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89화 (89/333)

< 89. 여명을 향해 쏴라(2) >

#89

“씨발.”

일곱 개의 거대한 화염구가 비공정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화염이 대기를 불사르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좆됐음을 깨달은 로난이 에르제베트의 어깨를 흔들었다.

“얌마, 일어나!”

“으잇···왜 그래여어···우웁.”

흔드는 대로 휘청이던 에르제베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잠에서는 깼지만 구역질만 반복하는 것이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화염구를 보고 흥분한 그리폰들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 휘요오오오옷!!

“괜찮아. 괜찮으니까 진정해···!”

조종을 담당하는 기수들이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선체가 풍랑을 만난 듯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선장으로 보이는 사내와 승무원들이 갑판 위로 뛰쳐 나왔다. 뒤늦게 화염구를 발견한 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허어억!”

“저, 저게 뭐야?!”

반응으로 보아하니 사전에 마탑과 협조된 행사는 아닌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달려간 선장이 선미에 설치된 종을 쳤다. 뎅-! 뎅-! 요란스러운 금속음이 하늘 위에 울려 퍼졌다.

“1번과 5번, 7번은 제동! 나머지는 좌측으로 회전하면서 고도를 낮춰라!”

선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기수들은 최선을 다해 명령을 수행했다. 어찌어찌 균형을 되찾은 비공정이 회피기동을 시도하고 있었으나 화염구는 생각보다 빨랐다. 궤도를 읽은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세 발은 맞는다.’

일곱 개의 화염구 중에서 직격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세 개였다. 가장 앞에서 선체를 노리고 날아오는 놈은 무조건 맞는다고 해도 봐도 좋을 지경이었다.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주위를 살피던 도중 정박을 위한 밧줄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끝은 선체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로난이 허리에 밧줄을 단단히 감았다. 그리고 주저 없이 불덩이를 향해 뛰어내렸다. 텅 비어있는 발아래를 보니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바람이 귓가에서 포효하고 있었다.

“시발.”

요 근래 하늘에서 이딴 일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았다. 어느새 불덩이는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름이 족히 3m는 되어 보이는 화염의 집합체는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거대했다. 스아아아- 로난의 입에서 기묘한 숨소리가 새나오기 시작했다.

‘적당히 베어서는 안 돼.’

아예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야 했다. 어중간하게 쪼갰다가는 되려 피격당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었다.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제각기 방향이 다른 참격 수십 획이 불덩이 위로 쏟아졌다. 화염구가 로난을 덮치는 순간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파아앙! 수백 조각으로 찢어진 화염이 폭발하듯 흩어졌다.

“죽이는데.”

실전에서의 첫 성과였다. 로난은 자신이 휘둘러 놓고도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라만차를 바라보았다. 마나를 먹인 검신은 은은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찢겨나간 불의 파편들은 불어오는 역풍을 이기지 못하고 소멸해 버렸다. 선체와 연결되어 있던 로프가 완전히 펼쳐졌다.

추락하던 로난의 몸이 반동과 함께 멈춰 섰다. 동시에 나머지 화염구들이 그의 주위를 스치듯이 지나갔다.

이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뒤쪽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콰광! 쾅!!

‘염병, 맞았나?’

로난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건재한 비공정을 본 그의 얼굴이 밝아졌다. 보랏빛을 띠는 마나 실드가 선체와 그리폰들을 뒤덮고 있었다. 방어막 군데군데 화염구가 충돌하며 발생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잘 했어, 에르제베트!”

“아으으···머리야.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에르제베트는 난간에 상체를 기댄 채 숙취를 호소하고 있었다. 갑자기 불덩이가 날아와서 막긴 막았는데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끼이익. 끼이익.

“응?”

문득 팽팽하게 당겨진 채 삐걱이는 밧줄이 눈에 들어왔다. 밧줄을 따라 시선을 내린 에르제베트가 비명을 질렀다. 저 아래쪽에서 로난이 거꾸로 묶인 채 대롱거리고 있었다.

“로, 로난 님? 왜 거기에···?!”

“왜 있는 거 같냐, 엉?”

“지, 지금 올려 드릴게요!”

에르제베트가 로난을 향해 팔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그를 붙잡았다. 낚싯바늘을 문 청어처럼 솟구친 로난이 갑판에 착지했다. 비틀거리며 다가온 에르제베트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말했다.

“죄송해요. 으욱···아직 힘 조절이 잘 안 돼서.”

“아냐, 잘 했어.”

