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91화 (91/333)

< 91. 여명을 향해 쏴라(4) >

#91

산책을 하다 용을 마주쳐도 저렇게 놀랄 것 같지는 않았다. 반지와 로난을 번갈아서 쳐다보던 사서가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누구보다 잘 알아요. 따라와요.”

“으음···?!”

로난의 눈이 커졌다. 손목을 움켜쥐는 힘이 심상치가 않았다. 고사리같은 손에서 나오는 악력이라 믿을 수 없는 것이 거의 마르야를 연상케 했다.

사서는 로난을 끌고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어느 붙박이 책장 앞에 멈춰선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서는 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책장에서 [비밀과 신념]이라는 제목의 책을 뽑아들었다. 쿠구궁! 책장이 옆으로 밀리며 숨겨져 있던 공간이 나타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연출에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젠장, 요즘은 책 뒤에 뭘 숨기는 게 유행인가.”

“어서 들어가세요. 이러다 누가 보겠어요.”

손목을 놓은 사서가 양손으로 로난의 등을 떠밀었다. 인간이 아니라 무슨 들소 같은 게 미는 것 같았다. 책장이 원위치로 돌아가며 어둠이 도래했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암흑 속에서 울려 퍼졌다.

“잠시만요.”

이윽고 주위가 밝아졌다. 사서의 손바닥 위로 주먹만한 빛무리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가 후 하고 바람을 불자 빛무리는 민들레의 홀씨처럼 흩어지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비밀 공간은 창고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재차 문단속을 확인한 그녀가 안달이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난에게 다가왔다.

“제가 잘못 본 게 아니겠죠. 한 번만 더 보여주세요.”

“몇 가지만 묻고요. 이 반지가 누구 건지 말해봐요.”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 누구라도 방심할 수는 없었다. 심호흡한 사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란테. 여명 마탑의 탑 메이지 사란테 레마티온이에요.”

“사서? 탑 메이지? 그 사람이 여명 마탑 출신이었어요?”

“네. 불 마법을 다루지 못하던 최초의 탑 메이지였죠.”

“허, 그건 몰랐네···그렇다면 사란테가 믿는 여신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겠죠?”

“여신? 어···이제는 믿는 신이 바뀌었나요? 저랑 있을 때까지는 무슨 돌멩이를 숭배했는데.”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더 이상의 문초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사서에게 반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천천히 봐요.”

“고마워요.”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네. 로난이에요.”

“이름···아이레라 불러주세요.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까.”

자신을 아이레라 소개한 사서가 반지를 받아들었다.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반지를 살피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말 사란테의 반지군요. 언제나 왼손 약지에 이걸 끼고 다녔죠.”

“그러고 보니 둘이 무슨 사이에요? 꼭 친구처럼 말하시네.”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부터 궁금한 것 중 하나였다. 아이레는 사란테를 친구라도 되는 듯이 부르고 있었지만, 그녀에게서는 장수 종족의 특징이 엿보이지 않았다.

키가 작기는 했지만 드워프 수준은 아니었고, 머리카락 사이로 삐져나온 귀가 평범한 걸로 봐서 엘프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뱀파이어인가? 로난이 이런저런 추리를 하던 차였다. 아이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이곳에 오신게 처음이라 모르셨군요. 저는 정령이에요.”

“예? 정령?”

“네. 사란테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요.”

로난이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말하려던 차였다. 별안간 아이레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하더니 공중에 둥실 떠올랐다. 로난과 눈높이를 맞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공간이 협소해서 본모습은 못 보여 드릴 것 같아요.”

“···충분해요.”

로난이 헛웃음 쳤다. 힘이 더럽게 세던 이유가 있던 것이다. 반투명해진 아이레의 몸에서는 아운 필라와 버금가는 농도의 마나가 번져 나오고 있었다. 그가 재차 질문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척 보기에도 상당한 고위 정령이었다. 훨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왜 이런 곳에서 머무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몸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아이레가 입을 열었다.

