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58화 (58/333)

< 58. 바이디안 산맥(7) >

#58

브리기아는 사란테의 마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방어막을 찢어발긴 라만차가 호를 그렸다. 서걱! 브리기아의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아?”

뒤늦게 이변을 눈치챈 브리기아가 시선을 떨구었다. 이를 악문 채 검격을 뿌리고 있는 애송이와 그에게 업혀 있는 사란테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브리기아는 목 아래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별안간 세상이 뒤집히며 하늘이 나타났다.

별의 가호는?

무언가 말하려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앞이 어두워졌고, 그걸로 끝이었다.

툭. 바닥에 떨어진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브리기아를 뒤따르던 가시들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로난은 그녀의 몸이 앞으로 쓰러지는 걸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개 같은 년···.”

다행히도 잘린 머리가 말을 한다거나 절단면에서 촉수가 자라 이어붙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피를 뿜으며 경련하던 몸뚱이는 이내 축 늘어졌다. 그때 업혀 있던 사란테가 검붉은 핏덩이를 토해냈다.

“커헉!”

“빌어먹을, 고생했어요 사란테. 조금만 참아요.”

“···로난.”

“죽으면 안 돼요.”

로난은 황급히 사란테를 바닥에 눕혔다. 환부의 출혈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허리 아래로 빠져나온 내장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는 이런 종류의 부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야전 병동보다는 곧장 시체 매장지로 가는 것이 합리적인 중상이었다.

가지고 있는 포션을 모조리 환부에 때려 부어 봐도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로난이 손을 말아 입가에 가져다 댄 채 외쳤다.

“시타!!”

잦아들고 있는 빗줄기 사이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지않아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어둠을 가르며 나타났다. 시타는 네 장의 날개를 파닥이며 곧장 로난을 향해 날아왔다.

“뺘아!”

“이 사람을 고쳐 줘. 어서.”

다행히도 아직 일행이 산맥을 뜨지 못한 모양이었다. 시타의 깃털은 빗물을 함뿍 머금은 채 푹 가라앉아 있었다.

몸을 한 번 털어낸 시타가 사란테와 로난에게 치유의 마법을 사용했다.

“뺘아아아아···!”

“이, 이건...?”

로난의 어깻죽지에 난 상처는 금방 아물었다. 사란테의 출혈도 금방 멎었다. 미약하게나마 혈색이 돌아온 사란테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시타를 바라보았다.

“신기한 재주군요···처음부터 궁금했는데, 도대체 무슨 동물이죠···?”

“빌어먹을, 지금 그딴 게 궁금해요?”

“괜찮아요. 훨씬 나아졌습니다···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를 신상 앞으로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그는 말없이 사란테를 안아 들어 세니엘의 신상 앞에 내려놓았다. 사란테가 부드럽게 웃었다.

“참 좋은 분이군요. 마지막에라도 뵐 수 있어 다행입니다···.”

“곧 죽을 것처럼 말하지 마요. 산맥만 내려가면 유령마를 탈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버텨요.”

“물론이죠···그나저나 큰일을 하셨습니다. 설마 브리기아를 쓰러트릴 줄이야···.”

“제기랄, 난 아직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저건 도대체 뭐 하던 년이고, 왜 당신을 습격한 거예요?”

브리기아는 강했다. 몸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강적이었다. 만약 전생의 이 나이때 그녀와 싸웠다면 무조건 패배했을 터였다.

브리기아가 사란테와의 전투로 부상을 입지 않았더라면, 별의 가호를 과신하여 빈틈을 보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승부 또한 장담할 수 없었다. 사란테는 브리기아의 머리를 연민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브리기아 르메하임은···제가 아는 가장 훌륭한 마검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한때는 릭소다의 기사단장까지 역임했던 적이 있었지요. 적국의 병사들은 르메하임의 그림자가 온다는 소식만 들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사란테는 브리기아에 대한 정보와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오래된 벗들 중 변절한 것은 브리기아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가 네뷸라 클라지에의 지부장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들은 로난이 헛웃음 쳤다.

“제기랄, 어째 지금까지 만난 병신들하고는 수준이 다르다 했어요.”

“믿음을 져버리더니 이상한 힘까지 얻어 왔더군요···그나저나 첫날의 질문에서 짐작은 했다만, 역시 교단과 싸우고 있던 거군요···.”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란테는 네뷸라 클라지에에 관해 자신이 아는 것을 말해 주었다. 별빛이 어쩌고 하는 기본적인 사상이나 교리는 기존에 로난이 알던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다만 로난이 놀란 부분은 네뷸라 클라지에라는 조직이 사란테가 어릴 적부터 존재해 왔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초야의 강자들을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일원으로 영입하거나 살해했고, 점차 세력을 불려 나갔다고 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암살자가 찾아왔지요···근 몇십 년은 잠잠해서 긴장을 풀고 있었는데, 설마 브리기아를 보낼 줄이야···.”

“겸손하시긴. 마법 쓰는 거 보니까 대장이 직접 와도 안 이상하겠던데요 뭘.”