“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죠···? 사실 저 어젯밤부터 기억이 잘 안 나서···.”

“알면 뛰어내리고 싶어질걸.”

로난이 헛웃음 쳤다. 그의 어깨에는 아직도 희멀건 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목조목 짚음으로써 수치라는 감정에 대해 알려 줄 생각이었지만,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렸으니 봐 주기로 했다. 선장과 승무원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괘, 괜찮으십니까?!”

“화염구를 막으시는 걸 봤습니다. 밧줄로 몸을 묶고 뛰어내리시다니 어떻게 그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두 분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거예요!”

그들은 연신 고개를 조아려 가며 감사를 표했다. 에르제베트는 입을 틀어막은 채 저 구석으로 달려갔다. 칭찬이면 사족을 못 쓰는 계집애가 저러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숙취가 심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다행이군.’

주변을 둘러본 로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다친 사람이나 그리폰은 없어 보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로난이 선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출발할 때 까지만 해도 마탑과 연락을 했는데···10년째 이 배를 몰고 있지만 처음 있는 일입니다.”

“제기랄, 몇개 더 날아오는 거 아녜요?”

로난은 미간을 좁힌 채 마탑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더 이상 공격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향후 행보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회항하거나 긴급 착륙을 하는 것으로 의견이 기울어져 가던 차였다. 불현듯 로난의 머릿속에 웬 남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들리시오? 현 여명 마탑주 대리 아운 필라요.]

“에이 씨, 깜짝이야.”

갑작스러운 전음에 로난의 눈이 커졌다. 화들짝 놀란 선장이 어깨를 움츠렸다. 갑판에 있는 모두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걸로 보아, 다수를 대상으로 보내는 전음인 듯했다.

[조금 전 귀하들의 선박을 향해 총 일곱 발의 파이어 볼 마법이 발사된 것을 확인했소. 해당 공격 행위는 결코 여명 마탑 측의 의사가 아니며, 현재 전력을 다해 용의자를 물색하고 있소.]

“뭐라?”

[자세한 사항은 직접 만나 설명해 주겠소. 안전을 위한 조치를 취해드릴 테니 안심하고 착륙하길 바라오.]

전음이 끊겼다. 그따위 말을 어떻게 믿냐고 로난이 외치는 순간이었다. 슈아악! 드래곤의 브레스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 두꺼운 마나 실드가 비공정 전체를 둘러쌌다.

****

완연히 모습을 드러낸 해가 서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귤색으로 물든 여명 마탑의 자태가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선미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선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이게 맞는 판단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맞다고 봐요. 적어도 불덩이 쏴 재낀 놈 얼굴 정도는 봐야죠.”

로난이 선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는 숙고 끝에 착륙을 선택했다. 그리폰과 기수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있어서 더이상 비행을 지속할 수 없는 탓이었다.

비공정은 마탑주 대리의 권유에 따라 기존의 착지점이 아닌 여명 마탑의 정원에 곧바로 착륙했다. 한바탕 곤욕을 치른 그리폰과 기수들이 나동그라졌다. 정원을 쭉 둘러본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경치 좋네.”

원형의 정원은 심미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공간이었다. 고르게 깔린 잔디밭 위로 다양한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자라나 있었다. 대부분이 마법이나 실험의 재료로 사용되는 식물이었다.

‘음?”

문득 유별나게 황량한 부분을 발견한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풀이 거의 자라지 않은 토양은 바위나 조각상 따위로 어색하게 메워져 있었다. 이유를 알아채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지간히도 큰 폭발이었나 보군.’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몇 달 전에 네뷸라 클라지에가 자폭한 자리가 분명했다. 비공정이 착륙하자 붉은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등에는 모두 여명 마탑을 상징하는 태양 문양이 자수되어 있었다.

“신이시여. 어째서 또 이런···.”

“불길해요.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죠? 얼마전에는 실종자까지 나왔잖아요.”

“이건 저주야. 계속 외부인을 들여도 되는 걸까?”

마법사들은 비공정에 손가락질까지 해 가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해충이라도 대하는 듯한 태도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주? 실종자? 무슨 소리인지.

‘마음에 안 들어.’

로난이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저 중에 누군가 헛짓거리를 한다면 당장 베어 버릴 생각이었다.

배의 출입구는 개방된 지 오래였지만 일이 일이었던지라 승객들은 쉽사리 하선하지 못하고 있었다. 심호흡한 선장이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렸다. 로난이 막 갑판에서 뛰어내리려던 차였다. 화르륵! 별안간 선장과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좁고 높은 불기둥이 솟구쳤다.

