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천재칼잡이-113화 (113/333)

< 113. 피는 모래를 적시고(4) >

#113

“다···죽었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시발.”

일이 단단히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원주민 소년이 고개를 떨구었다.

“에이 씨. 일단 눕히자.”

로난이 외투를 벗어 바닥에 깔았다. 조심스레 소년을 눕힌 슐리펜이 침음을 흘렸다.

“내 불찰이다. 기운이 너무 약해서 새에 타고 있는지도 몰랐군.”

“많이 높은 곳에서 떨어졌냐?”

“그래. 지면이 부드러운 모래가 아니었다면 즉사했을 거다.”

슐리펜은 로크 버드의 추락이 상당히 거칠었다 설명했다. 과연 소년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타박상을 입은 것은 물론이요 골절의 흔적도 제법 보였다. 불규칙한 숨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입김은 꼭 영혼이 몸을 떠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로난이 시타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타. 부탁한다.”

“뺘!”

시타는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깃털에서 스며 나온 붉은 빛무리가 소년을 휘감았다.

파아아···! 소년의 몸 곳곳에 나 있던 타박상이 빠르게 아물기 시작했다. 사지 곳곳에 드리워 있던 피멍이 사라졌다. 이윽고 소년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했다.

“훨씬 늘었네. 오필리아한테 잘 배우나 봐.”

“뺘아~”

로난이 시타를 장하다는 듯이 쓰다듬었다. 어지간한 명품 포션보다 뛰어난 치유력이었다. 하지만 치료가 끝났음에도 소년은 눈을 뜨지 않았다.

“젠장, 빨리 일어나서 뭐가 뭔지 좀 설명해 봐.”

아무래도 의식을 되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듯했다. 찬찬히 소년을 훑어보던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다인하르에서 온 원주민이 분명했다. 검은 머리와 붉은기가 도는 피부. 신체 곳곳에 새겨진 기하학적인 문신이 그것을 증명했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로난이 미간을 좁혔다.

‘쉽게 당할 만한 작자들이 아닌데···.’

전부 죽었다는 소년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저 마경의 원주민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로난은 그들이 다인하르를 요새 삼아 농성에 들어간다면 제국군조차 점령에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때 소년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으으으으···.”

“뭐야, 일어났냐?”

움찔거리던 눈꺼풀이 서서히 벌어졌다. 로난과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튀어오르듯 몸을 일으킨 소년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졌다.

“흐어어억?!”

“진정해 인마. 내가 한 거 아냐.”

로난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는 앉은 채로 뒷걸음질을 치며 모래를 손에 집히는 대로 뿌려댔다. 소년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외쳤다.

“가, 가까이 오지 마라! 너희, 너희가 사람들을 죽였다!”

“에이 씨, 더럽게. 그만두지 못해?”

아직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모래를 맞은 로난이 이미르를 뽑아 던졌다. 푹!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단검은 정확히 소년의 가랑이 사이에 꽂혔다. 새하얗게 질린 소년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히이이익!”

“이제 좀 정신이 드냐?”

천천히 다가간 로난이 단검을 다시 뽑았다. 소년은 그제야 모래를 던지는 짓거리를 그만두었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두리번거리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여, 여긴 어디지?”

“너희 집 앞마당. 몸은 좀 어때?”

소년은 그제야 로난에게 악의가 없는 것을 눈치챘다. 넘어져 있던 소년이 그의 손을 붙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괘, 괜찮다. 네가 나를 고쳐 준 것이냐···?”

“정확히는 얘가.”

“뺘!”

로난이 눈짓했다.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시타가 회답하듯 날개를 파닥였다. 소년이 시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군. 고맙다 이상한 새. 진심이다.”

참신한 반응을 본 로난이 픽 웃었다. 붙임성이 좋은 것이 과거에 봤던 원주민들과 같은 족속이라 믿어지지가 않았다. 감사 인사를 마친 소년이 몸을 돌렸다.

