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81화 (81/333)

< 81. 이사 대작전(5) >

#81

라만차는 그대로 별의 가호를 썰면서 호를 그렸다. 스각! 주름진 목에 붉은 선이 생겼다. 로난이 그의 가슴을 걷어차며 착지함과 동시에 노인의 머리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영감?!”

청년이 경악했다. 튕기듯이 떨어져 나간 머리통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한때 아덴의 피바람이라 불리던 강자의 죽음이라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무했다.

“휴···진짜 좆되는 줄 알았네.”

반면 로난은 재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글자글한 늙은이가 발동한 것은 틀림없이 별의 가호였다. 사란테를 반으로 찢어 버린 브리기아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 계집 절반만큼만 강했어도···상상만 해도 끔찍하군.’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오소소 올라왔다. 이사 한번 하려다가 일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질 뻔했다. 별의 가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네뷸라 클라지에 내에서 상당한 강자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미 승부는 났다. 노인의 시체는 와이번의 등 위에 드러누운 채 움찔거리고 있었다. 단면에서 솟구치는 피를 본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뭐, 유감스럽지만 어쩌겠어.”

아무리 강해도 죽으면 끝이었다. 로난은 가차 없이 시체를 걷어찼다. 안장에 발이 걸려 대롱거리던 시체는 머지않아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탑승자가 죽었음에도 와이번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로난은 뒤꿈치로 와이번의 등을 툭툭 건드리며 히죽였다.

“승차감이 괜찮네. 교육을 잘 시켰나봐.”

“빌어먹을, 파이어 애로우!”

청년은 왼손을 치켜들며 로난을 겨누었다. 전투는 특기가 아니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짧은 영창과 함께 쏘아진 불의 화살이 로난을 향해 쏘아졌다. 칼을 한 바퀴 돌려 잡은 로난이 픽 웃었다.

“늙은이를 먼저 잡아서 다행이네.”

척 봐도 수준이 떨어지는 마법이었다. 로난은 어깨를 비틀어 화살을 피한 뒤 수직으로 검을 휘둘렀다. 쐐액! 일직선으로 날아간 검기가 청년의 왼팔을 세로로 가르며 지나갔다.

“크아아아악!!”

청년이 왼팔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곧바로 도약한 로난이 그가 있는 와이번으로 옮겨탐과 동시에 참격을 날렸다. 서걱! 너덜거리던 청년의 왼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허억···!”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청년의 의식이 끊어졌다. 술자가 무력화되자 와이번들의 눈을 가리고 있던 광기가 사라졌다. 청년을 태우고 있던 와이번이 급작스럽게 몸을 뒤틀었다.

“키에엑!”

“제기랄.”

로난은 다급하게 라만차를 와이번의 등에 박아 넣었다.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지르던 와이번이 더욱 거칠게 버둥대기 시작했다. 그때 고삐를 놓치고 휘청이던 청년의 몸이 바깥쪽으로 튕겨 나갔다.

“안 돼!”

로난이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아슬아슬한 차이로 놓치고 말았다. 구름이 막 청년을 삼키려는 순간이었다. 빙빙 돌며 추락하던 그의 몸이 갑자기 멈춰섰다. 상황을 파악한 로난이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아셀! 바로 그거야!”

“내, 내가 잡았어!”

보이지 않는 손이 청년을 붙잡고 있었다. 아셀의 마법인 인비저블 핸드였다. 그는 여전히 와이번의 대가리에 찰싹 달라붙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로난이 외쳤다.

“잘했어, 끌어 올려!”

“으, 응!”

아셀이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렸다. 그는 축 늘어진 청년의 몸을 황색 와이번 위에 올려놓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노인이 타고 있던 황색 와이번은 술자가 기절했음에도 평온한 비행 궤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로난을 매단 채 날뛰던 붉은 와이번이 재차 포효했다.

“키하아아악!”

“나도 너 싫어 인마.”

라만차를 뽑아든 로난이 몸을 날렸다. 그는 마침 아래쪽을 날고 있는 황색 와이번의 등 위에 착지했다.

붉은 와이번은 로난을 떨쳐내기 무섭게 구름 바깥으로 날아가 버렸다. 잠시 숨을 고른 로난이 청년을 내려보며 중얼거렸다.

“씨팔···애먹이기는.”