“쿨럭, 늙은이의 잔재주지요···그러고 보니 그 방어막은 도대체···어떻게 파훼하신 겁니까···?”

“나도 몰라요. 그냥 될 거 같았어요.”

로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브리기아가 보여준 방어막은 틀림없이 아하유테가 사용하던 것과 궤가 같은 것이었다.

물론 모든 면에서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조악하고 미숙했지만, 대부분의 공격을 흘리거나 소멸시킨다는 특성만은 같았다.

그리고 로난은 그 방어막을 무시할 수 있었다. 문득 브리기아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 아직 완전하지도 않은 게 이런 위력이라니. 간부들이 용을 쓰면서 진급하려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아.

“씨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몇몇 조직원이 거인들의 권능을 미약하게나마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존의 강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진 이유도 이해가 갔다. 별의 가호 같은 권능은 일반적인 상식을 무시했으니까. 그때 사란테가 다시금 피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커헉!”

튀어오른 피가 로난의 바짓단을 적셨다. 양이 심상치가 않았다. 로난은 그제야 사란테의 안색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황급히 몸을 숙인 로난이 사란테의 손을 쥐었다.

“젠장, 사란테.”

“커흐···허어억...이거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거 같군요···.”

“뺘아앗···!”

시타는 여전히 치유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깃털이 빠질 정도로 힘을 쓰고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상처가 너무 깊었다. 고개를 돌려 피를 뱉어낸 사란테가 말을 이었다.

“시간이···없습니다 허억, 제 반지를 가져가세요···여명 마탑의 사서에게 보여주시면···도움이 되는 자료를 꽤나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자료라니요?”

“당신의···저주에···대한···.”

로난의 눈이 커졌다. 사란테는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서 그에게 내밀었다. 반지 가운데 박힌 보석에서는 그와 같은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길고···헉, 고된···싸움이 될 겁니다···포기하라 말하지 못하는 걸···용서하세요···저는 세니엘께서···로난 님에게 깃든 이유가 있다 생각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세니엘이 깃들었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사란테가 바들거리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검지를 뻗어 로난의 가슴을 쿡 찔렀다.

“바로, 여기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사란테가 뭐라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었다. 그를 향해 인근의 마나가 죄다 모여드는 모습을 본 로난이 휘둥그렇게 떴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조금만···쉬어야겠습니다···.”

문득 로난의 사란테의 손이 점차 딱딱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흘러나온 내장이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가고, 암석의 표면 같은 것이 절단면을 뒤덮기 시작했다.

사란테는 말 그대로 돌로 변하고 있었다. 로난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놓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오그라든 팔이 몸통 안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웅얼거림이 멈췄다.

“사란테?”

사란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벌어진 모양 그대로 굳어 있었다. 절단면에서부터 시작된 석화 현상은 어느덧 목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로난은 이를 악문 채 하늘을 올려보았다. 몇 초가 지나고 그가 다시 고개를 떨구었을 때, 사란테가 있던 자리에는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으득. 로난의 입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빌어먹을···.”

아름다운 바위였다. 어떠한 보석도 그 닳을 대로 닳아 버린 돌멩이의 아름다움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기나긴 세월에 의해 다듬어진 표면은 물고기의 배처럼 은은한 백색을 띠었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가느다란 부슬비만 여운처럼 폐허를 적시고 있었다. 머지않아 찢어진 구름의 틈새로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의 결을 타고 흐르는 달빛을 보며, 로난이 작게 읊조렸다.

“알았어요. 내가 할게요.”

로난이 바위를 집어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때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있다. 이봐!”

“세상에 이게 다 무슨···로난!”

“우웁, 조금만 천천히···!”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아셀과 마르야, 브라움이 쫄딱 젖은 채 달려오고 있었다. 아셀은 또 마나가 고갈되었는지 브라움의 어깨에 둘러메 져 있었다. 그들의 옷이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본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오지 말라니까 왜 왔어? 그 피는 뭐야?”

“미안하다. 오는 길에 오우거 한 마리를 마주치는 바람에 늦었어 .”

브라움이 면목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로난의 눈이 커졌다.

“오우거를 마주쳤다고? 니들이 이겼어?”

“그래. 간신히. 상처를 심각하게 입은 놈이라 다행이었다.”

“염병, 다친 사람은?”

로난은 황급히 일행의 행색을 살폈다. 다들 지쳐 있긴 해도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르야가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어. 그나저나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사란테는···?”

“이게 사란테야.”

로난이 들고 있던 바위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마르야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녀가 뭐라 말을 이으려던 차에, 로난이 등을 돌렸다.

“야, 어디 가?”

“다들 이리 와서 땅 좀 파라. 아셀, 마나 회복되려면 얼마나 걸리냐?”

“으, 응?”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목 좋은 곳에 누워 있어. 할 일이 많다.”

로난은 그 말을 남긴 채 브리기아의 시체로 다가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마르야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뭐야?! 서, 설마 아까 그 여자야?”

“엉. 아주 개 같은 년이었지.”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그리고 그걸 뭐 어쩌려고···?”

“시끄러 인마. 땅이나 파.”