“사란테가 여기에 저를 봉인했거든요. 사서 일을 똑바로 하면 언젠가 풀어주겠다는 조건으로.”

“봉인? 계약이 아니라요?”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면목이 없다는 듯 시선을 피한 그녀가 뺨을 긁적였다.

“아하하···네. 그 뭐라고 해야 하나···제가 예전에는 좀···철이 없었거든요.”

아이레는 수백 년 전 마구잡이로 날뛰다가 사란테한테 붙잡혀서 여명 마탑에 봉인 당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이고 뭐고 다 부숴버리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책 읽는 것도 재밌고 일도 적성에 맞아서 지금은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도대체 뭐 하던 늙은이야?’

로난은 다시금 자기가 사란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만한 정령을 봉인한 걸로 모자라 사서 노릇까지 시키다니. 문득 아이레가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그래서 사란테는 잘 지내나요? 사제가 되겠다며 여명 마탑을 떠났는데, 아직도 그 돌덩이를 신이랍시고 모시고 있나요?”

“아.”

한순간 로난의 말문이 막혔다. 아무래도 그녀는 사란테에게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로난이 입을 열었다.

“···그럼요. 바이디안 산맥에서 살고 있어요. 그 못생긴 돌멩이는 신전 한복판에 박혀 있고요.”

“아하하, 정말이군요. 혹시 사란테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아이레가 눈을 반짝였다. 전사한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딸아이를 연상케 하는 모습에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차마 진실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레의 태도로 미루어 보아 계약 관계는 아닐지언정 사란테와 꽤나 친했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최소 수백 년을 사귄 친구가 반으로 쪼개지더니 돌멩이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맨정신으로 지껄이겠는가. 로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요. 지금은 일이 급해서.”

“아아, 그렇지. 죄송해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자기 물건을 들고 오는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 사란테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라고 했다. 로난은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저주에 걸렸다는 것. 보통 저주와는 달라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주가 불가능하다는 것. 그의 사정을 들은 아이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주에 걸리신 거군요.”

“예. 그쪽한테 자기 반지를 보여주면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하더라고요. 뭐 아는 것 좀 있어요?”

“으음···저주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주를 다루는 책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어요.”

아이레는 전문적으로 저주를 다루는 서적이 289권. 곁가지 식으로만 짚고 넘어가는 건 천 권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무시무시한 머릿수를 들은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많기도 하네.”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고위 마법사들에게만 허락되는 서적도 가져다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금서 구역을 제외한 모든 곳에 출입하셔도 좋아요.”

다시 금서의 존재가 언급되었다. 아운 필라가 주의하라고 한 것도 그렇고, 따로 공간을 빼서 관리하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위험한 책들인 것 같았다. 아이레가 말을 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마탑을 떠나실 즈음에는 해답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제발 그러면 좋겠네요. 잘 부탁해요.”

그 말과 함께 로난의 생고생이 시작되었다. 그는 비밀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가장 볕이 잘 드는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머지않아 날아온 아이레가 그의 눈앞에 책을 수북하게 쌓아 놓았다.

“먼저 가장 기본적인 서적들이에요. [증오의 시작], [사악한 저주 목록 100선]···.”

“쉽지 않네요.”

“다 읽으시면 말해 주세요. 새로 가져올게요.”

다른 곳이 아닌 여명 마탑에서만 구할 수 있는 서적만 부탁했음에도 이 모양이었다. 자신의 눈높이만큼 쌓여 있는 책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때려칠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할 일도 많은데 왔을 때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아가야 했다. 마른 세수를 한 로난이 맨 위에 놓여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어디 볼까.”

****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비공정의 격추가 미수로 그친 이후 별다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 범인은 아직도 잡지 못한 채였고, 에르제베트를 비롯한 필레온의 학생들은 아직 마탑에 머무는 중이었다.

로난은 수면이나 식사, 화장실을 가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자료를 조사하는 데 투자했다. 허공을 날아온 아이레가 로난의 앞에 다시금 책무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만돌레가 저술한 학술서는 다 읽으셨나요?”

