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바이디안 산맥(3) >
#54
여섯 개 중 네 개의 촌락은 산맥의 밑동을 따라 굽이치는 강 주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로난은 바싹 쫄아 있는 아셀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싸우는 거랑 죽이는 건 엄연히 다르거든.”
“그게···무슨 뜻이야?”
“싸움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야. 전쟁이 대표적이잖아. 그런 헛지랄을 하는 이유는 보통 땅이나 돈을 얻기 위해서 하는 거지, 적국의 영토를 죄다 불사르고 포로들의 피로 목욕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거든.”
“그, 그렇지?”
“그런데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 훨씬 빠르고 편리하게 끝나지. 발론7세가 왜 유혈제라 불렸는지 생각해 봐.”
세 사람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로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지적이고 일목요연한 설명이었다. 다시 담뱃대를 쭉 빨아들인 로난이 말을 이었다.
“아셀. 예전에 고블린 면상에 메이스 떨어뜨린 거 기억 나냐?”
“그, 그야···.”
아셀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경험이었다. 그는 아직도 루나 고블린의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할 일도 비슷해. 조금 더 규모가 커지는 것뿐이지. 네 역할이 클 거야.”
“내 역할이 크다니···?”
“해보면 알 거야. 일단 강물부터 막으러 가자.”
“가, 강물을 막는다고?”
아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은 대답하는 대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때까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몇 시간 뒤면 자신들이 바이디안에 사는 오크들의 유혈제로 등극할 거란 사실을.
****
들바위 부족의 오크들이 이변을 눈치챈 것은 막 동이 터 오를 무렵이었다.
“취이익, 족장! 이상한 일 생겼다!”
전투망치를 등에 멘 오크 한 마리가 족장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머지않아 암컷 오크들 사이에서 퍼질러 자고 있던 족장이 몸을 일으켰다.
“···무슨 일이냐, 취익.”
“강이 사라졌다 취익! 물 떠와야 하는데 떠올 수가 없다!”
“췩, 강이 사라져···?”
족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알아듣게 말해라 취익. 강이 왜 사라지냐.”
“췩! 정말 사라졌다! 나 말고 형제들도 다 봤다 취익!”
“취이익! 작작해라!”
족장이 침대맡에 놓여 있던 손도끼를 던졌다. 콰직! 회전하며 날아간 손도끼가 정찰병 오크의 미간에 처박혔다.
“취에엑···!”
“멍청하긴, 취익.”
정찰병 오크의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다시 잠을 청하려는 차에 천막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취륵, 족장! 큰일이다!”
“후우···.”
아무래도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한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족장이 곰 가죽을 뒤집어썼다. 밖으로 나서자 와글와글 모여있는 부족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췩! 족장 나왔다!”
“나무도 안 자르고 여기서 뭐 하냐 취익.”
“추히익! 강이 사라졌다!”
벌목 작업을 하던 일꾼들마저도 같은 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족장은 결국 부족의 전사들을 모아 강가로 향했다. 강물이 정말로 사라졌을 때를 대비하기보다는, 헛소리를 지껄인 멍청이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고민하면서.
하지만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취익?”
족장 오크의 눈이 커졌다. 강이 흐르고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넓고 움푹한 구덩이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강바닥에 깔려 있던 바위들이 아침 햇살 속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취, 췩···이게 무슨 일이냐! 취익!”
“췩! 정말로 강 사라졌다!”
오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가슴께 위까지 차있어야 할 물은 발목을 적시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낮아져 있었다.
오크들은 홀린 듯이 강이었던 구덩이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삶의 터전을 잃은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낸 채 죽어가고 있었다. 한창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와중이었다.
“췩, 그 이상한 새 어디 갔나!! 취익!”
“분명히 여기로 왔다 취익!”
강 반대편의 숲이 들썩이더니 한 무리의 오크가 튀어나왔다. 그들의 몸에는 붉은 손바닥 문양이 덕지덕지 찍혀 있었다. 족장 오크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취히익? 주먹칼 부족?”
