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두 번째 무기 >
#109
“그렇군요. 당신이 그동안 제게 첩보를 보낸 분이군요···.”
“네, 넵. 발루스라고 합니다.”
발루스가 머리를 조아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만히 그를 뜯어보던 바렌이 입을 열었다.
“예상보다 훨씬 어려서 놀랐습니다. 첩보의 내용이 상세하고 치밀해서 보다 노련미가 있는 분을 예상했는데 말이죠.”
“하하···하하하···.”
발루스가 어색하게 웃었다. 백수제의 마지막 날 오후, 13번 탑의 집무실로 찾아간 그는 카리볼로의 숙적인 바렌 파나시르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살려준다더니···! 이게 어떻게 살려주는 거야···!’
발루스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로난이었다. 잘게 썰려서 개밥이 되기 싫다면 가라고 협박했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니가 살 길은 이것뿐이라는 로난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틀림없이 죽을 거야.’
파리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새나오고 있었다. 밀렵질에 발을 담근 것이 이토록 후회되는 순간은 없었다.
그는 바렌이 과거 카리볼로를 상대로 어떤 짓을 벌였는지 알고 있었다. 한때 아론데일이 관리하던 테트라 지부를 궤멸시킨 것도 바렌이었다.
악마가 보낸 사자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나이 지긋한 조직원들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발루스가 자신이 무슨 요리로 변할지에 대해 상상하던 차였다.
“우선···이대로는 안 되겠군요.”
별안간 바렌이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머리 따위는 검지와 엄지만으로 뽑아 버릴 손아귀가 눈에 들어왔다. 발루스가 비명을 터트리며 소파 위로 올라갔다.
“흐억! 아, 안돼!”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러시죠?”
“저, 저, 저를 죽이려고 한 거 아니었···나요?”
“네?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잠시만 앉아 계시겠어요?”
발루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무언가를 달그락거리던 바렌이 큼직한 은쟁반 하나를 탁자에 올려 놓았다.
귀족의 다과회에나 볼 법한 다기들이 쟁반에 놓여 있었다. 홍차로 채워진 찻잔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고, 갓 구워낸 쿠키에서는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바렌이 말했다.
“드시지요. 식으면 맛이 없으니. 갑작스러운 손님이라 준비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바삭. 발루스가 쿠키 하나를 씹었다. 독이 든 게 아닐까 의심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윽고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전문 제빵사가 만들었다 해도 믿을 맛이었다. 바렌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입에 맞으신 것 같아 다행이군요.”
“정말, 정말 맛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음식을···.”
“천천히 드세요.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라코타 학생이 건강하게 돌아온 것은 당신의 역할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그, 그걸 어떻게?”
“로난 학생이 말해줬습니다.”
바렌이 말을 이었다. 지난밤 로난은 그에게 발루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낱낱이 말해 주었다. 활약상, 가능성, 사실은 무고한 놈이라는 것까지. 로난과의 대화를 떠올린 바렌이 픽 웃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참 좋은 사람이란 말이죠.’
로난은 발루스가 처우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떴다. 의미하는 바가 자명한 행동이었다. 갈기를 한 번 쓸어넘긴 바렌이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제 조수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일이 많아져서 손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필레온에 기거하게 되면 조직의 눈에 띌 일도 없을 테고요. 제법 괜찮지 않습니까?”
툭. 발루스의 손에서 쿠키가 떨어졌다.
****
다행히도 백수제는 평화 속에 진행되었다. 분노한 밀렵꾼들이 복수를 감행한다든지, 다시 도플갱어가 탈출한다든지 하는 불미스러운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로난과 아데샨, 특급 모험 동아리 부원들은 유유자적하게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축제라는 것도 나름 괜찮군.’
로난이 숨을 내쉬자 새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하도 열심히 돌아다녀서 몸이 뻐근할 지경이었다. 백수제가 끝난 날 밤, 구름 없는 밤하늘에는 반달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등신은 지금쯤 채용됐으려나.’
문득 발루스를 떠올린 로난이 픽 웃었다. 로난은 바렌에게 그를 소개해줌으로써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했다.
