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피는 모래를 적시고(7) >
#116
거대한 회오리가 두 사람의 형체를 집어삼켰다. 유리아의 비명이 바람 소리에 삼켜졌다.
“아···아악···!”
“좆같은 새끼들.”
로난이 회오리를 향해 중지를 쳐들었다. 고슴도치의 일부로 추정되는 파편들이 회오리를 따라 솟구치고 있었다.
마나를 자를 줄 안다는 비밀까지는 모르고 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검기의 사거리가 짧아서 유리아의 목을 잘라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슐리펜의 후속타가 완벽하게 들어갔다. 차기 검성의 폭풍은 두 연놈들을 완전히 갈아 버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터였다.
“으음.”
그때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던 슐리펜이 취한 듯 비틀거렸다. 그는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자세를 다잡았다.
“뭐야, 너 괜찮냐?”
“···문제없다.”
아무래도 테라닐의 광풍에 맞았던 충격이 몸에 남아 있는 듯했다. 중간평가 이후 처음 보는 약한 모습이었다. 로난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기둥까지 날아가서 꼬나 박는 거 다 봤는데 문제가 없기는 지랄. 허세 그만 부리고 이거나···”
그가 막 바렌 특제 포션을 꺼내려던 차였다. 섬뜩한 불길함이 목덜미를 스쳤다. 본능적으로 달려나간 로난이 슐리펜의 팔을 잡아당기며 몸을 날렸다.
“제기랄!”
“무슨 짓···”
슐리펜의 눈이 커졌다. 그들이 인근의 기둥 뒤로 엄폐하는 순간이었다. 파아아앙! 회오리의 형체가 무너지며 광풍이 터져 나왔다.
“······!”
거센 바람이 사위를 휩쓸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속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크고 작은 쇠붙이들이 기둥이나 바닥, 천장에 처박힐 때마다 실내를 비추던 조명이 위태롭게 점멸했다.
“그래, 어쩐지 너무 잘 풀린다 했어.”
로난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지간한 숲이나 마을 따위는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서서히 잦아드는 바람 사이로 테라닐과 유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진짜 죽을 뻔했네요.”
“하여튼 방심할 수 없군. 왜 지부장이 둘씩이나 당했는지 알 것 같아.”
“시발.”
기습은 실패였다. 건재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본 로난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붉은빛을 띠는 금속이 그들의 몸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커다란 고슴도치가 보이지 않았다. 유리아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장 아끼는 아이였는데.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거야?”
“미친년···.”
로난은 저것이 고슴도치를 분해해서 만들어낸 갑옷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텅! 텅! 용도를 마친 쇠붙이들이 떨어져 나갔다. 테라닐이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쓰읍···제법 아프군. 교단에서 치유를 받아야겠어.”
그래도 아주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갑옷이 떨어진 자리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뚱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상으로 뒤덮인 그들의 몸에서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주교님, 괜찮아요?”
“괜찮다네. 어차피 눈으로 보고 싸우는 게 아니니.”
테라닐의 양쪽 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회오리에 휘말린 와중에 다친 것 같았다. 이거 하나는 확실한 성과였다. 로난이 도발적인 웃음을 흘렸다.
“장님이 되셨구만. 거 불쌍해서 어쩌나.”
“너희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그러시겠지. 그런데 생각보다 더 못생겼네.”
“뭐?”
유리아의 눈이 커졌다. 찢겨나간 베일 아래로 그녀의 맨얼굴이 드러나 있었다.
“으, 징그러.”
그녀와 눈이 마주친 로난이 미간을 찌푸렸다. 왜 평소에 그딴 괴상망측한 옷을 입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유리아는 말 그대로 반쪽짜리 미인이었다.
콧대를 국경 삼아 갈라진 얼굴에서는 미녀와 괴물이 공존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오른쪽 얼굴과는 달리 왼쪽 얼굴은 징그러운 화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거미집처럼 부풀어 오른 화상은 이마부터 미끈한 허벅지까지 그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우웩! 일부러 과장된 동작으로 구역질한 로난이 유리아를 흘겨보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더 껴입고 다녀. 보는 사람 생각도 해 줘야지.”
