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94화 (94/333)

< 94. 여명을 향해 쏴라(7) >

#94

아운 필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벌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부모나 배우자의 임종을 알리는 듯한 참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탑주께서는 작년 겨울에 바쥬라에게 잡아먹혔소.”

“예?”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마탑주가 책에게 잡아먹히다니,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아이레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이 환영도···!”

“그렇소. 라르단 님의 특기 중 하나지."

여명 마탑주 라르단 몬실레이의 이명은 화영(火影)이었다. 강대한 화염과 오감을 현혹하는 환영 마법을 함께 사용하여 붙여진 호칭이었다.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적수들이 그가 만들어낸 불길과 허상 속을 헤메다 잿더미가 되었다고 아운 필라는 설명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거늘.”

하지만 라르단을 며칠간 벌어진 일들의 원흉이라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는 분명 뛰어난 환영 마법 구사자였다.

허나 마탑 전체를 인식 저해 마법으로 뒤덮거나 7서클 마법사인 아운 필라나 고위 정령 아이레의 눈을 속이는 것은 전문적인 환영술사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운 필라가 입술을 비틀었다.

“아마 바쥬라에게 삼켜지며 능력이 증폭된 거겠지. 도대체 누가 봉인을 풀었는지···.”

“빌어먹을, 자세하게 말해 봐요. 무슨 일이 있던 거예요?”

로난이 그를 재촉했다. 아운 필라는 한층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탑주께서는 수행을 떠나기로 한 당일에 금서 구역에 잠입했소. 미리 수상한 낌새를 느끼던 나만이 그를 뒤따랐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어 마법을 해제하시더군.”

“마, 말도 안 돼요···그렇다면 제가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날은 만월이 뜨는 날이었소.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고.”

“그런···!”

아이레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본모습으로 변하여 마탑의 정상에서 잠시 달빛을 쪼이고는 했다. 아이레가 도서관에서 부재하는 몇 안 되는 시간대였다.

“탑주께서는 그대의 비밀을 알고 계셨소. 아마 철저한 준비를 해 오신 거겠지.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그 뒤의 일은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탑주는 곧바로 금서 구역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고, 수백 년 전부터 잠들어 있던 바쥬라를 깨웠다. 뒤늦게 아운 필라가 도착했지만 그때는 이미 상황이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된 뒤였다.

“너무 늦었소. 탑주께서는 바쥬라의 통제에 실패하고 잡아먹히는 중이었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분이 완전히 괴물이 되어 버리기 전에 봉인하는 것 뿐이었소.”

“젠장, 마탑주라는 작자가 왜 그딴 짓을 저지른 거죠?”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책에게 잡아먹힌 여인의 몰골을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아운 필라가 한숨을 내쉬듯이 말했다.

“마법사다운 이유지. 준비가 되었다 생각하셨기 때문이오.”

“준비?”

“그렇소. 바쥬라를 이해할 준비. 그 저주받은 책에 대한 전설은 그대 또한 익히 들어봤을 것이오.”

로난이 주억거렸다.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표류하던 활자의 바닷속에서 바쥬라라는 이름은 제법 흔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파괴의 바쥬라. 읽는 이를 현혹하고 집어삼키며 파멸을 불러일으키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자에게는 무한에 가까운 힘을 부여한다는 희대의 금서. 책을 집필한 저자는 다름아닌 악마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껏 셀 수 없이 많은 마법사가 바쥬라를 비롯한 금서들에게 도전하다가 목숨을 잃었소. 마탑의 수장들은 대부분 그 점을 탐탁잖아 했지. 실제로 사악한 금서들을 모조리 불살라야 한다는 주장은 마탑주 회의가 열릴 때마다 꾸준히 나오는 의제요.”

“탑주는 반대파였군요.”

“그렇소. 그 사악한 힘마저도 언젠가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 주장하는 분이었지. 더없이 위험하지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버린 불에 빗대면서 말이오.”