단순히 이용 가치를 떠나 글러 먹은 동기놈이 멀쩡한 삶을 영위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물론 능력 또한 출중한 놈이니 앞으로의 여정에서도 나름 도움이 될 터였다.
‘이번에는 잘 해 봐라. 발루스.’
담배를 다 태운 로난은 다시 동아리 건물로 들어갔다. 아직도 정산을 하고 있는 마르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테이블 위에 도열한 금은화를 본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아까보다 수가 배는 불어나 있었다.
“그러니까···이걸 다 축제 기간 동안에만 번 거라고? 몰래 술이라도 팔았냐?”
“술은 무슨. 점포가 아홉 갠데 이 정도는 벌어 줘야지.”
“괴, 굉장하다아···.”
마르야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동전을 쌓았다. 우유를 마시던 아셀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감탄했다.
그녀는 이번 장사로 투자한 금액 대비 열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마르야는 그 돈을 모두 학생들에게 재투자함으로써 카라벨 상단의 입지를 높일 것이라 말했다.
“하여튼 대단하셔.”
“흐흥, 원래 알고 있었잖아? 이 정도는 해 줘야 상단을 이끄는 거지.”
“그렇긴 하지. 그래서 너네 둘 키스 같은 건 했냐?”
“푸엣!”
아셀이 마시고 있던 우유를 내뿜었다. 동시에 마르야가 들고 있던 동전을 내던졌다. 퍼억! 로난의 귀를 스치며 날아간 금화가 뒤편에 있는 나무기둥에 박혔다. 반쯤 파고든 동전을 본 로난이 휘파람을 불었다.
“살벌하네.”
“너 그러다가 죽어 진짜! 덕분에 내가 요 며칠 동안 귀염둥이랑 얼마나 어색했는지 알아?!”
“마, 마르야! 진정해···!”
마르야는 당장에라도 책상을 엎을 기세로 씩씩거렸다. 아셀이 염력으로 그녀를 뜯어말렸다. 로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낄낄거렸다. 어찌됐든 사이가 더 좋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후우···그래. 착한 내가 참아야지.”
“좋은 생각이야.”
“너 진짜···아니다. 다들 현상금은 잘 챙겼지?”
로난과 아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로잡은 밀렵꾼 전원이 수배범이었던지라 로난을 비롯한 부원들은 제법 짭짤한 돈을 만질 수 있었다.
특히나 아론데일을 잡은 보상은 상상 이상으로 후했다. 비단 현상금뿐만이 아니라도 그가 지니고 있던 물건 중에는 고가품이 많았다. 마법이 부여된 반지라던가, 오우거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라든가. 마르야가 로난을 돌아보며 말했다.
“로난, 너는 그 가면만 안 판다고 했었나?”
“엉. 나름대로 쓸만하더라.”
로난은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곰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아론데일이 쓰던 물건이었는데,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방독이나 방진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갖고 있으면 두고두고 도움이 될 능력이었다.
또한 발루스의 설명에 따르면 카리볼로의 최상위 간부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점 또한 마음에 들었다. 다시 가면을 벗은 로난의 입꼬리가 스산하게 올라갔다.
“수집욕도 좀 생기고.”
이번 도플갱어 사태로 결심했다. 그는 카리볼로 따위와 같은 공기를 마실 생각이 없었다. 문득 주말의 일정을 떠올린 로난이 아셀을 돌아보며 말했다.
“참, 아셀. 그 까만 책은 잘 읽고 있냐?”
“에? 일단은···응. 완벽하게 해석한 건 두 페이지가 고작이지만.”
“잘 하고 있네. 잠깐만 줘 봐.”
별안간 로난이 칼을 뽑아들었다. 바쥬라를 건네려던 아셀이 우뚝 멈춰 섰다.
“로, 로난. 갑자기 칼은 왜?”
“그런 게 있어 인마. 진짜 잠깐이면 되니까 이리 내놔 봐.”
