이이익!
“어어어어?! 얌마!”
갑작스레 포효한 새가 강으로 뛰어들었다. 황급히 몸을 날리려던 로난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염병, 저게 뭐야.”
새는 날지 않고 강물 위를 총총 뛰어가고 있었다. 거세진 물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가던 새는 순식간에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두 소년은 새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니미···오래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보네.”
“응···.”
“그나저나 그 사람, 무슨 교수라지 않았냐?”
“그···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들렸어.”
“···뭐, 상관 없나.”
막 몸을 돌리려는 차였다. 무언가 둥그런 것이 로난의 눈에 들어왔다. 새가 앉아있던 자리에 구체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로난이 그것을 집어들었다. 솔방울만한 덩어리는 자갈처럼 넓적한 타원형이었다.
“알? 설마 방금 낳고 간 건가?”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실제로 구체의 표면에는 막 낳은 달걀처럼 온기가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로난은 과연 이것을 ‘알’ 이라 불러야 할 지 의문이 들었다. 구체를 바라보던 아셀이 입을 열었다.
“약간···이상하게 생겼다.”
로난 역시 그 의견에 동의했다. 솔직히 이상하다는 표현은 다소 정중한 감이 있었다. 온전한 구체의 형상이 아니었더라면 틀림없이 똥인 줄 알고 걷어차 버렸을 터였다.
거친 표면은 진흙을 덕지덕지 발라 놓은 것처럼 투박했고, 색깔은 정말 그것과 흡사한 갈색을 띠었다.
“젠장, 진짜 똥은 아니겠지? 아셀, 한번 핥아 봐.”
“시,싫어.”
다행히도 냄새는 나지 않았다. 한참 버릴지 말지 고민하던 로난은 결국 구체를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똥이든 알이든 어쨌거나 환상종의 부산물인데, 나중에 비싸게 팔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르바스의 장사치들은 알고 있으려나?’
로난은 다시 노를 집어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움직이는 파란 깃털은 아예 배낭에 집어넣어 버렸다. 어차피 입학시험 때문이라도 조만간 제도에 찾아가야 하니, 바렌인지 뭔지 하는 작자에게는 그때나 들러볼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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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들은 나흘간 인근의 마을이나 영지를 돌아다니며 전리품을 팔았다. 챙길 물건과 버릴 물건을 걸러냈음에도 원체 양이 많아서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느 정도 돈을 번 로난은 힘 좋은 노새 두 마리를 사들였다.
“몸에서 힘을 빼! 고삐는 가볍게 쥐고! 말도 제대로 못 타는 등신 취급을 받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자, 잠깐만! 이거 생각보다 균형을 잡기가···아악! 말채찍으로 때리지 마!”
로난은 겸사겸사 아셀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쳤다. 다행히도 아셀은 배우는 게 빨랐다. 마음만 같아서는 노새가 아닌 말을 사고 싶었지만, 이런 곳에서는 좋은 말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자루가 다섯 개 정도 남았을 무렵, 소년들은 마르바스라는 대도시로 이동했다. 로라이마 산악도로 앞에 세워진 이 화려한 도시는 하루도 빠짐없이 장이 열리는 상업의 요충지였다.
“금화 두 닢.”
“뭐?! 한 번만 다시 봐요, 못 배운 내가 봐도 진짜 사파이어구만.”
“흠···세 닢. 더 이상은 안 돼.”
“세 닢은 니미. 탐욕스런 너구리 같으니라고. 가자, 아셀.”
“뭐, 뭣?! 야! 방금 뭐라고 했어?!”
남은 자루 다섯 개는 미처 다른 곳에서 팔지 못한 고가의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들은 값을 제대로 쳐 주는 상인을 찾는 데만 한나절을 소모했다.
다행히도 카라벨 상단이라는 곳에서 남은 물건 대부분을 양심적인 가격으로 매입해 주었다.
“음···아주 상태가 좋은 물건이군요. 세공도 섬세하고···금화 스물두 닢에 어떻습니까?”
상단의 단장, 두온 카라벨이라는 남자는 아까와 같은 목걸이에 열 배가 넘는 가격을 불렀다. 아셀은 까무러칠 듯 놀랐고, 로난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적당한 시세였다.
“좋아요. 양심이 있으신 분이시네.”
“허허, 그야 상인의 생명은 신용이니까요.”
두온은 병장기와 포션, 세공품을 가리지 않고 사들였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판대와 짐마차를 오가며 물건을 날랐다. 두온은 깔끔한 나무 상자에 정산금을 넣어서 건네 주었다.
로난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가격을 제대로 쳐 주는 점도 좋았지만, 물건들의 출처를 물어보지 않은 점이 특히나 좋았다.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거래를 하고 싶었다.
“거래 감사합니다. 부디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참, 이것도 좀 봐 줄래요?”
문득 며칠 전의 일을 떠올린 로난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는 거무튀튀한 구체를 꺼내서 두온에게 내밀었다. 그날 주머니에 넣은 이후로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이다.
“···말똥을 왜 주머니에서 꺼내십니까?”
“말똥이 아니라 어떤 새가 낳고 간 거예요. 싸고 갔다고 해야 하나?”
“새가요? 이걸요?”
두온은 조심스레 구체를 받아들었다. 그는 외눈안경처럼 생긴 감별기를 낀 채 꼼꼼히 구체를 살폈다.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감정은 거진 한 시간이 걸렸다. 두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좀 이상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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