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19화 (19/333)

19. 피와 알(2)

#19

멀지 않은 곳에서 당황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사람의 키보다 큰 수풀이 빽빽하게 자란 곳이었다. 방향을 확인한 로난이 땅을 박차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쐐액!

그때 화살 하나가 더 날아왔다. 지금까지의 것과는 다른, 기이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화살이었다.

로난은 쳐내는 대신 고개를 비틀어 화살을 피했다.

화살이 눈가를 스치듯이 지나가는 그 찰나의 시간, 로난은 유별나게 생긴 화살촉의 형태를 볼 수 있었다.

‘이건···.’

어딘가 낯이 익은 화살촉은 일반적인 삼각형이나 마름모꼴이 아니었다. 뾰족한 화살대를 중심으로 세 개의 삼각날이 붙어 있었다.

‘기억에 있다.’

과거 밀렵죄로 잡혀온 징벌병 동기가 자랑스레 보여줬던 화살촉과 같은 형태였다. 인간이 아니라 짐승의 뼈를 부수기 위해 설계된 탓에 구조가 흉악했다.

마나를 먹여서 쏠 경우 어지간한 소형 몬스터도 즉사시킬 수 있다고 했다. 으스대듯 지껄이던 동기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 그리고 이런 건 아무 촌놈이나 쓰는 게 아니라고. 카리볼로에서도 사냥개 이상의 계급만 쏠 수 있는 거야.

사냥개는 카리볼로의 정예 대원을 칭하는 단어였다. 밀렵꾼 동기는 이후로도 카리볼로의 위대함과 체계적인 조직 문화를 줄줄 늘어놓았다.

로난의 표정이 사납게 굳어졌다.

“카리볼로.”

꿈새 마르페즈를 납치하려 했던, 대륙에서 손꼽히는 밀렵 조직이었다.

‘살려 둘 이유가 없군.’

막 날아오는 화살을 쳐낸 로난이 손을 말아 입가에 가져다댔다.

“사격을 멈춰라 카리볼로! 아군이다!”

“뭐야?”

“네놈들은 같은 조직원도 못 알아보나? 다마스 지부의 사냥개 아하유테다!”

화살 사격이 한순간 멈췄다. 충분히 간격이 좁아진 것을 확인한 로난이 칼을 휘둘렀다.

아셀의 염력이 끊어지며 부유하던 바위와 나뭇조각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손을 올리고 있을 테니 확인해 봐라!”

“다마스 지부의 사냥개라고···?”

납도한 로난이 양 손을 들어올렸다. 그는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머지않아 흔들리는 수풀 사이로 네 명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하유테? 들어본 적 없는데. 너흰 들어봤어?”

“아니. 전혀.”

“뭐야, 애새끼잖아?”

세 명은 활, 한 명은 단검을 들고 있었다. 사내들의 행색을 본 로난이 인상을 찌푸렸다. 옷가지와 추레한 면면에는 붉은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땅에는 무언가를 끌고 간 듯한 핏자국이 길게 남아 있었다. 로난은 사내들의 손가락에 은색 고리들이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르페즈의 다리에 묶여 있던 것과 같은 테이머 링이었다. 단검을 든 사내가 으르렁거렸다.

“네가 사냥개라고? 다마스 지부의?”

“그래. 왜 같은 말을 두 번 하게 하는 거지?”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연락책이라면 몰라도, 너 같은 애송이가 사냥개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댁이 못 한다고 다 못 하는 건 아닐텐데 들개 형씨. 어디 지부인지는 몰라도 얼간이들만 골라서 뽑았나 보군.”

로난이 사내의 발밑에 침을 뱉었다. 헛웃음을 친 사내가 로난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그는 로난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며 말했다.

“뒈지고 싶나, 핏덩이?”

“아, 들개가 아니라 사냥개셨나?”

“우리 일곱 명은 모두 사냥개다.”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명이라. 안 보이는 곳에 세 명이 더 있나 보군. 하긴 아까부터 기척이 느껴지기는 했다.

“잘나셨어. 정 못 믿겠으면 너희 늑대에게 물어보면 될 거 아냐. 하긴, 승급한 지 얼마 안 되서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네.”

로난이 사내의 멱살을 뿌리쳤다. 늑대라는 단어를 들은 사냥개들이 술렁거렸다.

들개, 사냥개, 늑대.

단순히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기에, 눈앞의 소년은 카리볼로의 계급 체계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마나를 먹인 화살도 쳐냈지 않는가. 범상치 않은 칼솜씨도 그렇고, 이상하게 신빙성이 느껴졌다.

단검을 든 사내가 말했다.

“···이 자식 잘 보고 있어.”

“네가 다녀오게? 오늘 대장 기분 별로 안 좋아 보이던데, 그냥 우리끼리 처리하지?”

“혹시 모르잖아. 저 자식이 진짜로 사냥개면 다마스 지부랑 불화가 생긴다고.”