왼팔이 잘린 청년은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로난은 그대로 청년의 오른쪽 허벅지에 라만차를 박아넣었다.

“으허어어···!”

“닥쳐.”

튕기듯이 상체를 일으킨 청년이 뭐라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로난의 손바닥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쭈그려 앉은 로난이 청년에게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대며 말했다.

“흐으읍 흐으으읍!”

“손 떼면 무슨 짓 하고 있었는지 순순히 불어. 개길 때마다 재미없어질 거야.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여.”

핏발 선 청년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로난이 손바닥을 떼는 순간이었다.

“엿이나 먹어 이 새끼야! 느닷없이 불거져서는 어딜 감히···”

로난은 말없이 허벅지를 관통한 라만차를 좌우로 비틀었다. 서걱. 두부처럼 썰려나간 다리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청년의 욕지거리는 순식간에 처절한 비명으로 변모했다.

“흐아아아아아아!”

“재미없어질 거라 했지.”

오른팔을 안 자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기절하려는 청년의 검지를 뒤로 꺾었다.

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청년이 정신을 되찾았다. 로난은 그의 입을 막은 채 손가락 두 개를 더 부러뜨렸다. 그리고 입을 막고 있던 손바닥을 뗐다.

“마, 말할게요···! 말하면 흐으윽, 될 거 아니에요···!”

주문하지 않은 존댓말까지 하는 걸로 보아 꽤나 진정성이 느껴졌다. 어쩌면 카라카의 말처럼 자신은 심문관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

로난은 안주머니에서 꺼낸 포션을 청년의 환부에 몇 방울씩만 떨어뜨렸다. 혹시라도 과다출혈로 뒈지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빠짐없이 말해. 개수작 부리면 혼자서 똥도 못 닦는 몸으로 만들어 버린다.”

“네, 흐으윽···말할게요. 전부 말할게요···!”

청년이 흐느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의 이름은 카디온. 네뷸라 클라지에의 몬스터 조련사로서, 먼젓번에 뒈진 두 명과 함께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고 했다.

“워, 원래는 같이 온 년이 와이번을 조종해야 하는데···흐윽! 어떤 죽일 놈이 썩은 생선 냄새를 퍼트리는 바람에···”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마.”

그는 이번에 맡은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과 여인이 와이번을 비롯한 몬스터를 조종하고, 로난에게 별의 가호를 쓰던 노인이 호위를 맡았다고 했다. 로난이 예상했던 것처럼 지상의 몬스터를 날뛰게 한 것은 단순한 미끼이자 눈속임이었다.

“예상하신 게 맞습니다. 몬스터를 날뛰게 한 건 전부 눈속임이었어요. 끅, 이게 들킬 줄이야···.”

카디온은 몬스터들을 날뛰게 한 것은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다. 진짜 목적은 와이번을 이용한 로마이라 산악도로를 습격하는 것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설명을 마친 그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흐느꼈다.

“끝···꺼흑, 다 끝이야···제, 제발 목숨만···.”

네뷸라 클라지에의 임무는 실패였다. 카디온의 말만 들었을 때는 그랬다.

하지만 로난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풀리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난전 중에 보았던 물건이 뇌리를 스쳤다.

“도,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몇 년에 걸쳐 준비한 계획이었는···”

“야.”

“···네?”

“너 지금 뭐 숨기고 있지.”

카디온의 동공이 한순간 흔들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로난은 라만차의 칼끝을 그의 목울대에 겨눈 채 말을 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파괴할 생각이었는데.”

“히이익···그야 몬스터로 시선을 끌고 와이번들로 산악도로를 습격해서···”

“그럼 이 와이번이 들고 있는 건 뭐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셀! 와이번 발톱에 끼어 있는 거 가져와!”

“으, 응···! 우웁!”

조심스레 고개를 돌린 아셀이 카디온의 몰골을 보고 구역질했다. 아셀은 로난이 고문을 시작한 이후 줄곧 그를 등지고 있었다.

아셀은 와이번의 발톱에 쥐어져 있는 구체를 염력으로 빼냈다. 자신의 눈앞에 대령된 구체를 본 카디온의 눈이 커졌다. 로난이 말했다.

“이게 뭐냐고.”

“이, 이건···그러니까···.”

카디온이 말꼬리를 끌었다. 그때 구체를 살피던 아셀이 비명을 질렀다. 그는 구체 표면에 각인된 마법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히이이익···포, 폭발 주문이야 로난! 중위 마법 서른 개가 각인되어 있어!”