“···췩?”
강건너에 자리를 잡은 주먹칼 부족이었다. 최근 영역을 확장하면서 유난히 다툼이 잦은 부족이기도 했다.
정답이 나왔다. 도끼를 움켜잡은 들바위의 족장이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췩! 주먹칼 부족! 네놈들 짓이었구나!”
“취익! 우리가 할 말이다! 자고 일어나니까 강 사라졌다 취익!”
“쿠와아악! 비겁한 주먹칼이 물을 훔쳤다! 죽여라! ”
들바위 부족의 오크들이 달려나갔다. 잠시 당황하던 주먹칼 부족의 오크들도 포효를 내지르며 뛰쳐나갔다. 말라붙은 강의 한복판에서 두 무리의 오크가 격돌했다.
쩌렁쩌렁한 함성과 쇳소리가 산맥에 울려 퍼졌다. 그때 또다른 오크의 무리가 강 하류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츄아악? 저놈들은 뭐냐?!”
이번에는 하류 부근에 사는 쇳모래 부족이었다. 그들의 족장은 머지않아 나머지 두 족장과 유사한 판단을 내렸다. 몽둥이를 치켜든 쇳모래 부족의 전사들이 싸움에 막 합류하는 순간, 상류 쪽에서도 오크들이 내려왔다.
“찾았다 취익! 강물 도둑놈들이다!”
머지않아 네 개의 부족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야만적인 흉기들이 휘둘러질 때마다 피와 함성이 튀어 올랐다.
발치에서 찰박이는 액체는 물보다는 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전투가 한창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이었다. 오크들의 발밑이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취익?”
이변을 눈치챈 들바위의 족장이 상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전투로 좁아져 있던 시야가 넓어짐과 동시에 악몽 같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콰콰콰콰콰!!
“취이이익?!”
생전 보지 못한 높고 거친 물살이 강가에 자라난 나무들을 부러뜨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눈치챈 오크 몇 마리가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서둘러 달아나려 했지만,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는 다른 오크들이 그들의 등에 창칼을 박았다.
“취헉!”
“취아악! 내가 들바위의 족장을 잡았다!”
“취륵! 이, 이거 놔라! 멍청아!”
급류는 몇 초 지나지 않아 오크들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전투에 눈이 먼 오크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강을 도둑맞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콰아아아! 강물이 오크들을 집어삼켰다.
“취아아아악!”
“오로록···! 살려···!”
수백 마리의 오크는 그대로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아마 떠내려가는 도중에만 절반가량이 죽을 터였다. 인근의 봉우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데샨이 즐겨 쓰던 이유가 있었군. 효과 죽이는데.”
수공(水攻)은 전생의 아데샨이 자주 사용하던 전략 중 하나였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도 투앙에서 봉기한 반란군 무리를 수공으로 제압한 뒤부터였다.
여기서 촌락 주위의 숲에 불까지 지른다면 완벽한 아데샨 식 전략이 되겠지만, 로난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제아무리 사란테라 하더라도 잿더미가 된 산맥을 보며 웃을 수는 없을 테니까.
“다들 고생 많았다. 잠 아끼면서 둑 쌓기 잘했지?”
로난은 그렇게 말하며 벙쪄 있는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참상을 지켜보던 마르야의 입술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이게···동아리 활동?”
“와하···하하하···.”
브라움은 안면 마비가 온 사람처럼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전범 비슷한 것이 되어 버린 아셀은 그저 허망한 눈빛으로 다시 흐르기 시작한 강줄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 지옥에 갈 거야···.”
작전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아셀이었다. 그는 지난밤 마르야와 브라움이 베어낸 나무와 주위에 있던 바위로 둑을 쌓아 올렸다. 염력을 다루는 아셀이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빠른 시간 내에 밑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빈집털이를 하러 가 볼까. 마르야, 브라움. 따라와.”
유감스러운 것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라만차를 뽑아든 로난이 두 사람에게 손짓했다.