탑주 라르단은 마냥 악의의 부산물로 여겨지는 금서들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는 금서의 우두머리 격인 바쥬라의 힘을 손에 넣음으로써 그것을 직접 증명하려 했고, 처참하게 실패했다.

“알고 있소. 무책임하고 무모한 판단이었지. 하지만 나는 결코 그를 비난하며 진실을 밝힐 수 없었소. 제 한 몸을 바쳐 지식의 여명을 밝히려 했던 선구자를 어찌 모욕하겠소.”

“탑 메이지···.”

“그렇게 된 것이오. 사사로운 정에 연연한 나를 용서하지 마시오.”

아운 필라가 고개를 떨구었다. 뭐라 위로를 건네려던 아이레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전말을 알게 된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탑주의 뜻을 지키고 싶었던 거군.’

의도는 좋았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가능성을 주장하던 탑주는 끝내 바쥬라를 감당하지 못하고 잡아먹혔다. 세간에 알려진다면 모든 금서가 폐기 조치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대사건이었다. 혀를 찬 로난이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요. 이미 벌어진 일인데. 봉인은 어쩌다가 풀린 거예요?”

“그건···정말로 짐작가는 바가 없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다면 모를까, 결코 자연적으로 소멸할 주문이 아니었소.”

아운 필라는 자신이 알고 있는 봉인 마법을 모조리 시전했다고 설명했다. 포식 도중이라 방심하고 있던 바쥬라는 그대로 탑주와 함께 재봉인을 당했다.

“사실상 기존에 봉인된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상태로 만들어 놓았소. 되려 강해졌으면 더 강해졌지, 결코 봉인이 약화되지는 않았으리라 자부하오.”

“그럼 어느 할 짓 없는 놈이 금서고까지 기어들어와서 봉인을 풀었다는 소리네요.”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유력한 추측이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아운 필라가 말꼬리를 끄는 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좁고 높은 복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음을 흘리던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로난 그대는 즉시 돌아가서 안전 구역에 대기하시오. 나와 아이레 양은 방어 체계를 간략하게나마 수복한 뒤 돌아가겠소. 그리고···”

-툭.

아운 필라가 말을 이으려던 차였다. 그들의 발치에 무언가 떨어졌다.

“음?”

세 명이 동시에 시선을 내렸다. 작고 복잡하게 생긴 무언가가 발아래에서 반짝거리고 있었다. 물건을 집어든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안경?”

볼품없이 망가진 안경이었다. 왼쪽만 남은 유리알에는 굵고 가느다란 균열이 잔가지처럼 새겨져 있었다. 은장식이 되어 있는 테는 엉망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아이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다. 이윽고 눈을 휘둥그렇게 뜬 그녀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라, 라피스타 님이 쓰시던 안경이에요!”

“그게 누군데요?”

“저를 도와서 도서관을 관리하시던 분이에요. 여섯 명의 실종자 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셨죠. 이게 왜 여기에···.”

“···실종자 물건이라고요?”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로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안경을 살폈다. 반짝이는 무언가 안경테에 묻어 있었다.

“이건···.”

그것이 마나의 잔흔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도. 로난의 입이 나지막이 벌어졌다.

“···네뷸라 클라지에.”

바스락. 문득 위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로난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 높은 천장에 넝마를 걸친 사내가 들러붙은 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찢어진 옷감 사이로 드러난 맨살에서는 반짝이는 마나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아으악···아아아···.”

까드득. 불현듯 목을 기괴한 각도로 비튼 사내가 일행을 내려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씨발.”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두 개의 눈동자는 새카맣게 물들어 있었다. 뒤따라 시선을 올린 아운 필라와 아이레가 헛숨을 들이켰다.

“저, 저건...?”

저번에 금서에게 잡아먹힌 여인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로난은 지체 없이 칼자루를 잡아당겼다. 콰앙! 라만차가 허공에 호를 그림과 동시에 발사된 검기가 사내의 눈앞에 직격했다.

