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계절은 봄을 넘어 여름으로(3) >
#86
“오랜만이군. 나비로제.”
로난과 나비로제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비쩍 마른 사내가 석양을 받으며 서 있었다. 악우의 모습을 본 그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자로딘?”
“벽은 어쩌다가 부숴 먹은 거냐. 네 마나가 느껴지던데.”
“···수업 중의 사고라고 해 두지.”
나비로제가 시선을 피했다. 자로딘은 벽면이 무너져 내린 잔해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그의 행색을 살피던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로딘···맞나?’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달라진 점이라고는 그저 덥수룩한 머리가 정리된 것과 해골처럼 파여 있던 볼살이 조금이나마 차올랐다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소한 변화만으로 자로딘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원래는 그냥 고학력자 자벌레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퇴폐적인 미중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나비로제가 차갑게 말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거냐. 수업이 끝났는데도 탑에 처박혀 있지 않고 나돌아다니다니.”
“여러 가지 용무가 있지. 첫 번째는 연구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네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뭐?”
나비로제의 눈이 커졌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자로딘의 비밀을 아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자로딘이 말을 이었다.
“한번 보러 와라. 아직 의식은 되찾지 못하고 있지만, 소리는 들릴 수도 있으니까. 네 모험담이라면 수냐도 좋아할 거다.”
자로딘의 말로 미루어 보아 그의 아내인 수냐와 친구 사이라도 됐던 것 같았다. 벙쪄 있는 나비로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걸로 감사를 표한 자로딘이 로난을 돌아보았다.
“간만이군. 로난.”
“그러게요. 이제 좀 사람 같아서 보기 좋네요.”
“지난번에는 신세를 졌음에도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
“됐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그렇겠지.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네게 인생을 빚졌다.”
별안간 자로딘이 머리를 숙였다. 상상조차 못 할 광경을 본 나비로제가 눈살을 찌푸렸다. 팔다리를 다 부러뜨리고 똥오줌도 못 가리는 몸으로 만들어 놨어도 고개만큼은 빳빳이 치켜세우던 자로딘이었다. 그의 머리 아래로 먹먹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고맙다.”
“젠장,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왜 이래요? 나중에 살아난 아내한테나 싹싹 빌라고요.”
“이것과 그건 다른 문제다.”
로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로딘은 한참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 한층 선명해진 푸른 눈동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로난을 마주 보며 말을 이었다.
“난항을 겪고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라.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테니까.”
“돈은 안 받겠죠?”
“네 자식에 손자까지는 무료다.”
자로딘이 옅게 웃었다. 눈빛에 어린 생기를 본 로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 네뷸라 클라지에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불행할수록 나약해지는 법이지. 일단은 안심이군.’
로난은 그를 도와주기 진심으로 잘 했다고 생각했다. 마나에 통달한 대지 마법사. 틀림없이 앞으로도 어마어마한 아군이 될 터였다. 대화를 마친 자로딘이 별안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네 여자친구는 어디 있나.”
“여자친구?”
“그래. 검은 머리에 키가 큰···사실 오늘은 그 아이 때문에 온 건데.”
로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자신의 확고한 취향을 근거로 들며 뭐라 반박하려던 차였다. 재빠르게 말을 끊으며 들어온 나비로제가 입을 열었다.
“아데샨이라면 오늘은 오지 않았다. 왜 내 조수를 찾는 거냐.”
“저번에 한번 본 이후로 계속 마음에 걸리더군. 연구 때문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말이다. 수도 없이 나 자신을 의심했고, 오늘 아침에야 확신하게 되었다.”
“무슨 뜻이지?”
나비로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로딘의 입술 사이로 전쟁이라도 선포하듯 엄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아이의 힘은 위험하다. 그것도 굉장히.”
한순간 투기장이 적막에 빠졌다. 나비로제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 되물었지만 자로딘의 표정은 진지했다.
‘때가 됐군.’
로난은 말없이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사면에서 쏟아지는 석양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대장군을 복직시키기 위한 여정이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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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이 위험하다니···자로딘 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네. 그거 때문에 얼마나 시끄러웠다고요. 나중에는 교관님이 멱살까지 잡았다니까요.”
“나는 그냥 유급생일 뿐인데···.”
로난과 아데샨이 만난 것은 다음날 정오였다. 전날 밤에 비가 내린 탓에 거리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여름을 맞이하는 교정의 녹음이 깊이를 더해가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요. 선배는 재능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랑 자로딘은 그걸 발견한 것 뿐이에요.”
“긴장되네···기대도 되고. 아무튼 고마워 로난. 이런 기회를 줘서.”
아데샨이 웃었다. 초여름의 후텁지근함에도 썩 어울리는 미소였다. 이런 소녀가 그런 무시무시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따름이었다. 로난이 다시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고마워할 일이 더 많을 텐데요 뭐.”