“3권이 끝이면요.”

“그럼 두 권 더 남았네요.”

아이레가 다시 날아갔다. 눈앞에 다시 세워진 종이의 벽을 본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책을 덮어도 눈앞에 글씨가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최선을 다해 돕겠다는 아이레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말 그대로 끊임없이 해주에 도움이 될 만한 서적을 가지고 왔다.

덕분에 로난은 수백 가지의 저주와 해주법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아셀이 자고 일어났더니 머리에 염소 뿔이 자랐다며 울면서 달려와도 재료만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저주를 풀어줄 수 있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의 몸에 깃들어 있는 저주와 비교할 수 있는 전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득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로난이 금속 곽을 매만졌다. 안쪽에는 아운 필라가 만든 화염 마법 스크롤들이 들어 있었다.

‘···뜯어 버릴까?’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진척이 없으니 저절로 성격이 예민해지고 있었다.

또한 문제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시금 책을 펼치려는 차에 저기 뒤쪽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것이 들려왔다. 십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마법사 세 명이 로난에게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저기 봐, 오늘도 책을 읽고 있어.”

“조심해. 저주 옮을라.”

“또 폭발하는 거 아냐?”

로난이 한숨을 내쉬었다. 붙잡아서 팰 시간조차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고개를 돌린 그가 충혈된 눈동자를 부릅뜨며 으르렁거렸다.

“이 씹새끼들아. 할 말 있으면 내 귓구녕에 대고 말해.”

“히, 히이익···!”

겁에 질린 마법사들이 도망갔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때마침 나머지 두 권을 챙긴 아이레가 날아왔다. 미간을 집게손가락으로 붙잡은 채 신음하는 로난을 본 그녀가 걱정스레 질문했다.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신가요?”

“젠장, 뇌가 아프네요. 아이레. 나 궁금한 게 있어요.”

“네?”

“마탑에 무슨 일 있었어요? 비공정 떨어뜨릴 뻔 한거 말고도요.”

로난은 여명 마탑에 도착한 날부터 느낀 기묘한 분위기에 관해 이야기했다. 시체 먹는 독수리처럼 주위를 배회하며 수군거리는 마법사들을 상대하는 것도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의 설명을 들은 아이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맞아요.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죠. 아무래도 크고 작은 사건이 계속해서 벌어지니까 그런 거 같아요.”

“크고 작은 사건?”

“네. 실패할 리가 없는 실험이 실패하거나···탑에서 기르던 동물들이 죽는다거나···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실종되는 것 같은 일이요.”

별안간 아이레가 허공에 팔을 뻗었다. 저 아래층에서 누리끼리한 종이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아와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로난은 그녀가 건넨 종이다발을 받아들었다. 각각의 낱장에는 정밀한 초상화와 함께 해당 인물의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아이레가 말했다.

“실종자 명단이에요. 벌써 여섯 명이네요.”

아이레는 몇 달 전부터 꾸준히 실종자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마탑 내부의 벽을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 그녀조차 실종자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탑 바깥으로 나간 거 아녜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아무도 목격한 사람이 없어서요.”

“거 괴상한 일도 다 있네요.”

“그쵸. 탑주님이 돌아오시지 않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아요.”

“탑주가 안 돌아온다고요?”

작년 말에 수행차 여행을 떠난 탑주는 원래 올봄에는 돌아오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헌데 한여름이 다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아 아직도 아운 필라가 대리직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이레가 걱정스레 말했다.

“워낙 강하신 분이라 별 일은 없으실 테고, 아운 필라 님도 대리 역을 잘 해주고 계시지만···아무래도 머리가 없으니 몸통이 불안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만약 끝까지 탑주가 안 돌아오면 어떻게 되죠?”

“네? 으음, 아마 일 년간 부단 부재가 이어지면 대리를 맡은 마법사가 탑주가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호오···.”