“크에에엑!”

파편에 눈을 맞은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그는 전신의 관절을 꺾어 가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로난이 그것을 저지했다. 뻐억! 곧장 사내를 향해 도약한 로난이 칼자루 끝으로 그의 뒤통수를 내리찍었다. 뒤쪽에서 아이레의 외침이 들려왔다.

“조심해요!”

“예?”

불현듯 주위가 밝아졌다. 살기를 느낀 로난이 고개를 돌렸다. 폭이 1m쯤 되는 마법진이 그의 우측 벽면에서 점멸하고 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은 당장이라도 화염을 뿜어낼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로난이 막 칼을 휘두르려는 찰나였다. 불꽃으로 만들어진 참새 한 마리가 그의 뺨을 스치며 날아오더니 마법진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콩! 불꽃의 형태로 분해된 마법진이 새에게 흡수되었다. 다시 방향을 돌려 날아간 참새가 아운 필라의 어깨 위에 앉았다. 로난이 헛웃음쳤다.

“제법인데요.”

“두 명 더 있소.”

그는 천장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다시금 소름 끼치는 신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으···? 아아아···.”

“염병, 벌레도 아니고.”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멀지 않은 곳의 천장에 두 남녀가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린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브를 입은 여인의 손에서 마나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방금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릴 뻔한 마법을 시전한 당사자가 분명했다.

“아···아아아···.”

그 와중에 사내 쪽은 파이어 애로우 마법을 영창하고 있었다. 화염으로 만들어진 화살 여섯 발이 그의 주위에 형성되며 쏘아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욕지거리를 내뱉은 로난이 다시금 검기를 발현하려는 차였다. 콰드득! 불현듯 천장에서 자라난 나무줄기가 두 사람의 몸통을 휘감았다.

“아으윽?!”

“크엑!”

로난의 눈이 커졌다. 반투명한 나무줄기는 달빛을 받은 듯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둥실 떠오른 아이레가 로난의 앞을 가로막으며 섰다.

“제가 할게요.”

서걱! 그녀가 가볍게 손짓하자 나무줄기가 끊어졌다. 꽁꽁 묶인 두 사람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로난은 칼을 뽑아든 채 그들에게 달려갔다. 아이레가 외쳤다.

“주, 죽이면 안 돼요!”

“그런 거 아니니까 잠깐 비켜봐요.”

로난은 나무에 묶인 남녀를 상세히 관찰했다. 다행히도 반짝이는 마나는 포착되지 않았다. 네뷸라 클라지에로 추정되는 것은 처음에 떨어뜨린 라피스타라는 놈 뿐이었다.

‘설마.’

문득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풀린 바쥬라의 봉인. 네뷸라 클라지에 소속이었던 첫 번째 실종자. 생각을 정리한 로난이 축 늘어져 있는 라피스타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아이레. 저 새끼가 첫 번째 실종자라고 했죠.”

“네? 아아, 네. 맞아요.”

“실종된 게 정확히 언제죠? 혹시 기억나요?”

“그게···늦봄 무렵이었어요. 라피스타 님의 실종을 기점으로 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죠.”

“그 씹새···아니, 네뷸라 클라지에 때문에 정원이 날아간 건요?”

“그것도 서너달쯤 전···비슷한 시기였어요.”

“빌어먹을.”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모든 정황이 들어맞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네뷸라 클라지에는 결코 한 번에 한 가지의 작전만 실행하지 않았다.

‘자폭은 눈속임이었어.’

바쥬라의 봉인을 해제하는 것이 본 목적일 터였다. 라피스타가 도서관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그를 반증했다. 자폭으로 마탑이 소란스러운 틈을 타 봉인을 해제해고, 금서 중 하나에게 잡아먹힌 것이다.

“젠장, 아운 필라···”

로난이 자신이 알아낸 바를 말하려는 차였다. 형용할 수 없이 끔찍한 목소리가 미궁 속에 울려 퍼졌다.