로난은 빼앗다시피 바쥬라를 채갔다. 이윽고 벌어진 기행에 아셀의 눈이 커졌다.
“그, 그걸 왜 잘라?”
“거 궁금한 것도 많네. 어차피 읽는데는 지장 없는 부분이잖아.”
“그, 그렇기는 한데···.”
아셀은 주억거리는 와중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쨌든 길었던 백수제는 그렇게 끝이 났다. 여름방학까지는 고작 열흘 남짓이 남아 있었다.
****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산뜻한 새소리가 교정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로난은 아데샨을 데리고 곧바로 새로운 그란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지저의 도시로 통하는 입구는 제도 북서쪽에 위치한 포목점에 있었다.
가게 구석으로 들어간 로난이 벽면의 단추를 조작했다. 쿠구구··· 건물이 진동하며 두 사람이 밟고 있던 자리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꺄앗!”
“이대로 쭉 내려가요. 괜찮으니까 놀라지 마세요.”
“바, 바닥이 움직이는 거야?”
그들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승강기를 통해 지하로 이동했다. 미리 언질을 두고 방문한지라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깡···!
깡···!
어둠 속에서의 하강이 이어졌다. 망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지 머지않아 시야가 확 트였다. 경이롭다고 밖에 설명 못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아아아아···!”
“허, 진짜 많이 바뀌었네.”
아데샨은 입을 가리는 것도 잊은 채 감탄을 흘렸다. 기존보다 대여섯 배는 커진 규모를 본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새로운 그란 카파도키아는 이전에 로난이 시릴라와 에두온을 잡았던 대동공에 세워져 있었다.
순 돌멩이뿐이던 이전과 대비되는 생태계가 눈에 띄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만 자라는 기묘한 식생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발광 이끼로 뒤덮인 벽면과 천장은 은하수가 드리운 밤하늘을 연상케 했다. 어디서 끌어왔는지 모를 용암이 대동공 한복판에 호수를 이루고 있었다.
용암 호수와 멀지 않은 곳에는 지하수로 이루어진 천연 호수가 자리해 있었다. 장인들의 대장간은 두 호수 사이에 늘어선 채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땅달막한 드워프들이 건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되려 사고가 벌어지기 전보다 머릿수가 늘어난 것 같았다.
이윽고 승강기가 멈춰섰다. 끼이익-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달려든 거대한 그림자가 로난을 덮쳤다.
“으하하! 로난!”
“디디칸.”
웨어울프 대장장이인 디디칸이었다. 회갈색 꼬리가 좌우로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로난을 다섯 번 정도 들었다 내려놓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 듯이 악수를 건넸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냐. 그동안 잘 지냈어?”
“엉. 어째 너는 더 북슬북슬해진 것 같다.”
마중을 나온 디디칸이 호들갑을 떨며 인사했다. 간만에 보는 웨어울프 대장장이는 예전에 보았던 유쾌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하하, 안 그래도 조만간 털갈이할 때가 됐거든. 어때?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
“저번보다 훨씬 나아.”
재차 주위를 둘러본 로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설과 거주 환경을 비롯한 모든 면이 월등하게 발전해 있었다. 디디칸이 껄껄 웃었다.
“입지 자체가 훨씬 좋으니까. 어차피 재건 비용은 그랑시아 가에서 전부 내줬고 말이지. 그때 차라리 잘 무너졌다고 말하는 영감쟁이들도 있어.”
“실수했군. 죄다 동굴 거인들한테 잡아먹히게 내버려뒀어야 하는데.”
“하하, 그랬을지도. 그나저나 그쪽의 아가씨는?”
아데샨은 아직도 지저의 도시를 목도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넋을 놓고 두리번거리던 아데샨은 로난에게 어깨를 쿡쿡 찔리고 나서야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공손히 인사했다.
“핫···! 아, 안녕하세요. 아데샨이라고 합니다.”
“디디칸이다. 로난의 친구면 내 친구나 다름없으니 편하게 해. 아가씨도 무기 제작 의뢰를 맡기러 온 거지?”