“하···결국 가는구나.”
“음! 솔직히 긴장되긴 하는군.”
마르야와 브라움이 대검을 집어 들었다. 로난이 아셀의 어깨를 쥐며 말했다.
“할 수 있겠어?”
“···노력해 볼게.”
“좋아. 그냥 눈 감고 메이스를 떨어뜨리는 거라 생각해. 시타 너는 아셀이랑 같이 여기에 남고.”
“뺘아!”
오크 유인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시타가 아셀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시타 역시 엄연한 주력 인원이었다. 아셀이 지시 받은 일을 하는 동안 든든한 호위가 되어 줄 터였다.
로난과 마르야, 브라움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촌락으로 향했다. 전사들이 떠난 촌락에는 일꾼들만 남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과연 그들은 별다른 제지 없이 들바위 촌락에 들어설 수 있었다. 내부를 쭉 훑어본 로난이 여유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한적하구만.”
“한적하다고? 이게?”
“오크 기준으로는.”
진심으로 한 소리였다. 기껏해야 수십 마리 밖에 안 되어 보였는데, 이 정도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몇몇 생산직 오크들과 노예로 부리는 고블린들만이 남아 촌락을 쏘다니고 있었다. 뒤늦게 일행의 존재를 눈치챈 오크들이 고함을 질렀다.
“취익?! 이, 인간?”
“쿠악! 죽여라!”
공구를 쥔 오크들이 달려들었다. 로난은 가벼운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라만차를 휘둘렀다.
서걱. 한 획이 그어질 때마다 머리가 두 개씩 바닥에 떨어졌다. 예기를 머금은 라만차의 칼날은 오크의 피부 따위는 두부처럼 잘라 버렸다. 강물처럼 매끄러운 학살이 이어졌다.
“흐으읍! 비켜라!”
“취악!”
브라움은 과연 상급생다운 침착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로난의 옆에서 공격을 방어하며 한 명 한 명을 착실하게 쓰러뜨리고 있었다.
깡! 브라움의 대검에 공격이 막힌 오크들이 주춤거리면 로난이 그들의 목을 거두었다. 열이 넘는 동료를 잃은 오크들은 마르야를 노리기 시작했다.
“취, 취익! 저 인간들 강하다!”
“여자! 취익, 여자를 노려라!”
“···하.”
마르야가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언제나 사람이나 마공학 인형만 상대했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배운 대로. 그렇게 읊조린 마르야가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서걱. 달려들던 오크의 허리가 반으로 양단되며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마르야의 눈이 커졌다.
“이, 이거 왜 이렇게 잘 들어?!”
“누누이 말하지만, 너는 힘이 존나게 세다는 걸 자각할 필요가 있어.”
“그아악! 죽어라!”
살생의 충격을 느낄 새도 없었다. 마르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재차 대검을 휘둘렀다. 후우웅! 무식한 소리와 함께 그어진 참격이 일렬로 달려오던 오크 두 마리를 통째로 썰어 버렸다.
“취허어억!”
“취륵! 여, 여자도 강하다!”
지고의 대장장이 도론의 작품. 마나를 머금을수록 무거워지는 그녀의 대검은 이미 브라움의 것보다 무거워져 있었다. 마르야가 대검을 다루는 모습을 본 브라움이 쓰게 웃었다.
“하하하, 이게 재능의 차이인가···!”
“적성의 차이지. 내가 볼때 너는 대검이 아니라 다른 게 어울린다 브라움.”
“으음?! 들은 건가!”
브라움이 얼굴을 붉혔다. 로난은 기분 나쁘니 그런 표정은 짓지 말라 부탁한 뒤 오크들을 마저 도륙했다. 그때 머리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웅!
고개를 들자 거대한 바위와 나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셀이 염력으로 쏘아올린 바위들이었다. 고공을 가르며 날아간 거석들은 수공의 영향을 받지 않은 두 개의 촌락 위로 떨어질 터였다.