“···너는 꼭 내가 반으로 찢어 죽여줄게.”
유리아가 낮게 읊조렸다. 촤르륵! 그녀의 소매 아래로 기다란 채찍이 흘러내리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금속끼리 연결되어 만들어진 채찍은 꼭 강철로 된 뱀을 연상케 했다.
‘좋았어.’
로난이 내심 쾌재를 불렀다. 목소리에 노기가 서려 있는 걸로 보아 도발은 성공이었다. 대등하거나 더 강한 적을 상대할 때는 평정을 흔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쾅!
쾅!!
그때 거대한 그림자 두 개가 그녀의 앞에 착지했다. 방금의 고슴도치와 마찬가지로 마공학 기술로 만들어진 괴물들이었다.
“크르르르르···.”
“가르륵.”
각각 원숭이와 표범의 형상을 한 괴물들의 몸은 검붉은 피로 칠갑이 되어 있었다. 정황상 원주민들의 것이 분명했다. 순간 로난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돌풍?”
“커흑. 로, 로난···.”
거대한 원숭이의 손아귀에는 성난 돌풍이 쥐어져 있었다. 금속으로 된 손가락 틈새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채 신음하던 돌풍이 로난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어떻게 된 거야?”
“크으···구, 굴 쪽으로 가는 걸···막다가···.”
돌풍이 띄엄띄엄 말했다. 로난은 그가 부족민들에게 가려는 괴물들을 유인하려다 저렇게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의 중상이었다. 오른쪽 다리와 왼팔이 반대로 돌아가 있었다.
원래 저 색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새빨갛게 물든 몸통에는 작살을 연상케 하는 쇠붙이가 대여섯 개씩 박혀 있었다.
“뭐야, 다 잡은 줄 알았는데 한 마리 더 있었네?”
유리아가 픽 웃었다. 그 순간 로난의 속에서 무언가 끊어졌다. 칼자루를 잡아당기며 뛰쳐나간 로난이 팔을 뿌렸다. 스각! 붉은 선 수십 가닥이 원숭이의 몸 위로 그어졌다.
“그륵···?”
뒤늦게 이변을 느낀 원숭이가 로난을 돌아보는 찰나였다. 콰앙! 수십 토막으로 조각난 상반신이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 삐그덕거리던 하반신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손아귀에서 풀려난 돌풍이 계단 앞에 나동그라졌다.
“커억!”
“무슨···!”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쾌검에 유리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원숭이를 밟고 도약한 로난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당황한 그녀가 채찍을 휘둘렀으나 로난은 피하지 않았다. 촤악! 날카로운 채찍이 그의 왼쪽 어깨를 종이 한 장 간격으로 스쳐 지나갔다.
“뒈져.”
유리아는 다급하게 채찍을 잡아당겼지만 로난이 더 빨랐다. 붉게 물든 칼날이 유리아의 목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쾅! 갑자기 끼어든 테라닐이 로난의 앞을 가로막았다.
“안 비켜?”
“서두르지 말게.”
감긴 눈꺼풀 아래로는 여전히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유리아를 뒤로 밀쳐낸 테라닐이 제비를 넘으며 참격을 피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몸놀림이었다. 그가 벙쪄 있는 유리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유리아, 그랑시아의 소공작을 부탁하네. 이 친구에게 용건이 있어서.”
“그럴 수는 없어요 주교님. 방금 저한테 한 말 들으셨잖아요.”
“유리아.”
한순간 테라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유리아가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을 짓씹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그렇게 할까요?”
몸을 돌린 유리아가 슐리펜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이미 달려오고 있던 슐리펜이 참격을 날렸다. 카아아앙! 두 개의 흉기가 격돌하며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다시 로난을 마주 본 테라닐이 허허 웃었다.
“오래 기다렸단다. 내게도 시간을 좀 할애해 주려무나.”
“비키라고!”
스아아- 로난의 입술 사이로 기묘한 숨소리가 새나왔다. 마나를 먹인 참격 다섯 획이 테라닐을 향해 쏘아졌다. 두 번은 피하고 두 번은 흘렸지만 남은 한 번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서걱! 테라닐의 어깻죽지 위로 피가 솟구쳤다.