“네에? 저, 저는 그냥 로난이 보여줄 게 있다고 해서 따라왔어요. 이런 곳에 의뢰를 맡길 돈은 없는데···.”
“으음? 대금이 이미 지불됐는데 그럴 리가. 편지에는 분명 두 사람분의 무기를···”
“디디칸. 시간 없으니까 안내나 해.”
로난이 디디칸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데샨은 당혹스러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황을 파악한 디디칸이 로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하, 그런 거군. 제법인데.”
“지금도 투명 갑옷 입고 있냐? 한번 막을 수 있나 볼까?”
“이크, 그건 좀 봐줘. 그럼 바로 가 보자고.”
로난과 아데샨은 디디칸의 안내를 받으며 대장간 깊숙이 들어갔다. 좌측에서는 용암의 호수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우측에서는 투명한 지하수로 이루어진 호수가 찰랑이고 있었다.
모든 대장간은 두 호수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디디칸이 말했다.
“아마 네 의뢰를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너는 누가 뭐래도 그란 카파도키아의 영웅이니까. 하지만 의뢰를 맡길 대장장이는 정해져 있겠지?”
“뭐, 그렇지. 편지에도 적어 놨잖아.”
“하긴 도론 영감만 한 사람이 없긴 해. 이제 다 왔다.”
머지않아 디디칸이 어느 건물 앞에 멈춰섰다. 새하얀 석재를 통으로 깎아 만든 건물은 완벽한 정육면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기다랗고 두꺼운 굴뚝이 동굴의 천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어난 부피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동일했다.
“한 달도 안 걸려서 다시 만들어 버리더군. 하여튼 괴물 같은 영감이야.”
디디칸은 그 말과 함께 대장간의 문을 열었다. 불현듯 로난이 아데샨의 어깨를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문을 등지고 섰다.
“로, 로난?!”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아데샨이 뭐라 말하려던 차였다. 콰아아아! 문 너머로 쏟아져 나온 빛과 열기가 두 사람을 덮쳤다.
“꺄악?!”
뒤통수가 익을 듯이 뜨거워졌다. 발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로난은 빛이 잦아들고 나서야 다시 그녀와 함께 등을 돌렸다.
“두 번은 안 당하지.”
경험에서 우러나온 대비책이었다. 로난은 그 말과 함께 대장간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번과는 달리 말끔해진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자투리 무기를 모두 마르야의 상단에 팔아치운 덕이었다. 대장간의 중앙에는 새하얀 모루와 코끼리도 집어넣을 수 있을 법한 거대한 화로가 놓여 있었다.
하얀 수염이 풍성하게 곱슬거리는, 주먹밥처럼 생긴 드워프는 바로 그 화로 앞에 서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드워프가 고개를 돌렸다. 로난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도론. 오랜만이에요.”
“오오. 로난.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대체적으로 그렇죠. 영감님은요?”
“나야 언제나 똑같지.”
불세출의 대장장이 도론은 예전과 변함없이 건강해 보였다. 두 사람은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수염을 매만지며 웃던 도론이 입을 열었다.
“그래, 편지 봤다. 두 번째 무기를 만들러 왔다고?”
“네. 그런데 제작하기 전에 하나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요.”
“상담···?”
“혹시 이걸 재료에 섞어 쓸 수 있을까요?”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던 로난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작은 삼각형 모양을 한 시커먼 종이쪼가리들이었다.
“이건···종이 아닌가?”
“맞아요. 그런데 평범한 종이가 아니거든요. 혹시 쓸 수 있나 해서요.”
“평범하지 않다라···확실히 그런 것 같기도 하군. 일단 볼까?
종이의 정체는 어젯밤에 오려낸 바쥬라의 귀퉁이였다. 도론이 종이쪼가리들을 받아서 살피기 시작했다. 시타의 알껍데기를 살필 때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검수 과정이 진행되었다.
“···세상에.”
검수가 진행되는 내내 도론의 표정은 점진적으로 심각해졌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미간을 한껏 찌푸린 도론이 로난을 올려보며 말했다.
"이런 건 또 어디서 구한 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