“썅, 뭐야?”

“꺄아아악!”

욕지거리를 내뱉은 로난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승객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꽃잎처럼 흩어지는 불꽃 속에서 화려한 로브를 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구렛나루와 이어진 콧수염이 멋스러운, 제법 신사 티가 나는 중년이었다. 그는 당황하고 있는 선장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소. 현 여명 마탑주 대리이자 탑 메이지인 아운 필라라고 하오.”

요란한 등장이었다. 가슴을 쓰러 내린 선장이 그의 악수에 응했다.

“···서부날개 호의 선장 트리올입니다.”

“그런 고초를 겪게 해서 미안하오. 진심으로 사과하겠소.”

“경위를 제대로 설명해주시면 좋겠군요. 저기 두 분이 아니었다면 정말 큰일이 났을 수도 있었습니다.”

선장은 갑판 위에 나란히 서 있는 로난과 에르제베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운 필라가 면목없다는 듯 주억거렸다.

“우리도 전력을 다해 수사에 임하고 있소. 마법이 시전된 장소와 고유한 마나 파장을 확보했으니 아마 조만간 범인이 잡힐 것이오.”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용의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대로 연락드리겠소. 이번 사건으로 입은 물적 피해는 모두 여명 마탑 측에서 보상할 테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오.”

아운 필라가 고개를 숙였다. 탑주 대리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더 따지기도 애매했다. 마지못해 사과를 받아들인 선장이 등을 돌렸다. 로난의 옆에 서 있던 에르제베트가 놀란 듯이 중얼거렸다.

“전음으로 얼핏 듣기는 했는데···정말 아운 필라 님이었군요.”

“이제 좀 살만하냐?”

“네···폐를 끼쳐서 죄송해요.”

에르제베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연신 속을 게워낸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인지, 확연히 나아진 안색이 눈에 띄었다. 침울해 있는 모습을 본 로난이 픽 웃었다.

“나아졌으면 됐어. 유명한 사람이야?”

“네. 열조(熱鳥) 아운 필라. 대륙에 몇 없는 7서클 마법사예요.”

에르제베트의 목소리에는 경계와 선망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열조라는 이명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았다. 기억을 더듬던 로난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질문했다.

“···저거 혹시 불로 새 만들어서 싸우는 사람이냐? 자기가 변하기도 하고.”

“맞아요. 아운 필라 님의 상징 같은 마법이죠. 알고 계셨네요?”

“젠장, 그게 저 아저씨였군.”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았다. 그가 시전한 마법과 변신한 모습밖에 본 적이 없어서 알아보지 못했다.

아운 필라. 화염으로 만들어진 맹금을 수십 마리씩 소환하고, 스스로도 거대한 불새로 변하여 전장을 누비던, 최후의 전투에서 마법사들의 일각을 이끌던 자였다.

‘장렬한 전사였지.’

문득 그의 최후를 떠올린 로난이 혀를 찼다. 아하유테의 소환수들을 잿더미로 만들며 활약하던 아운 필라는 결국 빛의 창에 격추당하고 말았다. 나름대로 버티던 마법사들의 진형이 무너진 것도 그가 전사한 직후였다.

‘그래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 다행이군.’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던 사람을 보니 반가우면서도 기분이 착잡했다. 배신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었지만 어쨌든 죽을 운명이었으니까.

아운 필라의 말에 그나마 마음을 놓은 승객들이 하나둘씩 배에서 내리고 있었다. 로난 또한 마탑에 찾아온 용무를 다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거기 두 분.”

“엉?”

로난이 시선을 내렸다. 아운 필라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다른 사람을 보고 있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봤지만 갑판에 남아 있는 것은 그와 에르제베트 뿐이었다.

“무슨 일이예요?”

“아래에서 두 분이 활약하는 모습을 봤소. 보고도 믿을 수 없더군.”

화르륵! 갑자기 치솟은 불기둥이 아운 필라의 몸을 휘감았다. 두 사람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로난의 바로 뒤편에서 똑같은 불기둥이 솟구치며 사라졌던 아운 필라가 나타났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에르제베트가 비명을 질렀다.

“꺄악!”

“이런 젠장. 뭐 하자는 거야?”

로난의 손에는 이미 뽑혀 나온 라만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7서클 마법사의 몸에서 새나오는 마나는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농도가 진했다. 두 사람을 내려보던 아운 필라가 입을 열었다.

“그대들과 대화하고 싶소. 잠시 괜찮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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