“으음!”
테라닐의 얼굴이 굳었다. 로난의 공격이 이어졌다. 아슬아슬하게 참격을 피하던 테라닐이 정권을 내질렀다.
파앙! 소리보다 빠르게 날아온 주먹은 로난의 배와 조금 미치지 않는 곳에 멈춰 섰다. 병신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로난이 반격하려는 찰나였다. 콰아앙! 오장육부를 뒤흔드는 충격파가 주먹이 멈춰선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크억!”
숨이 턱 막혔다. 로난은 거대한 마차에 치인 사람처럼 날아갔다. 날갯짓의 풍압과는 다른 충격이었다.
“씨···발···!”
가까스로 허공에서 몸을 비튼 로난이 바닥에 이미르와 라만차를 동시에 박아 넣었다. 카가가가각! 불씨와 스파크가 물보라처럼 튀어 올랐다. 그의 몸뚱이는 50m가량을 밀려나고 나서야 멈춰섰다.
“···좆같은 능력을 쓰는군.”
“이래 봬도 예전에는 발카르의 투사였단다.”
마법사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투 계열인 모양이었다. 테라닐의 어깨 위로 반짝이는 마나가 들불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웅웅거리며 진동하는 오러가 그의 양손을 둘러싼 채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문득 땅에서 뽑혀 나와 죽어 있던 샌드웜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쳤다. 저 능력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가만히 침묵하던 테라닐이 말을 이었다.
“안타깝구나. 조금만 무뎠어도 좋았을 것을.”
“뭐?”
“너 정도 되는 재능이라면 뤼코포스가 되기에도 모자람이 없을 텐데···길들일 수 없는 맹수라는 건 참으로 슬픈 존재구나.”
영문 모를 개소리에 로난이 눈살을 찌푸렸다. 실제로 테라닐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 있었다.
“뤼코포스?”
“그래. 교단의 가장 날카로운 검이지. 간만에 새로운 인재가 영입되나 했더니···.”
그제야 로난은 테라닐이 자신을 끌고 다니면서 온갖 잡소리를 늘어놓은 이유가 회유를 위해서였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침음을 흘리던 테라닐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참으로, 안타깝구나.”
파앙! 그리 읊조린 테라닐이 공중으로 도약했다. 인간이 아닌 몬스터를 연상케 하는 각력이었다. 쾅!! 순식간에 정상까지 도달한 그가 천장을 박차며 몸을 날렸다. 주먹을 앞세우며 쇄도하는 테라닐의 모습은 먹이를 향해 강하하는 맹금을 연상케 했다.
“지랄.”
로난이 헛웃음을 쳤다. 아론데일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압감이었다. 그가 요격하듯 검기를 쏘았으나 테라닐은 가볍게 몸을 뒤트는 것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촤악! 빗나간 검기가 테라닐의 귓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아까도 느꼈지만, 칼솜씨에 비해 검기는 형편없구나.”
“원숭이 같은 새끼가···!”
로난이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느릿한 검기로는 테라닐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아까처럼 붙어서 찌르거나 베어야 가망이 있었다.
먼저 쏘아진 충격파가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감당하지 못할 것을 직감한 로난이 황급히 측면으로 몸을 굴렸다. 콰아아아앙-!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들어가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파도치듯 출렁였다.
‘이건 진짜 위험한데.’
유적을 날려 버릴 거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파문처럼 번져나간 충격파가 지하를 뒤흔들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유리아의 광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잘생긴 도련님, 왜 이렇게 힘을 못 써?”
살아 있는 듯한 채찍질이 난무하고 있었다. 카캉! 캉! 검과 채찍이 부딪힐 때마다 불똥이 거칠게 튀어 오르고 있었다.
미친년처럼 날뛰는 유리아에 비해서 슐리펜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일방적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열세에 빠져 있었다.
별의 가호 탓이었다. 방어막과 채찍의 압박에 밀려나는 슐리펜을 보며 유리아가 광소를 터트렸다.