“음, 잘 하고 있군.”
우려가 무색해질 만큼 호쾌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착탄 지점에서 벌어질 비극은 떠올리지 말라고 조언한 게 효과가 있던 모양이었다. 더는 달려드는 오크가 없는 것을 확인한 마르야와 브라움이 대검을 내렸다.
“버, 벌써 끝났어?”
“허무할 정도군···!”
“너희가 잘 따라준 덕분이지. 아직 다섯 개 더 치워야 하니까 조금 쉬어 둬. 나는 뒷정리 좀 하고 올게.”
로난은 그 말을 남긴 채 촌락 가장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족장의 천막을 들추자 암컷 오크와 새끼들, 싸움이 무서워 도망친 겁쟁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취륵···! 이, 인간···!”
비무장 상태의 오크들에게서 저항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공포 서린 눈빛으로 로난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로난은 천천히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각종 뼈와 옷가지가 발에 채였다. 인간의 것도 많았고, 대부분의 뼈에는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산맥을 지나던 상단이나 재수 없게 붙잡힌 모험가들의 것일 터였다.
그래, 다 그런 거지.
입속말로 중얼거린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
“쯧.”
피투성이가 된 로난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뒷정리는 금방 끝났다. 피를 흠뻑 머금은 검신에서 예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들바위 부족은 완전히 멸망했다. 로난은 챙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천막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루나 고블린처럼 재물을 모으는 몬스터는 아니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문득 로난의 시선이 족장의 침대 한구석에 닿았다. 익숙한 형태의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설마···.”
고기를 뭉쳐 놓은 것 같은 외형, 번들거리는 금색 눈깔. 덩어리의 정체는 틀림없는 커스 아이였다. 황급히 커스 아이를 집어든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팔, 이 귀한 걸···!”
다만 절반 정도가 사라져 있었다. 오크들이 한 입 물어뜯은 뒤 맛이 없어서 버린 모양이었다. 로난은 한숨을 푹 내쉬며 커스 아이의 시체를 던져 버렸다.
‘그래 젠장, 산맥 어딘가에는 살고 있다는 소리잖아?’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혹시 한두 마리 정도가 더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던 차였다. 천막 밖에서 마르야의 외침이 들려왔다.
“로, 로난!!”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다급했다. 황급히 천막을 빠져나온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마르야와 브라움의 사이에 웬 엘프 여인 한 명이 누워 있었다.
“그건 또 뭐야?”
“천막을 뒤지다가 발견했어. 나중에 잡아먹으려고 가져다 둔 걸까?”
“젠장, 살아는 있어?”
마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튜닉 차림의 엘프 여인은 밧줄로 손발을 구속당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밧줄은 왜 안 풀어줬냐?”
“그게···아무리 해 봐도 안 잘려서.”
“뭐?”
영문 모를 소리였다. 곧장 라만차를 뽑아든 로난이 여인의 손목을 묶고 있는 밧줄을 향해 참격을 날렸다. 팅! 오우거의 피부를 때린 듯한 촉감과 함께 검신이 튕겨나왔다.
“엥?”
몇 번을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동굴 거인조차 숭숭 썰던 라만차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그때 여인의 입술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소, 소용 없어요···.”
“뭐야, 일어났네? 도대체 무슨 짓을 당한 거예요?
“으···으으으···.”
여인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새나왔다. 겉보기에는 상처가 없었는데 아마 내장을 다친 모양이었다.
로난은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포션을 여인에게 먹였다. 잠시 후, 안색이 한결 나아진 여인이 입을 열었다.
“허억···헉, 감사합니다···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 테니···저를 좀 데려가 주시겠어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풀 수 없어요.”
“데려가 달라니? 어디로요?”
“산맥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헉, 신전이 한 채 있어요···거기로···.”
로난의 눈이 커졌다. 여인은 틀림없이 사란테의 신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윽고 쐐기를 박는 듯한 발언이 흘러나왔다.
“사, 사란테···그분에게 절 데려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