이윽고 사내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활을 검으로 바꿔든 사냥개들이 꺼드럭거리며 다가왔다.

방아깨비를 닮은 사내가 로난의 가슴에 칼 끝을 겨누었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그건 어떻게 한 거냐?”

“그거라니?”

“둘러대지 마 새꺄. 돌이랑 나무 띄우던 거 있잖아. 설마 마법사냐?”

그는 아셀의 염력을 말하고 있었다. 로난이 넉살 좋게 웃었다.

“아~ 그거? 숨길 것도 없지.”

로난은 안주머니에서 마르페즈의 알을 꺼냈다. 보석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본 사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이거 덕이지. 저번에 그리폰의 배를 가르니까 나오더군. 아마도 마도구 같아.”

“참 나, 그리폰을 잡았다고? 아니. 이게 아니지, 그게 도대체 뭔데?”

“직접 봐, 선배.”

로난은 방아깨비에게 알을 가볍게 던졌다. 몰려든 사내들이 탐욕스레 알을 만지작거렸다.

“히야아아···.”

“이런 건 처음 봐.”

마르페즈의 알은 아름다우면서도 형용 못할 신비함이 느껴졌다. 어떤 마법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알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어이! 다들 나와서 이거 좀 봐봐!”

그러자 각기 다른 방향에서 사내 하나와 여인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 뒤에서, 바위 뒤에서, 덤불 아래에서.

모두 거대한 사냥용 활을 들고 있는 것이 저격수 역할을 하는 이들로 보였다.

“목청 한번 크다. 뭔데 그래?”

“이 꼬맹이가 그리폰을 잡고 얻은 마도구라는군. 죽여주지 않아?”

그들 역시 매우 흥미로운 듯 알을 살폈다. 그때 기다란 풀숲 사이로 두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한 명은 아까 사라졌던 단검을 든 사내였다.

“저 자식이야?”

“네, 대장.”

나머지 한 명은 키가 거진 2M는 되어 보이는 대머리였는데, 몸 군데군데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로난은 한 눈에 그가 지부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늑대’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늑대가 로난을 내려보았다.

“드미레 지부의 늑대 베움이다. 다마스 지부에서 왔다고 했나, 아하유테?”

“예.”

“분명히 이번에 발견한 지맥은 우리 지부가 담당한다고 들었는데, 무슨 수작이지?”

베움이 위협하듯 목소리를 깔았다.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더 이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로서 늑대를 비롯한 여덟 명이 모두 모였다.

로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장 귀찮은 과정이 끝났다. 처음으로 밀렵죄로 잡혀왔던 동기에게 호의적인 감정이 들었다.

“졸리고 역겨워도 들어 주기를 잘 했네. 역시 동기만한 게 없다니까.”

“엉?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우선 정정하자면···나는 아하유테가 아니야.”

서걱.

튕기듯 발사된 로난의 검이 호를 그렸다. 베움의 목에 붉은 선이 생겼다. 한발 늦게 반응한 베움이 칼자루에 손을 올리는 순간, 그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왔다.

“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새끼 이름을 댄 거지. 좆같은 밀렵꾼 행세를 해야 하니까.”

베움이 바라보는 세상이 뒤집혔다. 단검을 쥐고 있던 사내의 동공이 커졌다.

다들 알에 정신이 팔려 있는 탓에, 대장의 어이 없는 죽음을 목격한 것은 그 뿐이었다.

“다들···!”

서걱.

하지만 대항할 틈 따위는 없었다. 베움의 몸을 걷어찬 로난이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날붙이가 살을 가르고 뼈를 끊는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잘려나간 사내의 왼팔과 오른손 손가락 네 개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넌 일단 보류.”

“끄아아아아아아!”

사내의 입이 벌어지며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명이 튀어 나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냥개들이 허둥거리며 전투 태세를 취했다.

“뭐, 뭐야?! 이 새끼···!”

“어? 대장이···.”

가장 빠른 사냥개가 황급히 화살을 시위에 얹었다. 하지만 간격은 이미 좁혀져 있었다. 시커먼 검격이 사냥개들을 향해 난사되듯 쏘아졌다.

“아니···!”

서걱.

“꺄···!”

서걱.

“이런 젠···!”

서걱.

로난의 검은 정확히 밀렵꾼들의 목을 향해서만 휘둘러졌다. 때문에 구질구질한 신음이나 비명 없이 생리적 반응에 가까운 탄성만이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내가 누군 줄···!”

서걱.

개중에는 소드 익스퍼트 경지에 이른 자도 있었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인간은 어차피 목이 잘리면 죽는다.

서걱.

솟구친 선혈이 풀을 적셨다. 한 박자 느리게 쓰러진 몸뚱이들이 뭍에 꺼낸 생선처럼 퍼덕거렸다. 마지막 남은 사냥개가 무기를 버리며 외쳤다.

“살려···!”

서걱.

일이 끝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우에에에! 우엑!”