“이제 나 가야 한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가다니, 어딜?”

“싸우러 간다. 놈들한테 복수하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 구해야 한다.”

소년은 대꾸하는 대신 다인하르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로난이 슬쩍 다리를 걸었다. 철푸덕! 발이 엉킨 소년이 모래 위에 엎어졌다.

“푸훕! 무슨 짓이냐!”

“얌마.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게 어딜 가?”

“방해하지 마라. 가야 한다. 안 그러면···!”

“어차피 우리도 다인하르로 갈 거야. 도와줄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 이야기해 봐.”

“구해준 건 고맙지만 도움 필요 없다. 너희 기껏해야 나랑 나이 비슷해 보인다. 놈들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얼른 도망가라.”

“어이, 슐리펜.”

헛웃음을 친 로난이 슐리펜을 돌아보았다. 뜻을 이해한 그가 사막 한복판을 향해 검기를 쏘았다. 콰아아아! 검기가 충돌한 자리에서 거대한 모래 폭풍이 솟구쳐 올랐다.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괴, 괴물이다···!”

“이 정도면 도움이 좀 될 것 같지 않냐?”

“···그렇다. 너도 저만큼 강한가?”

“내가 저거보다 두 배는 세지. 그러니까 괜한 고집 부리지 말고 말해 인마. 딱 봐도 너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으으으···.”

로난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냉정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이었다. 이를 갈던 원주민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러니까···우웁!”

별안간 소년이 구역질했다. 아무래도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로난은 그가 속에 있는 것을 다 게워낼 때까지 기다렸다. 숨을 몰아쉬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놈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갔다. 싸울 수 있는 남자들 거의 다 죽었다”

“이상한 놈들?”

“그렇다. 정말 이상한 놈들이었다.”

소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는 정체불명의 침입자들에 관해 설명했다.

한 명은 제법 연륜이 있어 보이는 중년인이었고, 다른 한명은 이상한 옷을 입고 있어서 얼굴이나 성별을 알아볼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마을까지 들어와서 학살을 자행했다.

‘마을?’

문득 다인하르의 지랄 맞은 구조를 떠올린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인하르의 중심에 있다고 알려진 원주민 마을까지는 로난조차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 새끼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냐? 어떻게 거기까지 기어들어 간거야?”

“숨어들지 않았다. 그놈들 정면으로 밀고 들어왔다. 우리 방어선 삼일만에 전부 뚫렸다.”

“뭐?”

“이상한 힘을 써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우리 공격은 하나도 안 통했는데, 그놈들의 공격은 전부 통했다. 족장님도 결국 죽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로난의 얼굴이 굳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특징이었다.

“나 계속 싸우려 했는데 어른들이 큰 새 태워서 보냈다. 날아가는 중에 공격받아서 떨어졌···어디 가나?”

별안간 로난이 몸을 돌렸다. 황급히 로크 버드에게 달려간 그가 사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주의 깊게 관찰하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깃털로 뒤덮인 옆구리 부분에 작살의 촉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쇠붙이가 박혀 있었다.

“이 개새끼들.”

후우욱···! 별안간 이미르의 검신을 타고 하얀 빛무리가 올라왔다. 마치 같은 성질을 가진 물건끼리 공명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으득.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악의가 느껴질 만큼 날카로운 쇠붙이에는 너무나도 익숙한 기운이 묻어나 있었다.

“···네뷸라 클라지에.”

미약하기는 했지만 틀림없었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상징인 반짝이는 마나였다. 잠시 침묵하던 로난이 소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야. 이름이 뭐냐.”

“꾸, 꿈꾸는 천둥이다.”

“그래. 천둥.”

“너 괜찮은 건가? 표정이···.”

로난의 얼굴을 본 소년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 로난이 다인하르에 시선을 둔 채 으르렁거렸다.

“지금 당장 출발할 거니까 안내해. 가장 빠른 길로.”