그들은 자로딘의 탑이 아닌 마법과의 본관으로 향했다. 진리의 전당이라 불리우는 이 건물은 겉보기에는 무예과의 본관인 갈레리온 성채와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내부는 완전히 달랐다. 로난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변태 같은 주문쟁이 놈들.”
그는 천장에 거꾸로 붙어 있는 계단이나 움직이는 초상화, 바이올린을 켜며 돌아다니는 마공학 기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조도 복잡하기 짝이 없어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갔다가는 미아가 되기 십상이었다.
“얌마, 아셀!”
“로, 로난?! 여기는 어떻게···?”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던 아셀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납치하듯 그를 데려 온 로난은 ‘심층 6연구실’이라는 정체불명의 공간까지의 안내와 아데샨과의 인사를 종용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셀이라고 합니다···.”
“무예과 2학년 아데샨이야. 잘 부탁해.”
“크, 크다아···.”
아셀은 절망과 경외가 반반씩 섞인 시선으로 아데샨을 올려보았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휘둥그렇게 뜬 것이 웅장한 탑이나 산맥을 바라보는 듯 했다.
“그, 그런데 심층 연구실은 왜···? 위험한 마법을 실험할 때나 가는 곳인데···.”
“이 선배가 모든 생명체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각성해야 하거든. 잠자코 안내나 하면 너는 살려 줄게.”
“히이이익···!”
아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데샨은 장난치지 말라며 로난을 나무랐지만 그는 딱히 농담이나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심층 연구실은 본관의 지하에 존재했다. 어째서 계단을 올라가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지하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복도를 따라 걷던 아셀은 [6]이라는 숫자가 적힌 문 앞에 멈춰 섰다. 자이파도 머리를 숙이지 않고 통과할만한 거대한 철문에는 방어 마법이 수 겹으로 인챈트되어 있었다.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우리를 대상으로 새로운 폭발 마법을 실험하려는 거 아닐까요?”
“···나도 잘 모르겠어.”
“그, 그럼 나는 이만 가 볼게. 혹시라도 에르제베트가 날 찾으면 모른 척 해줘···!”
안내를 마친 아셀이 도망치듯 물러갔다. 에르제베트를 운운하는 걸 보니 여전히 시달리고 있는 듯 했다. 이래서 머리도 적당히 좋아야 돼. 그리 읊조린 로난이 철문을 밀었다. 의외로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협소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굉장히 넓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아데샨이 감탄을 흘렸다.
“우와···.”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마법 중 3할 정도는 이곳에서 실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각종 실험 장비와 기계장치가 잘 정리되어 놓여 있었다.
“찍. 찍찍.”
“뮈익-! 뮈이익-!”
연구실의 한쪽 벽면은 짐승을 가둘 수 있는 우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크고 작은 수백 개의 우리 안에서 저마다 다른 동물들이 꾸물럭거리며 불만을 토해내고 있었다.
자그마한 생쥐부터 여우, 사슴, 늑대까지···로난과 눈이 마주친 회색곰이 두 다리로 일어서며 사납게 포효했다.
“구어어억!”
“에이, 씨발. 깜짝이야. 왜 여기에 이딴 것들이 있어?”
“흑마법이나 강령술의 실험에 사용되는 재료들이다. 필레온 아카데미의 어둠 중 하나지.”
그때 연구실의 한구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난과 아데샨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웬 거대한 육각 기둥들 사이에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자로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왔군.”
“자, 자로딘 교수님···?”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그녀 역시 자로딘의 변화에 놀란 듯한 눈치였다. 로난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뭐 이런 곳으로 사람을 불러요?”
“내 연구실에 없는 장비가 필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아무데나 못 두거든.”
자로딘은 그의 앞에 세워져 있는 육각 기둥들을 가리켰다. 높이가 족히 10m는 되어 보이는 기둥 세 개가 정삼각형의 형태로 배치되어 있었다. 각 면마다 생소한 문자가 빽빽하게 새겨져 있는 걸로 보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너는 왜 온거냐.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궁금하기도 하고.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걱정돼서 따라왔다는 소리를 길게도 돌려 말하는군.”
자로딘이 픽 웃었다. 얼굴이 붉어진 아데샨이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걱정돼서 따라왔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라 로난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자로딘은 자신이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와서 서라."
아데샨은 그렇게 했다. 그녀가 삼각형의 중앙에 서는 순간 자로딘이 주문을 영창했다. 잠잠하던 기둥들이 요란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왜···.”
“가만히 있어라. 네 본연의 마나를 끌어내는 중이니까.”
자로딘이 말했다. 심호흡한 아데샨이 자세를 다잡았다. 진동이 이어졌다. 머지않아 그녀의 어깨 위로 칠흑처럼 시커먼 일렁이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이건···?”
아데샨의 눈이 커졌다. 외관은 비슷했으나 일반적인 마나와는 풍기는 느낌 자체가 전혀 달랐다. 섬뜩하고, 세상의 이치에 반하는 듯한 이질적인 기운. 자로딘이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매만졌다.