【예리하구나.】

도서관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음성이었다. 이번에는 모두에게 들렸는지 세 사람이 동시에 얼어붙었다. 별안간 복도가 거칠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죠?”

“으음···!”

거인의 심장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아운 필라가 뭐라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솟아난 석벽이 로난과 두 사람을 갈라 놓았다.

“씨발, 뭐야?”

로난이 황급히 검을 휘둘렀다. 카드득! 예리한 칼날이 석벽을 깊숙이 파고들었으나 원체 두꺼워서 별 소용이 없었다. 벽에 난 상흔이 복구되는 것을 본 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기랄, 아운 필라! 아이레!”

있는 힘껏 외쳤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재차 솟아난 벽이 출입구로 통하는 뒷길마저 가로막았다. 로난은 완전히 독방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다시금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라, 길을 열어주마.】

쿠쿠궁! 별안간 눈앞의 벽이 뒤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이 늘어나던 복도는 거의 마탑을 가로로 눕혀 놓은 길이까지 뻗고 나서야 확장을 멈췄다. 로난이 으르렁거렸다.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야?”

【그 두 벌레를 구하고 싶겠지. 그렇지 않느냐?】

“뭐?”

두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천장에서 낮은 불길이 일어나더니 복도 끝을 향해 빠르게 뻗어가기 시작했다. 밝아진 복도를 본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지는 연출이었다. 어차피 전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로난은 칼자루를 움켜쥔 채 발걸음을 옮겼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복도를 거니는 내내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저 놈이야···! 랑그지움을 불살라 버린 놈···!]

[어째서 바쥬라 님은 저런 애송이에게 관심을 갖는 거지?]

[내게 와라 아이야!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줄 테니!]

로난은 그것이 금서들의 대화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목소리의 종류로 미루어 본 결과 족히 백 권은 넘을 듯했다.

“닥쳐라. 종이들.”

[크크크, 건방을 떠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복도를 따라 걸었다. 머지않아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암청색 석재로 이루어진 황량한 방에는 정육면체 형상의 제단 하나만 덩그러니 솟아 있었다.

제단에 시선이 닿은 로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운 필라와 아이레가 쇠사슬에 묶인 채 신음하고 있었다.

“로, 로난···오지 마시오···!”

“수, 숨을 쉴 수가 없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것이 상당한 중상을 입은 듯 했다. 로난이 즉시 땅을 박차며 달려나가는 순간이었다. 기하학적인 마법진이 그의 발아래에 펼쳐졌다.

“니미···!”

조금 전에 복도에서 본 것보다 훨씬 큰 마법이었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한 로난이 칼날로 바닥을 내리쳤다. 콰아아아! 두 갈래로 찢어진 화염의 소용돌이가 방 전체를 뒤덮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연달아 곳곳에서 마법진이 형체를 드러내며 각인되어 있던 마법을 토해냈다. 아름드리 나무보다 두꺼운 화염의 창 열댓 개가 로난을 향해 쏘아졌다.

‘할 수 있다.’

예전 같았으면 절망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스아아- 기묘한 숨소리와 함께 라만차의 검신을 타고 붉은 빛이 올라왔다.

로난은 침착하게 궤도를 읽은 뒤 검을 휘둘렀다. 촤아악! 참격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구체에 닿은 화염의 창이 형체를 잃고 소멸했다. 모든 공격을 막아낸 로난이 칼을 한 바퀴 돌려 잡으며 말했다.

“초대한 주제에 예의가 없네. 안 그러냐?”

공격을 모두 쳐낸 로난이 자세를 잡고 섰다. 원래는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 다리를 꼰 채 제단에 걸터앉아 있었다.

한 손에 두꺼운 책을 든 노인이었는데, 아운 필라가 입은 것과 같은 붉고 화려한 로브를 입고 있었다. 그가 로난을 보며 히죽 웃었다.

【반갑다.】

“바쥬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