****

그들은 빠르게 짐을 챙겨서 다인하르로 향했다. 어느덧 떠오른 해가 지면을 달구고 있었다.

휴식 시간 따위는 없었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소행이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벌써 일이 터진 지 사흘이 지났다는 점이었다.

‘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아.’

로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워낙에 다채롭게 개짓거리를 하는 놈들이라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잔악한 행보로 미루어 보아 이미 원주민들은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로난과 슐리펜은 천둥의 안내를 따라 쉬지 않고 걸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이렇게 편한 길이 아니었는데 말이지.”

참극은 다인하르에 이르기 전부터 펼쳐져 있었다. 역겨운 시취가 뜨거운 바람을 타고 퍼지고 있었다. 수문장 역할을 해야 할 몬스터들이 곳곳에 널브러진 채 죽어 있었다.

떼죽음을 당한 로크 버드의 깃털이 낙엽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모험가들의 악몽 취급을 받는 샌드웜들도 뿌리까지 뽑힌 채 말라죽어 있었다.

개중에는 길이가 10m가 넘어가는 거대한 개체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불리하면 땅속으로 파고들어 여간 잡기가 까다로운 놈들이 아니었는데 무슨 재주로 끄집어냈는지가 의문이었다. 피로 젖은 모래가 볕 아래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영 찝찝한데···.”

지금까지와는 뭔가 달랐다. 불현듯 가슴의 욱신거림을 느낀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쪽 심장이 보내는 경고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오후로 접어들 무렵에 다인하르에 진입했다. 하루를 통째로 단축한 셈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높은 바위산들이 눈앞에 솟아나 있었다. 형태가 날카롭고 유기적인 것이 도저히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앞장서서 걷던 천둥이 바위산 한복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너희 걸음 빠르다. 저 틈으로 들어가면 된다. 마을로 바로 가는 지름길이다.”

“젠장, 저딴 곳에 있으니 입구를 못 찾지.”

로난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과연 천둥이 가리킨 자리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구멍이 쬐끄맣게 나 있었다.

“먼저 올라간다. 놈들한테 들킬 수 있으니 조심해라.”

그 말과 함께 천둥은 맨손으로 바위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도 동작이 잽싸서 무슨 곤충을 보는 것 같았다. 로난과 슐리펜이 그 뒤를 따랐다.

통로는 어둡고 비좁았다.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있어 자칫하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 같았다.

그들은 발소리만 들으며 어둠 속을 걸었다. 체감상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문득 눈부심을 느낀 로난이 고개를 들었다.

“도착했나.”

멀지 않은 곳에 균열 모양의 출입구가 나 있었다. 빛은 그곳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던 천둥이 갑자기 앞으로 뛰쳐나갔다.

“도착했다. 모두들···!”

“얌마, 위험하다며?!”

제지에도 불구하고 천둥은 멈추지 않았다. 로난은 황급히 그를 뒤따라 달려갔다. 균열을 벗어나는 순간 시야가 탁 트였다. 로난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새나왔다.

“씨발.”

자욱한 혈향이 훅 몰려왔다. 마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부서진 가재도구와 아이들의 주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가옥의 잔해만이 여기에 사람이 살았다는 정보를 암시하고 있었다.

로크 버드에게 박혀 있던 것과 같은 쇠붙이가 사람들의 몸에 박혀 있었다. 명패처럼 암벽에 박혀 있는 시체만 백 구가 넘었다. 보다 못한 슐리펜이 낮게 탄식했다.

“지독하군.”

어디를 보던 시체가 있었지만 훼손되지 않은 것은 손꼽히게 드물었다. 뜯겨나간 팔다리 따위는 바깥세상의 돌멩이만큼이나 흔하게 널려 있었다.

어떤 잔악 무도한 용병단도 이런 학살과 파괴는 자행하지 못할 것 같았다. 네뷸라 클라지에의 반짝이는 마나는 곳곳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굳어 있던 천둥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다 죽었다.”