“흐음. 지금 보니 확실하군. 그림자의 마나야.”
“그림자의 마나라는 게 도대체 뭐죠? 저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여지껏 본인이 마나를 다루는 데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뭘 해도 남들보다 느리고.”
“그, 그걸 어떻게···.”
“당연한 일이다. 네가 다뤄야 할 힘은 성질 자체가 다르니까. 설마 그림자의 마나를 타고난 이를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군.”
자로딘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그림자의 마나에 관해서 설명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마나의 종류 중에서도 가장 드물고 비밀스럽다 알려진 그 개념은 오러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었다.
일반적으로는 감지되지 않는 것. 타고난 이들의 체내에서 짧게는 수 년, 길게는 수백 년을 자리잡다가 어느 순간 능력을 개화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그림자의 마나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매우 적다. 하지만 그걸 발현한 이들은 대부분 백 년은 족히 회자될 사고를 일으켰지. 네 능력도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위험할 거다.”
자로딘은 서클이나 코어조차 형성되지 않았는데 대마법사, 혹은 소드마스터와 다름없는 권능을 휘두르던 이들에 관해 설명했다. 그들의 최후가 좋지 않았다는 점까지. 열 중 아홉은 어느 날 갑자기 발현한 능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폭주한 탓이었다. 자로딘이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힘을 너무 늦게 개화해서 벌어진 불행이지. 너는 그래도 꾸준히 단련만 한다면 늦지 않게 개화할 수 있을 거다.”
“어떤 식으로 단련해야 하죠?”
“일단 체내에 축적된 기존의 마나를 모조리 치워야 한다.”
자로딘이 다시금 주문을 영창했다. 기둥이 거세게 진동하더니 아데샨의 어깨 위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이 한층 짙어졌다.
머지않아 검은 기운이 사라지고 로난이 기존에 알고 있는 푸른빛의 마나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푸른 마나는 자로딘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더니 아데샨과 비슷한 크기의 덩어리로 변했다. 자로딘은 둥둥 떠다니는 마나의 덩어리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걸 다 없애야 한다. 그림자의 마나를 다루는 네게 있어서는 노폐물이나 다름없는 존재니.”
“이, 이걸 전부요? 어떻게···.”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 그래도 5년 정도면 모두 없앨 수 있을 거다.”
자로딘은 그녀가 매일매일 해야 하는 번거롭고 귀찮은 노력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데샨은 겨우내 토실토실해진 뱃살이라도 보듯 망연한 얼굴로 마나 덩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5년이라는 말을 들은 로난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뽑아낸 거 아니예요? 그냥 그대로 다른 곳에 던져 버리면 되잖아요.”
“보기에만 이렇지 실상은 이어져 있다. 저 마도구의 힘으로 잠시 꺼낸 것 뿐이야.”
자로딘이 턱 끝으로 기둥을 가리켰다. 요컨대 잠시 몸 밖으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거, 혹시 한 번에 사라지면 선배에게 악영향이 있나요?”
“그게 무슨 뜻이지.”
“빨리요.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몹쓸 병에 걸리나요?”
“그렇지는 않다. 노폐물을 제거할 뿐이니까. 다만···”
“그거면 됐어요. 비켜봐요.”
로난이 자로딘을 밀치며 섰다. 스아아- 기묘한 숨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새나왔다. 빛나는 라만차의 검신을 본 아데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난? 갑자기 칼은 왜···?”
“미안해요 선배. 난 그렇게 오래 못 기다려요.”
“그게 무슨···”
아데샨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로난의 팔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자크를 토막 쳤을 때보다 몇 배는 더 빠른 참격들이 마나 덩어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파앙! 뒤늦은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수십 갈래로 찢어진 덩어리가 형체를 잃고 흩어졌다.
“꺄아아악!”
동시에 아데샨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황급히 팔을 뻗은 로난이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쿠르릉! 동시에 육각 기둥 중 두 개가 무너져 내렸다.
“무슨···!”
자로딘의 눈이 커졌다. 필레온에서 손꼽히게 비싼 마도구가 돌무더기로 변해 버렸다. 소리를 지르면서 펄쩍 뛰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마나가 소멸했어?”
분명 일시적으로 빼냈을 뿐인 마나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아데샨의 몸속에는 이제 그림자의 마나만이 남아 일렁이고 있었다.
충격이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아데샨의 기다란 몸은 아직도 벼락 맞은 사슴처럼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때 연구실 한구석에서 찢어지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쨍그랑!
“뭐야?”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유리로 된 우리가 바닥에 떨어진 채 깨져 있었다. 흑마법이나 강령술의 재료로 준비해 뒀다는 동물 우리 중 하나였다. 파편에 깔린 들쥐들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쨍그랑! 그 순간 또 다른 우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자로딘의 얼굴이 굳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예측을 아득히 벗어나는 능력이었다. 콰장창!! 작은 동물들을 가둬 놓은 우리가 연달아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벽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광경을 본 로난의 입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대장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