로난은 브리기아의 시체를 땅에 묻었다. 사란테의 친구이자 강적에 대한 예우였다. 일행은 잔해를 치우고 그 아래 깔려 있던 사란테의 짐을 추려냈다. 전후 사정을 들은 아셀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 그럼 사란테는 죽은 거야···?”

“글쎄다.”

로난이 담뱃대를 빼물었다. 사란테와 달리 브리기아의 시체는 돌로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란테는 말 그대로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돌로 변한 걸지도 모른다. 로난은 자신의 배낭에 묶인 채 반짝거리는 바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기를 바래야지.”

작업을 마칠 무렵에는 어느새 동이 터 오르고 있었다. 구름이 물러난 하늘은 티 없이 맑은 벽청색을 띠었다.

잔해가 말끔하게 치워진 자리에서는 세니엘의 신상만이 남아 우뚝 서 있었다. 신상을 한 번 쓰다듬은 로난이 녹초가 된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너도.”

“잊지 못할 동아리 활동이었어···.”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격려했다. 쏴아아-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와 풀잎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얼굴을 적셨다. 전날의 소란에도 무색하게, 서광 속에서 기지개를 켜는 바이디안 산맥의 풍경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들은 한나절에 걸쳐 산에서 내려갔다. 대로에 도착해서 호루라기를 불자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유령마가 나타났다.

특급 모험 동아리의 첫 번째 활동이 끝났다. 일행은 당일 정오 무렵에 필레온에 도착했다. 원체 짐이 많아진 탓에 왔을 때보다는 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

동아리 활동을 마친 다음날.

“아아아아!!”

바렌 파나시르 교수의 집무실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바렌의 손에는 [동아리 활동 보고서]라는 제목의 종이가 들려 있었다.

로난의 자필로 기재된 글씨를 한줄 한줄 읽어갈 때마다 바렌의 갈기가 가닥가닥 곤두서고 있었다.

“왜 그래요 바렌. 제출하래서 제출한 건데. 교칙도 시간도 딱 맞게 준수했잖아요.”

로난은 그의 앞에 뻔뻔스레 다리를 꼰 채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바렌은 한쪽 손으로 자신의 갈기를 움켜쥔 채 말을 이었다.

“지금 교칙이나 활동 시간 같은 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 여기 있는 일이 다 사실입니까? 유령마 무단 대여, 오우거 퇴치, 수공을 활용한 오크 대량 학살···!”

“당연하죠.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니까.”

“아아···아아아!”

바렌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의 입에서 절규에 가까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로난은 역시 모든 것을 적지는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멩이가 된 사란테라든가, 네뷸라 클라지에의 간부를 참수한 일이라든가···.

“아무튼 전부 사실이니까 꼭 상부에 보고해 주세요. 다음 동아리 활동 계획서는 금방 제출할게요.”

“다, 다, 다음 활동 말입니까? 그런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크라티르 영감님이랑 대화가 이미 끝났다니까요? 바렌 교수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저희의 즐거운 모험담을 읽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바렌이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유령마 대여 청구서가 날아왔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찻잔을 세 번째 비운 로난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미리 챙겨 온 보따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볼게요. 이건 선물이니까 꼭 풀어 보고요.”

“자, 잠깐 기다리세요!”

“수업이 있어서 이만 가 볼게요. 정말 고마웠고, 앞으로도 고마울 거예요 바렌!”

로난은 도망치듯 바렌의 집무실을 빠져 나갔다. 바렌은 전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군인처럼 허망한 눈빛으로 그가 나간 자리를 쳐다보았다.

-피이?

그때 깃털을 손질하던 마르페즈가 로난이 두고 간 보따리를 콕콕 쪼았다. 허술하게 묶여 있던 매듭이 풀리며 안에 있던 내용물이 드러났다. 바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보따리는 생전 처음 보는 약초들과 버섯들로 채워져 있었다. 기괴하게 뒤틀린 풀떼기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몇 개는 뿌리가 살아 있어 그대로 기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바렌의 집무실을 빠져나온 로난은 동아리 구역인 네스트로 향했다. 그는 한창 결산 업무로 고생하고 있을 마르야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번에 고생 좀 하겠군.”

바이디안 산맥에서 얻은 물건들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로난을 비롯한 일행은 상의 끝에 팔아치울 물건과 사용할 물건을 구분했다. 그는 마르야가 말해 준 예상 수익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말 집도 사겠는데.’

아무래도 이릴을 님버튼에서 불러올 때가 된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선술집을 연상케 하는 동아리 건물에 도착해 있었다. 문을 열자 먼지 자욱한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아직 아무도 안 왔나?”

실내는 적막했다. 아무래도 다들 밀린 일정을 처리하느라 늦는 모양이었다.

훈련이나 하고 있을까?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차에, 2층과 이어진 계단이 삐걱이며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거진 한 달 만에 보는 소년의 모습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가 여기 왜 있냐?

“왔나. 로난.”

여전히 재수 없는 상판데기였다. 관리가 안 된 듯 길어진 뒷머리가 눈에 띠었다. 슐리펜은 한층 더 날카로워진 눈매로 로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화를 좀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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