“꺄아하하! 그래, 이게 맞지. 너는 못 뚫는구나?”
“크윽···!”
유효타가 될만한 슐리펜의 공격은 모두 별의 가호에 막히고 있었다. 일렁이는 방어막은 물리적인 참격도 폭풍의 오러도 모두 삼키고 있었다.
“크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빈틈이 생길 때마다 표범 괴물이 달려들고 있었다. 표범 역시 불리해진다 싶으면 별의 가호 속으로 숨어들어 스스로를 수리하고 나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저딴 상황에서도 버티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균형이 깨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았다. 로난의 입술 사이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작전이 필요해.’
전례없는 위기였다. 전체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뭔가 다른 수단을 써야 했다. 하지만 로난에게 슐리펜에게 신경을 쓸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 한눈을 파느냐?”
콰앙! 다시금 쇄도해온 테라닐이 정권을 내질렀다. 일직선으로 쏘아진 충격파가 로난의 귓가를 스치며 지나갔다. 로난은 곧바로 반격을 날렸지만, 테라닐은 이번에도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칼을 피했다.
“소용없단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 공격은 전부 읽을 수 있어.”
“호모 자식이···.”
눈으로 보고 대응해도 저렇게는 못 움직일 것 같았다. 그는 로난의 마나를 완벽하게 감지하며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숨이 가빠져 오는 것을 느낀 로난이 입술을 비틀었다. 운용하던 마나가 서서히 동나고 있었다.
‘좆됐네. 이걸로는 못 잡는데.’
탈진하지 않기 위해서는 바쥬라의 코어를 운용해야 했다. 허나 반짝이는 마나를 먹여서 휘두르는 검은 기존에 로난이 다루는 마나를 먹인 검보다 훨씬 느렸다.
아까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잽싼 테라닐을 상대하기에는 결정력이 부족했다.
‘회복될 때까지 시간이라도 끌어야겠군.’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로난은 바쥬라의 코어로 동력원을 전환했다. 몸에 기력이 차오르며 반짝이는 마나가 검신을 타고 올라왔다. 불현듯 로난을 뒤쫓던 테라닐이 제자리에 멈춰섰다.
“으음?!”
갑자기 객지에 내던져진 인간이 보일 법한 반응이었다. 테라닐은 정말 맹인이라도 된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이상행동에 로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득 하나의 가설이 머릿속에 번득였다.
‘설마···.’
테라닐은 시력이 아닌 마나 감지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충격파를 일으킬 때 발생한 반짝이는 마나가 운무처럼 퍼져 있었다.
‘구별하지 못하는 건가···?’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로난이 다시 동력원을 전환했다. 하얗게 빛나던 라만차가 붉게 물들었다. 테라닐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하, 거기 있었구나.”
그는 곧장 로난을 향해 쇄도해왔다. 콰아앙! 테라닐이 발을 구르자 지면이 뒤집히며 스파크가 치솟았다. 재차 발생한 충격파가 로난을 덮쳤다.
로난은 재빠르게 칼을 눕혀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몸이 뒤로 날아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콰아앙! 다시 기둥에 처박힌 로난의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크억!”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기술이었다. 후들거리며 일어선 로난이 테라닐을 노려보았다. 그는 마무리 일격을 날리기 위해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었다. 로난을 향해 고개를 돌린 테라닐이 싱긋 웃었다.
“포기한 게냐?”
로난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 과연 주교에 걸맞은 강자였다. 테라닐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럼, 슬슬 끝내자꾸나.”
테라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로난이 동력원을 전환했다. 콰아앙! 직선으로 날아온 테라닐이 기둥과 충돌했다. 금속 타일이 뒤집히며 안에 있던 기계장치들이 튀어 올랐다.
“아?”
테라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둥에서 빼낸 주먹에는 피도, 으깨진 내장도 묻어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로난의 기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까와 같은 기묘한 현상이었다. 문득 스산한 소름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무슨···!”
테라닐이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가 충격파를 실은 주먹을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사라졌던 로난의 기척이 다시 나타났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그래, 끝내자.”
툭. 테라닐의 양팔이 바닥에 떨어졌다.