“이런 씨발.”

“추, 충격을 받거나 시간이 지나면 폭발하는 구조야!”

라만차가 춤을 췄다. 카디온의 오른팔이 몸에서 떨어졌다. 로난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카디온의 목을 짓밟으며 으르렁거렸다.

“내가 개수작 부리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비, 빌어먹을! 거의 다 됐는데!”

카디온이 버둥거렸다. 로난은 그의 배를 걷어차서 조용하게 만들었다. 별안간 사방을 뒤덮고 있던 구름이 흩어지며 로마이라 산맥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젠장”

어림잡아 오 분 정도면 산악 도로에 도달할 거리였다. 뎅- 뎅- 저 아래쪽에 있는 마르바스에서 경종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타고 있는 와이번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으, 으하하하!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해! 다 같이 죽는 거다 얼간이들아!”

카디온이 광소를 터트렸다. 그래도 시간을 끈 덕에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구체에 각인된 주문들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비록 로마이라 산악도로를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해도 바로 근처의 마르바스 정도는 충분히 날리고도 남을 터였다.

“그, 그런···!”

구체에 새겨진 마법진은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점멸하고 있었다.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아셀. 내가 헷갈려서 그러는데, 여기 새겨진 것도 일단은 마법이지?”

“그, 그, 그렇지···?”

“됐어 그럼.”

별안간 로난이 라만차를 휘둘렀다. 서걱!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구체가 반으로 갈라졌다. 아셀의 입에서 계집애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끼아아악! 무, 무슨 짓을······에?”

헌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점멸하던 마법진의 빛이 꺼졌다.

로난은 그대로 몇 차례의 참격을 더 날렸다. 수십 토막이 난 구체가 형체를 잃고 부서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디온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 그런···! 어떻게···?”

“체질이 이래서.”

로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마법진에도 자신의 능력이 먹히는 것을 전생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카디온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불현듯 큼직한 그림자 하나가 와이번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는데, 여기 있었나.”

“히이익!”

익숙한 중저음이 울려 퍼졌다. 뒤로 넘어갈 뻔한 아셀이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로난이 한쪽 손을 들며 인사했다.

“왔냐.”

자이파의 몸은 온통 피로 젖어 있었다. 그는 떨어지는 도중 와이번의 목에 한 손으로 매달렸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와이번이 휘청거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카디온의 머리채를 붙잡아 들어 올린 로난이 빈정대듯 말했다.

“내가 흘릴 거라 했지.”

“어차피 잡았을 거다.”

“어차피 잡기는 지랄, 폭발에 휩쓸려서 호피 카페트가 되었겠지. 나한테 감사한 줄 알아 인마.”

“폭발?”

자이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은 뭐라 말하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조목조목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었다. 자이파를 본 카디온이 탄식했다.

“자, 자이파!”

시커먼 웨어타이거의 모습은 모든 희망에 종지부를 찍는 마침표처럼 보였다. 카디온을 한번 훑은 자이파가 불쾌한 듯 혀를 찼다.

“쯧, 역겹군.”

"남은 다리 한 쪽도 잘라 버릴까?"

"그건 로돌란에 맡기지. 돌아간다."

자이파는 그대로 세 사람을 옆구리에 낀 채 뛰어내렸다. 자유의 몸이 된 와이번이 퍼덕이며 날아갔다. 마르바스에서 울려 퍼지던 종소리가 멈췄다.

저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날아갈 뻔한 것도 모른 채 오늘을 살아가겠지. 로난이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이사가 이렇게 힘든 거였나.”

자이파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도약을 반복하며 원래 있던 곳으로 향했다. 털이 계속 눈을 찔러 짜증나긴 했지만, 거지 같은 꼬리보다는 옆구리가 수십 배 정도 나았다. 한창을 날아가는 와중이었다.

“아. 뭔가 받고 싶은 게 있나.”

“받고 싶냐니, 뭘?”

“황제의 지침이다."

자이파는 네뷸라 클라지에를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데 공헌한 이들에게 재량껏 보상을 해 주라는 황제의 지침이 있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다소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덕분에 와이번을 덜 죽일 수 있었지. 네게는 자격이 충분하다."

“보상···보상이라···.”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너···힘 좀 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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