로난이 흥미로운 듯 턱을 매만졌다. 만약 올해 겨울까지 기존의 탑주가 복귀하지 않으면 아운 필라가 탑주가 된다는 소리였다.

‘설마.’

문득 몇 가지의 불온한 경우의 수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기에 로난은 다른 질문을 하기로 했다.

“금서 구역에는 뭐가 있죠?”

“말 그대로 저주받은 책들이 봉인되어 있죠. 아주 위험한 곳이에요.”

“조만간 거기도 뒤져 봐야 할 거 같아요. 도통 진척이 없어서.”

“절대 안 돼요.”

아이레가 말했다. 언제나 생글거리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그녀가 정색한 채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다 돼도 금서 구역만큼은 들여보내줄 수는 없어요. 내가 봉인당한 것 외에도 사서 일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저 금서들을 관리할 수 있는게 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봤자 책이잖아요.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해요?”

“네. 잡아먹어요.”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로난의 얼굴이 굳었다. 그가 뭐라 질문하기도 전에 아이레가 말을 이었다.

“강력한 금서 중에는 자아가 깃들어 있는 것들도 많아요. 읽는 이를 현혹하거나 조종해서 결국 파멸을 불러일으키죠. 게다가···여명 마탑에는 그 책이 봉인되어 있어요. 알잖아요.”

“그 책? 아하, 그 바쥬라인지 뭔지 하는 거요.”

아이레가 주억거렸다. 로난은 어제쯤에 자료를 조사하다 알게 된 책이었다.

악마가 집필했다는 세 권의 책 중 하나인 파괴의 바쥬라. 제왕을 현혹하여 나라를 멸망시킨 적도 있다는 희대의 금서였다. 그런 설명을 읽고 있자면 아이레가 이토록 강경하게 나오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만.’

그는 상황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만약 금서에서 저주를 풀 실마리가 있다면 바쥬라고 지랄이고 완독할 의향이 있었다. 당장 구 년이면 세상이 박살 나게 생겼는데 그까짓 금기가 대수란 말인가.

하지만 몰래 숨어들어서 읽고 싶어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레가 협조해주지 않는 이상 금서 구역으로 진입할 방법은 없었다. 대화를 마친 아이레가 등을 돌렸다.

‘일단···나머지 책들이나 다 읽어야겠군.’

금서를 배제하더라도 읽을 책은 산더미였다. 게다가 아직 필레온으로 복귀하려면 며칠이 더 남아 있었다.

로난은 금서를 찾아보기 전에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금서가 아닌 책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었으니. 다시 자리에 앉은 그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

.

.

“······아.”

로난이 눈을 떴다. 주변이 온통 캄캄했다. 도서관 군데군데 나 있는 창문을 통해 달빛이 비스듬히 내려오고 있었다.

“···졸았군.”

기지개를 쭉 켠 로난이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책상 위에서의 기상도 이제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아이레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늦은 밤이 된 모양이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눈두덩을 눌러 졸음기를 떨쳐낸 로난이 다시금 책을 집어들었다.

-뚜벅···뚜벅···.

“음?”

저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로난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웬 그림자 하나가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밀린 과제라도 하러 온 건가.’

로난이 눈썹을 으쓱였다. 연구에 찌들어 사는 마법사가 밤늦게 도서관을 돌아다니는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막 독서용 발광석에 마나를 불어넣으려는 순간이었다. 그림자가 달빛 아래를 걸어 지나감과 동시에 웬 여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

로난의 눈이 커졌다. 분명 실종자 명단에서 본 사람이었다. 5서클 마법사 파르테였나. 그런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혹시나 싶어 전단을 다시 살폈지만 역시나 그녀가 맞았다.

‘틀림없어.’

달빛의 장막에서 빠져나온 그녀는 다시 그림자가 되어 도서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로난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디로 가는 거지···?’

왜 사라졌다는 사람이 여길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로난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최대한 발에 힘을 뺀 채 걸음을 옮겼다. 사박사박. 먼지를 즈려밟는 듯 나지막한 발소리가 그녀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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