그는 넋이 나간 채 지옥이 된 마을을 거닐기 시작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로난이 감각을 확장했다. 생존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짓거리를 저질렀을 개새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슐리펜을 돌아보며 말했다.

“뭐 느껴지는 거 없냐?”

“당장 감지되는 것은 없다.”

슐리펜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다인하르에 진입한 이후 감지 능력이 혼란을 겪고 있다 설명했다. 참상을 둘러보던 그의 입에서 씁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난. 삼 일이면 이미 늦었을 가능성이 크다. 혹시 모를 생존자를 구조하는 데 집중하는 게 어떤가.”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기는 한데···뭔가 아직 여기 있을 거 같단 말이지.”

로난은 아직 네뷸라 클라지에가 다인하르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더욱 고조된 가슴의 통증이 그 증거였다.

상황을 고려하던 로난이 막 다음 행동에 착수하려던 차였다. 뒤쪽에서 천둥의 비명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악!”

“썅, 뭐야?”

여지껏 들은 천둥의 목소리 중에서 가장 컸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웬 덩치 큰 괴한이 천둥을 들쳐멘 채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젠장, 멈춰!”

행색을 보아하니 천둥과 같은 원주민이었다. 한 명을 들쳐멨다고는 믿을 수 없이 빨랐다. 라만차를 뽑아든 로난이 괴한을 따라 달려갔다.

난데없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괴한은 시체들을 뛰어넘고,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가며 추격자를 따돌리려 들었다. 하지만 로난은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이 개새끼야, 서라고!”

되려 간격은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검기가 닿는 간격까지 좁혀진 순간이었다. 별안간 괴한이 바위산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그보다 한박자 늦게 모퉁이를 돈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어디 갔어?”

괴한과 천둥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로난은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날개가 달린 것이 아닌 이상 갑자기 사라졌을 리는 없을 터였다.

과연 멀지 않은 곳, 발치쯤 되는 높이에 구멍 하나가 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통로는 없었다.

“여기로 숨었구만. 약아빠진 자식.”

로난은 주저 없이 구멍에 발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바닥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빌어먹을···!”

정확히는 아주 가파른 모래 경사면이 드리워 있었다. 술통처럼 구르며 내려가던 그가 벽면에 칼을 박아넣었다. 촤아아악! 모래가 갈라지며 속도가 줄어들었다.

“퉷! 지랄 맞게도 만들어 놨네.”

로난은 한참을 떨어지고 나서야 바닥에 착지했다. 모래를 뱉어낸 그가 등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쇠붙이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웬 걸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움직이지 마라. 이방인.”

“뭐야?”

로난이 갸웃거리는 순간이었다. 휘리릭! 저 뒤편에서 휘파람을 연상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로난은 라만차를 휘두름과 동시에 몸을 돌렸다. 챙! 허공에서 불똥이 튀더니 두 동강이 난 쇠뇌가 바닥에 떨어졌다.

깔끔하게 절단된 쇠뇌는 촉부터 몸통까지가 전부 금속으로 되어 있었다. 경악에 찬 웅성임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뭣이···!”

“손님맞이를 좆같이 하는 건 여전하네."

픽 웃은 로난이 쇠뇌가 날아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천둥과 같은 행색을 한 사람들이 서른 명 정도 모여 있었다. 그들 중 절반이 이상하게 생긴 활을 손에 든 채 로난을 겨누고 있었다. 저 구석에서 천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진정해라! 로난 나쁜 사람 아니다, 우리 도와주러 왔다!”

“너는 가만히 있어라. 꿈꾸는 천둥.”

다른 이들이 그를 제지했다. 문득 원주민들의 뒤편을 바라본 로난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시커먼 수정이 굴의 벽면과 천장을 빼곡하게 뒤덮고 있었다. 모두가 찾아 헤매는 다인하르 산 마석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