“그러게 내가 각오하라고 했잖아.”

시체와 눈이 마주친 아셀이 재차 구역질했다. 로난의 부름을 듣고 뒤늦게 찾아온 아셀은 도저히 현실이라 믿어지지 않는 지옥도를 목도해야 했다.

곳곳에 쓰러져 있는 몸뚱어리 중 머리가 달린 것은 하나도 없었다. 눈을 희번뜩하게 뜬 머리통들이 늦가을의 밤송이처럼 수풀 사이를 나뒹굴고 있었다.

“저, 저 사람들은 다 뭐···우웁!”

“카리볼로. 전에 말했던 밀렵꾼 새끼들.”

루나 고블린 사태와는 차원이 다른 참상이었다.

비록 내장과 팔다리가 비료마냥 흝뿌려져 있던 그때보다 현장 자체는 깨끗했지만, 루나 고블린들은 인간이 아닌 몬스터였다.

아셀이 울먹이며 말했다.

“이, 이건 살인이잖아···!”

“다 현상범이라 괜찮아. 아마도.”

담배를 피우던 로난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실제로 카리볼로 소속의 밀렵꾼들은 대부분 지명수배가 되어 있었다.

가장 낮은 계급인 들개들조차 목에 현상금이 걸려 있는데, 정예 대원인 사냥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일단 담자.”

“이, 이걸 담는다고···?”

“그럼 손이나 염력으로 들고 올래?”

머리만을 온전하게 자른 것도 그 때문이었다. 로난은 배낭에 머리들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로난과 아셀은 각각 배낭에다 머리를 다섯 개와 세개씩 나눠 담았다. 등을 서서히 적시는 액체의 감촉이 오싹했다.

숨을 색색 몰아쉬는 아셀을 바라보던 로난이 그의 후드를 잡아당겼다.

“따라와봐.”

“응···?”

로난은 아셀과 함께 높은 풀숲을 가로질렀다. 로난이 칼부림을 하기 전부터 있던 핏자국이 그들을 인도했다.

십 분 정도를 걷자 풀숲이 끊어지며 공터가 나왔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지독한 피비린내가 소년들을 덮쳤다. 로난이 담뱃대를 꺼내 물었다.

“이제 죄책감이 좀 덜하냐?”

“이, 이, 이건··· 전부···.”

“그래. 지금 배낭에 들어 있는 자식들이 한 짓거리야.”

아셀은 말을 잇지 못했다. 족히 백 마리는 넘어 보이는 동물들이 종을 가리지 않고 죽어 있었다. 사슴, 멧돼지, 표범, 이름모를 새들과 작은 다람쥐까지···.

강물을 이룬 피가 경사면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공터 한구석에서는 해체 작업이 한창이었는지 분리된 살코기와 가죽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쓸모 없는 머리나 내장들은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채 땅을 뒹굴고 있었다. 아셀은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너, 너무해···.”

“바렌 교수가 슬퍼하겠군.”

연기를 내뱉은 로난이 쓰게 웃었다. 환상종의 일각으로 보이는 기묘한 짐승들도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다.

수요가 있는 환상종은 애완동물로 팔려나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불행히도 여기에 있는 환상종들은 고기나 소재로서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받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거라도 얻었으니 다행인가···.”

로난은 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내들었다. 바렌 교수에게 받았던 것과는 다른 양피지였다. 피로 그려진 지도는 어떤 장소들을 표시하고 있었다.

- 남김없이 그려.

로난은 사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부의 위치를 그리라고 명령했다.

더는 단검을 들지 못하게 된  사내는 필사적으로 지도를 그렸다. 로난이 일부러 남겨 놓은 오른손 검지가 그의 붓이자 생명줄이었다.

-다, 다 그렸으니까 살려 주실 거죠? 그쵸?

지도를 다 그린 사내는 모든 자존심을 버린 채 목숨을 구걸했다.

-아니.

로난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의 목을 베었다. 애초에 보류라고 했지 살려준다고는 하지 않았다.

로난은 양피지를 다시 돌돌 말며 중얼거렸다.

“바렌에게 주면 좋아하려나.”

죽어 있는 환상종들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레 알 생각이 났다. 로난은 주머니를 뒤적였다. 담뱃가루 주머니를 제외하고는 잡혀 나오는 것이 없었다.

“썅, 또 어디에 흘린 거야.”

그러고 보니 아까전에 사냥개들에게 건네준 이후 줍지를 않은 것 같았다.

로난은 아셀을 남겨둔 채 학살이 벌어졌던 장소로 이동했다. 현장에 다다른 그가 눈썹을 찡그렸다.

“엥?”

사방에 진득하게 튀어 있던 핏자국이 모두 지워져 있었다. 풀뿌리나 파인 곳에 고여 있던 피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뭐지?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로난이 두리번 거리던 차였다. 기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야?”

아직 남아 있던 핏물이 꿀렁이며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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